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이었다. 빙판길에 미끄러진 것뿐이었다. 어쩌다보니 죽을 뻔한 사람을 구했고, 의인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가만히 지나가도 사건들이 계속 터졌고 연이어 활약을 하게 됐다. 제대로 삥땅치고 덴마크로 떠나는 것이 목표였는데. 3억도 마다하고 옳은 소리가 나온다.

해 먹는 것을 좋아하던 김과장(남궁민 분)의 활약으로 드라마 <김과장>은 6회 12.1%(TNMS 제공)로 수목 드라마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이영애가 출연 중인 드라마 SBS <사임당 빛의 일기>에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이다.

이 드라마, 처음에는 코믹하고 뻔한 드라마일까 싶었다. <김과장>보다는 이영애가 출연하고 현모양처 이미지로 굳어있던 신사임당의 이야기를 다루는 <사임당 빛의 일기>가 더 기대됐다. 하지만, 남궁민의 훌륭한 연기 실력과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에 빠져들더니 5화, 6화를 기점으로 완전히 매료돼 버렸다. TQ택배의 노조 이야기를 다룬 장면 때문이었다.

 TQ택배의 모습을 보니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름, 박종태 열사. 그는 화물연대에서 활동했었다. 수수료 30원을 올려주기로 한 합의를 무시하고 휴대폰 문자메세지를 통해 70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해고한 대한통운. 그에 맞서 박종태 열사는 항거했고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이기자”라는 말을 남긴 채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열사. 그의 죽음은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TQ택배의 모습을 보니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름, 박종태 열사. 그는 화물연대에서 활동했었다. 수수료 30원을 올려주기로 한 합의를 무시하고 휴대폰 문자메세지를 통해 70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해고한 대한통운. 그에 맞서 박종태 열사는 항거했고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이기자”라는 말을 남긴 채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열사. 그의 죽음은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 KBS


택배 노조 모습, 박종태 노동자가 떠오르다

TQ택배의 적자가 모두 택배 노동자들의 탓이라고 한다. 평균 14시간을 일하고, 명절이 오면 쉬지 못하고 18시간까지도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 탓이란다. 결국, 군산에서 웨이터를 하던 준건이는 빨간 조끼를 입고 노조위원장이 되었고 택배를 들었던 노동자들의 손에는 택배 대신 피켓들이 들렸다.

'사람처럼 살고 싶다'라고 쓰인 피켓. 이를 보니 여러 기억들이 떠올랐다. 내리는 비에 머리를 감고 싶을 정도로 더웠던 8월 여름. 15일의 동안 전국을 돌아다니며 세월호 서명을 받기도 하고 노근리 등의 학살의 역사가 기록된 곳을 답사했다.

그러던 중 찾았던 경북 칠곡군의 '스타케미컬' 고성농성 현장. 아득하게 멀리 높은 곳에 사람이 있었다. 다른 회사에 인수되고 갑작스럽게 매각될 위기에 처한 회사. 근로승계가 되지 않고 청춘을 바친 회사를 떠나야 될 상황에서 차광호 형님은(이렇게 부르고 싶었다) 그냥 떠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는 뜨거운 햇살 가까운 곳에서 묵묵히 싸우고 있었다. 우리가 해줄 수 있었던 것은 별 것 없었다. 이야기를 들어주고 힘내시라고 소리 높여 외치는 것뿐. 노래에 맞춰 준비한 짧은 율동을 보여주는 것 정도였다.

아버지 때문일까. 그때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다. 많은 것을 바란 것이 아니었다. 청춘을 다했던 회사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것. 엄청난 연봉을 원한 것도, 특별한 대우를 바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사람답게 그곳에서 일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모습을 보니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 자기처럼 살지 말라고 항상 말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항상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많은 자격증을 취득하고 성실하게 정직하게 일을 해왔던 아버지는 무슨 일이든 잘해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아버지의 삶은 고달팠다. 제대로 쉴 시간도 없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더욱 자신을 혹사했다. 사람답게 살기 위해, 평범하게 지내기 위해 아버지는 필사적이었다.

그래서였을까. 나는 아버지가 자식에게 자신처럼 살지 말라는 충고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꿈꿨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할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것을 바꿔야하는지 알지는 못했다. 하지만,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보고 어렴풋이 느낄 수 있게 되었다.

TQ택배의 모습을 보니 가장 먼저 떠올랐던 이름, 박종태 열사. 그는 화물연대에서 활동했다. 수수료 30원을 올려주기로 한 합의를 무시하고 휴대폰 문자메세지를 통해 70명이 넘는 노동자들을 해고한 대한통운. 그에 맞서 박종태 열사는 항거했고 "끝까지 싸워서 반드시 이기자"라는 말을 남긴 채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특별하지 않은 사람 박종태 열사. 그의 죽음은 많은 노동자들이 함께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5.18 묘역에서 그를 만나기 전에는 택배 노동자들의 부당한 삶에 대해서 생각해보지 못했었다. 편리한 서비스인 택배가 얼마나 고된 노동인지, 얼마나 힘든 삶을 강요하고 있는지. 어째서 "사람답게 살고 싶다"가 누군가의 꿈이 될 수 있는지 몰랐다. 많이도 버렸을 30원. 그 돈이 누군가에게는 '사람다운' 삶의 일부분이 될 수 있는지 몰랐다.

별 것 아닌 구호들. 큰 것 아닌 요구 사항들. 이런 작은 조각들이 쌓여 내가 바랐던 세상을 만드는 게 아닌가 싶었다. 국회의원이 되고 기업의 고위직이 되어 힘으로 권력으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정답은 아니지 싶었다. 앞으로 노동자가 될 내 삶에 대해 고민하는 것. 타인의 일로 치부하지 않고 연대해보는 것. '사람다운' 노동자로 살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보는 것. 이런 것들이 필요했던 것 같다.

 현실의 나는 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 드라마 <김과장> 내에서도 많은 약자들이 하지 못하고 견디기만 했던 것들. 그는 통쾌하게 부셔버렸다. 때로는 비굴해보이기도 하고 비겁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는 부딪혔다.

현실의 나는 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 드라마 <김과장> 내에서도 많은 약자들이 하지 못하고 견디기만 했던 것들. 그는 통쾌하게 부셔버렸다. 때로는 비굴해보이기도 하고 비겁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는 부딪혔다. ⓒ KBS


응원한다 <김과장>

깨달음과는 별개로 실천으로 옮기는 것이 쉽지는 않다. 최저임금을 인상하자는 이야기를 할 때 자영업자가 망한다거나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얻으면 되지 않냐 말하는 사람들에게 효과적으로 설득하는 것조차 어렵다. 귀족노조를 운운하며 배부른 소리를 한다며 악담을 퍼붓는 사람들에게 당당히 싸워낼 용기도 없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SNS에 툴툴거리는 몇마디를 적어보는 것. 글 몇글자 적으며 누군가 읽어주길 바라는 것. 이런 작고 소극적인 것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김과장을 보면 자꾸만 응원하고 싶어진다.

노조를 3억원으로 더럽히고 해체시키려고 했던 사측에 통쾌하게 한방 먹인 모습이나, 연이은 소송으로 돈 없는 약자를 굴복시키려는 TQ그룹을 포기하게 만드는 것. 그가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그가 어떤 삶을 살아왔든 멋있었다. 의인이라는 이름이 우연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해도 동경심이 들었다.

현실의 나는 하지 못하고 있는 것들. 드라마 <김과장> 내에서도 많은 약자들이 하지 못하고 견디기만 했던 것들. 그는 통쾌하게 부셔버렸다. 때로는 비굴해보이기도 하고 비겁해 보일 때도 있지만 그는 부딪혔다.

그래서 나는 계속 김과장을 응원하려고 한다. 앞으로도 수많은 위기가 올 것이고 덴마크 이민을 꿈꾸는 그가 어떤 선택을 할지는 모르겠지만, 믿어보련다. 그를 믿고 현실의 나도 용기를 얻어 보련다. 노동의 가치가 제대로 인정받는 세상. 아버지가 자식에게 자신처럼 살아도 좋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 그것을 만들기 위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위해.

남궁민 김과장 스타케미칼 택배 박준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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