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소 까칠하게 공연을 보고, 이야기 합니다. 때로 신랄하게 '깔'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좋은, 잘 만든 작품에게는 누구보다 따뜻하지 않을까요? 따뜻하게 대할 수 있는 작품들이 더 많이 올라오길 바라봅니다. [편집자말]
뮤지컬 <팬텀>의 포스터 및 공연 이미지 오는 4일부터 지방 순회 공연에 돌입하는 뮤지컬 <팬텀>의 공연 이미지.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삼은 이 작품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는 다른 관점으로 파리 오페라하우스에 접근한다. 버림받고 상처받은 영혼 '에릭'은 자신의 뮤즈 '크리스틴'을 만나 구원을 얻는다. 하지만, 그 행복은 얼마 오래가지 못하고 마는데…. 박효신, 박은태, 전동석, 김소현, 김순영, 이지혜, 정영주, 신영숙, 박철호, 이희정, 이창희, 손준호, 이상준, 김주원, 황혜민 등.

▲ 크리스틴의 상경 뮤지컬 <팬텀>의 여주인공인 크리스틴. 캐릭터적으로 아쉬운 게 많다. ⓒ EMK뮤지컬컴퍼니


작년 충무아트홀에서 훌륭한 캐스팅 라인업으로 크게 인기를 끌었던 <팬텀>이 1년 만에 돌아왔다. 특히 올해는 작년에도 함께 하는 박효신, 김순영 외에 새로 합류한 박은태, 전동석 팬텀과 김소현, 이지혜의 크리스틴 등이 함께 하며 더욱 화제가 됐다.

<팬텀>은 '당신이 몰랐던 오페라의 유령의 숨겨진 이야기. This is the real Phantom'이라는 문구를 주제로 내세우며 '오페라의 유령'의 재해석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발레와 뮤지컬을 절묘히 조화시켰다는 점에서 관객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또한 아름다운 음악 선율과 이를 뒷받침해주는 배우들의 뛰어난 가창력은 관객들의 귀마저 즐겁게 한다.

지난해 11월 26일부터 지난 2월 26일까지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에서 공연한 이 뮤지컬 <팬텀>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뜨거운 사랑을 받았다. 특히 폐막이 가까워지자, 대부분의 회차  잔여석이 0석이었으며, 오는 4일부터 지방 순회공연이 예정되어 있다. 하지만 이렇게 '잘 팔리고' '볼 것 많은' 뮤지컬 <팬텀>에도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이는 젠더 감수성의 결여이다.

여성과 여성의 갈등

뮤지컬 <팬텀>의 포스터 및 공연 이미지 오는 4일부터 지방 순회 공연에 돌입하는 뮤지컬 <팬텀>의 공연 이미지.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삼은 이 작품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는 다른 관점으로 파리 오페라하우스에 접근한다. 버림받고 상처받은 영혼 '에릭'은 자신의 뮤즈 '크리스틴'을 만나 구원을 얻는다. 하지만, 그 행복은 얼마 오래가지 못하고 마는데…. 박효신, 박은태, 전동석, 김소현, 김순영, 이지혜, 정영주, 신영숙, 박철호, 이희정, 이창희, 손준호, 이상준, 김주원, 황혜민 등.

▲ '프리 마돈나' 카를로타 뮤지컬 <팬텀> 속 카를로타는 크리스틴과 갈등한다. 전형적인 '여적여' 프레임이 아닌가 우려된다. ⓒ EMK뮤지컬컴퍼니


우선 여성 캐릭터인 크리스틴과 카를로타를 살펴보자. 두 인물은 끊임없이 대립한다. 선하고 순진한 시골 여성 크리스틴은 잘 나가는 프리마돈나 카를로타의 견제를 받는다. 결국 카를로타는 크리스틴에게 약을 탄 잔을 건네고 크리스틴은 무대에서 고음이 안 나오는 결정적인 실수를 하고 만다. 크리스틴이 무대를 망친 상황에서 이를 지켜본 에릭은 샹들리에를 떨어뜨린 뒤, 크리스틴을 지하로 데려간다.

이 관계 속에서 팬텀은 몇 가지를 보여준다. 첫째, '여자의 적은 여자'다. 이는 주로 남성 중심적인 사회에서 '여자들은 뭉치지 못하고 이기적이다'라는 평가로 이어지던 방식이었다. 하지만 여성에게 사회적으로 주어지는 권력 자체가 작다는 환경적 요인은 배제됐다. 여성들에게 주어지는 '파이'가 남성들의 것에 비해 작기 때문에, 사회적인 생존을 위해 서로 견제하는 것이 많아진다는 맥락은 사라진다. 그저 '여자는 질투가 많아 서로 견제한다'라는 식으로 해석되곤 했다.

위 상황은 '여적여' 상황 속에서 '드센' 여자에게 괴롭힘 당하는 여성을 남성이 구해준다는 '여성 혐오'적 서사를 재현한다. 이는 전형적으로 여성을 수동적인 위치에 머물게 하던 방식이었다. 즉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여성성'을 내재하지 못한 여성은 '드센 여성', 지나치게 내재화한 여성은 '민폐'로 낙인찍힌다. 이러한 여적여 프레임은 필립을 짝사랑하는 여성들에게도 일부 드러난다. 그 사이에서 크리스틴은 한없이 '약한 여성'으로 그려진다.

넌 나의 음악?

뮤지컬 <팬텀>의 포스터 및 공연 이미지 오는 4일부터 지방 순회 공연에 돌입하는 뮤지컬 <팬텀>의 공연 이미지.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삼은 이 작품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는 다른 관점으로 파리 오페라하우스에 접근한다. 버림받고 상처받은 영혼 '에릭'은 자신의 뮤즈 '크리스틴'을 만나 구원을 얻는다. 하지만, 그 행복은 얼마 오래가지 못하고 마는데…. 박효신, 박은태, 전동석, 김소현, 김순영, 이지혜, 정영주, 신영숙, 박철호, 이희정, 이창희, 손준호, 이상준, 김주원, 황혜민 등.

▲ 크리스틴과 에릭 에릭은 크리스틴을 '구해서' 지하로 내려온다. 하지만, 과연 이것이 정당화될 수 있는 행동일까? ⓒ EMK뮤지컬컴퍼니


극의 마지막, 크리스틴은 에릭의 가면을 벗기고 '넌 나의 음악'이라 노래 부른다. 그 과정 속에서 크리스틴은 에릭의 어머니, 벨라도바의 역할을 이어받는다. 에릭은 크리스틴의 목소리를 꿈에 그리던 목소리라 칭한다. 그녀의 목소리가 에릭의 어머니 벨라도바와 흡사하기 때문이다. 벨라도바는 에릭의 흉측한 얼굴을 유일하게 사랑해준 인물이었다. 이에 대해 팬텀의 서사는 일종의 '성장 서사'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의 끔찍한 얼굴조차 사랑할 수 있게끔 크리스틴이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 속에서 여성에게 강조되는 '어머니'가 명확히 그려진다. 그리고 그 어머니에게 어떤 역할이 부여되는지도 그려진다. 하지만, 왜 어린 여성이 성장을 하면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왜 그 희생적이고 모든 것을 품어줘야 할 '어머니'가 되어야 하는 것인가?

일부 팬에게 크리스틴은 '민폐녀' '어장관리녀' 등의 호칭으로 비하됐다. 그녀가 그토록 비난을 받던 이유는 주로 그녀가 에릭의 얼굴을 보고 도망쳤다는 혐의에서 비롯한다. 크리스틴은 에릭에게 당신의 얼굴도 사랑할 수 있을 것이라며 에릭이 가면을 벗게 한다. 하지만 크리스틴은 에릭의 끔찍한 얼굴을 보고 놀란 마음에 그 자리에서 도망친다. 크리스틴이 떠난 자리에서 에릭은 좌절한다. 에릭의 얼굴은 아버지인 카리에르조차 사랑하지 못한 얼굴이었다. 이에 대해 카리에르는 극 중 다음과 같이 평했다.

"그녀의 얼굴이 아름다운만큼 아이의 얼굴은 끔찍했습니다. 그리고 더 끔찍한 것은 그녀가 그 아이를 전혀 끔찍하게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아버지로서 카리에르는 '에릭이 끔찍하게 여겨지지 않는다는 것'에 대해서 '끔찍하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카리에르는 극의 결말에서 '따뜻한 부자 상봉을 이뤄내는 아버지'처럼 그려진다. 크리스틴이 에릭의 얼굴을 견디지 못한 것은 누군가의 손가락질을 받는 데 말이다. 이는 카리에르와 확연히 다른 양상을 띤다. 과연 온당한가.

여성의 고통 그 위에서

뮤지컬 <팬텀>의 포스터 및 공연 이미지 오는 4일부터 지방 순회 공연에 돌입하는 뮤지컬 <팬텀>의 공연 이미지. 소설 <오페라의 유령>을 원작으로 삼은 이 작품은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과는 다른 관점으로 파리 오페라하우스에 접근한다. 버림받고 상처받은 영혼 '에릭'은 자신의 뮤즈 '크리스틴'을 만나 구원을 얻는다. 하지만, 그 행복은 얼마 오래가지 못하고 마는데…. 박효신, 박은태, 전동석, 김소현, 김순영, 이지혜, 정영주, 신영숙, 박철호, 이희정, 이창희, 손준호, 이상준, 김주원, 황혜민 등.

▲ 젊은 벨라도바와 카리에르 벨라도바를 카리에르가 버리지 않았다면, 이 비극은 애초에 일어나지 않았을지 모른다. ⓒ EMK뮤지컬컴퍼니


또한 극 중에서 에릭은 크리스틴을 구해준다. 사실 남성 캐릭터에 의해 구해지는 여성 캐릭터 또한 흔히 존재하던 여성혐오적 담론이었다. 이는 여성을 남성의 도움 없이는 무언가 하지 못하는 소극적이고 무능한 인물로 그려내기 때문이다. 특히 <오페라의 유령>보다 에릭을 상대적으로 더 선한 캐릭터로 그려내고자 한 <팬텀>에서는 에릭에 대한 미화가 더욱 두드러진다.

그러나 에릭의 크리스틴 구출은 사실 말이 좋아 구출일 뿐, 납치에 가깝다. 그런데 이를 <팬텀>은 남성 주인공이 여성을 구해주려는 의도에서 나온 행동으로, 사랑의 방식으로 그려진다. 저 지옥 같은 사회에 어떻게 크리스틴을 다시 보낼 수 있냐는 식으로 말이다. 마치 많은 서사와 매체가 데이트 폭력을 사랑으로 미화하는 것처럼.

또한 뮤지컬 <팬텀>에서의 문제라면, 연대를 위해 여성들이 희생됐다는 점도 미화된다는 점이다. 극 중 에릭의 어머니인 벨라도바는 극 중에서 대표적으로 희생된 여성 캐릭터다. 아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숨기고 벨라도바에게 접근한 카리에르로 인해, 벨라도바는 전도유망한 발레리나였지만 아들 에릭을 가진다. 벨라도바의 임신을 알게 된 카리에르는 자신이 결혼했다는 사실을 비로소 이야기한다. 그 후 벨라도바는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성당에 가 기도를 하지만 버림받은 미혼녀인 그녀는, 외면당한다. 그 후 태어난 에릭의 얼굴은 일그러진 상태였다.

서로가 부자 관계임을 실토하며 카리에르와 에릭은 '우리의 고통은 모두 음악이 되었지'라고 노래한다. 그들의 고통이 음악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벨라도바나 크리스틴 같은 여성의 고통 위에 서 있는 남성이었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아무도 찾을 수 없게 에릭은 자신을 묻어달라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들의 고통으로 빚어진 음악 탓에 생긴 어떤 관객들의 불편함까지 묻을 수는 없었던 것 같다.

무엇보다 이 뮤지컬 <팬텀>이 가장 아쉬운 것은, 이 공연이 꽤 흥행한 뮤지컬이란 점이다. 여성 혐오를 재생산하는 작품들의 문제는 그 작품이 가지는 파급력이 클수록 더욱 확장된다. 그 작품들은 아름답고, 재밌기 때문에 더 관객들에게 쉽게 흡수되는 것이다.

창작자의 역할은 중요하다. 작품 내에 담긴 요소가 관객에게 스며들고, 나아가 재생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팬텀>은 기존 <오페라의 유령>과는 다른, 숨겨진 이야기에 주목했다. 흥미로운 시도이다. 하지만 그러한 시도 과정 속에서 문제점은 오히려 확대됐다. 젠더 감수성을 비롯한 인권 감수성이 강조되는 2017년의 관객에겐, 아쉬움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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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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