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 기사에는 작품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영화, 엄청나게 신선하다. 전에 보지 못한 SF 영화가 등장했다. 기존 외계 생물이 지구에 등장하는 영화를 떠올려보면 보통 대부분의 영화가 외계인과 인간의 대결 구도를 그린다. <에일리언> <프레데터> <화성침공> 등을 비롯해 <맨 인 블랙> <인디펜던스 데이> <디스트릭트 9> 등 인류는 지구를 침공하는 외계인과 맞서 싸워왔다. 이번 겨울 극장가에는 또다시 전혀 보지 못했던 비행물체가 날아왔고 인류는 새로운 유형의 외계인과 만났다.

어느 날 갑자기 외계로부터 날아온 비행물체들이 나타났다. 미국은 물론 중국, 러시아, 베네수엘라, 시에라리온 등 세계 곳곳에 나타난 비행물체들로 인해 전 지구적 혼란이 초래됐다. 불시착이라기엔 뭔가 목적이 있는 듯하다. 그래서 언어학자(에이미 아담스)와 물리학자(제레미 레너)는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미지와의 조우를 시작한다. 그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단 하나. 외계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이 무엇인지 알아내는 것. 불가능해 보이는 미션. 그들에게 지구의 운명이 달려있을 수도 있다.

신선한 언어학적 접근

 영화 <컨택트>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주인공 루이스는 언어학자다. 언어학자로서 외계인과 소통을 시도한다. 이 영화가 기존 외계인 영화와 다른 점이 이 부분이다. ⓒ UPI 코리아


이 영화가 전에 없던 새로운 SF 영화라고 전술한 이유는 비행물체나 외계인의 생김새가 새로워서 뿐만은 결코 아니다. 기존 영화에서 외계인이 등장하면 그들은 이유 불문 배척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그들과 전투를 하지 않는다. <우주전쟁>과 같이 도시를 파괴하는 외계 생물체와 맞서 싸우는 부류의 블록버스터를 기대했던 관객이라면 <컨택트>가 다소 아쉬웠을 수도 있다. 이 영화는 그들과 싸우기에 앞서 그들이 지구에 왜 왔고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싶어 한다. 군인도 경찰도 아닌 언어학자가 주인공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셸'이라고 불리는 비행물체는 18시간마다 바닥이 열리고 그때 인류는 셸 속의 생물체들을 만날 수 있다. 주인공인 언어학자와 물리학자는 그들과 조우하게 되고 처음 보는 시각적인 충격 때문에 작업의 아무런 진전을 보이지 못한다. 다시 그들과 만난 언어학자는 방법을 모색하고 결국 그들에게 우리의 언어를 가르쳐서 대화를 시도하기로 한다.

그러나 큰 문제점에 봉착한다. 그들과 우리의 언어(영화 속에선 당연히 영어)의 인식체계가 완전히 다른 것을 알게 된다. '헵타포드'라 불리는 영화 속 외계 생물체들은 표의문자를 사용한다. 표의문자란 소리가 아닌 문자에 의미가 담긴 언어다. 이를테면 한자와 같은 원리이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인류의 언어 사고 체계는 '선형적'이다. 즉 우리는 시간도 순차적으로 이해하고 단어의 사용도 쓰는 순서를 정해놓았다는 것이다. 문장의 과거, 현재, 미래 시제의 구분이 있는 것도 그 이유고 나라마다 문법 체계가 다르지만, 영어를 예로 들면 주어-동사-목적어의 순으로 쓰고 말을 해야만 소통이 가능한 것도 같은 이유다.

하지만 헵타포드의 언어는 '비선형적'이다. 영화에서 보면 그들의 언어는 손으로 추정되는 몸의 한 부분에서 뿜어져 나오는 검은 연기가 그려내는 일종의 그림이 대신한다. 그 그림은 원형으로서 나타나는데 우선 매 문장이 다른 그림이고 원형이라 문장의 시작과 끝의 구분이 없다. 점점 일은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인과론적 체계와 목적론적 체계

 영화 <컨택트>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둘은 '헵타포드'와 조우하며 그들과 소통해 나가기 시작한다. ⓒ UPI 코리아


감독이 심어놓은 언어 체계의 차이를 이해해야만 이 영화의 모호한 교차편집이 왜 이뤄졌나 알 수 있다. 이 부분이 이해되지 않고서는 영화 속 주인공의 과거 또는 환영으로 묘사되는 장면들이 왜 나오는지 알 수가 없다.

즉 인간은 선형적인 사고를 하므로 모든 인식을 원인에 따른 결과로 해석하게 된다. 반대로 영화 속 헵타포드는 목적론적 체계를 가지고서 시간성을 초월한다. 순차적인 원인과 결과가 아닌 결과와 결과에 이르는 과정이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결국, 헵타포드는 과거와 현재, 미래를 순서가 아니라 하나의 전체 과정으로서 한 번에 인식한다. 이 인과론과 목적론의 차용은 영화의 원작 소설 테드 창의 단편 <네 인생의 이야기>에서 '페르마의 원리'를 다루는 것에서 나온다. 영화 이해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원작 단편소설을 꼭 읽길 추천하는 바이다.

참 어렵게도 여러 개념이 등장한다. 하지만 이 영화가 언급된 개념들을 선행해서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영화는 결코 아니다. 다만 이 글의 목적은 영화를 다 본 관객의 이해도를 더 높이기 위함에 있다는 것을 밝힌다.

인간과 헵타포드는 언어도 다르고 사고 체계도 완전히 다르다는 것이 밝혀진 시점에서 주인공은 변화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쓰이는 개념이 '사피어-워프 가설'이다. 사피어-워프 가설은 한 사람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과 행동이 그 사람이 쓰는 언어의 문법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언어학적 가설이다. 즉 주인공인 언어학자 루이스는 헵타포드와의 만남을 가지며 그들의 언어와 사고체계를 이해하고 습득하게 된다.

결국, 주인공은 헵타포드어를 인식하게 되며 세상을 비선형적이고 목적론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여기서 우리는 이 영화의 모든 실마리를 풀게 된다. 계속해서 교차편집 된 딸과의 추억으로 보이는 장면들은 '과거'의 일이 아니라 '미래'의 일이었고 과거 회상(이젠 그게 과거가 아님을 알 수 있음)에 나오진 않지만 과학자 남편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함께 헵타포드 프로젝트에 참여한 물리학자 이안(제레미 레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리고 미래를 동시에 볼 수 있게 되며 중국의 솅 장군의 마음을 돌려세워 헵타포드와의 전쟁도 막게 된다. 이로써 영화의 모든 연결고리가 이어졌다. 스포일러에 대한 경고를 미리 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드니 빌뇌브와 에이미 아담스

 영화 <컨택트>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영화 <컨택트>의 감독인 드니 빌뇌브. 그는 이 작품으로 관객에게 자신의 실력을 '증명'했다. ⓒ UPI 코리아


이 영화는 우선 뛰어난 원작인 <네 인생의 이야기>가 아니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작품이다. 하지만 짧은 단편의 내용을 가지고 2시간 동안 설득력 있게 내용을 구체화한 각본의 힘에 감탄했고 이를 어떻게 시각화시킬까를 고민한 착상부터 결국엔 실현시킨 감독 드니 빌뇌브에게 두 팔 들어 항복했다. 드니 빌뇌브는 <그을린 사랑>과 같은 드라마도, <에너미> <시카리오: 암살자의 도시>와 같은 스릴러도 자신만의 스타일로 소화하며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명감독의 리스트에 본인이 올라갈 것을 미리 알렸고 이번 <컨택트>로 관객들에게 확약을 얻게 됐다. 그가 <블레이드 러너>의 후속작인 <블레이드 러너 2049>를 연출한 부분에 대해 원작의 팬들이 우려보다도 기대하는 것에서 이미 우리는 드니 빌뇌브의 힘에 믿음을 가지게 됐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더불어 비슷한 시기에 먼저 개봉한 <녹터널 애니멀스>에 이어 <컨택트>까지 주인공의 연기력이 한 작품의 완성도에 얼마나 기여하는지를 에이미 아담스는 완벽하게 보여줬다. 2월 26일에 열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주연상을 기대하는 것도 과장은 아닐 테다. 물론 <재키>의 나탈리 포트만과 <라라랜드>의 엠마 스톤이라는 강력한 후보들을 넘어야 하지만 가능성이 결코 낮은 연기가 아니었다. 흔히 알짜라고 부르는 주요 5부문(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남우주연상, 여우주연상)에 <컨택트>도 여러 후보를 올린 상태다. 과연 얼마나 수확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도 흥미롭겠다.

새로운 걸작의 탄생

멀리 갈 것 없이 2010년대의 대표적인 SF 영화를 꼽자면 알폰소 쿠아론의 <그래비티>와 크리스토퍼 놀런의 <인셉션> <인터스텔라>가 떠오르겠다. 지금 우리는 그 반열에 함께 올려도 전혀 무방한 새로운 걸작이 극장에 걸려있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과거의 걸작을 되새기는 기쁨도 크지만, 동시대의 걸작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 그보다 큰 기쁨이 있을까.

 영화 <컨택트>의 스틸 이미지 및 포스터.

<컨택트>의 포스터. 원제는 'Arrival(도착)'. 1990년대 개봉한 <콘택트>와는 다른 영화다. ⓒ UPI 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김언종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eon_etc)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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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고 글을 쓰는 사람입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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