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류 연출 민기, 그는 진짜 '연극다운 연극'을 만들기로 마음 먹는다.

삼류 연출 민기, 그는 진짜 '연극다운 연극'을 만들기로 마음 먹는다. ⓒ (주)모멘텀엔터테인먼트


옛날에는 촉망받는 연극 유망주였다고 한들, 지금은 삼류 에로 극단의 연출자에 불과한 민기(장현성 분)은 극단이 문을 닫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엄습해오자 모험을 결심한다. 늘 하던 대로 에로 연극을 만드는 것이 아닌, 제대로 된 연극을 무대에 올리겠다는 꿈을 실현하는 과정은 뜻밖에 순탄하게 흘러간다. 단원들의 연기력이 불안해 보이긴 하지만 별 탈 없이 민기의 디렉팅에 따라와 주었고, 이제 실전(무대)에서 잘하기만 하면 된다. 그런데 역시나 실전이 문제다.

영화 <커튼콜>은 요즘 한국영화로서는 정말 보기 드문 '난잡함'을 보여 준다. 의도한 바와 다르게 엉망진창이 되어가는 연극 무대를 실감 나게 보여주고자 했던 의도는 좋았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으로서는 이러한 연출 기법이 혼란스럽게 느껴진다. 이 영화가 작년 12월 8일 개봉 당시, 평단과 관객들의 혹평을 동시에 받으며 최종 관객 수 5526명에 그친 것도 관객들을 당황하게 하는 스토리와 연출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최종 관객 5526명의 현실

 정신없이 흘러가는 극 중 '햄릿'. 아마 관객들도 그 정신없음에 휩쓸려서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극 중 '햄릿'. 아마 관객들도 그 정신없음에 휩쓸려서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 (주)모멘텀엔터테인먼트


그의 첫 장편영화 <커튼콜>을 만들기 이전, <아내가 결혼했다> <페이스 메이커> 등 상업영화 각색에도 몇 번 참여했고, 성결대학교에서 영화 제작 강의도 하는 류훈 감독. 그는 관객들이 쉽고 편하게 다가갈 수 있는 시나리오와 연출, 즉 흥행을 위한 영화작법 공식을 알고 있는 영화인이다. 류훈 감독은 진부한 감이 없지 않지만,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소위 '루저'들이 몇 번의 실패를 겪고 난 이후 끝내 그들의 꿈을 이루는 과정을 영화로 만들었을 때 관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실제 실행에 옮긴다.

그런데 그 과정을 다루는 방식이 굉장히 독특하다. 연극이 무사히 마쳐지길 바라는 단원들의 간절한 바람을 뒤로한 채, 이들이 공연하는 '햄릿'은 햄릿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로 안드로메다 행성을 향해 달려간다. 만약 관객들의 반응을 고려해 적절히 타협할 줄 아는 영화였다면, 공연이 망가지는 과정은 최소화하고 이 연극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던 배우, 단원들의 사연에 집중했겠다. 그러나 <커튼콜> 같은 경우에는 그나마 관객들의 마음을 울리는 장면은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전 마지막 10분에 몰려있다. 민기가 열심히 준비한 '햄릿'이 얼마나 처절하게 망가지고 있는지 너무나도 꼼꼼하고 세심하게 보여주는 영화는 극 중에서 무대를 지켜보는 관객도 괴롭고, 그걸 영화로 보는 사람들도 힘들게 만든다.

<커튼콜>을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객관적인 완성도의 잣대로 본다면 <커튼콜>은 망작에 가깝다. 연극이 망가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몇몇 상황들은 심지어 작위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데 요즘은 <커튼콜> 같은 망작을 보기도 어렵다. 최근 제작, 개봉되고 있는 영화들은 극적 전개, 장면 배치 등에서 비교적 일정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 준다. 만약 어떤 영화가 관객들과 평론가들의 대대적인 혹평을 받았다면 영화적 완성도의 문제가 아니라 시대 정서에 맞지 않는 이야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가끔, 어떠한 개연성 없이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장면만 보여 준다고 비판받는 영화도 보이긴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현격히 그 수가 줄었다.

영화 작법공식으로 봤을 때는 딱히 흠잡을 데 없는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있다고 하지만, 눈에 확 띄는 영화도 없다는 것이 이 시대 영화계가 처한 딜레마이다. 이것은 상업적인 흥행과는 별개의 문제다. 다행히 지난해에는 <곡성> <비밀은 없다> <아수라> 등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는 영화들이 몇 편 등장했지만, 이들 영화 또한 내러티브 전개, 영화적 구성, 연출, 편집에 있어서 새로운 것을 보여 줬다고 확신하기는 어렵다.

<커튼콜> 또한 영화적 구성에 있어서 별반 새롭게 느껴지는 무언가를 보여주지 못했다. 이 영화가 의존하는 것은 엉망진창으로 꼬여만 가는 상황과 어떻게든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모면하려다가 더 궁지에 몰리는 배우들의 슬랩스틱에서 유발되는 웃음과 감동이다. 실제로는 감독과 배우 간에 어느 정도 계산되어 진행되었을 코미디가 관객들을 웃기지 못한다. 관객 입장에서는 정신없이 이어지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도 벅찬데, 영화 내내 일이 안 풀리는 극 중 인물들의 불운을 마냥 지켜보는 것 또한 괴롭다.

사실 우리 인생도 그러할진데...

 많이 아쉬운 작품이지만, 그저 혹평 속에 묻어두기에도 아까운 영화이다.

많이 아쉬운 작품이지만, 그저 혹평 속에 묻어두기에도 아까운 영화이다. ⓒ (주)모멘텀엔터테인먼트


<커튼콜>을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이라는 자체가 원래, 우리가 원하는 대로만 풀리지 않는다. 계획대로 잘 되는 듯싶다가도,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다. 다만 <커튼콜>은 우리가 살면서 겪게 되는 새옹지마를 2시간 남짓 진행되는 연극무대에 압축되어 보여 주었기 때문에 그 피로감과 답답함이 더 크게 다가온다.

연극을 제대로 망친 극단 '민기'의 단원들이 그들이 원래 원하는 대로 관객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계속 공연을 이어나가는 것은 물 건너 간 지 오래다. 이 '햄릿'이 끝나면 그들은 원래 하던 대로 삼류 에로 연극무대로 돌아가든가, 아예 연극판을 떠나야만 한다. 연극을 무사히 마쳐도 그들의 삶이 딱히 달라지지 않음을 알지만, 그런데도 '민기' 단원들은 최선을 다해 연극을 완성한다. 완벽한 무대를 선보여 많은 이들의 호평을 받는 꿈은 물거품이 되었지만, 살면서 한 번쯤은 연극다운 연극을 만들어보고 싶었던 또 다른 꿈을 이루게 된 극단 '민기' 단원들은 막이 내리고 관객들의 박수갈채를 받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한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영화, 연극들이 흥행과 호평 두 가지 모두를 꿈꾸지만, 안타깝게도 그 두 가지 목표를 모두 이루지 못하고 쓸쓸히 잊히는 사례가 부지기수이다. 영화 <커튼콜>도 그중의 하나에 속한다. 개봉 당시 장현성, 박철민 등 대중들에게도 유명한 배우들이 열띤 홍보를 펼쳤지만, 관객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개봉 당시 박근혜 탄핵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절정에 치달은 터라, <커튼콜>처럼 많은 상영관을 잡을 수 없는 영화들에 발길이 더 뜸해졌던 분위기도 한몫했지만, 그나마 본 사람들조차 이 영화에 대해서 마냥 호의적인 평가를 하지 않는다.

하지만 최종 관객 동원 수와 몇몇 혹평만으로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한 제작진, 배우들의 노력과 열정까지는 쉽게 폄하할 수 없다. 한국 영화로서는 보기 드물게, <커튼콜>이 시도한 좌충우돌 상황극과 코미디 적인 요소에는 물음표가 한가득 이지만, 쉽지 않았을 영화를 결국 완성한 노력에 박수를 보낸다. 영화적 완성도와 별개로, 연극과 영화, 삶과 예술에 대해서 다시금 질문을 던지게 하는 영화를 만나는 것도 일종의 행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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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지금 여기에서 여성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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