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만리장성은 그야말로 그레이트하다. 총길이 8850km, 건축기간만 1700년, 3000년의 풍파를 견뎌낸, 인간이 남긴 가장 위대한 건축물. 그래서 영어로도 '더 그레이트 월(The great wall)'이라 칭한다. 중국(中國)이란 이름은 만리장성의 보호를 받는, '가운데 있는 나라'라는 의미이니, 중국이란 이름의 둘레엔 만리장성이 버티고 있는 셈이다.

영화 <그레이트 월>은 60년마다 8일 동안 중원을 노리고 공격해오는 괴물 타오톄(饕餮)에 맞서, 황제의 특명을 받고 만리장성을 지키는 특수부대의 일전을 담았다. 영화는 최고의 무기를 찾아나선 윌리엄과 페로가 거란족에 쫓기다 만리장성을 지키던 특수부대에 잡혀 오며 막이 오른다. 뜻밖의 용병을 얻은 만리장성 수비대는 더 강력하게 진화한 10만 괴물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을까?

그레이트 월, 만리장성 인류가 남긴 가장 위대한 건축물 만리장성은 중국의 상징이자 자부심이다.

▲ 그레이트 월, 만리장성 인류가 남긴 가장 위대한 건축물 만리장성은 중국의 상징이자 자부심이다. ⓒ 樂視영화제작사


중국인의 자부심인 그 만리장성을 타이틀로 내건 영화. 중국영화의 거장 장이머우 감독, 미중합작 블록버스터, 제작비만 1800억원! 이쯤 되면 뭔가 그럴듯한 명작이, 최소한 납득할 만한 의미나 감동이 따라와야 하지 않을까.

영화를 보고 드는 느낌은 시각적으로 화려하지만 스토리 전개가 허술해 많이 아쉽다는 것이다. 심지어 두 달 먼저 개봉한 중국에서조차 "장이머우는 이미 죽었다(張藝謀已死)"며 싸늘한 혹평이 이어지고 있다.

만리장성의 안을 중국으로 보고, 나머지는 오랑캐로 여기는 중화주의를 바탕으로 한 영화 <그레이트 월>의 중국 관객 평점이 5.4에 불과하다는 것은 중국인들조차 쉽게 '캐미'가 돋지 않는, 뭔가 치명적인 허점이 있다는 반증이다. 장면 하나 하나만 보면 뭔가 있어 보이고 멋진데, 한 편의 영화로서 전체적으로는 맥없이 부실하게 여겨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1 스토리 전개의 허술함

우선 목숨을 걸고, 숱한 동료들의 죽음을 감내하며 세계 최고의 무기 '검은 화약'을 찾아 다니던 최고의 전사 윌리엄(맷 데이먼)이 학군 여장군이 강조하는 '신임(信任, xìnrèn)'이라는 한 마디 말에 삶의 방향을 바꾸는 설정이 부자연스럽고 설득력이 떨어진다. 용병으로서 돈을 위해서라면 어떤 깃발 아래서든 싸워 왔던 윌리엄이 '중국'이라는 하나의 깃발 아래서만 목숨을 바친다는 여장군의 말에 갑자기 삶의 가치관을 바꿔 괴물과의 싸움에 뛰어든다. 그 과정에 뭔가 다른 장치가 필요하지 않았을까.

주인공 윌리엄 최고의 전사 윌리엄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불분명하다.

▲ 주인공 윌리엄 최고의 전사 윌리엄이 자신의 생각을 바꾸는 계기가 불분명하다. ⓒ 樂視영화제작사


스토리 전개의 허술함 총사령관(장한위)이 괴물의 공격에 너무 어이없이 죽는 장면은 맥락이 없어 작위적으로 다가온다.

▲ 스토리 전개의 허술함 총사령관(장한위)이 괴물의 공격에 너무 어이없이 죽는 장면은 맥락이 없어 작위적으로 다가온다. ⓒ 樂視영화제작사


또 호군, 응군, 녹군, 학군, 웅군 등 막강한 최정예 특수부대를 이끄는 무영금군(無影禁軍) 총사령관(네임리스 오더, 장한위)이 만리장성을 단독으로 공격한 타오톄(饕餮) 괴물 한 마리에 너무 어이없이 죽는 장면 또한 맥락이 없고 작위적이다. 어떤 명분과 인과관계가 명확한 죽음이었다면, 하얀 깃발을 휘날리며 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날려보내는 수많은 풍등(風燈, 공명등)이 더욱 아름답고 감동을 주는 명장면으로 남았을 것이다.

#2 괴물 타오톄의 작위성

황제의 횡포가 극에 달하자 하늘이 진노하여 곤륜산에 운석을 떨어뜨리는데, 그 운석이 흉악하고 탐식하는 야수, 여왕 타오톄가 된다. 여왕 타오톄는 새끼를 낳아 증식하고, 어마어마한 숫자로 늘어나 60년마다 8일간 만리장성 너머 중원을 공격한다.

이 같은 설정은 할리우드에서 만든 영화 <뮬란>처럼 만리장성 밖의 이민족을 야수, 괴물로 간주하는, 너무 단순한 '중화주의적 이분법' 논리다. 북송(北宋, 960-1127) 시대가 영화의 배경인데, 당시 요나라를 세운 거란, 이후 금나라를 세우는 여진족 등 북방의 유목민족을 괴물로 설정하면서도, 이를 설명하려는 어떤 노력도, 아무런 영화적 장치도 없다.

영화 <월드워Z>에서 감염에 의해 인간이 좀비가 되는 것처럼, 뭔가 타오톄 탄생에 대한 새로운 의미 부여가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컴퓨터 그랙픽의 기술적 부분을 담당하는 스태프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스토리 전개의 세밀함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아쉬운 대목이다.

괴물 타오톄의 작위성 타오톄의 월등한 능력과 어쩌구니 없는 무능을 동시에 이해달라고 맥락없이 요구하는 느낌을 준다.

▲ 괴물 타오톄의 작위성 타오톄의 월등한 능력과 어쩌구니 없는 무능을 동시에 이해달라고 맥락없이 요구하는 느낌을 준다. ⓒ 樂視영화제작사


타오톄는 거대한 수적 우세로 만리장성을 넘어설 기세로 공격하다가 특별한 이유 없이 퇴각한다. 진화를 거듭해 더욱 막강해진 타오톄라고 하면서도, 자석의 자기장 안에서는 꼼짝도 못하고, 여왕은 먹이를 먹는 동안 공격하지 못하는 취약성을 지니고 있다. 이런 것들이 단계적으로 관객을 설득하지 못하다가, 갑자기 타오톄의 월등한 능력과 어처구니 없는 무능을 동시에 이해달라고 맥락없이 요구하는 느낌을 준다.

#3 역사적 고증의 아쉬움

윌리엄과 그의 동료 페로가 영화 초반에 등장하는 장면의 배경은 중국의 단샤산(丹霞山, 광둥성)이다. 만리장성과 거리적으로 먼 곳이지만, 영화적 시각효과를 위해 등장했다고 감안하더라도, 만리장성을 넘어선 타오톄가 당시 수도인 변량(汴梁, 현재 허난성의 카이펑)을 공격하는 상황을 마치 세계을 지키는 유일한 성벽처럼 묘사하는 것은 너무 자문화중심주의에 빠진 듯한 인상을 갖게 한다.

북송의 수도 변량 영화의 배경을 북송으로 설정함으로써 신화의 세계가 누리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스스로 제한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북송의 수도 변량 영화의 배경을 북송으로 설정함으로써 신화의 세계가 누리는 자유로운 상상력을 스스로 제한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 樂視영화제작사


어차피 전설을 소재로 한 영화이기에 역사적 고증의 잣대를 들이밀어 영화의 디테일한 소재를 반박하는 것은 부적절하지만, 허구적 상상이 현실적 설득력을 얻으려면 철저하게 역사적 고증의 토대를 바탕으로 했더라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은 남는다. 그런 철저함과 CG의 기술력이 결합했다면 더욱 완성도 높은 영화가 되지 않았을까. 중국 고대 과학기술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영화의 시대적 배경을 북송으로 설정한 것이 자유로운 신화적 상상력을 제한하는 자충수가 아니었을까.

#4 또 한번의 장이머우식 국가주의

영화 <그레이트 월>은 개인이 자신의 이익이 아닌, 국가를 위해 희생하는 것에 대한 또 하나의 장이머우식 찬가요, 국가주의를 합리화하는 이미지 마케팅이다. 국가의 안위를 위해, 괴물 타오톄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야 한다는 불편한 은유가 영화 전반에 내재되어 있다. 국가를 수호하는 만리장성을 쌓기 위해 피땀 흘리고, 그 국가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이름 없는 병사들을 보며 감명을 받아 윌리엄도 그 전쟁에 뛰어드는 설정이 억지스럽고 불편하다. 이런 불편함이 상대적으로 적었을 중국 관객들조차 <그레이트 월>을 그레이트하게 보지 않는 것은 아이러니하기까지 하다.

국가주의를 합리화하는 이미지 마케팅 국가의 안위를 위해, 괴물 타오톄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야 한다는 불편한 은유가 영화 전반에 내재되어 있다.

▲ 국가주의를 합리화하는 이미지 마케팅 국가의 안위를 위해, 괴물 타오톄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쳐야 한다는 불편한 은유가 영화 전반에 내재되어 있다. ⓒ 樂視영화제작사


윌리엄이 이번 전쟁만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정의를 위해, 국가와 세계를 위해 싸우겠다고 하지만, 윌리엄에게 중국은 조국이 아니고, 괴물을 막아내는 것이 세계를 구한다는 설정 또한 명확하지 않다. 차라리 여장군에 대한 사랑을 위해 싸운다면 몰라도 말이다. 결과적으로 어설픈 국가주의가 영화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있는 셈이다.

거장 장이머우감독이기에 가능했을 막강한 투자와 거대한 스케일의 영화 <그레이트 월>이 빼어난 영상미와 컴퓨터 그래픽의 화려함만 남는 영화로 평가되는 건 분명 아쉽다. 거대함과 화려함만 추구하다 세밀함과 치밀함을 놓친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미중 합작이다보니 시나리오에서 어색한 면도 발견된다. 예를 들면 윌리엄이 타오톄의 공격을 막는데 큰 공을 세우자 만리장성 특수부대가 기립박수로 맞이하는 장면은 마치 할리우드 영화를 보는 것 같다. 진시황제의 수호신인 병마용 근처에서 서양 용병으로 보이는 유골이 발견되는 걸로 보아, 중국과 서방의 교류가 이어져온 건 분명하지만, 미국과 중국 G2 두 나라가 합작하여 괴물로부터 세계를 구한다는 메시지는 씁쓸한 여운을 남긴다. 여러 편의 뮤직비디오를 합쳐 놓은 것 같은 화려함 뒤의 허술함과 아쉬움처럼 말이다. 영화 <그레이트 월>은 결코 '그레이트'하지 않다.

그레이트 월
댓글3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