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약속> 고사 현장에서의 김태윤 감독, 윤기호 피디, 박성일 피디(왼쪽부터)

<또 하나의 약속> 고사 현장에서의 김태윤 감독, 윤기호 피디, 박성일 피디(왼쪽부터)ⓒ 윤기호


지난 2014년 개봉한 <또 하나의 약속>은 여러 면에서 안타까운 영화였다. 좋은 작품이었지만. 흥행에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완성도나 배우들의 연기 등등 기본적인 구성요소에서 문제가 있다거나 아니면 관객의 관심을 얻는 데 실패해서 외면을 받았다면 차라리 안타깝기는 덜 했을 것이다.

<또 하나의 약속>은 2013년 부산영화제에서 처음 공개돼 호평을 받으면서 화제가 된 작품이었다. 삼성이라는 거대기업에서 벌어진 일을 소재로 한 영화는 반도체 공장 노동자들의 질병을 다뤘다는 점에서 의미도 컸다. 배우들의 연기도 호평을 받았는데, 혹시나 출연 배우들이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까 우려의 시선이 있기도 했다. 개봉을 앞두고 좋은 평가가 많았기에 흥행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제작비도 많은 사람이 펀딩을 통해 십시일반 모았고, 자발적 참여도 많았다. 손익분기점도 높지 않았다.

그러나 개봉이 됐을 때 상황이 이상하게 흘러갔다. 한국영화산업을 장악하고 있는 대기업의 상영관들이 영화 상영을 노골적으로 꺼리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삼성이라는 자본권력을 비판하는 것에 부담이라도 느꼈던 것인지 얼토당토않은 핑계를 대기에 바빴다. 부산영화제 상영을 앞두고 있을 때도 당시 부산시장이 직접 이 영화를 꼭 틀어야 하나라고 했는데, 개봉 이후 상황에 비하면 아주 약한 것이었다.

예매율과 좌석점유율을 기준 자료로 상영관을 배정하는 대기업 극장들은 이 영화의 외면에 합심한 듯했다. 관객의 호응이 약한 영화에는 상영관을 배정해 주면서 <또 하나의 약속>에는 무척이나 인색했다. 어떻게든 관객의 관람을 방해해 보겠다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사회문제가 됐고 극장 앞에서 시위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대기업에서 백혈병을 얻어 억울하게 죽은 사람의 아픔을 담았던 영화는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영화 <또 하나의 약속> 포스터. 관객과 만나는 과정이 결코 순탄치 않았다.ⓒ (주)오에이엘


할 이야기는 하고 마는 감독과 피디

 영화 <재심>의 배급 상황은 나쁘지 않다.

영화 <재심>의 배급 상황은 나쁘지 않다.ⓒ 오퍼스픽쳐스


15일 개봉한 <재심>은 어떤 면에서 <또 하나의 약속> 시즌2라고도 볼 수 있는 영화다. 비슷한 부분이 많이 엿보인다. 우선 실화를 소재로 했다는 점에서 같다. 자본권력과 국가권력에 피해를 입은 사람들 다뤘고, 그 중심에는 피해자의 편에서 싸워주는 사람들이 있다. 삼성 피해자들의 편에서 싸우는 노무사 유난주(김규리 역)는 <재심>의 변호사 이준영(정우 역)과 맞닿아 있다.

<재심>에서 최영재 검사 역으로 나오는 김영재나 단역을 맡아 얼굴을 비치는 박철민 등은 <또 하나의 약속>에서도 볼 수 있던 배우들이다, 두 작품의 개봉 시기가 엇비슷한 것도 우연이지만 가볍게 보이지는 않는다.

두 영화를 관통하는 접점이 약자들을 보듬는 시선이라는 것 역시 의미가 크다. 두 작품 다 김태윤 감독이 연출했고, 윤기호 박성일 피디가 제작을 맡았다는 것도 영화 외적으로 눈에 띄는 부분이다. 감독과 피디가 연속으로 함께 작업하는 게 충무로 영화판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니라는 점에서 특별해 보인다. 이들의 팀워크를 엿보게 한다.

거대자본을 비판하는 영화를 만들어 흥행에 시련을 겪었던 감독과 제작자가 다음 작품으로 국가권력의 잘못된 행태를 비판하는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예사롭게 보이는 부분이 아니다. 감독이나 제작 피디 모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를 먼저 했기 때문에 피하고 싶었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기승전결 구조가 따로 없는 실화는 각색에 어려움이 따르는 등 부담이 크다. 그러나 생각과는 다르게 손은 이미 시나리오를 쓰고 있었고, 결국 뛰어들어 작품을 완성해 냈다. '인간에 대한 존중'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감독과, 성공한 사람보다는 실패한 사람들의 의미 있는 이야기를 추구하는 피디의 마음이 일치했기 때문이다.

윤기호 피디는 "세 사람 모두 겁을 안 먹고, 하고 싶은 건 해야 하는 성격"이라고 말했다. 또 다시 작품을 같이 하게 된 바탕인 셈이다. 이어 <또 하나의 약속>을 하면서 쌓인 신뢰감이 <재심>을 함께 할 수 있게 했다"며 "상당히 즐겁게 작업했다"고 덧붙였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공동배급사로 오퍼스 픽쳐스와 함께 CGV아트하우스가 이름을 올리고 있다는 점이다. <또 하나의 약속> 때 극장 문을 여는 데 인색했던 삼성과 연관이 있는 대기업 계열사가 공동배급을 맡은 것은 단순하게만 보이지 않는다. 윤 피디는 "블라인드 시사에서 반응이 좋게 나오자 다른 대기업 배급사들을 포함해 여러 배급사에서 관심을 표명했다"며 "그중에서 CGV아트하우스에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제작자들은 사람들의 편"

 영화 <재심>처럼 약자의 손을 들어주는 작품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영화 <재심>처럼 약자의 손을 들어주는 작품이 더 많아지기를 바란다.ⓒ 오퍼스픽쳐스


지난 12일 열린 70회 영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영국영화상을 받은 <나, 다니엘 블레이크> 켄 로치 감독은 의미 있는 수상 소감으로 화제를 모았다.

켄 로치 감독은 "영화는 많은 걸 할 수 있다"면서 "오락이 될 수 있고, 사람들을 두렵게 만들 수도 있고, 우리를 다른 세계로 데려다줄 수도 있고, 우리를 웃게 해주는 한편,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어떤 이야기를 해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현실이 더 어두워지고 있다는 걸 알고 있다. 돈과 권력, 재산과 특권을 가진 사람들, 대기업과 대기업을 대변하는 정치인들과 나머지 우리들의 싸움에서, 영화 제작자들은 자신이 어느 편인지 알고 있다. 때로는 이렇게 화려한 시상식도 열리지만, 우리는 사람들의 편"이라고 강조했다.

<재심>은 영국의 거장 켄 로치의 말에 딱 부합하는 영화다. 관객들은 영화를 통해 감독과 제작자가 누구의 편에 서려고 하는지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아울러 대기업에 의해 부당함을 비판하는 과정에서 가로막혔던 <또 하나의 약속> 흥행 성적에 대한 재심의 의미도 담겨 있다. 이 영화를 더욱 주목하게 하는 부분이다. 관객들이 어떤 판단을 내릴지 궁금하다.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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