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 서울 SK 나이츠의 6강행 희망이 점점 멀어지고 있다. 문경은 감독이 이끄는 SK는 현재 17승 26패로 6위 인천 전자랜드에 3게임 차이로 뒤져있다. 지난 23일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고양 오리온과의 2016-2017 KCC 프로농구 정규리그 원정경기에서 85-92로 역전패를 당하며 6위권과의 격차를 좁힐수 있는 또 한번의 기회를 놓쳤다.

현재 SK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팀은 9위 전주 KCC와 꼴찌 부산 KT 뿐이다. 그런데 두 팀은 올시즌 하위권에 있을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분명한 팀들이다. KCC는 시즌 개막과 동시에 하승진-전태풍-안드레 에밋 등 지난 시즌 베스트5중 3명이 부상으로 한꺼번에 이탈하는 악재를 맞이했다. KT는 원래부터 하위권 전력으로 분류되었던데다 올시즌 1순위로 영입한 외국인 선수 크리스 다니엘스가 부상으로 한 경기도 뛰지못하다가 뒤늦게 퇴출되는 악재도 겹쳤다. 간판슈터 조성민도 잦은 부상에 시달리며 팀에 기여하지 못하다가 최근 LG로 트레이드 되며 리빌딩에 돌입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고 있다.

이에 비하면 SK의 부진은 미스터리에 더 가깝다. 지난 시즌 비록 9위에 그쳤지만 김선형과 변기훈은 국가대표이고 올시즌에는 최준용이라는 또다른 특급 신인도 가세했다. 외국인 선수 테리코 화이트와 제임스 싱글턴은 NBA 무대까지 밟았던 선수들이다. 여기에 2월에는 견실한 빅맨 최부경마저 군복무를 마치고 팀에 합류했다.

선수구성만 놓고 보면 어느 팀과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는다. 심지어 김선형이나 최준용같은 선수 개개인의 활약도 준수했다. 그런데 팀성적은 지난해와 비슷한 수준이다. 선수들의 면면이나 전력보강 효과를 감안하면 실제로는 퇴행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성적표다.

문경은 감독은 대행 시절을 포함하여 올해로 여섯 시즌째 SK의 지휘봉을 잡고 있다. 현역 시절 한국농구를 대표하는 최고의 슈터였던 문 감독은 말년에는 SK에서 현역생활을 마무리하고 영구결번을 받은데 이어 감독의 자리까지 오르는 화려한 농구인생을 걸었다. 이상민(삼성)-추승균(KCC) 감독 등과 더불어 현재 KBL을 대표하는 '스타 출신 감독'의 대명사라고 할수 있다.

문 감독의 지도자로서의 출발도 대단히 성공적이었다. 매년 호화멤버로 평가받으면서도 번번이 플레이오프 진출조차 실패하며 '모래알 군단'이라는 조롱을 받던 SK는 문 감독의 정식 사령탑 부임 첫해인 2012/13시즌부터 일약 강호의 반열에 올라섰다. SK는 그해 정규시즌 우승과 최다승(44승) 타이 기록을 수립한데 이어 2014/15시즌까지 3년연속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당시 SK는 애런 헤인즈와 김선형을 중심으로 한 빠르고 폭발적인 포워드 농구로 리그를 강타했다. 물론 선수구성도 좋았지만 SK의 장점을 극대화한 3-2 드롭존이나, 김선형의 포인트가드 전환은 어쨌든 문경은 감독의 '신의 한 수'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김태환, 김진, 신선우 등 내로라하는 베테랑 감독들도 이뤄내지 못한 SK의 명가재건을 일궈냈다는 점에서 문 감독은 단숨에 주목받는 젊은 명장의 반열에 오르기 충분했다.

하지만 2015/16시즌 플레이오프 탈락과 함께 SK는 쇠락의 길에 접어들었다. 헤인즈와 박상오, 박승리 등 주축 선수들이 하나둘씩 팀을 떠나면서 SK는 다시 리빌딩의 시기를 맞이했지만 많은 시행착오를 드러냈다. 이 과정에서 문경은 감독의 리더십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도 급격히 늘어났다.

SK의 부진과 더불어 가장 많이 도마에 오른 것이, 결국 그간의 성적도 '헤인즈 빨'이 아니었냐는 의구심이다. 실제로 SK는 헤인즈와 함께한 3년간 모두 플레이오프에 올랐으나 헤인즈가 나가자마자 하위권으로 미끄러졌다.

돌이켜보면 SK의 한계는 이미 잘나가던 시절부터 복선을 드리우고 있었다. SK는 챔프전에서 올랐던 2012/13시즌 정규리그 2위 모비스에게 4전 전패로 힘 한 번 못쓰고 무너졌다. 유재학 감독은 단기전에서 SK가 자랑하던 포워드 농구와 드롭존 전술의 취약점을 속속들이 파헤치며 문경은 감독을 지략싸움에서 압도했다.

이후로도 SK는 3년간 선수구성이나 전술에 큰 변화가 없었다. 헤인즈-코트니 심스와 매년 재계약했고 국내 선수들의 이동도 드물었다. 헤인즈와 함께하는 동안 플레이오프는 매년 나갔지만 단기전에서의 성적은 오히려 해가 갈수록 나빠졌다. 13/14시즌 4강에서 모비스를 또 만나 1승 3패로 무너졌고, 14/15시즌에는 정규리그 막판 4강직행 경쟁에서 밀려난데 이어 6강플레이오프에서는 '돌풍의 6위' 전자랜드에게 충격적인 3전 전패를 당하며 업셋의 희생양이 됐다. 변화보다 안정을 통한 현상유지에 안주한 문감독의 선택은 결국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헤인즈가 떠난 15/16시즌부터 SK는 리빌딩을 통하여 새 판을 짜야하는 상황이 되었지만 문경은 감독은 벌써 두 시즌째 달라진 환경과 선수구성에 맞는 새로운 전술과 비전을 제시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SK에서 우승하지 못했던 헤인즈, 박승리를 데려오기 위하여 영입을 포기했던 문태종은 지난 시즌 고양 오리온에서 나란히 챔프전 우승을 합작했다. SK가 재계약하지 않은 데이비드 사이먼도 올시즌 현재 안양 KGC 인삼공사에서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문감독의 안목을 더욱  초라하게 만들고 있다.

반면 문 감독이 수년간 공들여 키운 혼혈선수 박승리는 귀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해외 리그로 떠났고, 이승준-이동준-이정석-오용준 등 기껏 끌어모은 베테랑 이적생들은 하나같이 팀에 별다른 기여를 하지못하고 은퇴하거나 뿔뿔이 흩어졌다. 노쇠화와 영양가 논란에 시달리는 김민수, 김선형의 포지션 논란 역시 수년째 아직 명쾌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 문경은의 SK가 추구하는 농구 색깔이 대체 무엇인지 고개를 갸웃하는 이들이 많다.

올시즌 SK는 리그에서 가장 후반에 역전패를 많이 허용한 팀이다. 근소하게 엎치락뒤치락한 경기들은 물론이고, 무려 17점차 이상의 리드를 지키지 못한 경기만 벌써 4번이나 될만큼 심각한 뒷심 부족이다. 그만큼 충분히 이길수 있는 경기를 많이 놓쳤다는 것은, 단순히 선수들의 실력이나 전력차를 떠나 경기운영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는 의미다. 농구가 아무리 다득점 스포츠라고 해도 이 정도의 점수차를 가지고도 여러 번 승리를 지키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2014/15시즌 SK와 3년 재게약을 맺었던 문경은 감독의 계약기간은 2018년까지다. 흔히 지도자는 승리만이 아니라 패배의 경험을 쌓으면서도 발전한다고 한다. 하지만 문경은 감독은 초창기의 놀라운 성공 이후로는 오히려 전술적으로나 경기운영적인 면으로나 발전이 정체된 듯한 모습을 반복하고 있다. SK가 앞으로도 문경은 감독과 미래를 함께 기약할 수 있을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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