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수영 감독은 대중에게 스릴러 <돌이킬 수 없는>으로 유명하지만, 그의 진가는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블랙코미디 영화들에서 발휘되었다. 평화롭던 가정에 핵미사일이 날아드는 <핵분열가족>, 버림받은 개가 복수극을 벌이는 <가족 같은 개, 개 같은 가족>, 해고당한 노동자가 살인마로 변하면서 벌어지는 난장판 <죽이러 갑니다>를 본 사람은 '괴랄('괴상하다'와 '발랄하다'를 합친 표현)'한 맛을 잊기 힘들다. 이유는 둘 중 하나다. 너무 유치하거나, 아니면 실로 놀라워서.

박수영 감독의 신작 <중2라도 괜찮아>는 태권도 선수 출신의 엄마 보미(장서희 분)와 사춘기를 겪는 아들 한철(윤찬영 분)을 중심으로 가족의 갈등과 화합을 그린다. 제목의 '중2'를 단지 나이가 아닌, 사춘기 시절에 있을 법한 자의식 과잉을 의미하는 '중2병'으로 유추한다면 강렬한 B급 코미디를 기대해봄직 하다. 그러나 몇 장면과 일부 대사에서나 감지되는 수준으로 괴랄의 수치는 낮다. 가족을 소재로 상상력을 발휘하던 전작의 색채를 기대한 분이라면 무난한 전개에 실망할 가능성이 높다.


영화는 태권도진흥재단 웹·모바일 콘텐츠 제작사업 공모전에서 1등으로 당선된 시나리오 <태권소녀 뽀미>를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태권도진흥재단의 제작지원을 받은 작품답게 서사와 설정엔 태권도가 자리한다. 태권도의 과도한 홍보가 눈살을 찌푸리게 하진 않을까하는 걱정은 붙들어 매시길. 도리어 영화엔 태권도의 여러 재미가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과거 보미의 라이벌이었던 수진으로 분한 배우 태미는 동네 태권도장 사범 역할을 맡은 오광석과 함께 품새를 보여주는 장면에서 세계 태권도 품새 선수권 대회에서 1위를 거머쥐었던 실력을 보여준다. 경기 장면 등 영화의 많은 배경은 태권도 성지인 무주 태권도원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아 태권도원 곳곳에서 촬영하여 눈길을 끈다. 태권도원 시범단의 장면은 감탄사가 절로 터질 정도로 멋지다.


<중2라도 괜찮아>는 디지털 콘텐츠 트렌드에 맞추어 장편 영화 버전(2월 24일 IPTV와 디지털 케이블 TV에서 공개)과 웹드라마 버전(네이버 TV에서 2월 16일부터 3월 3일까지 매주 목, 금요일 오전 10시에 10분 내외 9부작으로 방송 예정)으로 제작되었다. 매회 일정한 개별성을 가진 9부작 작품을 묶어서 극장 버전이 자칫 이질감이 강할 수도 있었으나, 박수영 감독은 기지를 발휘하여 83분 안에서 부드럽고 유쾌하게 이야기를 풀어간다.

영화에서 보미는 한철이가 예전에 선물한 시계를 소중하게 간직한다. 시계, 즉 시간은 영화에서 중요하다. 음악만이 자신을 구원할 진리라며 5백만 원짜리 기타를 사달라는 한철에게 보미는 태권도 시합으로 결정하자고 제안한다. 태권도 시합 후 사이가 벌어진 두 사람은 각자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진다. 보미는 가족을 위해 포기했던 과거의 시간을 살피고, 한철은 자신이 꿈꾸는 내일의 시간을 그린다. 두 사람이 다시 화해하며 제목의 '중2'는 허세라는 부정적인 어감의 '중2병'에서 질풍노도의 시기인 중2가 가지는 겁 없는 태도와 꿈을 향한 열정이란 긍정으로 새롭게 정의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