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새 '걸크러시' 예능. <하숙집 딸들>과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2>.

KBS의 새 '걸크러시' 예능 <하숙집 딸들>. 5% 시청률 공약을 걸었지만, 첫 회부터 넘었다. ⓒ KBS


지난 14일 KBS2 <하숙집 딸들> 첫 방송 중 시청률 공약을 거는 시간. 장기 하숙생 콘셉트로 합류한 박수홍이 10%를 들자, '러시아에서 온 새엄마' 이미숙이 말린다. 첫 술에 너무 과한 시청률 공약을 내걸었다 안 되면 의기소침해진다는 게 이유였다. 대신 이미숙이 내건 수치는 5%.

그런데 첫 회 <하숙집 딸들> 시청률은 5.4%였다. 이미숙이 걱정한 의기소침의 벽을 넘어, 첫 번째 시청률 공약을 기쁘게 지킬 일만 남았다.

지난 10일 첫 선을 보인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 2> 역시 5%를 넘기며 무사히 안착했다.

예능으로 온 주연급 배우들

 KBS의 새 '걸크러시' 예능. <하숙집 딸들>과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2>.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2>의 출연 멤법들 이미지. 면면이 화려하다. 특히 예능에서 쉽게 보기 어려웠던 얼굴들이 반갑다. ⓒ KBS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 2> 시즌 2는 기존 멤버 김숙, 홍진경 외에 한채영과 강예원을 합류시키며 관심을 끌었다. 강예원은 이미 <우리 결혼했어요> 등을 통해 예능에 첫 발을 딛었으며, <백희가 돌아왔다> 등 출연한 작품 속 개성 강한 캐릭터로 인해 각인이 된 배우다. 그에 반해 '예능'에서의 한채영은 의외라 할 만큼 신선한 인물이다.

전혀 뜻밖의 인물을 등장시킨 건 <하숙집 딸들>이 한 수 위다. <내게 남은 48시간>을 통해 예능 신고식을 치룬 이미숙을 필두로, 박시연, 이다해, 장신영, 윤소이 등 스타급 여배우들이 리얼 버라이어티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그 등장만으로도 새로웠던 면면에 더해, 밤새 잠을 못 이뤘다는 우려가 무색하게 그녀들의 활약은 존재 이상으로 더 신선했다. 예능에 나온 만큼 아낌없이 자신을 드러내겠다며 매니저보고 나가있으라고 하는 한채영부터, 여러 남자를 건드려서 아버지가 다른 딸들을 거느린 여장부 스타일로 자신의 콘셉트를 잡은 이미숙, 부끄러운 듯 하지만 솔직담백하게 이혼 중이라는 사실을 드러낸 박시연, 꽃게춤을 마다하지 않는 장신영, 거침없이 내복 패션쇼를 선보인 윤소이까지…. 웬만한 예능 새내기의 포부를 뛰어넘는다. 늘 화면에서 아름다운 주인공을 맡던 그녀들이 거리낌 없는 언변부터, 몸개그, 성격까지 보여주는 그 솔직함이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다.

 KBS의 새 '걸크러시' 예능. <하숙집 딸들>과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2>.

배우로서 입지를 다졌고, 잠시 보기 어려웠던 이들. 그들은 왜 예능으로 돌아왔을까. ⓒ KBS


물론 여배우들의 예능 출연이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일찍이 2007년 종영한 <여걸 식스>를 통해 이소연, 정선경, 전혜빈 등이 당당하게 한 몫을 해낸바 있다. 그리고 이젠 MC로 더 익숙한 김원희 역시 배우 출신이다.

이후로 한동안 뜸했거나, 출연을 해도 화제성을 충분히 이끌어 내지 못했던 여자 배우들의 예능 출연에 새로운 물꼬를 튼 건 나영석 PD였다. 예능의 트렌드를 주도하는 그는 <삼시 세끼>에 이어 <꽃보다 할배> 시리즈를 성공시키더니 <꽃보다 누나> 등을 통해 고인이 된 김자옥 배우를 비롯하여 윤여정, 김희애, 이미연, 최지우 등의 배우들을 예능적으로 업그레이드시켰다. 물론 '화장실'과 관련한 웃픈 에피소드 등도 있었지만, 예능에 나오는 것이 곧 '망가짐'으로 통했던 선입견을 뛰어넘었다. '예능'을 통해 배우의 이미지를 확산내지는 상승시킬 수도 있다는 선례를 만든 것이다.

거기엔 '걸크러시(Girl Crush: 카리스마 있고 자신감 있는 여성으로서 다른 여성에게 호감/동경을 이끌어내는 캐릭터)'라는 여성주도적 시류가 영향을 미쳤다. 여배우들의 예능적 캐릭터의 한계를 또 한 번 넓혀줬다. 덕분에 라미란은 자신이 기존에 지니고 있던 '센 언니'의 캐릭터를 한껏 부풀려 걸출한 활약을 선보였다. 마찬가지로 '기'를 드러내고 있는 이미숙 역시 당당하게 <하숙집 딸들>의 가장으로 등장했다. '러시아에서 온 결혼 여러 번 한 엄마' 캐릭터를 자연스럽게 설득한다.

그녀들의 속사정

 KBS의 새 '걸크러시' 예능. <하숙집 딸들>과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2>.

여성 출연진 위주의 예능이 전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대 이상의 성과를 보여준 적은 드물었다. 과연 이번엔 어떨까. ⓒ KBS


물론 이러한 여배우들의 예능 진출이 꼭 신선한 예능 트렌드에 대한 부응이라는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채영, 이다해, 박시연, 장신영, 윤소이 등 모두 한때는 공중파 드라마의 주연을 맡던 '스타'들이었다. 하지만 결혼 등의 일신상의 변화와 더불어 서른 중반을 오가는 그녀들의 연령대는 어느덧 배우로서의 그녀들의 입지를 위태롭게 한다. '바비인형'이라 불리던 한채영이지만, 그녀의 최신작은 2013년 <예쁜 남자>였다. 이다해 역시 2014년 <호텔킹>이 마지막이었다. 이미숙 역시 <질투의 화신> 속에서 계성숙으로 화제가 되었지만, 그런 역할이 쉬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다.

예능에 출연한 이서진, 하석진, 심형탁 등은 '예능'을 통해 이미지를 개선하거나 쇄신하며 그런 성과를 작품활동으로 이어갔다. 다른 배우들의 예능 출연에도 청신호가 켜졌다. 또한 라미란 등은 예능과 연기의 두 마리 토끼를 너끈히 잡으며 '소모전'이 아닌 예능의 가능성을 타진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이 모두가 트렌드의 수혜자가 될 수는 없다. 이서진, 에릭 등은 '나영석'이란 걸출한 연출자가 배후로서 확실했다. 하석진이나 심형탁은 자신들이 가진 '뜻밖의' 예능적 재능을 발산하며 자신의 입지를 변화시킨 케이스다. 라미란으로 말할 것 같으면 '전전후'라는 말이 정확할 것이다. 결국 능력 있는 서포트가 있거나, 개인의 특출한 혹은 예외적 능력이란 전제 조건이 있어야 예능에서 수혜를 받을 수 있다.

그런 면에서 첫 선을 보인 <하숙집 딸들>은 우려되는 지점을 남긴다. 뜻밖의 소탈하고 털털한, 심지어 누구는 결벽증마저 있는 예외적인 모습은 '호기심'을 불러일으키지만, 과연 그런 신선함이 <하숙집 딸들>이라는 프로그램의 지속성으로까지 연결될지는 미지수다. 실제 첫 방송에서부터 프로그램을 이끌어가는 건 이수근과 박수홍이었다. 여배우들은 그런 그들의 진행에 따라 출연한 게스트 같은 느낌이 강했다. 주객이 전도된 상황을 뚫고 매회 게스트를 맞이하며 자신의 예능적 캐릭터를 이끌어 낼 수 있을지는 쉽게 판단이 서지 않는다.

<언니들의 슬램덩크 시즌 1>에서도 걸그룹 프로젝트 전까지는 '전천후' 라미란조차 그 존재감이 쉬이 드러나지 않았다. 이들의 예능 적응기도 그리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하숙집 딸들>은 2014년 SBS에서 시도했던 그룹홈 방식의 리얼 예능 <룸메이트>를 참고해야 한다. <룸메이트> 역시 예능에서 보기 어려운 배종옥, 이동욱 등 신선한 얼굴로 화제를 끌었지만, 결국 게스트에 의존하며 자체 동력이 고갈됐고 프로그램의 생명을 단축시켰다. 과연 이런 딜레마를 <하숙집 딸들>이 극복할 수 있을지, 진정한 '걸크러시'를 기대해본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예능, 여배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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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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