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현 감독의 신작 <조작된 도시> 포스터.

박광현 감독의 신작 <조작된 도시> 포스터.ⓒ CJ 엔터테인먼트


적지 않은 관객들은 감독의 이름을 보고 영화를 선택한다. 이는 영화팬이라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한국적 상황에선 배우의 유명세만큼이나 흥행을 좌우하는 요소가 되는 게 연출자의 이력이다.

그래서다. 최근 개봉한 <조작된 도시>에 대한 기대는 작지 않았다. 바로 연출자 박광현(48)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수백만 명이 죽고, 나라의 절반이 초토화된 비극의 역사 '한국전쟁'을 다루면서도 위트와 유머를 잃지 않았던 박광현 감독.

그가 만든 <웰컴 투 동막골>은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시각 자체의 참신성과 더불어 전란과 죽음의 배후에 숨겨진 삶의 애틋함과 진정성을 발견해내는 것으로 평단과 관객의 환호성을 얻어냈다. 그 결과 '2005년 대한민국 영화대상 감독상'까지 받았다.

잘 훈련된 배우들을 유기적인 관계의 그물망 속으로 끌어와 이데올로기에 의한 죽음과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삶이라는 양립하기 힘든 두 단어의 대립과 화해를 효과적으로 영상에 담아낸 박광현의 연출력은 발군이었다.

<웰컴 투 동막골>과 <조작된 도시>, 12년 세월의 간극?

 다양한 특수효과와 스릴 넘치는 차량 추적신 등을 보여주는 영화 <조작된 도시>.

다양한 특수효과와 스릴 넘치는 차량 추적신 등을 보여주는 영화 <조작된 도시>.ⓒ CJ 엔터테인먼트


그런데, 박 감독의 내부에서 어떤 변화가 생겨난 걸까? 그의 신작 <조작된 도시>와 전작 <웰컴 투 동막골>은 같은 감독이 만든 영화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그걸 "두 영화가 제작된 12년의 시차가 이유"라고 해석하기엔 뭔가 꺼림칙하다.

물론, <조작된 도시> 또한 형편없는 작품은 아니다. 젊은 세대가 열광하는 21세기의 키워드 중 하나인 '온라인게임'을 영화의 배경으로 깔고, '청춘스타'라 칭할만한 지창욱(권유 역)과 심은경(여울 역)을 캐스팅해 상영시간 내내 시원스런 화면을 펼쳐 보여준다.

할리우드 액션 영화에서 이미 수도 없이 본 것이긴 하지만, 아슬아슬한 차량 추적 신과 사실적인 폭파 신, 다이내믹한 총격 장면과 잘 조율된 특수효과는 <조작된 도시>에 열광하는 다수의 그루피(Groupie)까지 만들어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게 끝이다. <조작된 도시>는 분명 재밌는 영화다. 그러나, '재미만 있을 뿐'이다. 앞서 길게 설명한 <웰컴 투 동막골>에서의 성취와 그 성취를 넘어 한 걸음 더 나아간 후속편을 기대했던 관객들에게 박광현은 자신만의 '세계인식'과 '연출 스타일'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변명의 여지없이 지지부진 혹은, 퇴보다.

<웰컴 투 동막골>이 던져주는 영화적 메시지는 복합적이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의 가능성이 열려있었다.

서로의 목숨을 빼앗을 만큼 격렬했던 전쟁에서의 사상적 대립도 인간적 이해 앞에서는 무력할 수도 있다는 영화의 기둥 줄거리. 그리고 혈맹으로 이야기되는 미군이 '작전 수행'을 위해 한국인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장면에서 관객들은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한국전쟁'과 '미국'을 돌아보게 된다.

단선적인 메시지와 박제화 된 캐릭터

 <조작된 도시>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단편적이라 현실감이 떨어진다.

<조작된 도시>의 캐릭터는 지나치게 평면적이고 단편적이라 현실감이 떨어진다.ⓒ CJ 엔터테인먼트


이런 은유적이고 다층적인 메시지가 <조작된 도시>에선 보이지 않는다. 그저 깨부숴야 할 '악'(타락한 변호사와 부패한 정치권력)과 이에 저항하는 '선'(주인공 권유와 추종자들)이 복선 하나 없이 앙상하게 대립하고 있을 뿐이다.

옳고 그름, 현명과 무지, 태생적 본성과 교육된 이데올로기라는 상호대립적인 이미지를 한 몸 안에 동시에 간직한 게 인간이다. <웰컴 투 동막골>의 등장인물은 이러한 인간의 본질적 특성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잘 보여준다.

그런 이유로 외부적 요인은 물론, 내부적 고민으로 인해 갈등하는 <웰컴 투 동막골>의 캐릭터들은 현실성과 구체성을 획득했다. 반면 <조작된 도시>의 등장인물은 그렇지가 못하다. 각자가 덮어쓴 '악당'과 '선량한 자'라는 허술한 가면을 영화가 끝날 때까지 벗어던지지 못한 채 박제가 돼버리고 있는 듯한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만드는 작품마다 '수작'이 되고, 연출하는 영화마다 매번 진보하는 감독은 드물다. 그렇기에 <조작된 도시>에서 느낀 실망감은 나 하나만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데도 '주목했던' 박광현에 대한 기대가 무너진 건 안타까운 일임이 분명하다.

<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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