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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골문에서 보듯, 닭 볏과 닭 발이 강조된 형태이다.
▲ 鷄 갑골문에서 보듯, 닭 볏과 닭 발이 강조된 형태이다.
ⓒ 漢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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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에는 주나라 성왕 때 촉나라 사람들이 닭을 진상했다는 기록이 있다. 3,000년 전부터 닭을 먹어왔다는 얘기다. 전국시대 수천 명의 식객을 거느렸던 맹상군은 개처럼 빠르게 도둑질을 잘 하는 식객이 '호백구(狐白裘, 여우 겨드랑이털로 만든 옷)'를 훔치고,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식객의 도움으로 위기를 탈출한 '계명구도(鷄鳴狗盜)'의 고사로 유명하고, 삼국시대 조조는 닭갈비는 먹을만한 살은 없고, 버리기는 아깝다(食之則無所得, 棄之則如可惜)며 '계륵(鷄肋)'이라는 말을 만들어냈다. 당 현종은 닭싸움을 매우 좋아해서 당시 장안에 널리 유행했으며, 아직도 남방 소수민족의 풍습으로 남아 있다.

닭 한 마리 때문에 명나라가 망했다는 얘기도 흥미롭다. 1631년 청태종 홍타이지의 공격을 받던 명 장수 손원화(孫元化)는 공유덕(孔有德)에게 지원을 요청했다. 공유덕부대는 당시 포르투칼 침몰선에서 건져 올린 가장 크고 막강한 '홍이대포(紅夷大砲)'로 무장한 부대였다. 그러나 원정 도중 보급이 되지 않자 한 병사가 닭 한 마리를 잡아먹는데, 그것이 분란이 되어 오교병변(吳橋兵變)이 일어난다. 분열된 부대는 이어진 전투에서 패하고, 명나라의 화포 무기와 기술은 모두 청나라의 손으로 넘어가고 말았으니, 그 닭 한 마리가 청으로서는 참 고마운 존재였던 셈이다.

청의 광서제는 어렸을 때 계란을 좋아해 하루에 4개씩 먹었는데, 신하들이 그 값을 부풀려 은 1만 2,410냥 어치를 먹은 것으로 장부에 기록하고, 자신들의 잇속을 차렸다고 한다. 닭이 인간과 가까운 가축으로 늘 함께했기에 많은 이야기에 등장하는 것으로 보인다. 

닭 계(鷄, jī)는 소리부인 해(奚)와 의미부 인 새 조(鳥)가 결합된 형성자이다. 갑골문에서 보듯, 닭 볏(鷄冠)과 닭 발(雞爪)이 강조되어 벼슬을 움켜쥐는 의미가 강하다. 소리부인 해(奚)는 움켜쥔 손(爪), 끈(幺), 사람(大)이 합쳐진 전쟁 포로를 뜻하는데 왠지 닭이 사람에게 붙잡히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설문해자>에는 닭을 시간을 아는 짐승으로 설명하고 있다.

중화요리 메뉴 중에 "깐풍기, 라조기, 기스면"이 있는데 공통적으로 '기'가 들어있다. 한국에 와서 식당을 연 화교 중에 산둥(山東) 출신이 많은데, 닭 계(鷄, jī)의 산둥 방언이 바로 '기'이기 때문이고, '기'가 들어 있는 요리는 모두 닭을 재료로 했다는 의미다.

중국에서 백숙 같은 닭요리를 주문하면, 닭머리와 닭발이 그대로 모두 요리로 나와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닭이 모자를 쓰다(鷄戴帽子)'는 말이 '관직이 더 높이 올라감(冠上加冠)'을 비유하니, 닭 볏이 없으면 관직이 없는 것이요, 닭발이 없으면 관직이 있어도 잡을 수 없는 것이 되니, 중국인들에게 어찌 닭머리와 닭발 없는 닭이 가능하겠는가. 문화적 차이로 이해하는 수밖에. 2017년 정유년, "닭의 해 행운이 함께 하라"는 의미의 "계년대길(鷄年大吉), 계년길상(鷄年吉祥)" 메시지를 많이 받는다. 닭(jī)의 발음과 길하다(jí)의 발음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태그:#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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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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