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밤. 길을 걷기 위해 작은 손전등 빛에 의지하듯, 어찌할 수 없이 지치고 아득한 현실엔 까만 어둠을 가르는 스크린의 빛이 구원과도 같았죠. 영화는 어느덧 다수의 삶을 어루만져주는 공감 장르가 되었습니다. 스크린 속 세계를 만날 때면, 그들 삶을 추적하기 위해 자유로이 온 감각을 열어두게 됩니다. 이 글은, 영화의 흥행과 관계없이 매력 충만한 작품들을 열린 감각으로 그러모아 세심하게 해석하는 공감의 기록입니다. [편집자말]
 크리스마스에 돌아온다던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실상 버려진 4남매가 꾸리는 일상은 가슴 아프다.

크리스마스에 돌아온다던 엄마는 돌아오지 않고...실상 버려진 4남매가 꾸리는 일상은 가슴 아프다.ⓒ 디스테이션


시끌벅적한 거리의 동네 아이들 웃음소리를 온몸으로 헤치고 걸어야 하는 길 위, 식료품이 가득 들어있는 봉지를 놓칠세라 꽉 움켜쥐고 집에 돌아가는 소년의 굳은 표정이 쓸쓸하다. 돌아갈 집의 따스한 온기는 소년이 아니라면 해결되지 않을 책임감. 일찍부터 얻은 그 책임감이 작은 어깨에 무겁게 내려앉는다. 분명히 똑바로 걷고 있음에도 비척비척 걷는 것처럼 여겨지는 소년의 움직임에는 십 대 특유의 역동성이 없다. 형제 중 유일하게 집 밖을 나와 거리의 일원이 될 수 있는 특무를 부여받은 소년 아키라, 그리고 그의 동생들 쿄코, 시게루, 유키 모두에게 없는 어떤 것. 돌아오지 않는 엄마와 애초부터 모르고 산 아빠가 그 전부는 아니다. 어린 나이기 때문에 받아들여질 수 있는 말도 안 되는 고집과 반듯하지 않은 흐트러진 모습들, 마음껏 뛰어놀 수 있는 자유. 그리고 학교라는 이름의 교육현장마저 4남매엔 허용되지 않는다.

사람의 기척에 흠칫 놀라 도망치는 거리의 길고양이는 숨어야 하는 4남매 일상과 많이 닮았다. 분명 세상에 태어나 숨을 쉬고 밥을 먹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귀를 열 수도 있으며 계절의 향기를 맡을 수 있고, 그 감흥을 목소리로 낼 수 있는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세상에 귀속되지 못한다.

작은 공동주택에 이사 오던 날에도 이웃에게 인사할 수 있는 건 엄마와 아키라뿐이다. 엄마의 태연한 거짓말은 타인의 눈을 쉽게 덮어버릴 만큼 이미 두꺼워져 있다. 아담하고 조용한 공동주택의 새 식구가 되기 위해서는 아키라 이외의 자식들 존재를 숨겨야 한다는 엄마의 결정으로 인해 감내해야 할 아이들의 일상은 그들에겐 아주 익숙해 보인다. 이사 갈 집에 같이 가지 못하고 거리 한구석에서 오빠가 데리러 와주기만 기다려야 하는 둘째 쿄코와 커다란 트렁크에 각자 몸을 구기고 들어가 이삿짐 무더기 속에서 꺼내주기만 기다려야 하는 시게루와 유키. 아이들의 천진한 얼굴엔 숙명과도 같은 비밀스러운 일상을 변화시킬 힘이 없다. 집 밖을 나가지 못하고 집 안에서도 큰소리 내지 않아야 한다는 그들만의 규칙 안에서…. 그래도 작게나마 행복했다. 엄마가 얼마의 돈과 크리스마스엔 돌아오겠다는 쪽지만을 남기고 떠나기 전까지는.

"엄마 이번에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어."

베란다에서 이불을 널다 장남인 아키라에게 속내를 털어놓는 엄마는 스스로 만든 진창에서 질척대는 인생이 지겹다. 4남매의 엄마가 행복을 향해 열고 있는 마음은 낙관적이나 안타깝게도 그 대상은 자신 하나뿐이다. 좋아하는 사람과 큰집에서 새롭게 시작하게 되면, 아이들 학교도 보내주고 모두가 행복하게 어우러져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엄마의 말은 아키라에겐 오래전부터 신뢰를 잃은 날카로운 칼이다.

행복에 젖은 엄마의 말에 더는 속지 않으려는 듯 차분한 눈빛을 잃지 않는 십 대 소년 아키라와 그에게 맡겨진 동생들은 엄마가 없는 그들의 공간에서 어떤 동요 없이 시간을 보낸다. 기다릴 수 있는 존재로 인해 희망이라도 품었던 것인지. 조용히 기다리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것을 알았던 것인지. 아이들이 보내는 일상은 엄마가 있던 때와 다를 게 없다는 듯 흐른다. 4남매 일상의 쳇바퀴가 굴러갈 수 있게 만드는 주인공은 당연히 아키라다. 영화는 엄마가 떠난 뒤에도 당연하게 동생들을 책임지고 돌보는 아키라에게 조용히 무게를 싣는다.

전기요금, 가스요금, 월세, 생활비를 조용히 읊조리며 엄마가 두고 간 돈으로 생계를 꾸려 나가던 아키라의 가계부에 그늘이 드리우기 시작한 겨울. 차가워진 공기가 도시를 에워싸 온몸을 꽁꽁 감싸지 않으면 한기에 떨 수밖에 없는 계절이 온 것이다. 낡은 점퍼를 걸치고 엄마가 선물했던 목도리로 목을 감쌌지만, 발목이 훤히 드러나는 아키라의 얇은 7푼 바지가 식료품 봉지를 달랑이며 거리에서 집으로 향하는 장면에서는 누구라도 스산한 감정을 감출 길이 없을 것이다. 그렇게 크리스마스의 계절, 겨울이 온 것이다.

크리스마스가 지나면 돌아올 누군가가 있다는 희망은 사라지고 아이들만의 작은 공간은 돌봄 받지 못하는 그들의 신세와 매한가지로 방치되어 간다. 공간과 생명체가 방치되어 가는 과정은 계절의 변화만큼이나 빠르게 무르익는다.

성숙한 아이가 결코 어른일 수는 없다

 거듭된 더위에 지친 그들의 여름. 장남 아키라(야기라 유야).

거듭된 더위에 지친 그들의 여름. 장남 아키라(야기라 유야).ⓒ 디스테이션


엄마가 남긴 쪽지와 떠난 뒤 보낸 두 번의 편지에는 "너만 믿는다. 동생들을 잘 부탁한다"는 당부가 있다. 통탄하여 마지않을 엄마의 오류는 생의 위협까지 느낄 정도의 무더위가 닥친 여름이 되자 더 극명해진다. 아르바이트할 수도 없는 나이인 장남 아키라가 동생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엄마가 보낸 돈이 바닥남과 동시에 급격히 위기에 처한다. 요금이 밀려 전기가 끊기고 급수가 중단되는 극한 상황에서도 아키라가 할 수 있는 건 제한적이다.

근처 공원의 공용화장실에서 대소변을 해결하고, 공용수도의 물을 받아 가는 일. 편의점 직원에게 비밀스레 받는 유통기한 지난 폐기 음식으로 동생들과 끼니를 해결하는 일이 전부다. 복지센터나 경찰에게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떠냐는 단골편의점 직원의 제안에도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다. 아빠가 모두 다른 4남매가 뿔뿔이 흩어질 수 있는 참변이 가능하다는 것을 진즉 알고 있는 아키라의 조숙함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어느 날, 동생들과 먹을 음식이 담긴 봉지와 함께 일상의 무게를 내려놓고, 나무 막대기와 버려진 공으로 혼자 야구를 하는 소년의 잠깐이나마 반짝이던 눈빛에 가슴이 처연해진다. 가끔 어울려 놀던 동네 아이들이 중학생이 되어 큼직한 교복과 빛나는 새 운동화를 신고 들어간 학교의 굳게 닫힌 교문 앞에서 서성이는 아키라의 낡고 해진 운동화. 부모의 부재는 아이의 어떤 성장도 기대할 수 없게 한다. 물론 아키라는 또래보다 책임감이 있고 악조건 속에서의 생활도 감내하는 조숙한 소년이지만, 그것이 어른스럽다고는 할 수 있을지언정 진짜 어른이 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차라리 '잃어버린 것'이라면

 엄마는 돌아오지 않을 거란 것을, 이미 버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엄마는 돌아오지 않을 거란 것을, 이미 버려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을까.ⓒ 디스테이션


엄마가 떠나지 않고 곁에 남아있었을 때도 채워지지 않던 4남매의 사랑에 대한 결핍은, 이젠 정말로 버려졌다는 확신을 하게 되는 시기에 이르자 소리도 없이 아이들 내면을 공격한다.

물질적 결핍은 그래도 덜 아프다. 부모의 따스한 눈빛과 관심 어린 사랑이 있다면 새 운동화가 아닌 낡은 신발을 신고도 어디로든 뛰어나갈 힘을 발산하는 것이 아이들이다. '버려졌다는 것'에 대한 절망은 엄마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희망을 포기하게 하지는 않지만, 아이들이 견디기에는 너무도 큰 고통을 수반한다.

결핍의 고통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라나는 힘이 있다. 가슴 아픈 결핍의 그림자가 아이들의 생기 잃은 눈빛과 움직임에 날개를 달고 퍼져나가고, 뱃속의 허기짐과 동시에 엄습하는 상실감이 공간과 아이들을 채운다.

술에 취한 엄마가 야무지지 않은 솜씨로 쿄코의 손톱에 발라줬던 빨간 매니큐어는 흔적도 없이 벗겨지고, 엄마가 아키라에게 남긴 돈은 동전 몇 개만 남기고 자취를 감추었다. 막내 유키의 길고 단단한 크레파스가 잡기도 힘든 조각이 되어 집안 바닥을 구르고, 베란다에 절대 나가지 말라는 규칙을 어기지 않던 시게루가 베란다로 놀이영역을 확장한다. 유키의 생일에도 돌아오지 않은 엄마. 돌아올 엄마를 위해 역에 마중 나가야 한다며 기어코 오빠를 따라 밖으로 나간 유키가 걸을 때마다 신발에서는 '삑삑' 소리가 난다. 고요한 밤의 정적을 깨는 그리움 섞인 '삑삑' 소리가 눈시울을 붉히게 한다.

엄마가 아이들을 '버린 것'이 아닌 아이들이 엄마를 '잃어버린 것'으로 치부할 수 있다면 차라리 다행으로 여겨진다. 버림받은 아이들은, 오히려 엄마를 잃어버린 것 같은 상실감으로 그리움까지 불러낸다.

결핍과 결핍이 만나다

 엄마를 기다리는 듯 베란다 가장 높은 곳에 올려져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아이들의 화분

엄마를 기다리는 듯 베란다 가장 높은 곳에 올려져 멀리까지 내다볼 수 있는 아이들의 화분ⓒ 디스테이션


배가 고파 종이를 씹는 동생 시게루를 걱정하는 형 아키라와 언젠가 피아노를 사리라 품었던 희망을 접고 생활비에 보태라며 조금씩 모은 용돈을 오빠에게 전하는 쿄코. 돈이 없어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워도 맛있다며 웃음을 잃지 않는 유키.

감독은 부모의 부재 속에서도 우애를 잃지 않으려는 4남매의 결핍을 어떤 식으로든 채워주기 위해 애쓴다.

학교에 가지 않고 방황하던 청소년 사키가 등장해 폐쇄공간이라고 해도 뭐라 할 말이 없는 4남매의 공간에 타인의 온기가 채워지던 컷들. 겨울이 지나고 따스한 계절이 왔던 어느 날, 처음으로 모두 함께 시도한 나들이로 인해 몸과 마음이 들떴을 때 주워온 꽃씨들의 존재가 그 증거다.

"누가 버리고 간 거 아냐?"
"불쌍하다."


버려진 것처럼 보이는 꽃씨를 줍고, 흙과 돌을 담아와 각자의 이름이 적힌 일회용 용기에 씨앗을 심는다. 급수 공급이 중단되어 더운 여름에 먹을 물을 매일 공원의 공용수도에서 퍼 날라야 하는 힘든 현실 속에서도 아이들은 베란다 공간을 차지한 또 다른 식구인 화분에 물을 주며 돌본다. 혼자였다면 더욱이 감당할 수 없었을 결핍의 무게는 또 다른 결핍을 지닌 존재들로 인해 부족하게나마 채워 나간다. 아키라를 비롯한 4남매도, 방황 청소년 사키도, 버려진 꽃씨들도.

이 영화가 동경에서 실제 있었던 일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은, 울컥한 마음으로 주저앉아 울어버리고 싶은 감정으로 극렬하게 끌고 간다. 그런데도 조금이나마 진정된 가슴을 조용히 쓸어내릴 수 있는 건, 서로의 결핍을 끌어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힘이다.

 유키의 빈자리를 채운 사키, 그리고 계속되는 일상.

유키의 빈자리를 채운 사키, 그리고 계속되는 일상.ⓒ 디스테이션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순지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rnjstnswl3)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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