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솔직히, 마냥 편한 이미지는 아니다. <황금의 제국> 최서윤부터 <욱씨남정기> 욱다정, <불야성> 서이경까지. 냉정한 말투와 표정으로 불같은 야망을 감추고 있던, 그의 지난 캐릭터들 때문일까?

최근 영화 <그래, 가족> 개봉을 앞두고 만난 이요원은 "애교 있는 성격은 아니"라고 인정했다. 누군가에게 치대고 장난치는 성격도 아니거니와, 누군가 애교 부르거나 치대는 것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몰라 어색하다고. 성격상 누군가에게 피해 주는 일도, 부탁하는 일도 잘 못 한다. 남에게 신세를 지면, 꼭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 스스로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솔직하고 당당한, 남에게 폐 끼치기 싫어하는 그의 성격은, 작품 안에서나, 밖에서나 비슷했다. 차이가 있다면, 작품 속에서는 '걸크러시'라 불리며 찬사받았지만, 밖에서는 '까칠하다' '어렵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는 것 정도.

직접 만난 이요원은 솔직하고 쿨했지만, 이야기할 것과 안 할 것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이야기할 것에 대한 질문에는 솔직하고 담담하게 답했고, 안 할 것에 대한 질문에는 빙긋이 웃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주로, 가족에 대한 이야기였다. 대화는 그가 출연한 영화 <그래, 가족>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

'걸크러시' 이요원의 가족 영화

이요원, 모두 놀란 동안미모 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직접 만난 이요원은 솔직하고 쿨했지만, 이야기할 것과 안 할 것에 대해 나름의 기준을 가진 것으로 보였다. ⓒ 이정민


- 영화 <그래, 가족>을 보고 많이 울었다고 들었다.
"펑펑 울었다. 대본도 봤고, 리딩도 했고, 촬영하면서 모니터도 하지 않나. 다 아는 내용이라 슬프더라도 눈물 좀 글썽거리겠지 했다. 근데 하이라이트 장면에서는 펑펑 울게 되더라. 그렇게까지 눈물이 날 줄 몰랐다."

- 그간 TV 드라마에서 차갑고 냉철한 역할을 많이 맡아왔지 않나. 가족 영화를 택한 게 조금 의외였다.
"따뜻하고 소소한, 잔잔한 영화를 좋아한다. 보고 나서 마음이 편해지는 영화. 잔인하고 가슴 졸이는 영화는 잘 못 본다. 호러물은 보고 나서도 찝찝하고 가위눌린다. 겁이 많은 편은 아닌데, 보고 나서 너무 힘들더라. 굳이 극장에서 돈 내고 스트레스받고 싶지 않은 기분이랄까. 가슴이 따뜻하고 편안해지는 영화를 좋아하는데, 연기는 이상하게 반대 작품을 많이 했던 것 같다."

- <그래, 가족> 수경도, 언뜻 기존에 TV 드라마에서 연기해왔던, 까칠한 이미지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가족 영화'이기 때문에, 그 안에 따뜻함도 물론 있었지만.
"<그래, 가족>은 <욱씨남정기>를 찍고 있을 때 제안받았다. 언뜻 전문직 여성이고, 욱하고. 똑같은 거 연달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가족 영화지 않나. 짜증 내고 막말하는 것도 마냥 편할 수 있는 가족이기 때문에 가능한 모습들이고. 그래서 다르다고 생각했다. 그 안에 자연히 인간적인 면이 보여질 거라 생각했다. 무엇보다 너무 오랜만의 영화이기 때문에, 내가 할 수 없는 게 아니라면 하고 싶었다."

- '걸크러시' 열풍 이전부터, 계속 '걸크러시'한 역할들을 맡아왔던 것 같다.
"내게 그런 캐릭터들만 들어오는진 모르겠는데, 요즘 여주 캐릭터가 대부분 걸크러시한 것 같다. 수동적이고 마냥 청순가련한 캐릭터는 없는 것 같다. 내가 처음으로 한 '센' 역할은, <황금의 제국>이었는데, 첫 재벌 연기였다. 그전까지는 늘 가난하고, 힘들고, 그랬거든. 스스로 잘할 수 있을까 싶었지만, 한 번도 안 해본 장르라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작가님과 정말 많이 이야기했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부분, 잘 못 하는 부분. 그에 맞춰 작가님이 잘 써주셨다."

- 어떤 연기가 제일 어려웠나. 
"소리 지르는 연기? 카리스마라고 하면, 1차원적으로 소리 지르고, 목소리 높이고 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근데 난 소리 잘 못 지르거든. 발성이 뛰어나지도 않고. <욱씨>에서도 코믹 연기가 자신이 없어서 미팅할 때 많이 이야기했다."

- <욱씨남정기>에서 충분히 코믹했다. 세일러문 분장까지 하지 않았나.
"나는 진지하게 한 거다. 세일러문도, 그 복장을 하고 직접적으로 코믹하게 하는 게 아니라, 내 나름대로는 진짜 진지하게 한 거다. 세일러문 복장으로 진지하니까, 그게 더 코믹해 보이더라."

데뷔 20년차... "아직 부족하다"

 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금은 '걸크러시'의 대표 주자가 된 이요원이지만, <황금의 제국> 이전까지는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대명사였다. ⓒ 이정민


<황금의 제국> 이전, 청순가련한 이미지의 이요원이 이토록 '걸크러시'하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잘할 거라고 그 누가 생각했을까? 하지만 이요원은 "자신없었다"던 엄살과 달리, 첫 변신부터 '걸크러시'를 자신의 대표 이미지로 만들었다. 잡지 모델로 데뷔, 1998년 영화 <남자의 향기>로 연기자 생활을 시작해 어느덧 데뷔 20년차. 여러 작품에서 저도 모르게 쌓여 온 내공 덕분이다.

- 10대에 데뷔해서, 어느덧 데뷔 20년을 맞았다.
"내가 이렇게 오래 연기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어릴 때는 20년을 연기했으면 엄청 연기를 잘하는 배우가 되어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나이 들수록, 연기할수록 어렵다. 생각도 많아지고. 어릴 때는 자신감과 열정이 컸는데, 지금은 생각이 많아서 더 어렵고 힘든 것 같다. 신인 때는 어리니까 조금만 해도 '잘한다'는 칭찬도 들었고, 그땐 그런 칭찬에 '나 진짜 잘하나?'하는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지금은 누가 잘한다 해도 잘 안 들린다."

- 이제는 현장에 선배보다 후배들이 더 많지 않나. 선배 이요원은 어떤 선배인가.
"나도 예전 선배님들처럼, '괜찮아' '잘하고 있어' 이렇게 되더라. (웃음) 사실 특별히 연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하지는 않는다. 나이 차도 그리 많이 나지 않고, 내가 '선생님'은 아니니까. 스스로도 많이 부족한 배우라고 생각하고. 지나보니 따뜻한 격려 한마디. 그게 큰 힘이 됐던 것 같다. 그래서 나도 그런 한마디를 해주려고 한다."

- 그래도 20년 동안 한길을 걸었으면, 객관적인 평가는 할 수 있지 않을까? 배우 이요원의 지난 20년을 스스로 돌아봤을 때, 뭘 잘하고, 뭘 못하는 배우인 것 같나. 새롭게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는지. 
"이전에는 청순한 역할을 주로해서, 세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를 잘 못 했다. 예전에 주변분들이 생활 연기를 잘한다고, 생활 연기 해보라고 해주셨는데, 희한하게 그런 작품을 만나지 못했다. 스스로 괴롭히고 채찍질하는 캐릭터들을 해온 것 같다. 그러면서 내 단점, 부족한 점들을 하나하나 알게 됐다. 그러면서 조금씩 나만의 길, 나만의 캐릭터들을 만들고 있다는 만족감을 느끼기도 했다.

앞으로는 말랑말랑하고 현실적인, 내 나이 또래의 캐릭터를 연기하고 싶다. 범죄 영화나 범죄 오락물도 해보고 싶고. 지금까지 굳어있고 센 캐릭터들을 많이 했었지만, '악역'이라 할만한 캐릭터들은 아니었으니까, 마냥 나쁜 악역도 연기해보고 싶다."

4년 만의 영화, 편안했다

이요원, 모두 놀란 동안미모 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 데뷔해 어느덧 데뷔 20년 차를 맞은 배우 이요원. 감수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배우가 된 걸 후회해 본 적 없다고 말했다. ⓒ 이정민


- 4년 만에 찍은 영화였다. 오랜만에 간 영화 현장은 어떻던가.
"전 작품들은 다 선배님들이었다. 내용도 어렵고 해서 현장 분위기에 익숙해질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그래, 가족>은 아담하고, 내용도 소소한 가족 영화라 편안했다."

- 함께 연기한 배우들과의 호흡은 어땠나. 특히 막냇동생 오낙 역의 정준원 군과의 분량이 많았다. 데뷔 이래 아역과 이렇게 길게 호흡하는 건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영화에서 네 형제가 같이 야식 먹는 장면이 있는데, 너무 닮아 보이더라. 각자 누군가와 닮아있더라. 촬영할 때는 많이 친하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콘셉트가 남같이 살던 형제·자매들의 이야기지 않나. 처음에 어색하고 각자 따로 노는 연기가 자연스럽고 좋았다. 나중에 영화에서도 현실에서도 서로 가까워지면서 점점 닮아가더라. 지금 같이 영화 홍보를 하면서 되게 친해졌는데, 좀 있으면 헤어지겠지. (웃음)

준원 군은 처음 미팅할 때부터, 애늙은이 같다고 느껴질 정도로 어른스럽더라. 감독님이 실제 그 친구를 보고 대본을 쓰셨다더니, 정말 낙이에 딱이라고 생각했다. 특별히 아역이라고 생각하고 연기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NG 한 번을 내지 않더라. 호흡도 너무 잘 맞았다. 솔직히 나는 어릴 때부터 연기하는 거는 좀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자기 인생이 없지 않나. 자기가 뭘 좋아하는지도 모를 때부터 직업을 갖는 거고. 근데 준원 군은 자기 적성을 일찍 찾은 것 같더라. 본인도 재밌다고 하고, 너무 잘한다."

- 그러고 보면 이요원도 어릴 때부터 배우 일을 시작했다. 배우가 되고 싶었나.
"우리 때는 패션 잡지가 많았다. 키가 크니까 잡지 모델을 시작했는데, 처음엔 일 못 한다고 잘리기도 많이 잘렸다. 사진 찍을 때마다 포즈를 바꿔야 한다는데, 안 해봤으니 너무 어렵더라고. 모델은 못하겠지 싶었다. 근데 자꾸 잘리는 것도 싫고, 나 때문에 피해주는 것도 싫어서 계속 혼자 연습했다. 그러면서 일이 점점 늘어나고, 표지도 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TV까지 출연하게 됐다."

- 배우가 되고 싶어서 된 건 아니었던 셈인데, 배우가 된 걸 후회한 적은 없는지. 
"(후회한 적은) 없다. 난 별로 꿈이 없었다. 뭐가 되고 싶은지 물어보면 아이들 가르치는 선생님이 되고 싶다 정도였고, 엄마는 약사가 되길 바라셨지. (웃음) 하지만 이 직업을 통해 여러 직업을 경험할 수 있지 않나. 많은 사랑도 받고. 그만큼 감수해야 하는 부분도 분명 있지만."

사랑과 관심 

이요원, 모두 놀란 동안미모 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요원은 '엄마' 이요원, '아내' 이요원에 대한 질문에는 빙긋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 이정민


- 어떤 부분을 감수해야 했나.
"어딜 가도 행동을 조심해야 하는 거? 컴플레인도 잘 못 하고. (웃음)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보지 않나. 똑같은 장면을 봐도 해석하는 게 다르고. 난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다니기는 하지만 조심은 해야하니까."

- 그러고 보면, 비공개 결혼을 가장 먼저 했다. 요즘은 그게 대세이지만, 당시만 해도 '연예인의 사생활'이라는 개념도 보편화되지 않았고, 비공개 결혼도 흔하지 않은 일이라 비난도 많이 받았던 걸로 기억한다.
"욕 많이 먹었다. 사실 그때 난 그냥 단순했다. (남편이)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나로 인해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다. 어린 나이에 결혼했다는 것 때문에 받아야 했던 시선도 싫었다. 근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가더라."

여기까지였다. <그래, 가족>은 가족 영화다. 자연히 배우 이요원의 가족 이야기로 질문이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이요원은 바람 잘 날 없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을 연기하며 "동생과 나, 둘 뿐이라 다행이라 생각했다"거나, 어릴 때 여동생과 옷 때문에 티격태격하던 에피소드를 전하며 "어릴 때는 (동생이) 나를 싫어했겠지만, 지금은 좋아할 거다" 등의 이야기는 솔직하고 털털하게 털어놨다. 하지만 '엄마' 이요원, '아내' 이요원에 대한 질문에는 빙긋 웃음으로 답을 대신했다.

불편하지는 않았다. 어린 나이에, 당시로써는 흔치 않았던 비공개 결혼을 택했던 이유와, "폐 끼치는 걸 싫어하는 성격"이라던 그녀의 말로 미루어보아, 연예인이라는 자기의 직업 때문에 불편을 겪어야 할 가족들을 위한, 그녀 나름의 배려로 보였다.

 영화 <그래, 가족>에서 수경 역의 배우 이요원이 8일 오후 서울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지난 20년처럼, 앞으로도 변치 않고 '이요원다움'을 유지하기를 응원한다 ⓒ 이정민


직접 만난 이요원은 분명 친근하고 친숙한 이미지의 스타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예상처럼 무례하거나 막무가내도 아니었다. 다만 무뚝뚝하고 시니컬한 말투, 제 생각을 밀어붙이는 뚝심 혹은 고집 탓에 '살면서 오해 많이 받겠구나' 싶었다.

대중의 사랑과 관심을 받는 직업을 가진 만큼, 조금만 더 대중친화적으로 행동해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도 든다. 하지만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떠랴. 모든 배우가 살갑고 다정다감할 필요는 없으니까.

당시엔 흔치 않아 비난 받았던 '비공개 결혼식'이, 이제는 결혼 당사자의 선택으로 존중받는 것처럼, 지금은 호불호가 갈릴 그녀의 '뻣뻣', 혹은 '까칠'한 성격도, 언젠가는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날이 오지 않을까? 


이요원 그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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