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 정의로 뭉친 주먹 '아기장수' 홍길동!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 전 포즈를 취했다. ⓒ 이정민


김밥이 교도소에 잡혀간 이유는? 들깨가 고소해서. 슬픈 사람을 뭐라고 하게요? 흑인. 소가 계단을 오르면? 소오름~. 왕이 궁에 가기 싫을 때 하는 말은? 궁시렁~ 궁시렁~. 딸기가 회사에서 잘렸을 때 하는 말은? 딸기시럽. 피카츄가 길에 떨어진 담배를 주우면서 하는 말은? 이건 힌트를 줄게요. 피카츄 성대모사 일단 해보세요. 피까~ 오! 맞아요! 그거예요!

드라마 촬영 현장이 어땠냐는 질문에 길동이는 대뜸 아재개그부터 들어보란다. 자기가 요즘 아재개그를 좀 많이 안다고. 그 통에 내가 던진 질문을 나도 잊었다. 길동이의 개그는 속사포처럼 쏟아졌다. 너 대단하구나, 근데 피카츄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 여기 상암동에도 포켓몬 많은 거 아니? 이 말에 길동은 눈이 튀어나올 만큼 동그래져서 물었다. 많아요? 진짜 많아요?

아기장수 길동이가 찾아왔다.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를 찾은 이로운(8) 군은 방영 중인 MBC 드라마 <역적>에서 홍길동 아역을 맡아 어른 못지않은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그를 꼭 인터뷰하고 싶었다. 딱 2년 전, 한 아역배우와 인터뷰를 했는데 어른에게선 얻을 수 없는 가르침(?)을 얻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로운도 그랬다. 어른은 절대 흉내 낼 수 없는 순수한 발상과 티 없는 마음. 배꼽 잡고 쓰러진 로운이와의 인터뷰를 전한다.

말을 왜 이렇게 잘 해요?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로운은 연기하는 게 재미있다고 말했다. ⓒ 이정민


<역적>에서 아기장수 길동이 '힘 천재'였다면, 실제 만나본 이로운은 '언어 천재'였다. 이제 초등학교 2학년에 올라가는 그 또래가 가질 법한 언어구사력이 아니었다. 물론 어린이 특유의 알아들을 수 없는 화법에, 떠오르는 대로 마구 말했지만 표현이나 단어선택이 수준급이었다. 18층 인터뷰 장소 통유리 밖 풍경을 보고 자기는 "고소공포증"이 있다며 엄살을 떠는가하면, 함께 연기한 아역 형들은 어땠냐고 묻자 "베테랑"이라고 답했다. 방학해서 좋냐고 묻자, 방학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느냐고 되묻는다. 재치가 보통이 아니었다.

사투리는 안 힘들었어? "네, 연기 선생님이 전라도 군산이 고향이라서요, 배웠어요." 계속 코 흘리고 있던데 그거 로운이 진짜 코 같더라, 맞지? "네, 그리고 저 코딱지 먹는 신도 진짜예요. 코딱지를 먹는 건 어린이의 상징이에요, 어른이 일하듯이 어린이는 코딱지를 파서 먹어요." '상징'이란 단어는 또 어디서 배웠는지... 장난기 머금은 표정으로 짐짓 진지한 척 '어린이의 상징'을 설명하는 그 모습에 웃지 않을 수 없었다.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코 파는 신이 들어간 이유에 대해 로운이의 설득력 있는 해석이 놀라웠다.   

연기 속에서 정말 화났던 신을 물었다. 로운이는 "어머니가 맞을 때랑 절구 찰 때"라고 했다. 어머니가 맞아서 쓰러졌을 때 "진짜로 가족을 생각하고 엄마를 생각했더니 너무 화가 났다"고 한다. 그때 연기를 다시 보여달라고 청하자 주저 없이 일어서서 연기했다.

"꺼져. 꺼지라고 혔지. 우리 엄니한테서 꺼지라고!"

돌을 든 손모양을 하고 눈을 부리부리 뜬 로운이는 1분가량 그 신을 연기했다. 인터뷰에 함께 온 친형에겐 악역 나으리 역을, 연기 선생님에겐 아버지 아모개 역을 해달라고 직접 부탁했다. 여간 똘똘한 게 아니었다. 까르르 웃으며 인터뷰 하다가도 연기에 들어가자 표정이 바뀌고 다른 사람이 됐다.

화내는 연기를 할 때 주로 떠올리는 건 형이라고 한다. 이날 함께 온 한 살 위의 형 이건화 역시 아역배우다.

"화내는 거 연기할 때 3분의 2는 형을 생각해요. 형에게 화날 때도 있고 형한테 양보하고 싶을 때도 있고 형을 달래주고 싶을 때도 있고 여러 가지 (감정이) 있어요. 단계가 있어요. 단계 중에 하나를 골라요."

힘들지 않았어요?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로운은 KBS2 드라마 <다 잘 될 거야>에 출연했고, 영화 <아들에게 가는 길>에서 아들 원효 역을 맡아 스크린으로 발을 넓혔다. 이 영화는 개봉을 앞두고 있다. ⓒ 이정민


가장 힘들었던 촬영을 물었다. 로운이는 다 즐거웠지만 "육체"가 힘든 것이 가장 힘들었다면서 호랑이 숲 장면을 말했다. 살코기를 들고 가는 장면을 찍을 때 엄청 무거웠지만 몇 시간을 들고 촬영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인터뷰에 동행한 연기 선생님은 고깃덩어리(돼지목살)의 무게가 4kg 정도였고, 어른이 들기에도 무거웠다고 증언(?)했다. 로운이는 "그걸 찍고 나서 거의 쓰러졌지만 '밥이나 먹고 가자' 싶어서 밥을 많이 먹고 촬영장을 떠났다"고 야무지게 회상했다.

12월 말부터 1월까지 근래 가장 추울 때 촬영이 이뤄졌다. 로운이는 안동, 문경새재, 마산 등 약 12곳을 돌며 <역적> 자기 분량을 소화해냈다. 그날 그림일기로 이렇게 썼다고 한다. "휴일 없는 하루. 어떨 때는 동상. 쥐남. 머리통 아픔. 눈물. 슬픔. 추워서 슬픔." 무언가를 말할 때 랩하듯 나열식으로 말하는 로운이의 화법이 굉장히 재미있었다. 언어의 마술사 같았다. <역적> 본방사수를 하느냐는 질문에는 이렇게 답했다.

"네, 하는데 어제는 1~2초 놓쳤어요. 모르고 리모컨을 머리에 베고 누워서요. 근데 잠시 생각하니 그 부분을 알 수 있었어요. 촬영할 때 7부 대본을 제가 봤어요. 감독님 스타일을 떠올리며 이 장면은 이렇게 했겠다 생각했어요."

어른 홍길동 역을 맡은 윤균상 형에 대해서도 물었다. 로운이는 균상 형이 사람들과 "케미가 좋다"며 "익숙해지는 능력이 빠르다"고 했다. 익숙함이란 친화력을 말하는 듯했다. 아버지 역을 맡은 김상중을 "아모개 선배님"이라고 현장에서 불렀는데, 처음에는 무서웠다고 한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무엇이든 괜찮은 것인데, 중간에 익숙해져서 괜찮아졌다"며 세상 다 산 도인 같은 말을 하기도 했다.

비하인드 스토리도 들려줬다. 박나래와 함께 찍은 나무토막 신을 떠올리며, 원래는 대본에 "쪼그만 게!"만 있었다고 말했다. 그런데 감독님이 현장에서 대사를 더 넣어주셔서 "이 코딱지 만한 게!"를 붙이게 됐다고 한다. 박나래 누나는 (수염을 붙여서) 진짜 남자인 줄 알았다고.

연기하는 거 좋아요?

이로운, 정의로 뭉친 주먹 '아기장수' 홍길동!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역적>에서 박나래와 함게 찍은 신을 연기 중인 이로운. 아기장수가 힘을 발휘해 나무토막을 분질르는 중이다. ⓒ 이정민


이로운, 정의로 뭉친 주먹 '아기장수' 홍길동!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말 나무토막이 있는 것 같았다. 생생한 연기를 펼치는 이로운. ⓒ 이정민


연기할 때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로운이는 또 래퍼로 빙의해 대답했다.

"길동이 되면 나는 길동. 이제부터 나는 홍길동. 그러면 피가 잘 통해요. 피가 상승을 해요. 그 때 정신이 좀 나가요. 피가 얼굴로 상승을 하면 정신이 나가져요. 웃는 장면은 그래서 웃은 거예요. 정신 나가면 웃게 돼요."

몰입의 순간 느끼는 감정을 설명하는 듯했다. 연기할 때 집중이 잘 되느냐는 추가 질문에는 다음처럼 답했다.

"머릿속이 하얘요. 생각을 차리면 못해요. 생각을 끄면 다시 잘하고요."

맞는 해석일지 모르겠지만, 자신이 연기하고 있단 의식을 하면 집중이 깨지지만 그런 생각을 끄고 길동이가 되면 집중하게 된다는 의미 같았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싶은 생각이 안 들었냐는 질문도 던졌다. 로운이는 너무 당연한 것을 묻는 거 아니냐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렇게 답했다. "그런데 저는 육체일 뿐이에요. 제 피가 다 하는 거예요." 이 또한 해석을 해보자면, 본능적으로 하는 거니 아쉬워도 할 수 없다는 뭐 그런 이야기 같았다.

옆에 있는 연년생 형 건화가 할 말이 있는 듯 입을 열었다.

"저는 로운이 칭찬할 게 딱 하나 있는데요. 같이 축구할 때 열번 넣기로 하면 죽도록 차서 열골을 다 넣을 때 까지 해요. 끈기가 좋아요."

이로운, 정의로 뭉친 주먹 '아기장수' 홍길동!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아기장수의 카리스마를 톡톡히 보여준 이로운. ⓒ 이정민


로운이에게 무슨 과목을 좋아하는지 물었다. 배시시 웃으며 "그거 왜 말해줘야 해요?"라며 장난을 걸어왔다. 인터뷰에 함께 온 할머니는 산만한 아이에게 주의를 주며 "너 수학 좋아하잖아" 말했고, 형은 "너 체육 좋아하잖아" 하고 거들었다. 하지만 로운이는 마치 그런 대답이 형식적이라는 듯한 표정으로 곰곰 생각하더니, 그냥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것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저는 만화책은 '쿠키런'을 제일 좋아해요. 좋아하는 과목은... 음... 미용실 가면 책들이 있잖아요. 거기에 사람들의 포즈도 나오고 연기 이야기도 나오는데 뭔 말인지는 하나도 모르겠는데 자꾸 보게 돼요. 어떤 연기분(?)이 있는지 보게 되는데 좋아요."

로운이의 말을 또 마음대로 해석해보자면, 미용실에 가서 보게 되는 잡지에 연기자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그것을 읽고 싶고 자꾸 보게 되는데 그런 과목(공부)이 가장 좋다는 말 같았다. 수학, 체육보다 더 좋은 건 '연기'인가 보다.

숙제는 다이어트, 학교생활은 즐거울 뿐, 랩은 즉석랩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로운의 순수한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 이정민


텔레비전에 자신이 나오면 어떤 기분일까? 무언가 멋진 대답을 기대하고 물었지만 로운이는 차가운 미소로 짧게 대답했다. "제가 너무 살 찐 것 같아요." 길동이 이미지를 벗고 현대극을 하려면 살을 빼야한단다. 알고 보니 할머니가 다이어트 매니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로운이는 또다시 힙합 말투로 할머니의 실태(?)를 고했다. "과자 하나 만져도 살 빼. 종이 하나 만져도 살 빼. 치약 하나 만져도 살 빼." 로운이는 말을 재미있게 하는 재주가 있었다.

학교생활은 할 만하냐는 질문에도 느낀 그대로 답했다.

"학교는 잘못하면 때리고 회초리 맞는 곳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나 이제 죽었다~ 하고 1학년이 됐는데 아니었어요. 학교는 그냥 즐거울 뿐이에요."

이 빠진 미소를 짓는 로운이에게 이는 누가 빼줬냐, 아프지 않았느냐 시시콜콜한 질문을 이어갔고 로운이는 씩 웃으며 말했다. 자기가 뽑았다고. 흔들다가 그냥 퍽! 뽑았다고. 보통 털털한 성격이 아니었다. <역적> 아기장수 캐릭터 그대로였다.

로운이와 형은 요즘 랩놀이에 푹 빠졌다. 집에서 즉석랩을 하거나, 말 거꾸로 하기, 상황극을 하며 논단다. 맛보기로 들은 '몽둥이' 랩이 하도 재미있어서 더 요청했더니 로운이는 즉석랩을 만들어 들려줬다. 인터뷰 장소에 있는 포도주스, 핸드폰, 컴퓨터, 신발, 카메라 등 보이는 것 모두 주제가 됐다. 물론 진짜 래퍼처럼 라임 맞춘 랩은 아니지만 즉석에서 주어진 단어에 대해 바로바로 말을 쏟아내는 순발력이 대단했다. 아무 단어나 달라고 했다. '컴퓨터'를 던져주니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속사포로 응답했다.

"컴퓨터로 하는 건 인터뷰. 인터뷰하면 글 쓰지. 글 쓰는 거 안 되면 녹음기를 틀지. 녹음기를 틀면 배터리가 나가지."

이날 로운이는 10가지가 넘는 랩과 3가지가 넘는 연기를 보여줬다. 덕분에 배를 잡고 웃느라 시간이 다 갔고, 준비한 질문의 반도 묻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인터뷰보다 풍부한 소통이었다. 여덟살 로운이만이 줄 수 있는 진실한 무엇이 있었다. 꾸미지 않았고, 느낀 그대로 말했다. '있는 그대로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새삼 느낀, 배꼽 빠진 시간이었다. 무엇보다 연기할 때 기분을 말하던 로운이의 모습이 긴 여운을 남겼다.

 MBC월화특별기획 <역적-백성을 훔친 도적>에서 홍길동 어린시절 역의 배우 이로운이 21일 오후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무실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역적> 방송 이후 CF도 찍었다. 이로운은 학교에서 '길동이'로 불린다. 가장 좋아하는 것은 게임하는 것인데, 닉네임도 '길동이'로 할 계획이란다. ⓒ 이정민





역적 이로운 윤균상 아기장수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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