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1' 사라진 한국전력 점수(위) - '규정 위반 유니폼' 착용 강민웅(아래 오른쪽)

'14-1' 사라진 한국전력 점수(위) - '규정 위반 유니폼' 착용 강민웅(아래 오른쪽)ⓒ SBS Sports 중계화면 캡처


결코 있어서는 안되는 일이 벌어졌다. 후폭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황당한 것은 배구 역사상 초유의 사태로 번질 사안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해프닝으로 끌날 수 있는 일을 대형 사건으로 키운 당사자는 아이러니하게도 프로배구 V리그 운영을 주관하고 책임지는 KOVO(한국배구연맹)였다.

지난 14일 대한항공-한국전력 경기에서 발생한 강민웅 선수의 규정 위반 유니폼 착용과 그에 따른 한국전력 점수 11점 삭제 조치는 규정도 모르고 경기 운영을 지휘한 KOVO측 관계자들이 만들어낸 인재(人災)였다.

KOVO V리그 대회요강에 명시된 유니폼 관련 규정은 다음과 같다.

"한 팀의 모든 선수는 같은 색과 디자인의 유니폼을 착용하여야 한다.(리베로 제외) 경기 당일 일부 선수가 다른 팀원들과 다른 유니폼을 착용하였을 경우 해당 선수는 다른 팀원들과 같은 유니폼을 착용하기 전까지는 경기에 참여할 수 없고, 다른 팀원들과 같은 유니폼을 착용한 후 경기에 참여할 수 있다. 이에 따른 징계는 징계 및 징계금 부과 기준에 따른다." (V리그 대회요강 제48조)

그리고 '징계 및 징계금, 반칙금 부과 기준'에 따르면, 경기 전 유니폼 착용 위반의 경우 감독과 선수에게 각각 10만 원의 징계금을 부과하게 돼 있다.

따라서 강민웅이 다른 선수들과 디자인이 다른 유니폼을 입고서 경기감독관에게 경기 투입 가능 여부를 물었을 때 '불가'라고 답변했으면 간단하게 끝날 일이었다.

한국전력은 주전 세터를 경기에 출전시키지 못함으로써 불이익을 감수하고, 신영철 감독과 강민웅 선수는 추후에 징계금 10만 원을 납부하면 그걸로 자신들의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프로 선수로서 부주의에 대한 팬들의 따끔한 질타는 강민웅 스스로 감수해야 할 부분이다.

해프닝을 초대형 사고로 키운 KOVO

그러나 강민웅은 대형 사고로 번지게 만든 책임은 없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KOVO측에 있다. 규정을 모르고 있었던 경기감독관이 강민웅의 유니폼을 확인하고도 경기 투입을 허락(승인)해줬기 때문이다.

잘못된 규정 적용이 발생할 경우 즉시 시정해줘야 할 의무가 있는 심판감독관·주심·부심 등 심판진들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경기운영위원장과 심판위원장까지 현장에 있었지만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상대 팀인 박기원 대항항공 감독이 1세트 초반에 '유니폼 규정 위반'을 항의했지만, 경기감독관은 '문제 없다'며 경기를 계속 진행시켰다.

뒤늦게 규정 위반을 인지한 KOVO 관계자와 심판위원장 등이 1세트 점수가 14-12까지 진행되고 나서야 경기를 중단시켰다.

그리고 후속 조치를 놓고 무려 25분 동안 양 팀 감독은 물론 김형실 경기운영위원장, 서태원 심판위원장, 박주점 경기감독관, 주동욱 심판감독관이 모두 나서 규정이 맞니 틀리니 하며 설전을 벌이고 갈팡질팡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을 연출했다.

그 과정이 TV 중계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됐다. 경기장을 찾은 배구팬들은 영문을 모른 채 '빨리 경기를 진행하라'며 항의를 쏟아냈다.

FIVB 규정 준용?... 근거 조항 없고, 성격도 달라

더 큰 문제는 후속 조치 결과였다. 한국전력이 강민웅 투입 이후 얻은 11득점을 모두 삭제시키고, 대한항공이 얻은 점수만 인정하면서 점수를 '대한항공 14-1 한국전력'으로 돌려버린 것이다.

이에 대해 서태원 심판위원장과 KOVO측은 그 이유를 언론에 설명했다. 첫째, 한국전력에게 귀책사유가 있고, 둘째, 유니폼 규정 위반은 처음 나온 사례이기 때문에 불법 선수 교대, 로테이션 반칙이 확인되면 반칙 시점으로 점수를 되돌리는 국제배구연맹(FIVB) 규정을 준용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해명은 규정 상으로나 논리 상으로 앞뒤가 맞지 않고 설득력이 크게 떨어진다. 오히려 KOVO측의 책임을 모면하려는 변명에 가깝다.

첫째, 강민웅의 경기 투입은 한국전력에게 귀책사유가 없다. 강민웅은 자신의 유니폼에 대해 경기감독관의 사전 허락을 받았고, 심판진도 이를 전혀 문제 삼지 않았다. 귀책사유를 따진다면, 규정도 모르고 잘못 적용한 경기감독관과 심판진 등 KOVO측에게 100%의 책임이 있다. 규정만 제대로 숙지하고 있었더라면, 강민웅이 투입되는 일 자체가 벌어지지도 않았을 것이다.

둘째, FIVB 규정을 유니폼 위반에 준용한 것도 오류투성이다. 규정에도 없고, 사안의 성격도 다르기 때문이다.

FIVB 규정에 반칙이 이뤄진 순간 이후 반칙 팀이 획득한 점수를 모두 취소하고 상대 팀의 점수만 인정하도록 명시한 대상은 부정 선수(등록되지 않은 선수)의 출전, 불법적인 선수 교대, 로테이션 반칙에 따른 서브 순서가 틀렸을 경우 등이다. 그러나 유니폼 규정 위반의 경우는 어디에도 점수를 취소하라는 조항이 없다.

FIVB 규정에 점수 삭제 조치가 명시된 사안들과 강민웅 유니폼 위반은 그 성격도 다르다. FIVB 규정에 명시된 사안들은 반칙을 범한 팀에게 귀책사유가 크다. 경기감독관이 허용하지 않은 상황에서 해당 팀의 실수로 벌어지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강민웅 유니폼 사안은 경기 투입 자체가 경기감독관의 허락 하에 이뤄진 일이다.

따라서 FIVB 점수 삭제 규정을 강민웅 유니폼 사례에 준용해야 할 이유나 근거가 너무 빈약하다. 견강부회(牽强附會)에 가깝다.

교통신호 위반자에게 '사기죄' 적용한 꼴

또한, KOVO 규정 어디에도 유니폼 위반의 경우 반칙 팀의 점수를 취소하라는 조항이 없다. 결국 KOVO가 규정에도 없는 '유니폼 위반 점수 삭제'라는 징계를 창조해낸 것이다.

그것도 형평성에 어긋난 부당한 조치였다. 교통신호 위반자에게 사기죄를 적용한 꼴이기 때문이다. 과태료만 부과해야 할 가정에게 재산까지 몰수한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국제심판은 15일 기자와 통화에서 "국제대회에서도 유니폼 규정 위반했다고 점수를 모두 삭제하고 되돌리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FIVB 규정에 점수 삭제가 명시된 것들과 유니폼 위반은 전혀 다른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유니폼 위반의 경우는 경기감독관의 결정에 따라 해당 선수만 제외시키고 경기를 진행하면 된다"며 "유니폼 디자인에 약간의 차이가 있는 부분이라면, 경기감독관이 상대 팀에게 별다른 지장이 없다고 판단하면 경기 투입을 허용할 수도 있다. 그리고 해당 선수는 추후에 벌금 징계를 내리면 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런 판단과 결정을 하라고 경기감독관과 심판감독관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부당한 '강민웅 퇴장', 3~4세트 투입도 봉쇄

이날 경기에서 KOVO가 잘못된 조치를 내린 것은 또 있다. 강민웅 선수를 경기장 밖으로 퇴장시킨 것이다. 이 또한 근거 없는 징계다.

V리그 대회요강(제48조)에 따르면, 강민웅은 다른 팀원들과 같은 유니폼을 착용하기만 하면 곧바로 경기에 투입될 수 있는 선수다. 강민웅은 부정 선수나 불법 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기 중단이나 지연 또한 강민웅의 잘못이 아니다.

신영철 한국전력 감독은 3~4세트라도 강민웅을 투입시키기 위해 코치진에게 정규 유니폼을 빨리 가져오도록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이미 퇴장 조치를 당한 후였다. 한 번 퇴장 당한 선수는 당일 경기에는 투입이 불가능하다. 정규 유니폼을 가져와도 소용없는 일이다.

결과적으로 KOVO측이 취한 조치들은 의도와 상관없이 자신들의 잘못까지 한국전력과 강민웅에게 일방적으로 뒤집어씌우고, 경기까지 패하게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것도 봄 배구 진출 여부가 달린 중대한 경기에서.

최고 책임자에게 가장 가벼운 '경고'라니

그러나 KOVO는 16일 오전 상벌위원회를 열고, 박주점 경기감독관에게 이번 시즌 잔여 경기 출장 정지, 주동욱 심판감독관은 5경기 출장 정지와 제재금 50만 원, 최재효 주심과 권대진 부심은 3경기 출장 정지와 재재금 30만 원의 징계를 내렸다.

현장에 있었음에도 사태를 막지 못하고 오히려 키운 경기운영위원장과 심판위원장은 경고로 끝냈다. 경기운영위원장과 심판위원장은 경기 전반 및 심판진 운영에 대한 총괄 책임자다. 그리고 KOVO로부터 고액 연봉을 받고 있다. 무보수 봉사직이 아니다.

또한, 이번 시즌에 유독 경기 운영 미숙과 오심에 대한 논란이 급증한 상황이다. 책임을 통감하고, 합당한 처신을 해야 할 위치에 있다.

프로 스포츠는 팬들로부터 불신을 키우면, 모든 걸 잃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울러 솜방망이 처벌은 제2, 제3의 대형 사고를 불러올 가능성이 높다.

KOVO 총재부터 배구팬들에 큰 실망과 상처를 안겨준 데 대해 진심으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위해 강도 높은 징계와 제도 개선에 나서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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