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의 마무리와 시작을 이보다 알차게 보내기도 쉽지 않을 듯하다. 3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한 SBS <낭만닥터 김사부>와, 화제성만큼은 '시청률 100%'였던 tvN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아래 <도깨비>). 이 두 드라마에 출연해 인상 깊은 연기로 시청자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배우 김민재(20) 이야기다. 

"둘 다 잘 될 줄 알았냐고요? 몰랐죠. 그냥 재밌겠다 싶었어요. <낭만닥터 김사부>는 언제 한석규 선배님 같은 대배우님과 해볼 수 있을까 싶었고, <도깨비>는 너무 해보고 싶었던 사극 장르라 기대됐죠. 처음엔 일회성 카메오였는데, 나중에 분량도 늘어나서 정말 기뻤어요."

아이돌 연습생의 배우 되기

 2017년 2월, 김민재 인터뷰 제공사진

‘리얼비’라는 이름으로 <쇼미더머니4>에도 출연했던 김민재는, 아이돌 데뷔를 준비하던 연습생이었다. ⓒ CJ E&M


많이 알려졌다시피, 김민재는 아이돌 데뷔를 준비하던 연습생이었다. '리얼비'라는 이름으로 <쇼미더머니4>에도 출연했던 그는, 연습생 생활 동안 듣게 된 연기수업을 통해 배우의 길을 걷게 됐다.

"음악을 좋아해서 가수가 되고 싶었고, 4년 동안 연습생 생활을 했어요. 연습생 생활이라는 게, 화나도 화를 못 내고, 짜증이나 욕도 마음껏 할 수 없어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는 셈이죠. 그런데 연기 수업을 하면서 화도 마음껏 내고, 다른 사람이 되어 이런저런 경험을 할 수 있었죠. 그게 너무 재밌더라고요. 더 재미있는 걸 찾은 느낌이랄까요?"

그렇게 걷게 된, 배우의 길. 그는 여러 단역을 거쳐 tvN <두 번째 스무 살>의 최지우 아들 역으로 처음 얼굴을 알렸고, 1년 만에 가장 눈에 띄는 신예 중 한 명이 됐다. 하지만 4년간의 연습생 생활 동안 갈고닦은 춤 솜씨는 어디 가지 않았다. <라디오스타> <음악중심> 등 예능에서 살짝 보여줬던 댄스 실력은 지난 연말 SBS 연기대상에서 빛을 발했다.

김민석, 양진성, 문지인, 혜리, 민아 등 뉴스타상 수상자들과 함께 선보인 축하 무대에서 여자친구의 '오늘부터 우리는'을 선보였고, 김민재 춤사위는 아이돌인 혜리, 민아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았다. 김민재가 무대 위에서 춤을 출 때 신나게 환호하고 손뼉 치며 즐거워하던 <낭만닥터> 팀을 언급하자, 쑥스럽다는 듯 "그렇게까지 잘할 필요는 없었던 것 같다"며 웃었다.

"촬영 중간에 하루 쉬고 돌아온 적이 있는데, 선배님들이 은탁이 어제 뭐 했느냐고 물어보시더라고요. 그래서 시상식에서 춤을 춰야 해서 연습하고 왔다고 말씀드렸죠. 그때부터 모두들 기대만발이셨어요. 저 춤추는 거 보고 정말 다 같이 즐겨주시더라고요. <낭만닥터> 팀의 장기자랑 같은 느낌이었죠. 잘 추더라고 계속 칭찬해주셔서, 종방연 때도, 세부 포상 휴가가서도 췄어요. (웃음)"

한석규가 건넨 귤 하나

 2017년 2월, 김민재 인터뷰 제공사진

한석규는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작은 역할을 맡은 그에게, 자신도 예전에 조연 역할을 많이 했노라, 그 시기가 배우 인생에 가장 중요하게 보낸 시기였노라 이야기해줬다. 진심어린 그의 조언은 20살 배우 김민재에게 큰 힘이 됐다. ⓒ CJ E&M


<낭만닥터> 팀의 막내였던 그는, 한석규와 연기하며 느낀 놀라움을 전하기도 했다.

"선배님과 눈만 마주쳐도 웃었어요. 사실 그런 대배우님과 그러기 쉽지 않잖아요. 그런데 정말 아버지 같으셨어요. 제가 막 편하게 대했다기보다, 선배님 보면 기분이 좋아졌어요. 밥도 많이 사주시고, 이런저런 조언도 많이 해주셨죠. 하지만 아무리 편하게 만들어주셔도 한석규라는 배우의 아우라는 감출 수 없는 거잖아요. 연기 시작하면 정말 말도 안 되는 흡입력으로 연기에 몰입하시는데, 놀라울 뿐이었어요."

한석규에게 들은 조언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뭐가 있었을까?

"'재미있니?' '군대 얼른 다녀와라' '결혼은' 등 사적인 조언도 많이 해주셨어요. 힘들어하고 있으면 쓱 다가와서 손에 뭘 쥐여주고 가세요. 뭔가 싶어 보면 껍질 벗긴 귤이에요. '먹어' 하고 가시는데, 별거 아닌데도 뭔가 지켜봐 주고 계신 것 같아서 큰 위안이 됐어요.

연기적으로는, 선배님도 예전에 조연 역할을 많이 하셨다면서, 선배님 배우 인생에 가장 중요하게 보낸 시기라고 해주셨어요. 그저 그림이나, 병풍이 될 수도 있지만, 작은 구석을 채워주고, 장면을 살아있게 보여주는 역할이라고. 카메라에 잡히지 않더라도, 항상 살아있게, 뭔가 하고 있었으면 좋겠다고 해주셨죠."

한석규의 조언 덕분일까? 김민재는 <낭만닥터>에서 자기만을 위한 스토리가 없었던 것에 대해 "아쉽지 않다"고 했다. 뭔가 있을 듯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없었던 서은수(우연화 역)와의 로맨스에 대해서도 "김사부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면서 "소소한 부분을 채워주는 은탁이 좋았다. 즐거웠다"고 말했다.

왕여의 사랑, 강렬했고 슬펐다

 2017년 2월, 김민재 인터뷰 제공사진

<낭만닥터> 은탁의 사랑이 흐지부지 사라졌다면, <도깨비> 왕여의 사랑은 강렬한 비극으로 끝났다. ⓒ CJ E&M


<낭만닥터> 은탁의 사랑이 흐지부지 사라졌다면, <도깨비> 왕여의 사랑은 강렬한 비극으로 끝났다. 결국, 해피엔딩이 됐지만, 그건 두 번의 환생을 거듭한 뒤, 성인 역 이동욱과 유인나의 이야기였다.

낮은 목소리톤 때문일까? 첫 사극임에도 어색함은 없었고, 첫 로맨스 연기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절절함이 그대로 전해졌다. 김민재는 공을 감독의 세심한 디렉션과, 함께 호흡을 맞춘 김소현에게 돌렸다.

"처음에는 왕여의 반전을 몰랐어요. 그래서 왕비(김소현 분)와 김신(공유 분)에게 소리치고 윽박지르는 감정 톤을 조절하기 어려웠죠. 하지만 감독님은 알고 계시니까 세심하게 디렉션을 주셨죠. 너무 죽이려고 달려들지 말고 눌러서 연기해줬으면 좋겠다 하셨는데, 나중에 반전을 알고 나서 '아 이거였군요!' 하고 놀랐죠.

소현씨야 너무 잘하잖아요. 앞에서 대사 해주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데, 저까지 몰입도가 높아지더라고요. 같이 연기하는 입장에서 그보다 더 좋은 게 있을까 싶을 정도였어요. 소현씨와 다시 한번 사극 로맨스 해보고 싶은데, 기회가 있을까요? (웃음)"

과거에서 이루지 못한 왕여의 사랑에 대한 아쉬움은 없느냐고 물었다. 분량에 상관없이 임팩트는 강했지만, 사극 로맨스를 조금 더 길게 보여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은 없는지. 왕여와 김선의 고려 로맨스를 더 보고 싶어 하는 시청자들이 많았다고 전하자, "그런 댓글들을 많이 봤다"며 활짝 웃었다.

"사람들이 상상하고, 여운을 남겨둔 작품도 재미있는 것 같아요. 책을 읽으면서 상상하듯, 어린 김선과 왕여의 이야기를 상상하며 아쉬움을 즐기시는 것도, <도깨비>를 즐기는 또 다른 재미이지 않을까요?"

10년 뒤 강동주, 20년 뒤 김사부 될 수 있기를

 2017년 2월, 김민재 인터뷰 제공사진

김민재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10년 뒤에는 강동주(유연석 분) 같은, 20년 뒤에는 김사부(한석규 분)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 CJ E&M


김민재는 새로운 경험을 좋아한다고 했다. 도전이 두려워, 새로운 경험을 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1000% 후회할 것 같아서라고. 올해 나이 이제 스물. 한 우물만 파기에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그는 아이돌 연습생에서 래퍼로, 다시 배우로 진로를 바꿨다. 그에게 배우는, 어릴 때부터 간직해온 오랜 꿈은 아니지만, 지금 가장 재미있는 일이고, 가장 도전해보고 싶은 영역이다.

"몸 쓰는 걸 좋아해서 액션 영화도 해보고 싶어요. 로맨스도 해보고 싶고, 미친 연기도 해보고 싶어요. 아직 어떤 모습을 더 보여드릴 수 있을지는 저도 아직 모르겠어요. 대본이 들어오면 여러 가지 장르, 캐릭터에 도전해보고 싶어요. 그게 연기의 매력이잖아요."

김민재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10년 뒤에는 강동주(유연석 분) 같은, 20년 뒤에는 김사부(한석규 분) 같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런저런 갈등과 선택을 반복하며 자신의 길을 찾아가던 강동주와, 지난 선택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뛰어난 실력으로 후배들의 믿음직스러운 멘토가 된 김사부. 그들이 되기 위해, 김민재는 앞으로 어떤 배우가 될 생각일까?

그의 답은 "필요한 배우"였다. <낭만닥터 김사부>에서, 좋은 의사인지, 최고의 의사인지 묻는 강동주(유연석 분)의 말에, '필요한 의사'라고 답했던 김사부의 대사에서 차용한 말이다.

"그 대사를 듣고 머리 한 대 맞은 느낌이었어요. 필요한 사람이 돼야겠구나, 영감을 줄 수 있고, 울고 싶거나 웃고 싶을 때 찾을 수 있는 배우가 돼야겠구나 생각했죠. <낭만닥터>는 사람이 어떻게 해야 잘 사는 건지 생각했던 작품이었어요. 필요한 사람,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김민재 왕여 어린 왕여 김사부 은탁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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