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영화의 핵심은 이야기입니다. 따라서 소설, 논픽션, 연극, 만화 등 다른 내러티브 예술 작품들로부터 캐릭터나 이야기의 뼈대를 빌려올 때가 많습니다. 별다른 변경 사항 없이 그대로 시나리오로 옮기면 될 정도의 원작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매체의 특성이 다르다는 점을 고려하여 원작의 매력이나 핵심적인 주제를 잘 살릴 수 있도록 각색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영화 <컨택트>는 미국 작가 테드 창의 SF 중편 <네 인생의 이야기>(Story of Your Life)(1998)를 원작으로 합니다. 이미 발표된 지 20년 가까이 된 소설인데, 이 단편이 수록된 작품집 <당신 인생의 이야기>(Stories of Your Life and Others)(2002)는 2004년에 국내에도 소개되어 SF 팬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아 왔습니다.

원작 각색의 '좋은 예'를 남기다

 영화 <컨택트>의 한 장면. 외계인과 의사 소통할 것을 의뢰받은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아담스)는 음성보다는 문자로 하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은 화이트보드에 영어 단어를 써 가면서 외계인들에게 그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영화 <컨택트>의 한 장면. 외계인과 의사 소통할 것을 의뢰받은 언어학자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아담스)는 음성보다는 문자로 하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작은 화이트보드에 영어 단어를 써 가면서 외계인들에게 그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UPI 코리아


언어학자인 루이스 뱅크스(에이미 아담스)는 미 육군으로부터 거대한 비행체를 타고 지구 각지에 출현한 헵타포드(일곱 개의 발을 지녔기 때문에 임의로 붙인 이름) 외계인들과 의사소통하는 일을 의뢰받습니다. 물리학자 이안 도넬리(제레미 레너)와 힘을 합쳐 차츰 그들의 언어와 사고방식을 이해해 가던 중, 그들이 지구에 온 목적이 '무기(weapon)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아내게 됩니다. 하지만 '무기'라는 말이 나오자마자 패닉에 빠진 세계 각국의 정부 관계자들은 외계인들을 선제공격하려 하고, 루이스는 파국을 막는 방법을 찾아내기 위해 분투합니다.

원작 소설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루이스가 헵타포드 외계인들의 언어를 배우게 되면서 얻게 된 통찰력에 관한 것입니다. 시간 순서대로 생각하는 지구인들의 인과론적 사고방식과, 일의 결과를 미리 알고 생각하는 헵타포드의 목적론적 사고방식을 대비시키면서 차근차근 설명해 나가는 것이 원작의 흐름이죠. 이것을 온전히 영화로 구현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런데도 이 영화는 원작의 핵심 아이디어를 영화에 적합한 방식으로 극화하는데, 비교적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원리를 설명하려 노력하기보다는, 후반부의 극적인 전개를 통해 루이스가 얻게 된 통찰력이 어떤 것인지 관객이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쪽입니다.

<그을린 사랑> <프리즈너스> <시카리오> 등으로 국내 영화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감독 드니 빌뇌브는, 이런 각색 전략에 가장 적합한 연출자입니다. 그의 전작들은 장편 미스터리 소설을 차분히 읽어 나가는 듯한 전개로 서서히 궁금증을 유발하고, 결말부에서 드러나는 진실을 통해 관객에게 충격적인 깨달음을 선사하곤 했으니까요. 그가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은 이 영화의 후반부에서 진가를 발휘합니다.

훌륭한 결말 vs. 초반부터 중반부까지의 아쉬움

 영화 <컨택트>의 한 장면.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와 그의 파트너 이안(제레미 레너)은 외계인들이 지구에 남기려고 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다각도로 헵타포드 문자를 연구한다.

영화 <컨택트>의 한 장면. 루이스(에이미 아담스)와 그의 파트너 이안(제레미 레너)은 외계인들이 지구에 남기려고 한 메시지가 무엇인지 파악하기 위해 다각도로 헵타포드 문자를 연구한다.ⓒ UPI 코리아


아쉬운 점은 상황 설정 단계에 해당하는, 초반부터 중반까지입니다. 외계인의 진짜 의도를 알아내는 것을 이야기의 중심 과제로 설정하고 초반부터 뉴스릴 화면 등을 활용하여 분위기를 잡지만, 관객들이 그런 목표에 관심을 두고 몰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헵타포드의 비행체들이 지닌 위압감이나 그들의 앞선 과학 기술이 보여 주는 신비로움을 좀 더 강조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다소 뻔한 할리우드 방식이긴 하지만, 루이스와 이안이 말도 안 통하는 촉수 일곱 개짜리 외계 생물체와 의사소통하게 되면서 느끼는 개인적인 성취감이나 기쁨의 순간들, 혹은 서로에게 점점 끌리는 마음 같은 것들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여 주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관객들이 캐릭터의 변화 과정을 따라갈 수 있게끔 하여, 극에 대한 흥미를 유지할 수 있게 했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 영화로 올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오른 에이미 아담스는 한정된 기회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루이스라는 인물의 복잡한 내면 풍경을 연기합니다. 그러나 상대역으로 나오는 제레미 레너는 원작보다 비중이 많이 줄어들어서 특별한 인상을 남기지 못합니다. 그 정도 이름값의 배우를 캐스팅했을 때는 그에 부합하는 비중과 역할이 있었다는 얘기인데, 촬영 단계나 후반 작업 단계에서 역할이 축소된 것 같습니다.

적지 않은 예산이 투입된 대중적인 상업 영화이다 보니, 이 영화 <컨택트>는 평균적인 수준의 관객들이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쪽으로 만들어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원작 소설은 언어학, 물리학 이론을 바탕으로 논의를 확장하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SF 독자들을 위한 것이다 보니, 각색 과정에서 뛰어넘어야 할 간극이 다소 큰 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원작의 핵심 주제를 표현할 수 있는 장면들을 새로 만드는 쪽으로 각색 방향을 잡은 제작진의 선택이 돋보이는 것입니다. 영화라는 매체는 논리적이고 차분한 설명보다 직관적인 깨달음이 더욱 효과적이기 때문이죠. 이 영화가 아카데미 각색상 후보에 지명된 것은 그런 부분에 대한 평가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영화 <컨택트>의 포스터. 유명 SF 중편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원작 소설의 핵심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있도록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에 맞게 잘 각색한 편이다.

영화 <컨택트>의 포스터. 유명 SF 중편 소설 <네 인생의 이야기>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원작 소설의 핵심 아이디어를 전달할 수 있도록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에 맞게 잘 각색한 편이다.ⓒ UPI 코리아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권오윤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객관적이지 않습니다. 사심을 담습니다. 다만 진심입니다. 제 글을 읽는 누군가에게 제 진심이 닿으리라 믿습니다. 공채 7기 입사, 사회부 수습을 거쳐 편집부에서 정기자 생활을 했고 지금은 오마이스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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