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루시드 드림>에서 아이를 잃은 아빠 대호 역을 맡은 배우 고수.

배우 고수가 영화 <루시드 드림>에서 제대로 아버지 역할을 소화했다. ⓒ BH엔터테인먼트


어느새 두 아이의 아빠가 된 고수가 신작 <루시드 드림>에서 절절한 부성애를 온몸으로 표현했다. 청춘의 아이콘이었던 그가 누군가의 남편 혹은 연인인 적은 있었으나, 이렇게 본격적으로 가장의 감성을 표현했던 적이 있었던가. 전작 <집으로 가는 길>(2013)이 아이보단 아내의 행방에 집중했으니, 본격적인 부성애 연기는 <루시드 드림>이 처음이라고 하는 게 맞다.

고수는 남다른 애처가이자 바른 남편이다. 벌써 그와 여러 번 인터뷰로 만났는데 그때마다 넌지시 결혼의 행복함을 설명하던 그였다. 그랬던 그가 영화상에서나마 아이를 잃고, 행방을 찾아야 한다니. 지난 2월 초 제작보고회 자리에서, '영화 속 설정처럼 자각몽을 통해 과거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무얼 하고 싶냐는 질문'에 "아무리 생각해도 2014년 4월 16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고 말한 게 충분히 이해가 간다. 오는 22일 개봉을 앞두고 만난 그에게 그 아버지의 감성을 더 묻고 싶었다.

부성의 표현

<루시드 드림>은 놀이공원에서 아이를 유괴당한 언론인 대호(고수 분)가 꿈과 현실을 오가며 사건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그린 판타지 영화다. 비슷한 소재로 할리우드 영화 <인셉션>이 있었지만, 고수는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으면서도 대중에게 어렵지 않게 느껴질 작품"이라는 걸 미덕으로 꼽았다. 평범한 가장의 감성을 위해 그는 촬영 직전 체중을 15kg이나 불리는 등 치밀하게 준비했다.

 영화 <루시드 드림>의 한 장면.

영화 <루시드 드림>의 한 장면. 유괴된 아들을 찾는 대호(고수 분)와 그를 돕는 형사 방섭(설경구 역)의 모습이다. ⓒ NEW


"대호를 연기하면서 부성애가 가장 중요했다. 그의 절박함이 느껴져 시나리오를 읽으면서도 뭉클함이 있었고, 꿈을 영화적으로 어떻게 표현할지 궁금했다. 여러 상황이 굉장히 빠르게 전개되지 않나. 지금껏 읽었던 한국영화 시나리오 중 이렇게 속도감이 있는 게 드물었다. 영화는 결국 마지막 장면을 향해 달려가는 건데 그때 대호의 심정이 보인다. 시사회에서 아이가 있는 관객분들이 다들 그때 눈물을 흘렸다고 들었다. 그 지점을 생각하며 대호의 감정을 깨지 않고 안은 채로 연기하려 했다.

체중 이야긴 사실 좀 말하기 조심스럽다. 체중 증감에 대해 노출이 안 됐으면 하는데 이왕 나왔으니 말하면, 대호를 해석할 때 직업정신이 투철하다고 봤다. 평균적인 기자의 일상을 표현하려고 그렇게 했다. 관객분들 입장에선 그런 제 모습이 익숙하지 않을 수 있는데 저 또한 평소 긴장하지 않고 있을 땐 대호와 비슷한 편이다(웃음). 거기에 약간의 살을 조금 찌운 것뿐이다."

꿈을 통해 기억을 쫓으며 사건을 해결한다고는 하지만 루시드 드림이라는 현상 자체는 판타지적 설정이다. 고수는 "어쩌면 매우 신선해 보이지 않을진 몰라도 대호의 심경과 벌어지는 상황이 잘 어우러지면 재밌을 것 같았다"며 "대호 입장에서 루시드 드림은 희망과도 같았다"고 말했다.

절망을 이기는 법

이 모든 게 절망의 끝에서 벌어진 사건이다. 영화 속에선 아이를 잃은 대호가 마지막 희망의 끈으로 꿈을 잡은 셈. 현실 속 고수 역시 그런 절망을 이기는 노하우가 있진 않을지. "굳이 바꿀 수 없는 과거를 언급해 바꾸고 싶다고 말하긴 그렇고"라며 고수는 "변할 수 있고 나아질 수 있는 게 있다면 적극적으로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편"이라면서 운을 뗐다.

"저 역시 정신적으로 여러 가지를 포기하고 싶었던 고비가 있었다. 없다면 거짓말이지. 생각도 많아졌고, 산도 타면서 날 돌아보기도 했다. 주변 친구들도 힘이 돼줬다. 이 자체를 가볍게 말하는 건 좀 어렵고, 책 역시 도움이 됐다. 예전 선현들이 쓴 책에 지금 우리가 느끼는 고통의 공감대가 있더라. 예나 지금이나 관계에서 오는 상처는 여전하구나, 결국 내 부족함으로 다치는 것 같다. 성장해야지.

지금이 되게 좋은 게 뭐냐면, 일단 연기를 꾸준히 하고 있고 비슷한 또래들이 이 세상을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이다. 소통하고 공감할 상대가 있다는 사실에 매우 감사하다. 데뷔 초기엔 또래들이 다들 학교 다니거나 취직을 위해 뛰지 않았나. 그러다 이젠 결혼도 했고, 아이를 키우는 이들도 있다. 배우로서 이분들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게 참 좋다. 한국에서 아버지로 산다는 게 힘들지 않냐고? (웃음) 지금 말하긴 어렵다. 시간이 지나면 좀 할 말이 생기지 않을까."

 영화 <루시드 드림>에서 아이를 잃은 아빠 대호 역을 맡은 배우 고수.

인터뷰 내내 그는 질문에 숙고했고, 천천히 답변했다. "나 자신을 말로 표현하는 게 여전히 어색하고 부끄럽다"는 이유였다. ⓒ BH엔터테인먼트


정리하면 결국 공감과 소통의 힘이다. 20대의 고수가 "다소 날이 서 있던 예민한 존재"였다면 가장이 되고 경력을 쌓아오며 "유연해지고 이해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다. "사람은 결국 과거에 비해 성장하는 존재 아닌가"라면서도 "아, 예나 지금이나 전혀 달라지지 않는 사람도 가끔 있더라"고 고수가 특유의 재치를 보였다.

"뭔가 바뀔 수 있다는 믿음" 고수는 "바로 그 믿음이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법"임을 강조했다. 이는 그가 1999년 데뷔 후 지금까지 잃지 않고 있는 삶의 원칙이기도 하다. 여기에 고수만의 탐구 정신을 보탠다. 말로 표현하는 것엔 조심스러워 하지만 연기자로서 그는 거침없이 자신을 역할에 던졌다. 곧 개봉할 <이와손톱>과 <남한산성>에서 그의 열정을 한 번 더 확인해 보자.

"솔직히 예전엔 하나의 작품으로 날 표현하려 했고, 작품마다 뭔가 기대를 했다. 근데 나에 대한 평가는 하나가 아닌 여러 작품이 쌓이면서 생긴다는 걸 어느 순간 깨달았다. 어릴 땐 그저 많은 작품에서 다양한 캐릭터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만 강했는데 이젠 작품에 참여하면서 나 자신을 찾고 싶은 마음이 크다. 정말 극한의 악한이 될 수도 있고, 잔잔한 이야기로 감동을 전할 수도 있을 텐데 이 과정에서 나의 진짜 모습을 하나씩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여전히 이렇게 인터뷰로 날 말하는 건 낯설고 부끄럽다. 말하는 순간 뭔가 정지될 것만 같고, 규정될 거 같았다. 언제부턴가 카메라 앞이 더 편하고 좋긴 하더라. 작품을 통해 제 마음이 관객에게 잘 전달될까 항상 그걸 바라고 고민한다. <루시드 드림>은 까불지 않고 집중하려 했으니 믿고 기다려야지(웃음)."

영화와 별개로 고수는 하루에 하나씩 작은 선행을 하자고 다짐한 새해였다. 스스로 드러내길 멋쩍어했지만 그의 선한 영향력이 영화에 또 주변에 널리 퍼지길 바라본다. "행복한 삶을 살아야 작품도 잘 참여할 수 있다"는 말로 그는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소탈하면서도 매우 인간적인 고수의 진면목을 발견한 순간이다.

 영화 <루시드 드림>에서 아이를 잃은 아빠 대호 역을 맡은 배우 고수.

허투루 말하지 않기에 그의 말에서 더욱 진정성이 느껴진다. "작품을 통해 자신을 찾는다"는 어쩌면 배우로서 구도자의 길을 걷고 있는지도 모른다. ⓒ BH엔터테인먼트



고수 루시드 드림 설경구 강혜정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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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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