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블 스튜디오의 <블랙팬서> 공식 로고.

마블 스튜디오의 <블랙팬서> 공식 로고. ⓒ 마블 스튜디오


"<블랙팬서>를 통해 부산이라는 멋진 도시를 전 세계 관객들에게 알 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며, 뉴질랜드의 <반지의 제왕>처럼 해외 관광객 유치와 관련 영상산업 분야 일자리 고용창출 등으로 지역 경제발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서병수 부산시장이 1일 보도자료를 통해 내놓은 장밋빛 전망이다. 1일 오후 부산시는 마블의 신작 <블랙팬서>의 부산 촬영을 확정 발표됐다. 마블 영화의 한국 로케이션 촬영은 지난 2014년 <어벤져스:에이지 오브 울트론>(아래 <어벤져스2>)이래 두 번째다.

서병수 시장은 해외 관광객 유치와 고용창출, 지역 경제발전을 공언했다. <어벤져스2>의 한국 촬영이 서 시장의 기대와 같은 효과를 낳았는지는 지금까지 영화계의 미스터리(?)로 남아 있다. 한편 부산시는 "이번 달 말경에 마블사측 제작팀을 시에 초청, 서병수 부산시장 주재로 <블랙팬서> 최종기획안 발표회를 개최한다"고 밝히면서 마블이 부산시 촬영을 결정하기 까지의 과정을 이렇게 소개했다.

"부산시는 작년 7월부터 최근까지 할리우드 로케이션 매니저들을 시로 직접 초청하여 부산의 아름다운 야경과 곳곳의 숨은 로케이션지를 홍보하고, (사)부산영상위원회와 함께 부산 촬영장소 곳곳을  할리우드 제작팀과 직접 발로 뛴 노력의 결과라고 전했다.

특히, 서병수 부산시장은 지난해 11월 10일, 마블사측의 Darrin Prescott 기술감독 일행 등을 부산시로 초청하여 부산촬영 유치에 대한 강한 의지를 전달하고, 부산지방항공청, 부산시설공단, 부산지방경찰청, 부산광역시 소방안전본부 등 관련기관 대표자들과 함께 부산촬영에 따른 협조와 지원을 약속하였다."

부산시와 서병수 시장의 장밋빛 전망, 그리고 해프닝

크리스 에반스, 세상에서 가장 편한 촬영자세(?)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DMC 월드컵북로에서 촬영된 <어벤져스2> 촬영 도중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한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 에반스가 승용타 보닛에 걸터 앉아 도로를 왔다갔다하며 촬영을 하고 있다.

4일 오전 서울 상암동 DMC 월드컵북로에서 촬영된 <어벤져스2> 촬영 도중 '캡틴 아메리카' 복장을 한 할리우드 스타 크리스 에반스가 승용타 보닛에 걸터 앉아 도로를 왔다갔다하며 촬영을 하고 있다. ⓒ 권우성


'<블랙팬서> 최종기획안 발표회'라는 용어가 꽤 생소하다. 이 발표회를 서 시장이 '직접' 주재한다니, 시장님께서 꽤나 신이 나신 것 같다. 더욱이 마블 측 기술감독을 직접 '챙기'셨다는 대목도 흥미롭다.

1일 <연합뉴스> 따르면, 부산시와 마블사는 3월말에서 4월초 중으로 약 2주간 광안리해수욕장을 비롯해 자갈치시장 일대, 마린시티, 광안대교, 사직동 일대 등 부산의 명소를 찾아 촬영하는 세부 촬영 계획을 비공개로 협의했다고 한다. 

헌데, <블랙팬서>의 부산시 촬영이 공식화된 과정은 해프닝에 가까웠다. 최근 마블사의 한국측 대행사가 광안리해수욕장 일대 수영구 촬영과 관련한 안내문을 수영구 주민들에게 보냈고, 이 수영구 주민 중 한 SNS 사용자가 우편으로 받았다는 '미국영화 마더랜드(가칭) 촬영 안내문'을 SNS에 올리면서 삽시간에 소식이 퍼져나갔다. <마더랜드>는 <블랙팬서>의 작업용 임시 제목이다.

마블 슈퍼히어로 영화에 대한 국내 팬들의 관심을 입증하듯, 온라인 상에서 <마더랜드>는 자연스레 촬영시기가 겹치는 <블랙팬서>로 추정됐고, 이후 매체들이 앞 다퉈 이 소식을 보도했다. 문제는 1일까지 마블과 부산시가 촬영 협약을 최종적으로 확정짓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지난 2014년 <어벤져스2> 촬영 당시 인천시청이 송도 촬영 사실을 미리 알렸다가 촬영 자체가 무산된 사례를 꼬집는 보도가 잇따르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듯, 부산시는 1일 늦은 오후 <블랙팬서> 촬영을 공식화하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부산시는 "서울 도심 한 복판에서 촬영한 <어벤져스>와 달리, <블랙팬서>는 부산의 랜드마크인 자갈치시장 일대, 광안대교, 마린시티, 광안리 해변, 사직동 일대 등지에서 촬영하여 전 세계인들이 한국의 아름다움, 부산의 매력에 흠뻑 젖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지원하겠다"며 자신감을 드러냈다.

또 이달 말, '<블랙팬서> 최종기획안 발표회'를 통해 "부산촬영관련 자세한 일정과 장면, 촬영 참여 인원, 경제적 파급효과 등 상세한 내용을 신문과 방송을 통해 알려, 시민들에게 적극적인 협조를 구할 예정"이라 밝혔다.

어찌됐든, 부산시는 <블랙팬서>의 한국 촬영을 공식화했다. 한국 대행사와 부산시가 벌인 해프닝은 해프닝으로 끝날 전망이다. 그러나, 무조건적인 '장미빛 전망'은 경계해야 마땅하다. 매체들의 반응도 <어벤져스2> 때와는 사뭇 다르다.

"마블 '어벤져스2'에 속은 韓..'블랙팬서'는 다를까"(<스타뉴스>), "<블랙 팬서> 한국 로케이션, 기대 반 우려 반"과 같은 관망적이거나 비판적인 시선이 눈에 띈다. 그럴 만하다. 이미 우리는 <어벤져스2>때의 호들갑을 경험한 바 있지 않나.

<어벤져스2>의 호들갑, 반복은 안 됩니다

어벤져스2 촬영, '한눈에 들어오네'  영화 <어벤져스2>촬영이 30일 오후 서울 마포대교에서 진행되고 있다. 북단에 촬영팀의 차량들이 길게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영화 <어벤져스2>촬영이 30일 오후 서울 마포대교에서 진행되고 있다. 북단에 촬영팀의 차량들이 길게 줄지어 주차되어 있다. ⓒ 이정민


국가브랜드가치 2조원, 그리고 관광홍보 효과 4000억.

기억이 생생하다. <어벤져스2> 촬영 당시가. 정부와 한국관광공사는 <어벤져스2>의 한국 촬영이 알려지면서 경제적 효과를 홍보한 바 있다. 마포대교 전면 통제 등 실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실효성을 계량화할 수 없다는 전문가들의 분석과 평가가 지배적이었지만, 정부는 한국 촬영 비용의 30%를 보전하는 로케이션 인센티브 사업에 대한 양해각서까지 체결했다.

결국 시민들은 불편을 감수했고, 촬영은 무사히 끝났다. 현지 대행사와 스태프들이 동원된 것도 맞다. 그러나 <어벤져스2>의 한국 분량은 '새빛둥둥섬'이 몇 초 등장한 것을 포함해 말 그대로 '미비'한 수준이었고, 관광홍보는커녕 영화 속에서 '서울'임을 알아볼 수 있는 장면도 확실치 않았다.

결론적으로, 정부와 관광공사의 호들갑과는 달리 제작사 마블측이 쓴 제작비 중 26억 원은 고스란히 보전됐다. 2억5000만 달러(약 2680억원)라는 천문학적인 <어벤져스2>의 제작비 중 1/100을 반대로 한국 정부가 보전해준 셈이다.

이후 관광공사가 <어벤져스2>로 인한 국가 홍보 효과를 공식적으로 발표한 적은 없다. 이번 부산시의 <블랙팬서> 로케이션 유치를 둘러싼 곱지 않은 시선엔 이러한 '학습효과'가 영향을 미친 것이다.

그리고, '직무유기', '직권남용' 고발 당한 서병수 시장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는 문화연대를 포함한 지역 문화관련 단체들이 25일 오후 부산지방검찰청 앞에서 부산국제영화제 탄압 의혹을 받는 서병수 부산시장을 고발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는 문화연대를 포함한 지역 문화관련 단체들이 25일 오후 부산지방검찰청 앞에서 부산국제영화제 탄압 의혹을 받는 서병수 부산시장을 고발한다는 내용의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정민규


더군다나 부산시는 서병수 부산시장이 기술 감독 등 일부 제작진을 초대하는 등 '주도적'인 모습을 보였다고 발표했다. "주재"란 표현도 등장했다. 그런데, 서병수 시장이 이러한 과정을 자랑스럽게 발표하고 그럴 상황인가.

부산 지역 문화단체들이  서병수 부산시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BIFF 표적 감사 논란 등이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작성과 맞물려 정권 차원에서 진행됐다는 증언이 속속 나오고 있어 향후 수사 결과에 관심이 쏠리게 됐다. 

부산 지역 문화 관련 시민단체가 꾸린 '부산국제영화제를 지키는 시민문화연대'와 부산영화인연대, 부산국제영화제, 경성대 연극영화학과 총동문회는 지난달 25일 서병수 시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부산국제영화제(BIFF) 파행 사태의 책임을 물어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한 것이다.

또 최근 박영수 특검팀의 조사에 의하면, <다이빙벨>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과 관련해 청와대 정무수석실이 새누리당에 압박을 가할 것을 건의했고, 일부 새누리당 의원들이 이를 받아들여 실행에 옮긴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지난 2014년 9월, 부산국제영화제 개막 전 새누리당 의원들이 국회에서 <다이빙벨>과 관련한 발언을 하고 보수매체들이 이를 받아 쓴 '<다이빙벨> 논란' 역시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 패턴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부산시는 작년 11월 서병수 시장이 <블랙팬서> 제작진을 직접 초대했다고 밝혔다. 작년 11월이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국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던 시점이었다. '친박' 중진이자 부산국제영화제 논란의 당사자인 서 시장은 당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블랙리스트 논란이 박 대통령의 중차대한 탄핵 사유가 되리라곤 상상도 못하지 않았을까. 그때나 지금이나 최소한 자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부산시장으로서의 도리 아닐까.

<블랙팬서>의 이번 부산 촬영은 <어벤져스2>때와 달리 극성스런 호들갑도 시민들의 불편도 최소화됐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러나 서병수 시장은 경우가 다르다. 블랙리스트 정국이라 불리는 지금, 왜 부산 시민들과 부산 예술문화인들이 직권남용과 직무유기 혐의를 자신을 고발했는지 진중하게 받아들일 때다. 그래야 <블랙팬서>의 부산 촬영에, 부산 시민들도, 영화인들도 긍정적인 여론을 보탤 수 있을 것이다. 

블랙팬서 서병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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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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