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 (주)리틀빅픽쳐스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룬 영화가 있다면, 만약 그 영화의 결말이 '주인공의 죽음'이라면, 그걸 알리는 게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을까.

지난 1일 개봉한 다큐멘터리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아래 <뚜르>)는 암 환자 이윤혁씨의 이야기를 다뤘다. 이윤혁씨는 스물여섯 살이던 당시 군에 입대한 후 희귀암 말기 판정을 받는다.

2번의 수술로 5곳의 장기를 잘라낸 이씨. 20번이 넘는 항암 치료가 이어지지만 완치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결국 이윤혁씨는 치료를 중단하고 프랑스로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영화 <뚜르>는 그가 자전거 대회 '뚜르 드 프랑스'에 참가하기 위해 먼 여정을 떠나는 순간부터 그의 죽음까지 과정을 차례로 비춘다.

무려 49일, 3500km 거리의 '미친' 주행 코스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포스터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포스터 ⓒ (주)리틀빅픽쳐스

"항상 꿈을 꿨어요. 뚜르 드 프랑스로 가야겠다는 꿈."

어릴 적부터 태권도를 배웠고, 유도와 각종 운동을 섭렵하며 건장한 체구를 갖춘 청년 이윤혁씨. 청천벽력 같은 말기 암 진단에 그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다. 영화 <뚜르>에서 이씨는 병원 침대에 누워 천장을 바라보면서 허공에 꿈을 그렸다고 말한다.

의료진과 주변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이윤혁씨는 프랑스로 떠난다. 그가 병원 천장을 보며 상상했다던 '프랑스 대회에서 자전거를 탄 내 모습'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프로 선수마저 달리던 도중 사망한 사례가 나올 만큼 악명높은 '뚜르 드 프랑스'. 대회 내내 자전거로 달리는 코스는 총 3500km, 서울에서 부산을 자그마치 8번 왕복하는 거리와 맞먹는다. 이 '미친' 주행 코스를 이씨는 49일에 걸쳐 완주하기로 계획을 세운다.

항암 치료를 중단한 이윤혁씨는 프랑스 원정을 위해 팀을 꾸린다. 자전거 전문가, 후원자와 팀닥터를 구하고, 본인과 함께 달릴 '페이스메이커'를 찾아 나선 것. 수소문 끝에 마침내 9명의 드림팀이 '뚜르 드 프랑스'와 같은 코스로 달리는 이윤혁씨의 꿈에 동참하며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그의 '무모한'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그림 같은 풍경'을 달리지만... "지옥이 있다면 여기일까"

49일간 매일 꼬박 세 시간 이상을 자전거로 달려야 하는 일정, 팀원이 자비를 들여야 할 정도로 빠듯한 예산,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고들까지. <뚜르> 속 원정팀은 험난한 대회 코스보다 더 가혹한 상황에 시달린다.

주행 첫날 '메카닉'(자전거 관리 담당)은 팔이 부러지고, 서로 다른 의견에 팀원이 분열하고, 급기야 팀닥터는 열악한 숙소 상황에 불만을 토해낸다. 또한 무더위 속에서 높은 산을 오르내리는 자전거 라이딩에 이윤혁씨가 "지옥이 있다면 여기일까"하고 말할 정도다. 알프스 산맥과 프랑스 시골 등 그림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달리지만, 그야말로 동화와는 거리가 먼 나날인 셈이다.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 (주)리틀빅픽쳐스


설상가상으로 암 치료를 중단한 이윤혁씨의 체력도 문제로 떠오른다. 주행을 끝낸 후 수액과 약을 맞으면서 버텨야 하는 시간 속에서, 프랑스 개선문이 '골인 지점'인 '뚜르 드 프랑스' 코스를 이씨가 완주할 수 있을지 상영시간 동안 의문을 멈출 수 없다. 삶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순간에 그는 왜 혹독한 싸움을 택한 걸까.

'希望(희망)'
'for cancer patients(암 환자들을 위하여)'

이윤혁씨는 어느 날 우연히 랜스 암스트롱의 책을 접한 것이 프랑스로 떠난 계기라고 밝힌다. 랜스 암스트롱은 고환암을 이겨내고 7년 연속 '뚜르 드 프랑스' 우승 기록을 세운 미국 선수. 투병 중인 다른 '암 환자들을 위하여' 작은 '희망'을 주고자 이씨는 자전거에 직접 문구를 새기기도 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이윤혁씨의 모습은, 그가 택한 문구 이상의 묵직한 상징처럼 보인다.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게 하는가' 진솔한 장면으로 담았다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 (주)리틀빅픽쳐스


"아직 나는 자전거를 탈 수 있잖아요, 아직은."

'할 수 있는 것을 하겠다'는 일념으로 달린 이윤혁씨의 대장정. <뚜르>가 보여준 그의 49일은 무얼 남겼을까. "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또 꿈을 꾸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청년. 절망적인 순간에 무엇이 인간을 움직이는지 <뚜르>는 진솔하게 담았다.

'뚜르 드 프랑스'에 도전한 이씨의 상황만큼 <뚜르>의 촬영 환경은 열악해 보였다. 심하게 흔들리는 카메라와 특히 야간 라이딩 중 이윤혁씨가 울음을 터뜨리는 순간의 흐릿한 장면 등을 보면 더욱 그랬다. 하지만 투박하면서도 솔직한 이씨의 독백과 영상이 스크린을 채우는 것으로 <뚜르>가 주는 울림은 충분히 컸다.

비록 거칠게 촬영한 흔적이 역력하지만, 쉽게 택할 수 있는 틀로 이윤혁씨의 이야기를 다루지 않았다는 점에서 <뚜르>는 박수받을 만한 영화다. 암 투병 환자를 소재로 다루면서도 <뚜르>는 '삶의 최후를 마냥 기다리는 모습' 같은 전형적인 시각에 갇히지 않는다. 반대로 '역경을 이겨낸 영웅적 서사'로 등장인물을 인위적으로 포장하지도 않는다.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영화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중 한 장면. ⓒ (주)리틀빅픽쳐스


영화는 다만 '라이더'와 '바람막이'(선수보다 앞서 달리면서 바람을 막아주는 자전거 주자)의 관계, 혹은 이윤혁씨가 선택한 마지막 여정을 비추며 관객에게 삶과 죽음의 본질에 관해 묻는 듯하다. 자전거 대회에 도전한 이씨의 모습과 이후 그의 죽음까지 담담하게 화면에 비추는 방식으로 말이다.

결국 글의 첫 부분에서 언급한 질문으로 되돌아가게 된다. 한 사람의 일생을 다룬 영화가 있다면, 만약 그 영화의 결말이 '주인공의 죽음'이라면, 그걸 알리는 게 반드시 '스포일러'일까. 시한부 판정을 받은 후 자신의 삶을 바꾸기로 결심한 이윤혁씨의 심정이 어땠을지를 돌아본다면, 아마 답은 '아니오'일 것 같다.

덧붙이는 글 <뚜르: 내 생애 최고의 49일>, 다큐멘터리, 한국, 97분, 2017년 2월1일 개봉
뚜르 자전거대회 뚜르드프랑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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