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인들에게는 문화대혁명(1966-1976)에 대한 집단 기억이 있다. 폭력과 파괴의 주체였던 공산당이 여전히 최고 권력을 잡고 있는 상황에서, 그 불행했던 시절을 '4인방(장칭, 왕훙원, 장춘차오, 야오원위안)  타도'로 마무리 짓고 싶어한다. 그러나 10년 동란의 상처는 도처에 남아 있고, 여전히 치유 받지 못한 인민들은 당시의 아픔을 간직한 채 살아간다. 누군가는 아직 돌아오지 않은 남편을 여전히 매월 5일, 기차역으로 마중나가 기다린다.

남편을 마중나간 아내 완위 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식(識)'인데 완위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심각한 단절은 문혁에서 기인한다.

▲ 남편을 마중나간 아내 완위사람을 알아보는 것이 '식(識)'인데 완위는 남편을 알아보지 못한다. 심각한 단절은 문혁에서 기인한다.ⓒ 樂視영화제작사


장이머우(張藝謀) 감독의 2014년 영화 <5일의 마중(歸來)>은 옌거링(嚴歌苓)의 장편소설 <육범언식(陸犯焉識)> 후반부를 각색한 것이다. 주인공의 이름 루옌스(陸焉識)와 펑완위(馮婉瑜)는 "완곡한 깨달음을 얻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데, 영화는 기억을 잃은 여주인공 완위를 통해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혁의 상처를 그야말로 '완곡한 비유'를 통해 넌지시 드러낸다.

2008 베이징올림픽 개폐막식 총감독을 맡았던 장이머우는 2002년 영화 <영웅>에서 보듯, 천하를 위해 진시황 암살을 포기하는, 이미 국가주의에 포섭된 인상을 남겼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홍보영상 총감독 직책을 또 맡은, 중국 문화계의 황태자 장이머우가 과연 문혁을 비판적 시각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를 선전하는 주선율(主旋律) 영화라는 비아냥을 벗어나기 위해 장이머우 감독은 어떤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을까? 영화 <5일의 마중>은 국가권력을 향한 비판과 타협,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놓여 있다.

행복한 가정? 행복해야 할 가정이 문혁으로 딸은 아버지를 신고하고, 어머니는 그 딸을 용서할 수 없게 된다.

▲ 행복한 가정?행복해야 할 가정이 문혁으로 딸은 아버지를 신고하고, 어머니는 그 딸을 용서할 수 없게 된다.ⓒ 樂視영화제작사


# 정(正)

미국 워싱턴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대학교수 아버지 루옌스, 남편을 사랑하는 자상한 어머니 펑완위, 발레리나를 꿈꾸며 무용학교에 다니는 딸 단단, 중국 현대사의 격랑이 아니었다면, 이들은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평범하게 살았을 것이다.

# 반(反)

자본주의 우파 지식분자로 지목된 루옌스는 투옥되고, 고비사막 근처로 하방된다. 노동 개조를 받던 중 루옌스가 탈출해 아내와 딸을 만나기 위해 집으로 찾아온다. 반동분자 아버지 때문에 주연 역할을 놓친 딸 단단(丹丹)은 아버지를 당국에 신고한다. 남편에 대한 애틋한 사랑을 간직하고 있던 아내 펑완위는 남편이 붙잡혀 가는 과정에서 충격을 받고 쓰러진다. 극좌적 사회주의혁명인 문혁 시절, 국가, 당, 마오쩌둥을 위해 가족은 얼마든지 버려도 좋은 대상이었고, 그로 인한 상처는 오롯이 가족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었다.  

남편 루옌스와 아내 완위 아내 완위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 남편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없다.

▲ 남편 루옌스와 아내 완위아내 완위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인 남편에 대한 기억은 사라지고 없다.ⓒ 樂視영화제작사


# 합(合)

1976년 9월 9일, 마오쩌둥이 죽으며 문혁은 막을 내리고, 1978년 사인방은 타도된다. 1979년 루옌스는 무죄로 석방되어 20년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다. 그러나, 아내 완위는 남편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한다. 심인성(心因性) 기억상실증, 문혁을 겪은 모든 중국인들이 앓고 있는 병일 것이다. 중국 정부가 주입해 놓은 기억만 기억하고, 기획한 허구의 장면이 자신의 기억인 것처럼 무한 반복 재생되는, 정작 가장 아픈 기억은 너무 고통스러워 의도적으로 망각의 세계로 몰아 넣고 있는 집단 질병이다.

루옌스는 아내의 기억을 일깨우기 위해 과거 추억이 담긴 사진을 보여주고,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력하지만 모두 실패한다. 자신이 쓴 편지를 읽어주고, 아내와 딸의 불화를 해결할 수 있을 뿐이다. 아내 완위는 매달 5일, 기차역으로 남편을 마중나간다. 문혁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 문화적 파괴, 가족의 파탄, 개개인의 그 수많은 불행이 여전히 돌아오지 않고, 복구되지도 않았기에 완위는 아직도 마중을 나가야 하는 것이다. 문혁에 대한 역사적 재평가와 가해자의 진심어린 사죄가 그 기차역으로 남편처럼 돌아올 때까지 말이다. 영화 원제목은 '돌아오다'지만, 사실 문혁 때 떠났다가, 아직 돌아오지 못한 가치들이 너무도 많다.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가? 문혁으로 잃어버린 가치들이 회복되고,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 무엇을 기다려야 하는가?문혁으로 잃어버린 가치들이 회복되고, 되돌아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아닐까.ⓒ 樂視영화제작사


영화 <5일의 마중>은 국가가 저지른 폭력으로 처참히 파괴된 한 가족이 그 상처를 스스로 조금씩 치유해가는 과정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눈이 내리는 기차역에서 여전히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늙은 아내의 모습은 문혁의 아픔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점을 잘 보여준다. '루옌스' 라는 자신의 이름이 쓰인 푯말을 들고 서서, 문혁 때 떠난 또 다른 자신 '루옌스'를 기다리는 모습은 문혁이 저지른 중국현대사, 개인사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대변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 <5일의 마중>에 아쉬움이 남는 것은, 모든 파괴와 폭력의 주체였던 국가권력이 여전히 개인 뒤에 숨어 등장하지도, 반성하지도 않는다는 점이다. 상처를 치유하는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가정의 몫으로 떠넘기고, 가해자인 국가는 슬그머니 논의 대상에서 빠져 있다.

남편 루옌스 장이머우감독의 대변인처럼 묵묵히 가족의 아픔을 치유할 뿐, 가해자에 대한 분노는 드러내지 않는다.

▲ 남편 루옌스장이머우감독의 대변인처럼 묵묵히 가족의 아픔을 치유할 뿐, 가해자에 대한 분노는 드러내지 않는다.ⓒ 樂視영화제작사


루옌스가 아내를 겁탈하려 한 것으로 보이는, 사인방과 발음이 유사한, 팡아저씨를 찾아간 장면에서 감독은 "그와 그 가족들 또한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으니 용서하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것 같다. 문혁의 힘든 시절을 다 함께 겪었으니, 각자 알아서 상처를 치유하고, 더 이상 국가를 흔들지는 말자는 의미로 보여 다소 불편하게도 다가온다. 기득권에 편입된 장이머우 감독이 국가권력에 면죄부까지는 아니더라도, 뭔가 눈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우기 힘든 이유다. 국가권력을 향한 비판과 타협, 그 아슬아슬한 경계에 영화 <5일의 마중>이 있다.

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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