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한달여 만에 대선 포기한 반기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안타깝지만, 한편으론 다행이라는 여겨지기도 한다. 유일무이한 한국인 출신 유엔 사무총장의 명예는 스스로가 지켜내야 하지 않겠는가.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1일 오후 전격 '불출마 선언'을 발표했다.

어젯밤 급작스레 불출마를 결심했고, 캠프 쪽에서도 방송을 보고서야 사실을 알았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말 그대로, 깜짝 발표다. 그런데, 다행이면서도 유감스러울 수밖에 없는 발표였다. 기자회견 내용 구석구석이 다 그랬다.

"저는 1월 12일 귀국 이후 여러 지방 도시를 방문하여 다양한 계층의 국민을 만나 민심을 들을 기회를 가졌습니다. 또 종교, 사회, 학계 등 정치 여러 지도자 두루 만나 그분들 얘기도 들었습니다. 그동안 제가 만난 모든 분들은 정치, 안보, 사회, 경제 모든 면에 위기라고 했습니다.

잘못된 정치로 쌓여온 적폐가 더 이상 외면하거나 방치할 수 없다는 절박한 심경을 토로했습니다. 최순실사태와 탄핵소추로 인한 국가리더십 위기가 겹친 상황입니다. 난국 앞에서 정치지도자는 국민들은 목전 이익에 급급한 모습에 많은 분들이 개탄과 좌절감을 표명했습니다. 제가 10년간 나라 밖에서 들었던 우려가 피부에 와 닿은 순간입니다."

시종일관 남 탓, 또 남 탓이었다. 시작부터 "정치 지도자들" 탓을 했다. 그보다 먼저 반 전 총장이 들었다는 그 '민심'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는 것이 순서였다. 하지만 반 총장은 이것조차 '모르쇠'로 일관한 것과 마찬가지였다. 과연 그간의 행보에서 반 전 총장은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에 헌신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가.

일례로, 지난달 17일 진도 팽목항에서 만난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 반 전 총장이 안아주고 손을 잡았던 은화 엄마와 다윤 엄마의 눈물어린 호소를 진심으로 경청했다고 자부할 수 있겠는가.

이럴 때 필요한 말이 자업자득이다. 지난 12일 귀국 이후 그의 행보는 '1일 1논란'을 자처할 만한 것들이었다. 몇몇 와전되고 오해라고 주장할 만한 상황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그랬다. 더욱이 그의 행보 하나 하나가 민심은커녕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 사진 찍기에 바빴던 '의전용'이었다는 사실을 이제 알만한 국민들은 다 알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반 전 총장은 끝까지 '딴소리'를 했다. 헌데, 여기서 끝이었으면 그나마 다행이었을 것이다.

"인격살해"에 "가짜뉴스"까지, 끝까지 남 탓한 73세 정치신인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에 둘러 싸여 자리를 떠나고 있다.
▲ 기자회견 마친 반기문 '대선 불출마'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이 1일 오전 서울 국회 정론관에서 대선 불출마 기자회견을 마치고 기자들에 둘러 싸여 자리를 떠나고 있다.
ⓒ 이희훈

관련사진보기


"전 세계를 돌면서 성공하고 실패하는 나라의 지도자를 보면서 미력이나마 몸을 던지겠다는 일념으로 정치 투신을 심각히 고려해왔습니다. 그리하여 갈갈이 찢어진 국론을 모아 국민대통합 이루고 분권 혁신정치를 이루려는 포부를 말해왔습니다. 제 몸과 마음을 바친 3주간의 짧은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순수한 애국심은 인격살해, 가짜 뉴스로 인해 정치 교체 명분은 실종됐습니다. 오히려 저 개인과 가족, 그리고 제가 10년을 봉직했던 유엔 명예에 큰 상처를 남김으로써 결국 국민들에게 큰 누를 끼쳤습니다.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한 이기주의적 태도 실망했습니다. 이들과 함께 길을 가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했습니다."

자, 유엔의 명예에 큰 상처를 남긴 것이 진정 "가짜뉴스" 때문인가. 유력 후보에 대한 검증 차원의 보도가 "인격살해"에 해당할 만큼 혹독했다고 느꼈다면, 불출마 선언은 반 총장 스스로에게나 국가적으로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 총장은 왜 유엔 주재 취재기자였던 매튜 리가 기어코 한국 언론과 기나긴 인터뷰까지 하면 반 총장의 과오를 비판했는지 자성은 했던 걸까.

반 전 총장의 동생과 조카가 미국 연방검찰로부터 뇌물 혐의로 기소된 것도 "인격살해"에 해당하는 "가짜뉴스"인가. 그렇다면, '불출마 선언' 자리에서까지도 왜 가족들의 비리 의혹과 혐의에 대해 본인 스스로 낱낱이, 떳떳하게 밝히지 못하는가. 스스로도 이번 대선이 중차대하다고 강조해 왔다는 걸 떠올려 보시라. 그 대선 후보 검증이 "몰랐다"는 한 마디로 끝날 거라 생각했다면, 지금 레이스를 멈춘 것을 두고두고 감사할 일이다. 

또 스스로를 '정치신인'이라고 칭했던 반 전 총장은 이날 "제 몸과 마음을 바친 3주간의 짧은 시간"이란 표현을 쓰기도 했다. "직업인"으로서의 정치인, 그것도 유능한 정치인이 필요한 이때 73세의 '정치신인'이니 반 전 총장은 "일부 정치인들의 구태의연한 이기주의적 태도에 실망"했다며 책임을 돌렸다.

그렇다면, 귀국 1주일 후부터 끝 모르고 떨어지는 지지율 또한 진정 다른 정치인들 탓으로 돌릴 것인가. 그렇다면 안희정 지사와 정면으로 맞붙은 충청권 지지율은 어떡할 텐가. 그마저도 "인격살해" 운운하며 "가짜뉴스" 탓으로 돌릴 것인가.

이쯤 되면, 유엔 사무총장 시절 만만치 않게 받았던 외신의 질타는 어떻게 견뎠으며, 또 호불호가 갈릴 수밖에 없는 유엔에 향한 비판들은 어떻게 감내했는지 되묻고 싶다. 한국 언론과 한국 국민들의 질타는 모국어라 귀에 더 쏙쏙 들어왔던 건가.

"질책 달게 받겠다"던 약속 꼭 지켜주시길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 은화엄마, 다윤엄마의 손을 잡고 방파제로 향하고 있다. 이 자리엔 박순자 새누리당 의원(맨오른쪽)도 동석했다.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지난달 17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을 방문해 세월호 참사 미수습자 가족 은화엄마, 다윤엄마의 손을 잡고 방파제로 향하고 있다. 이 자리엔 박순자 새누리당 의원(맨오른쪽)도 동석했다.
ⓒ 남소연

관련사진보기


"존경하는 국민여러분, 이런 상황에 비추어 저는 제가 주도하여 정치교체를 이루고 국가통합을 이루려했던 순수한 뜻을 접겠다고 결정했습니다. 혹독한 질책을 하고 싶을 것입니다. 다른 한편, 제가 이러한 결정을 양해해 주십시요. 오늘의 결정으로 그동안 저를 열렬히 지지해주신 많은 국민여러분과 조언해주신 분들, 가까이 해준 많은 분들에게 실망을 드린 것에 대해 죄송합니다. 질책 달게 받겠습니다.

정치권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이러한 독존 태도를 버려야합니다. 우리 후세에 물려주기 위해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들을 묵묵히 해나가야 합니다. 저도 10년간 걸친 사무총장으로서의 경험과 국제적 자산을 바탕으로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고 대한민국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헌신하겠습니다. 국민 가정 여러분 행복이 함께하길 바랍니다."

사실 반 전 총장의 출마 자격 여부도 법조계와 정치권에서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유권 해석도 논란 와중에 있다. 벌써부터 선거무효소송 운운하는 여론도 적지 않았다. 대선 레이스를 완주했다고 해도 순탄치 않은 길이었을 것이란 예측을 내놓은 정치인들도 한 둘이 아니었다.

이러한 의견들을 경청했다면, 반 전 총장은 더 겸손하고 겸허했어야 옳다. "정치권은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이러한 독존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라는 말은 그래서 더욱 공허하게 다가온다. 과연 '정당정치'의 기본을 지키기는커녕 자금이 부족을 이유로 정당이 필요하다던 3주짜리 '정치신인'이 노골적으로 '대권'을 노린 것이 국민들에게 어떻게 비쳐졌을 지를 먼저 자성하시길.

더욱이 지금처럼 남 탓과 비난 일색의 불출마 선언은 향후 전직 유엔 사무총장으로서의 행보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리 없다. 성급하게 끝난 대선주자로서의 행보는 결국 자신의 커리어에 큰 타격을 준 셈이 됐다. "존경받는 전직 유엔사무 총장"에서 "10년 간 외국에서만 살았던" 73세 전직 외교관으로 추락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질책을 달게 받겠다"는 약속은 꼭 지키시기를. 

끝으로, "10년간 걸친 사무총장으로서의 경험과 국제적 자산을 바탕으로 나라의 위기를 해결하고 대한민국 밝은 미래를 위해 어떤 방법으로든 헌신하겠습니다"라는 발언은 재차 심사숙고하시길 바라마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는 반 전 총장 세대의 것이라기보다 정치경제는 물론 가치관과 철학 모두 지금의 청소년, 청년 세대를 향한 것이어야 한다.

지난 3주간 행보에서 보여준 '의전 집착'과 같은 권위주의와 엇나간 현실의식, 구세대적인 마인드로는 그 헌신 역시 '구태'라는 평가에 가까울 공산이 커 보인다. 왜 청년층에서 특히 부정적 여론이 거셌는지, "자원봉사라도 하라"던 그 마인드를 왜 이 시대 청년층이 거부했는지 돌아보셔야 할 일이다.

그러니, 부디 당분간 '중앙정치'나 '현직'에 대한 미련은 버리시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반 총장이 말한 "순수한 뜻"을 국민들에게 납득시키기 위해서라도 '전직 유엔 사무총장'의 본분을 다하는 길이 무엇인지를 고민해주시길 바라는 바다. 국민들은 더 이상 '대한민국 출신 유엔 사무총장'의 명예에 흠집이 나는 것을 원치 않는다.


태그:#반기문, #반기문 유엔전사무총장, #반기문 불출마
댓글4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7,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