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스널 FC 홈페이지 대문에 아르센 벵거 감독의 얼굴이 또렷하다.

아스널 FC 홈페이지 대문에 아르센 벵거 감독의 얼굴이 또렷하다. ⓒ 아스널 FC 홈페이지 캡처


아스널에게 '악몽의 2월'이 현실화됐다. 아르센 벵거 감독이 이끄는 아스널이 프리미어리그에 이어 유럽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부진을 거듭하며 사실상 무관이 가까워졌다.

아스널은 16일(한국 시간) 독일 바이에른주 알리안츠 아레나에서 열린 2016-17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1차전에서 바이에른 뮌헨에 1-5로 참패했다. 점수 차이에서 보여주듯 일방적인 완패였다.

한마디로 실력차가 컸다. 전반까지는 1-1로 대등하게 마쳤으나 후반에만 뮌헨의 파상공세에 내리 4골을 내주며 속절없이 무너졌다. 홈에서 열리는 2차전이 남아 있지만 아스널은 실점없이 4-0으로 이기거나 5골차 이상으로 승리해야 하는 상황이다. 양팀의 전력차와 아스널의 현재 분위기를 감안할 때 불가능에 가까운 미션으로 보인다. 

아스널은 이미 프리미어리그에서도 선두 첼시와의 승점차가 10점으로 벌어진 상황이다. 2월 시작과 동시에 왓포드와 첼시에 당한 2연패가 치명타였다. 아스널은 2월에만 각종 대회에서 치른 4경기에서 3패를 당하며 지난 시즌과 거의 비슷한 흐름으로 우승권에서 멀어지고 있다.

아스널은 2004년 마지막 리그 우승을 끝으로 더 이상 리그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지 못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2006년 결승진출 한 차례(준우승)가 역대 최고성적이며 벌써 6년연속 16강에서 탈락한 바 있다. 매년 리그 4위권-UCL 16강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징크스는 어느새 아스널의 '과학'으로 불리우며 풍자의 대상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아스널의 한계는 곧 벵거 감독의 한계이기도 했다. 지금의 아스널은 곧 벵거 감독의 철학에 따라 완성된 팀이다. 21년째 아스널에서 장기집권중인 벵거 감독은 아스널의 전성시대를 연 주역이지만, 최근 10여년간은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적인 리더십과 자신의 축구철학에 대한 지나친 고집으로 오히려 아스널의 발전을 정체시켰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벵거 감독의 아스널은 늘 똑같다. 전술적으로 점유율을 강조하는 공격적인 축구를 추구하고, 4-2-3-1 포메이션을 선호한다는 점. 맨유나 맨시티, 첼시처럼 많은 돈을 써가며 스타급 선수들의 폭풍영입을 꺼리고 합리적인 투자를 강조한다는 점, 적극적인 전력보강이나 로테이션없이 주전급 선수들에게 의존하다가 고비마다 부상과 부진으로 무너진다는 점까지, 좋게 말하면 일관성이 있고, 나쁘게 말하면 실패에 대한 학습효과가 없다.

2000년대 중반에는 신축구장 건립으로 인하여 적극적인 투자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아스널이 꾸준히 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다는 것이 벵거 감독의 능력을 옹호하는 명분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아스널의 한계는 결국 강팀과의 대결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아스널이 최근 10여년간 매번 우승권에서 미끄러진 상황을 되돌아보면 과연 강팀과의 중요한 빅매치에서 제대로 이겨본게 손에 꼽을 정도다. 

벵거 감독이 프리미어리그에서 라이벌로 꼽혔던 알렉스 퍼거슨 전 맨유 감독, 주제 무리뉴 감독(첼시-맨유)과의 맞대결에서 번번이 밀린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2011/12시즌 맨유와의 3라운드 2-8 패배나, 2013/14시즌 자신의 아스널 부임 1000경기째를 맞이한 첼시전에서 0-6 완패를 당하는 등 그것도 아주 굴욕적인 참패를 당한 경우도 수두룩했다. 챔피언스리그에서도 바르셀로나, 뮌헨 등 우승후보로 꼽히는 강팀들을 만났을때 무기력하게 패배하는 모습을 자주 보였다.

아스널은 어떤 팀을 만나더라도 충분히 예상가능한 축구를 구사한다. 기본적인 전력의 우위를 바탕으로 리그같은 장기레이스에서는 어느 정도 상위권의 승점을 확보할 수 있지만, 중요한 빅매치나 토너먼트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약팀들은 약팀대로 철저한 맞춤형 전술을 통해 아스널을 상대로 종종 이변을 연출하고, 강팀들은 전력상의 우위를 바탕으로 강력한 압박과 기술을 통해 아스널의 장점 자체를 무력화시키는 패턴이다. 자신보다 전력이 강하거나 전술상 상극인 팀을 만났을 때 고유의 스타일을 포기하면서도 실리를 추구하는데 익숙하지 않은 벵거 감독의 유연성 부족은 아스널의 무관을 초래한 근본적인 원인이다.

아스널에 현재 진정한 월드클래스급 선수가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이다. 아스널에 현재 세게적인 선수는 알렉시스 산체스와 메수트 외질 정도인데 이들은 모두 아스널이 키웠다기보다는 이미 완성된 선수들을 외부에서 영입해온 케이스다. 잭 윌셔(본머스), 아론 램지, 옥슬레이드 체임벌린, 시오 윌콧 등 벵거 감독이 수년간 공들여 키운 선수들은 기대만큼 성장하지 못한 경우가 훨씬 많다. 외부 영입보다 유망주 육성을 통하여 전력강화를 추구한다는 벵거 감독의 철학이 무색한 현실이다.

그나마 외질은 올시즌 극심한 부진에 빠져있으며 산체스 역시 재계약을 미루고 있어서 아스널 잔류를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로빈 판 페르시, 세스크 파브레가스 등 이미 아스널을 거쳐간 많은 정상급 선수들이 우승하지 못하는 아스널의 한계에 실망을 느끼며 팀을 떠난 전례가 있기에 이들의 미래 역시 불투명하다. 설상가상 벵거 감독 본인도 올해를 마지막으로 아스널과의 계약이 만료된다. 하지만 이미 아스널 팬들 사이에서도 벵거 감독과의 결별을 요구하는 등 여론은 우호적이지 않다.

이처럼 매년 반복되는 아스널의 과학은 이제 더이상 우연이나 불운이 아니라 인과관계가 뚜렷한 필연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보인다. 마지막 변수였던 챔피언스리그 뮌헨전의 참패는 사실상 벵거 시대의 레임덕을 가속화시키는 결정타가 되었다는 평가다. 21년간에 걸친 벵거 감독과 아스널의 동거가 어느덧 끝을 향해가고있는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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