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멘터리 영화 <사람이 산다>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사람이 산다> 한 장면 ⓒ 송윤혁


지난해 독립영화 팬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영화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으라면 송윤혁 감독의 <사람이 산다>(2015)이다. 이 영화는 아직 극장 개봉을 하지 못했고, 이후 걸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수많은 독립 영화가 각종 영화제를 통해 관객들과 만나고 있지만, 그 중 극장 개봉을 통해 다시 세상에 공개 되는 케이스는 드물다. 게다가 최근까지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 배급을 전문적으로 해오던 영화사 '시네마달'이 세월호 관련 다큐멘터리를 연이어 배급 했다는 이유로 현 정부에게 제대로 찍혀, 심각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다. 이를 살리기 위한 운동이 영화계 안팎에서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만큼 시네마달은 살아나겠지만, 이 작은 배급사가 소화할 수 있는 작품 수도 지극히 한정되어 있다.

이런 사정 등으로 <사람이 산다>와 같은 영화를 만날 수 있는 창구는 사실상 영화제 혹은 상영회 밖에 없다. 그런데 난 운 좋게도 <사람이 산다>를 무려 10번 이상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참고로 <사람이 산다>는 지난해 열린 16회 인디다큐페스티발 개막작이자, 폐막작이기도 했다. 개막작이 폐막작으로까지 선정되는 경우는 극히 이례적이다. 인디다큐페스티발은 그 해 영화제에 참석한 관객들의 투표를 통해 폐막작을 결정하는데, 수많은 관객들이 <사람이 산다>를 16회 인디다큐페스티발 최고 인기 영화로 선정했다. 그리고 <사람이 산다>는 제14회 서울장애인인권영화제, 제8회 DMZ국제다큐영화제에서 상영했다. 최근에는 독립영화전용관 인디스페이스가 주관하는 '2017 으랏차차 독립영화' 상영회와 '1회 앙코르 영화제'(The Festival of Film Festivals, 아래 FoFF 2017)에서도 관객과 만났다.

영화에 담긴 사람들

 다큐멘터리 영화 <사람이 산다>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사람이 산다> 한 장면 ⓒ 송윤혁


지난해 인디다큐페스티발을 통해 <사람이 산다>를 두 번 관람 했고, 한국독립영화협회 계간지 '독립영화' 원고 집필과 관련해서 <사람이 산다>를 몇 번 더 볼 수 있었다. 그런데 몇 번을 봐도 이 영화를 계속 보고 싶다는 충동이 들기도 했다. 영화의 총 러닝타임이 70분 안팎으로 여타 장편 영화들에 비해 짧기도 했지만, 볼 때마다 새로운 감상에 빠지게 된다.

영화는 서울역 근처 동자동 쪽방촌을 배경으로 한다. 주요 인물들은 모두 동자동 쪽방촌에 거주하는 도시 빈민들이다. 그곳 주민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인데 이들 중에서도 일반 수급자 혹은 조건부 수급자로 나뉜다. 영화에서 비중 있게 등장 하는 창현 아저씨와 일수, 승희 부부는 일을 해서 돈을 버는 행위가 일절 금지된 일반 수급자이고, 남선 아저씨는 우여곡절 끝에 조건부 수급자(정부의 자활근로 사업에 참여하는 조건으로 생계, 주거 급여 지원)로 선정된다.

영화 주인공 격인 이들은 정당한 노동을 통해 돈을 벌고 싶어 하고, 자신들에게 일방적인 온정의 손길을 베푸는 것을 선뜻 내켜하지 않는다. 하지만 정부에서 주는 몇 십 만원 안팎의 수급비로만 생계를 꾸려 가야하는 쪽방촌 주민들은 불법으로 노동을 하여 부족한 생활비를 벌거나 자신들을 최대한 불쌍하게 보이는 조건으로 자선 단체에서 제공하는 도움을 받아야한다. 이들 중에는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실패한 사람들도 상당수다.

영화는 정부가 기초생활 수급자를 선정하는 절차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조건부 수급자를 희망하는 사람은 자신의 가난을 증명하는 것은 기본, 법적으로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부양의무자가 없어야만 간신히 생계 급여를 지원받을 수 있다. 조건부 수급자를 신청했지만, 부양의무자(아버지)가 있다는 이유로 지원이 거절된 남선 아저씨의 사연으로 바라본 대한민국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수급 대상자를 더욱 비참하게 만든다.

<사람이 산다>를 볼 때마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작이었던 켄 로치 감독의 <나, 다니엘 블레이크>(2016)가 종종 떠오른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심장에 이상이 생겨 더 이상 일을 못하게 되었지만 영국 정부의 복잡한 복지 지원 정책 때문에 실업 급여를 받지 못하는 다니엘의 이야기를 통해, 현 영국 정부의 복지 제도 모순을 꼬집는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한 발 더 나아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인간의 존엄성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복지 현장에 물음을 제시한다.

가난의 책임

 다큐멘터리 영화 <사람이 산다> 한 장면

다큐멘터리 영화 <사람이 산다> 한 장면 ⓒ 송윤혁


<사람이 산다>,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할 뿐, 가난한 사람들의 인권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사회에서 빈민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 <사람이 산다>에서 딸의 미래를 위해 쪽방촌을 벗어나고 싶어 했던 일수와 승희 부부는 일수가 당뇨 합병증으로 눈이 완전히 먼 이후에서야 그들이 원하던 공공임대아파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부양의무자가 있다는 이유로 조건부 수급자 신청이 거절된 남선 아저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이후, 조건부 수급자가 되었고 비로소 쪽방촌에 온전한 방 한 켠을 얻을 수 있다.

위생상태가 좋지 못한 빈민들의 주거지 동자동 쪽방촌은 지금도 수많은 주민들이 병마와 싸워가며, 소리 없는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사람이 산다>에 유독 쪽방촌 주민들의 장례식 장면이 많이 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송윤혁 감독이 약 1년 동안 실제 그곳에 거주 하면서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것도 도시 빈민들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영화는 관객들의 동정의 시선을 원하지 않는다. 도시 빈민들에 대한 정부의 정당한 복지 제도가 뒷받침되면 얼마든지 자립 가능한 존재로 이들을 대하고자 한다.

<사람이 산다>가 지난해 인디다큐페스티발 및 이후 진행된 여러 상영회에서 관객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은 것은 쪽방촌 주민들의 삶을 밀착된 카메라로 보여준 다큐멘터리의 본연의 역할에 충실한 부분도 크지만 도시 빈민들을 시혜적 대상이 아닌, 마땅히 누려야할 인권을 존중받는 사람으로 바라본 시점에 있었다. 영화 속에서 내레이션을 맡은 송윤혁 감독은 자신의 목소리로 부양의무제 철폐 등을 직접 외치지 않는다. 대신, 부양의무제의 모순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현 정부의 복지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제시한다. 그에 대한 판단은 어디까지나 관객 스스로의 몫이다. 전형적인 사회 고발성 성격의 영화는 누군가에게는 상당히 불편하게 다가올 수 있다. 그러나 이 또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장면이고, 다수의 사람들이 애써 외면하는 빈곤의 현장을 카메라에 생생하게 담아내어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것은 독립 다큐멘터리 영화가 해야 할 일이다.

지난 25일 'FoFF 2017'를 통해 상영된 <사람이 산다>가 언제 또 다시 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날 수 있을 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추후 <사람이 산다>를 볼 기회가 생긴다면 이 영화를 꼭 보라고 권하고 싶다. "사람들에게 '가난은 너의 잘못이다'라고 말하는 우리의 잔인함의 문제이다"라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 감독이 남긴 명언을 빗대어, 사회의 불균등한 구조 때문에 생긴 가난의 악순환을 개인의 노력부족으로 돌리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는 <사람이 산다>와 같은 영화가 중요하게 다가온다. 현재 재개발 바람이 불어 철거 논의가 오가는 동자동 쪽방촌에는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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