독립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 대책 없다> 포스터

독립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 대책 없다> 포스터 ⓒ 이동우 감독


이동우 감독의 <노후 대책 없다>는 소문대로 정신없고 산만한 영화였다. 속사포처럼 휙휙 지나가는 무수한 컷들은 관객들에게 도무지 생각할 틈을 주지 않는다. 감독이 배열한 장면대로 정신없이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영화에 등장한 밴드와 주요 인물들의 근황을 소개한 엔딩과 마주한다.

어떤 이는 <노후 대책 없다>를 보고 "이게 영화냐"면서 자리를 박차며 욕설을 한 바가지 퍼부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지난 26일 '1회 앙코르 영화제'(The Festival of Film Festivals, 아래 FoFF 2017)'에서 있었던 <노후 대책 없다> 상영 중에 이 영화를 견디지 못해 뛰쳐 나간 관객은 거의 없었다. 대신 영화가 끝난 이후 기립박수가 나왔다. 영화 이후 진행한 관객과의 대화(GV)에도 많은 관객들이 남아 감독 및 주인공들과 함께 영화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눴다. 

<노후 대책 없다>는 지난해 국내 영화제를 통해 소개된 독립 영화들 중에서 가장 압도적으로 성공한 작품으로 평가 받는다. 지난해 열린 제17회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제12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 등 독립영화 감독들에게는 꿈의 무대라고 불리는 국내 메이저 영화제를 두루 거친 이 영화는 결국 제42회 서울독립영화제(이하 서독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관객들의 반응도 후끈했다. 실제로 작년 서독제가 열린 기간 동안, 서독제 상영작 중에서 SNS 상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영화는 <노후 대책 없다>였다. 당시 서독제 심사위원장으로 시상식에 참여한 김홍준 감독은 <노후 대책 없다>의 서독제 대상 수상을 두고 "'서독제의 스캔들'과도 같은 수상작이 될 듯하다"는 시상 소감을 남기기도 했다.

 독립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 대책 없다> 한 장면

독립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 대책 없다> 한 장면 ⓒ 이동우 감독


'독립영화의 스캔들' <노후 대책 없다>

하지만 나는 <노후 대책 없다>를 서독제를 넘어 '독립영화의 스캔들'과 같은 문제작으로 평하고 싶다. 애초 <노후 대책 없다>에 등장하는 펑크 밴드들은 세속적인 성공과 거리가 먼 인물들이다. 이동우 감독이 속해있는 펑크 밴드 '스컴레이드'는 지난 2015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하드코어 펑크 음악 페스티벌 초청 이후, 전세계 펑크 신에서 러브콜을 받는 한류 밴드(?)가 되었지만, 정작 한국에서는 극소수의 펑크 마니아들만 아는 듣보잡 밴드다. 역시 영화에서 비중있게 등장 하는 밴드 '파인 더 스팟' 또한 일본에서 활동을 통해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아마 <노후 대책 없다> 덕분에 파인 더 스팟, 스컴레이드를 알게된 사람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그 중에 나도 들어간다.)

극소수의 마니아들만을 상대로 공연을 하고 음반을 발매하는 이들은 자연스레 음악 활동 외에 또다른 직업을 가진다. 펑크는 좋아서 하는 거고, 또다른 일은 말그대로 생계를 위한 선택이다. 이들은 애초 음악으로 돈을 벌 생각을 일절 하지 않는다. 해외에서 공연 및 음반 발매 요청이 들어온다고 하나, 그들 스스로도 음악 활동에만 전념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 수 있는지 의문이다. <노후 대책 없다>에 등장 하는 펑크 뮤지션들은 늘 불안하고, 그런 자신들을 자조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사회 구성원이 대부분 인정하는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불안하고, 지금 당장은 돈이 많아도 그 나름대로 불안하다. 그것이 오늘날 한국의 현실이다.

스컴레이드, 파인 더 스팟이 활동하기 훨씬 이전부터 한국 펑크신의 기조를 다졌던 뮤지션 선배들 중 해외로 떠난 이들도 몇몇 등장한다. 이동우 감독은 미국으로 떠난 '반란' 보컬과 화상 채팅을 통해 펑크에 대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고, 한 때 진보화된 한국 사회를 열렬히 희망했지만, 지금은 스웨덴에 완전히 정착한 펑크 선배를 만나러 그가 살고 있는 스웨덴으로 날아가기도 했다. 한국이 싫어 미국 혹은 스웨덴으로 이주한 선배 뮤지션들은 일찌감치 해외 활동에 눈을 돌린 스컴레이드와 파인 더 스팟의 미래일 지도 모른다.

이동우 감독을 포함 자신이 속해있는 펑크 뮤지션들의 불안한 일상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은 <노후 대책 없다>는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이들의 호응을 얻었고, 조만간 극장 개봉도 준비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영화제에서 극찬 세례를 한 몸에 받은 화제작이라고 한들, 극장 개봉을 통한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질지는 별개의 영역이다.

애초 <노후 대책 없다>가 관객들의 좋은 평가, 국내 영화제 상영과 수상을 노리고 만든 계산적인 영화 였다면, 그 영화를 본 관객들이 지금처럼 <노후 대책 없다>를 열렬히 사랑해주었을까. 이동우 감독은 그와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스컴레이드가 그랬듯이, 그리고 그의 음악적, 정신적 동반자인 친구들이 늘 하던대로 영화를 만들었을 뿐이다.

말끝마다 비속어를 남발하고, 매 공연 때마다 과격한 퍼포먼스를 이어가는 이들의 캐릭터가 정말 흔하지 않기 때문에,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다수의 관객 입장에서는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영화가 되는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영화 <노후 대책 없다>를 더욱 매력적이게 느끼게 하는 요소는 난해한 편집, 촬영, 내러티브 전개에서 뿜어져 나오는 괴팍하고도 강렬한 에너지에 있었다.

만약 전통적인 다큐멘터리 작법 기준에서 <노후 대책 없다>를 평가한다면, 이 영화는 엄청난 괴작에 가깝다. 하지만 엉성하게 대충 만들고 자른 것 같은 장면과 장면 사이에서 느껴지는 영화적 기본기는 놀라울 정도로 탄탄하다. 영화 시작에서부터 두서 없이 여러 인물들이 우르르 등장하고 갑자기 사라짐을 반복하는 것 같지만, 사실 누가봐도 정신없고, 때로는 이상해 보이는(?) 펑크 뮤지션들을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인식시키는 방식이고, 실제 영화에 더욱 몰입시키는 극적 요소로 작용한다.

적어도 이 영화에는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살고 있으니, 어여쁘게 봐주세요" 식의 감성팔이가 없다. 남들이 뭐라고 하든, 자신들이 원하는 음악을 하면서 살아가는 영화 속 뮤지션들은 당당하게 자신의 삶과 펑크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영화에도 펑크와 삶에 대해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자신들의 삶을 개척하는 이들의 현실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독립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 대책 없다> 한 장면

독립 음악 다큐멘터리 영화 <노후 대책 없다> 한 장면 ⓒ 이동우 감독


예술로서의 저항을 넘어, 한국 영화에 대한 일종의 반기

박근혜 대통령 탄핵 여부와 별도로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대한민국의 암울한 현실을 격렬한 방식으로 노래하는 <노후 대책 없다> 펑크 뮤지션들은 '예술로서의 저항'을 통해 이 시대 청춘들이 차마 입으로 꺼내지 못하는 고민과 불만을 대신 꺼내 준다. 그러나 이 영화가 건드리는 지점은 절망과 분노 속에 살아가는 대한민국 청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폐쇄적인 한국 사회에 그치지 않는다. 이들이 추구하는 음악 못지 않게 난해하고 때로는 하드코어적 으로 다가오는 <노후 대책 없다> 자체가 형식과 소재 등에서 획일화 되어가는 한국 영화에 대한 일종의 반기처럼 느껴진다.

보통의 관객들에게 익숙한 다큐멘터리 형식을 빌리고 있지만, 펑크 뮤지션들을 다루는 구성 방식만큼은 웬만한 실험영화 못지 않게 괴이하고 흥미로운 <노후 대책 없다>. 이 영화는 요즘 독립 영화들이 미처 하지 못했던 '기존 예술에 대한 저항'을 몸소 보여준다. 지난해 등장한 한국 독립 영화 중에서 씨네필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노후 대책 없다>를 '서독제의 스캔들'을 넘어 '독립영화의 스캔들'로 부르고 싶은 이유다.

앞서 말했듯이, 이 영화가 극장 개봉에 성공한다고 한들, 흥행과 수익 창출로 이어질지는 의문이다. 전주, 제천, DMZ국제영화제에 초청되고 서독제에서 대상도 받았고, 상영 때마다 많은 관객을 모은다고 한들, 영화 내내 욕설이 난무하고, 나이 지긋한 중년 이상 어르신들에게는 정신사납고 시끄러기만 한 이 영화에 상영관을 열어줄 극장이 전국에 몇 군데 있을까 싶기도 하다. 설령 이 영화가 예상 외로 대박을 친다 해도, 만년 적자투성이인 그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질지도 의문이다. 그저, 파인 더 스팟의 정신없는 '노후 대책 없다'가 우리의 불안한 삶을 대신 위로해줄 뿐. 우리는 가만히 있어도 불안하고, 뭘 해도 불안한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그만아닌가. 기회가 되면 <노후 대책 없다>를 꼭 다시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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