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닭의 해, 정유년(丁酉年) 새해가 밝았다. 우연처럼 다가온 필연이랄까, 천간지지(天干地支)의 조합이 그야말로 상징적이다. 한바탕 시끌벅적했던 설 연휴도 어느덧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명절을 지내다 문득 이런 '삼촌'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참 듬직할 것 같다. 그의 '선(善)'하고 밝은 기운이 온 집안을 따뜻하게 만들어 줄 것만 같다. 누구냐고? 바로 배우 '차인표'다. 67년 생인 그는 어느덧 (놀라지 마시라!) 50대가 되었지만, 여전히 그는 '삼촌' 같은 이미지로 대중 곁에 남아 있다.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일약 스타덤 올라

 차인표의 '바른 행보'에 주목한다.

차인표의 '바른 행보'에 주목한다.ⓒ 이정민


차인표에 대해 이야기를 하려면, 그가 남겼던 2016년 최고의 '명언'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달 31일 <2016 KBS 연기대상>에서 라미란과 함께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한 차인표는 수상 소감을 이렇게 말했다. "50년을 살면서 느낀 것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둘째, 거짓은 결코 참을 이길 수 없다. 셋째, 남편은 결코 부인을 이길 수 없다."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삶의 지혜와 철학이 담긴 한마디였다. 실제로 조금씩이나마 '어둠'이 걷히고, '거짓'이 만천하에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1993년 MBC <한 지붕 세 가족>에 단역으로 출연하며 데뷔했던 차인표(MBC 공채 탤런트 22기)는 1994년 MBC <사랑을 그대 품안에>를 통해 일약 스타로 발돋움했다. '터프가이'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가죽 재킷과 오토바이, 그리고 색소폰을 부는 섹시한 모습은 차인표의 전매특허처럼 여겨졌다. 게다가 근육질 상반신을 과감히 노출(지금에야 당연하다시피 여겨지는 퍼포먼스지만, 당시엔 파격적이었다.)하면서 대중들의 뇌리에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차인표는 단 하나의 작품으로 대한민국 최고의 스타로 자리매김하는 동시에 함께 출연했던 신애라와 열애를 시작해 이듬해인 1995년 결혼에 '성공'한다. 거칠 것이 없는 탄탄대로였다. 물론 '결혼=성공'이라고 볼 수는 없지만, 어딜 가나 "배우자가 인생에 미치는 영향이 굉장히 큰데, 그런 면에서 나는 장가를 진짜 잘 갔다"고 말하는 '애처가' 차인표의 생각을 전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그가 '이등병' 때 결혼을 했다는 점이다.

미국 영주권 포기하고 입대, 이후의 전성기

 <2016 KBS 연기대상>에 참석한 차인표

<2016 KBS 연기대상>에 참석한 차인표ⓒ KBS


재미교포였던 차인표는 굳이 군대를 가지 않았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놀랍게도 그는 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한다. 훗날 차인표는 SBS <힐링캠프>에 출연해 "군대에 안가면 편법을 쓰거나 미국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렇게 하긴 싫었다"고 밝혔다. 바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은 하늘이 돕는 것일까. 제대 후 복귀작이었던 MBC <별은 내 가슴에>는 최고 시청률 49.4%를 기록하며 한마디로 '대박'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차인표 전성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한 차인표는 안주보다는 변화를 선택했다. MBC <왕초>(1999)에서 거지들의 왕 '김춘삼' 역을 맡아 파격적인 연기 변신에 나선 것이다. 자신을 따라다녔던 '재벌', '카리스마' 라는 제한된 카테고리를 벗어던지길 원했지만, 트레이드 마크라 할 수 있는 '반듯한 이미지'가 하루아침에 사라지겠는가. 이후 MBC <영웅시대>(2005), MBC <하얀거탑>(2007), SBS <대물>(2010) 등에서 자수성가한 기업가, 의사, 국회의원 등 선이 굵은 캐릭터들을 연기했다.

그랬던 그가 갑자기 "나도 웃기고 싶은 욕구가 있다"며 시트콤 출연을 결심했고, "19년 동안 안 망가지고 버틴 차인표가 망가지길 원하시는구나 싶었다. 대중이 원한다면 잘 망가지도록 하겠다"는 포부를 밝힌 후 KBS2 <선녀가 필요해>(2012)에서 잔뜩 망가지기 시작했다. 당시의 코미디 연기는 차인표에겐 큰 자산이 됐던 것 같다. 최근 출연 중인 KBS2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2016)에서는 라미란과 호흡을 맞추며 좀더 편안한 연기를 선보이며 보다 친숙한 이미지로 대중들에게 다가가게 됐다. (비록 드라마는 산으로 가고 있지만..)

올곧은 그의 삶, 계속되는 '나눔 실천'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차인표의 모습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차인표의 모습ⓒ SBS


"배우는 내 직업일 뿐이다. 우리 자식세대가 우리 때보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내 소명이다." (차인표)

이처럼 차인표가 20년이 훌쩍 넘는 기간동안 대중들의 사랑을 받고, 배우로서의 신뢰감을 줄 수 있었던 바탕은 언행일치를 이룬 올곧았던 그의 삶 자체에 있다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은 인생,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누는 삶을 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차인표는 신애라와 함께 2005년부터 컴패션(기독교 기반의 국제 구호 기구, 전 세계 가난한 어린이를 후원자와 1:1 결연해 양육한다)을 통해 나눔을 실천했다. 또, 방글라데시, 에디오피아, 필리핀 등에서 봉사 활동을 하며 어린이 후원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처음 우리 두 아이를 입양했다는 이야기를 남편 차인표씨가 주변에 밝혔을 때 여기저기서 칭찬을 받았다고 했다. 남편은 '입양은 칭찬이 아니라 함께 축하받아야할 일'이라고 말했다" (신애라)

차인표 신애라 부부는 두 딸을 공개 입양했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입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바꾸는 데도 공헌했다. 또, '공개입양'을 고려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입양을 해서 아이를 키울 수 있게 되는 건 의무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조언을 건네며 용기를 북돋기도 했다. 2008년에는 탈북자 아버지와 아들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다룬 영화 <크로싱>에 출연했고, 2009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룬 소설 <잘가요 언덕>으로 소설가로 데뷔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재능을 사회의 선(善)을 위해 사용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취약계층 가정에 연탄을 전달하는 차인표의 모습.

취약계층 가정에 연탄을 전달하는 차인표의 모습.ⓒ 기부협동조합 신협사회공헌재단


2014년 기부협동조합 신협사회공헌재단 홍보대사로 위촉된 차인표는 2015년 '밥상 공동체 연탄은행'에 연탄 20만 장(약 1억 4천만 원)을 기부했고, 겨울마다 취약계층 가정에 연탄을 전달하는 봉사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그에게 왜 이런 활동을 계속하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대중들이 주신 인기 덕분에 분에 넘치게 부유하게 살 수 있었다. 나는 선행을 하는 것이 아니고 대중들이 제게 주신 돈을 다시 돌려드리는 것 뿐이다" (<이데일리>, 차인표 "선행? 대중이 주신 돈, 돌려 드리는 것 뿐")

무엇보다 차인표가 빛나는 까닭은 그가 대중들의 슬픔과 분노 속에 함께 하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차인표 신애라와 함께 임시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들을 조문했고, 지난해 탄핵 정국에서는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광화문 광장을 찾아 시민들과 함께 촛불을 들기도 했다. 대중들이 슬픔에 잠겼을 때 그들을 위로하고, 대중들이 분노에 찼을 때 앞장 서 대신 화를 내주는 것이야말로 대중과 호흡하고 대중을 대변하는 '배우'의 역할이 아니겠는가. 차인표는 그 누구보다 '배우'로서 뜨거운 삶을 살아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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