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특별기획 <대선주자 국민면접>은 '혹시나'가 '역시나'가 되었다.

▲ SBS 특별기획 <대선주자 국민면접> 새롭지 않았던 새로운 시도 ⓒ SBS


지난 16일 SBS의 <대선주자 국민면접>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부터 시작해서 안희정 충남도지사, 이재명 성남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까지 5명의 대선주자가 하루씩 등장하였는데, 한 명의 후보를 70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살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국민면접관이 전여옥 전 의원?

제작진은 프로그램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작의 목적을 분명히 밝혔다. 이번 박근혜 대통령 게이트는 결국 언론이 대통령 후보를 제대로 검증하지 못해서 일어난 일이라며, 대선주자를 불러 기존의 방식과 달리 새롭게 면접의 방식으로 꼼꼼히 톺아보겠다는 것. 그러나 제작진의 이런 야심찬 각오와 달리 프로그램은 여러 가지 면에서 네티즌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우선 많은 이들이 프로그램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한 것은 대선주자들에게 질문을 던지는 면접관들의 자질이었다. 모든 면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국 후보들을 솎아내는 면접관들의 날카롭고 예리한 감각인데, <대선주자 국민면접>의 면접관들은 여러모로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강신주, 허지웅, 진중권, 전여옥, 김진명. 과연 그들이 프로그램의 제목대로 국민을 대표할 수 있었을까? 어쨌든 면접의 대상자가 대통령 후보자인데 면접관들은 그들의 자질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의 전문성을 지니고 있을까?

특히 개인적으로 가장 우려스러웠던 면접관은 전여옥 전 의원이었다. 면접관들의 면모를 살펴보면 민족주의자 김진명 작가를 제외하고 전여옥 전 의원만이 보수라 칭할 수 있는데, 과연 그가 보수에 어울리는 사람인지가 의문이었다. 한때 박근혜 대통령의 최측근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박근혜 대통령을 가장 비판하고 있는 그. 진보는 진보대로, 보수는 보수대로 불만스러울 수밖에 없는 전여옥 전 의원이 국민을 대신해서 대선주자를 면접 본다고?

그들이 나의 대표야? 누가 그들을 대표라고 했나?

▲ 그들이 나의 대표야? 누가 그들을 대표라고 했나? ⓒ SBS


결국 이와 같은 우려는 현실로 드러났다. 비록 프로그램은 압박면접의 형식을 띠고 있었으나 전체적으로 긴장감이 떨어졌다. 질문은 흐리멍텅하고 무뎠으며, 프로그램은 검증이 아니라 예능에 가까웠다. 대선주자들은 공약보다는 자신이 살아온 인생역정을 소개하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고, 자신을 둘러싼 오해들을 적극적으로 해명하는데 급급했다. 오죽했으면 배우 김의성이 자신의 트위터에 '누가 누굴 검증해 진짜. 저런 거지같은 프로그램을 아예 볼 생각도 안 하는 내가 챔피언'라는 말을 남겼을까.

그래도 조금은 바뀐 세상

제목만 다를 뿐, 실상은 2012년 대선주자를 불러다 놓고 신변잡기를 물어댔던 <힐링캠프>의 업그레이드 버전에 가까웠던 <대선주자 국민면접>.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문재인 후보 편부터 시작해서 열심히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비록 질문들이 평이하고, 과도한 편집으로 인해 후보들의 진면목을 보는 데는 한계가 있었으나 그래도 이전보다는 훨씬 더 밀도 있게 대선주자들을 알아갈 수 있었다.

당장 5년 전을 떠올려보자. 2012년 과연 이런 프로그램이 존재할 수 있었을까? <대선주자 국민면접>과 같은 프로그램은 아마도 박근혜 후보의 거부로 인해 존재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박근혜 후보가 답변을 달달 잘 외운다 하더라도 면접관들의 뜬금없는 질문에는 속수무책이었을 것이고, 제작진이 편집을 귀신 같이 한다고 하더라도 그 어색한 분위기는 방송에 투영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어찌 보면 2012년이 아니라 그 전 대선 때도 우리는 제대로 후보를 검증하지 못했다. 당시 이명박 후보가 워낙 대세를 이루고 있었던 이유도 있지만, TV토론회 횟수가 그 전에 비해 절반에도 못 미쳤었다. 다음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가 워낙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아 이명박 후보가 그나마 나아보일 뿐, 이명박, 박근혜 후보는 둘 다 국민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지 않았으며, 이를 발판삼아 대통령으로 당선되었다. 만약 그들을 제대로 된 검증대에 세웠다면 대통령으로 당선될 수 있었을까?

이렇다 보니 내 눈에는 <대선주자 국민면접>만도 감지덕지였다. 이런 프로그램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시대가 변했다는 뜻이며, 그만큼 희망이 보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 역시 참여한 면접관들이 썩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들과 대선주자들이 주고받는 문답들은 가끔 우리가 잊고 있었던 사실이나 오해들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예컨대 이재명 성남시장의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을 노동부장관으로 임명하고 싶다는 발언을 보자. 과연 이 프로그램이 아니었다면 위와 같은 주장을 접할 수 있었을까? 어쨌든 위의 발언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다시금 당시 철도 총파업과 함께 철도의 공공성 등을 떠올리지 않았던가.

이와 같은 맥락으로 내가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가장 눈여겨봤던 면접관들의 질문은 바로 이것이었다. "돌아갈 수 있다면 어느 시대로 돌아가서 무엇을 바꾸고 싶은가?"

무엇을 청산할 것인가

 <대선주자 국민면접>에 나온 5인

<대선주자 국민면접>에 나온 5인 ⓒ SBS


차기 대통령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경제 안정화? 남북관계개선? 민주주의의 회복? 물론 사람 따라 다르겠지만 이번 박근혜 게이트를 거치면서 내가 우선적으로 생각한 것은 하나다. 바로 '적폐청산'. 아무리 경제가 발달하고 남북관계가 개선되고 민주주의가 확립되었더라도 그동안 우리 사회에 쌓여있는 적폐를 청산하지 않고서는 도로 아미타불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이번 사태가 우리에게 준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대선주자 국민면접>에 나온 대선주자들도 모두 이와 같은 의견에 동의했다. 뭔가 시대를 바꾸고 변혁해야 한다는 필요성은 절감하고 있었다. 다만 문제는 무엇을 청산하느냐는 것인데 이에 대해 각 주자들의 의견은 조금씩 달랐고, 앞선 질문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었다. 도대체 대선주자는 우리의 역사가 어디서부터 꼬였고, 무엇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할까?

위 질문에 대해 문재인 전 대표는 초대 대통령 시기를 언급했다. 첫 단추가 가장 중요하다며, 그 시기 우리 사회가 친일청산에 실패했고, 남북분단 극복 노력에 부족했으며, 민주주의 정착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친일세력이 독재세력으로 이어져 오늘까지도 강고하게 지배하면서 많은 적폐들의 배경이 됐다고 대답했다. 야당 지지층에게는 당연한 사실을 재확인시킴으로서 자신이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잇는 적자임을 선언한 대답이었다.

반면 문재인 전 대표와 차별을 둬야 하는 안희정 충남지사는 3.1운동 이후 상해임시정부가 수립된 그 어느 시점으로 돌아가 독립운동의 분열을 막겠다고 밝혔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우리 사회의 비극이 결국은 극단적인 좌우 분열로부터 시작된다고 판단하는 바, 이를 봉합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는 것이었다. 얼핏 들어서는 고개가 갸웃거리는 대답이었지만 현재 보수층으로 외연확대를 노리는 그로서는 전략적인 한 수였다.

안철수 의원은 문재인 전 대표를 의식한 듯 경제 산업적 관점에서 참여정부로 돌아가고 싶다고 했다. 우리 사회가 20세기 말 벤처 거품이 꺼지고 침체기를 겪다가 2000년대 중반부터 다시 발전하기 시작했는데, 참여정부 때 공정하게 경쟁할 산업구조를 만들었다면 우리가 전혀 다른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을 것이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안 의원 역시 정통적인 야당 지지층 보다는 보수층과 무당파들에 대한 구애였다.

마지막으로 유승민 의원은 1997년 김영삼 정부 때로 돌아가겠다고 밝혔다. 그 당시 대통령 경제수석의 입장을 보면 이대로 가면 나라경제가 결단날 수 있겠구나 싶을 정도로 환율에 집착하고 IMF위기에 대해 무지했었는데 지금이 바로 딱 그와 같다며, 자신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대선주자 중 경제 전문가로서 자신의 능력을 부각시킨 것이다.

앞선 질문에 대해 정답은 없다. 각자 사회를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대답은 달라질 것이며, 대선주자의 경우 전략적 판단으로 자신의 생각과 다른 대답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어쨌든 국민들은 그 대답을 보고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같은 것을 원한다면 그것이 시대정신이라는 것이다.

나의 대답은 문재인 전 대표의 그것과 흡사하다. 우리 사회의 비극은 이승만 정부 시기 반민특위가 실패하면서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상해임시정부시절 아무리 독립운동이 좌우합작 되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한반도는 주변 강국의 이해관계에 따라 재단되었을 가능성이 더 높고, 분단 이후 정권의 비호 아래 기회주의자들이 득세하면서 적폐가 쌓이기 시작했다. 모나지 말고 중간만 하라는 처세술이 횡행하는 가운데 기득권자들은 더 많은 것을 누리게 되었고 이를 사회 시스템으로 굳혔다. IMF는 바로 그 결과였다. 단순히 경제정책의 실패가 아닌 것이다.

앞으로도 대선주자들의 검증은 계속 될 것이다. 프로그램이 좀 부족하면 어떠한가. 이렇게라도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대선주자들을 접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성공적이다. 다시는 수첩 없이는 이야기하지 못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으면 안 되지 않겠는가. 

p.s : 이재명 성남시장의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편집된 듯한데 궁금하다. 그는 뭐라고 했을까?

대선주자국민면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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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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