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이 한창이던 1966년 12월, 남베트남 꽝응아이성 빈호아에서 430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했다. 학살의 희생자는 대부분 여성, 노인, 어린이였으며, 임산부도 있었다. 마을 전체가 불탔고, 수백 마리의 가축들이 죽었다.

빈호아 마을에서 학살을 자행한 이들은 그 외에도 80여 곳의 마을에서 민간인을 학살했다. 총 9000여 명에 이르는 민간인들이 무고하게 목숨을 잃었다. 이를 기억하기 위해, 빈호아에서는 마을 입구에 한 비석을 세웠다. 비석의 비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겨져 있다.

'하늘에 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

 영화 <알포인트> 포스터.

영화 <알포인트> 포스터.ⓒ 시네마서비스


증오비의 대상, 베트콩이 아닌 한국군

베트남 전쟁은 1960년에 결성된 남베트남민족해방전선이 베트남의 완전한 독립과 통일을 위해 북베트남의 지원 아래 남베트남 정부와 이들을 지원한 미국과 벌인 전쟁이다(두산백과). 초기에는 공산주의 북베트남과 민주주의 남베트남간의 내전이라는 성격을 띠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진영 수호라는 명목으로 미국이 참전하면서 국제적인 전쟁으로 비화됐다. 미국의 우방국인 한국 또한, 남베트남 지원을 위해 32만 명의 군을 베트남 전쟁에 투입했다.

그렇다면 남베트남의 빈호아 마을에서 민간인을 학살하고 마을을 통째로 없애버린 자들은, 남베트남과 전쟁을 벌이고 있던 북베트남, 즉 베트콩이었을까? 하지만 역사는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학살자들의 정체는 남베트남의 지원국이었던 미군과 한국군이었다. 특히 빈호아 학살은 대한민국 해병대의 청룡부대가 저지른 일이었다. 빈호아 마을 입구의 증오비, 그 대상은 베트콩이 아닌 한국군이었던 것이다.

"베트콩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화 <알포인트>(2004)는 베트남 전쟁 속 한국군의 뼈아픈 역사를 담는다. 물론 영화의 내용은 실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상당한 기시감을 느끼게 한다.

1972년, 베트남 전쟁이 막바지에 다달았다. 최태인 중위는 혼바우 전투의 생존자다. 200명의 부대원 중 혼자만 살아남은 그는, 매일 밤 악몽에 시달린다. 본대 복귀를 요청했으나, 오히려 비밀 수색 명령을 받는다. '알포인트'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던 18명의 수색대원들로부터 무전이 왔고, 최 중위는 이들의 생사를 확인하는 임무를 받는다. 그렇게 최 중위를 포함한 9명의 병사들은 알포인트로 향한다.

 영화 <알포인트>의 한 장면

영화 <알포인트>의 한 장면ⓒ 시네마서비스


알포인트에 도착한 그들을 맞이한 건 한 낡은 비문이었다. '손에 피 묻은 자, 돌아갈 수 없다.' 비문을 지나친 이후, 그들에게는 정체불명의 일들이 발생한다. 첫 야영지엔 10명의 병사가 보인다. 하나 둘씩 대원들이 사라져 가고, 어떤 대원들은 무언가에 홀린 듯 행동한다. 이에 진창록 중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베트콩이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영화는 장영수 병장을 제외한 모든 대원이 죽음을 맞이하며 끝난다. 진 중사의 말마따나 베트콩의 공격을 받아서였을까? 그러나 병사들을 죽인 건 그들 자신이었다. 대원들은 무언가에 홀려 서로를 죽인다. 그 정체는 바로 최 중위가 죽인 베트남 여성의 귀신이었다. 억울하게 죽은 베트남인들의 원한이 그들을 죽인 것이다.

영화 속 알포인트는 프랑스가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던 시기,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무고하게 죽어갔던 장소다. 이곳을 최 중위의 한국군이 다시 방문한다. 비록 영화에는 한국군이 직접적으로 베트남 사람들을 학살하는 장면이 나오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국군이 9000여 명의 민간인을 학살한 역사와 결합하여, 영화는 최 중위와 한국군을 학살의 가해자로 설정한다. 프랑스 군의 무덤, 최 중위와 병사들의 시체의 병렬적 배치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무고하게 죽은 9000여 명의 민간인들은 베트남 여성 귀신으로 표현된다.

진 중사는 '베트콩이 있는 것 같습니다'라 말하며, 지속적으로 베트콩을 악으로 설정한다. 그와 동시에, 자신들을 베트콩에게 공격을 당하는 피해자로 상정한다. 하지만 실상은 최중위와 대원들, 자신들이 악, 가해자였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악'한 한국의 모습

일제 치하 36년, 우리는 수많은 참상을 겪었다. 독립을 위해 힘썼던 사람들 대부분은 목숨을 잃었다.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일본으로 끌려가 강제노역으로 희생됐으며, 전쟁터에 강제징병됐다. 여성들은 위안부로 끌려가 지금까지 고통 받고 있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5년 뒤에는, 6.25 전쟁이 발발했다. 냉전 체제 하 미국, 중국, 러시아 등이 개입한 이념 전쟁으로, 99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었고, 한반도는 거의 초토화됐다. 그래서 국제 사회 속 한국의 위치는 대개 피해자로 설정되며, 우리 또한 그렇게 받아들인다. 일제강점기, 한국전쟁의 역사는 이에 근거가 된다.

하지만 베트남 전쟁의 역사 그리고 영화 <알포인트>는 한국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베트남 전쟁 속 한국, 한국군의 모습은 '악'하다. 무고한 민간인들을 학살하였고, 마을을 황폐화시켰다. 우리가 그 동안 '악'이라고 설정했던 대상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럼에도 여전히 우리나라에서는 베트남 전쟁의 폐해에 대한 공식적인 사과나 회고가 없다. 한국군의 베트남 민간인 학살에 대한 역사 교육도 상당히 드물다. 그 결과 대다수 국민들의 인지 정도도 높지 않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또한 사과해야 한다. 위안부 피해자들과 그 가족들의 아픔을 공유하고, 가해자들에 분노하는 우리의 마음은 베트남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그래서 영화 <알포인트>와 역사는 말한다. '하늘까지 닿을 죄악, 만대를 기억하리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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