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이쓰제(戴思杰) 감독은 자신이 2000년에 쓴 첫 장편 소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巴??克與小裁縫)>를 2002년 직접 영화로 제작했다. 문화대혁명(1966-1976, 아래 문혁) 시절 10대의 나이로 쓰촨성에 3년 하방(下放, 고위 관료, 당원, 지식인 등을 농촌, 공장 노동에 종사하게 한 운동)된 것과 1984년 국비 장학생으로 프랑스에서 유학했던 경험이 소설과 영화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는 중국인들에게 주입된 문혁에 대한 획일적인 집단 기억에서 벗어난 감독의 새로운 시각과 해석이 신선하게 반영된 영화다. 문혁을 겪은 지식인의 상흔을 어루만지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인에 의해 새로운 세계를 자각하고, 스스로 용기 있게 그 세계를 찾아 나선 한 소녀에 영화의 포커스가 맞춰진다.

소녀와 두 청년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지식 청년들과 교우하며 소녀가 어떻게 변해가는지가 변화의 포인트이다.

▲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지식 청년들과 교우하며 소녀가 어떻게 변해가는지가 변화의 포인트이다. ⓒ TF1 Films


영화의 배경 봉황산 산골 마을 쓰촨성 장강 유역의 봉황산 ‘하늘 긴 꼬리 닭’이란 이름의 산골마을이 영화의 무대다.

▲ 영화의 배경 봉황산 산골 마을 쓰촨성 장강 유역의 봉황산 ‘하늘 긴 꼬리 닭’이란 이름의 산골마을이 영화의 무대다. ⓒ TF1 Films


문혁이 한창이던 1971년, 마오쩌둥을 찬양하는 홍위병의 노래 <말을 타고 베이징으로 가네(騎着馬兒去北京)>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쓰촨성 장강 유역의 봉황산 '하늘 긴 꼬리 닭'이란 이름의 산골마을에 자산계급 출신의 두 지식 청년이 하방되어 온다. 마을대표인 생산대장이 뤄밍(羅明)과 마젠링(馬建鈴) 두 청년의 짐을 검사한다. 아무도 글을 읽지 못하는 산골사람들에게 마젠링의 바이올린은 신기한 장난감이다. 뤄밍의 요리책을 불태워버린 생산대장은 마젠링에게 바이올린 연주를 명령하고, 분위기를 간파한 뤄밍은 연주곡 제목이 "모차르트는 마오 주석을 생각한다"라고 둘러대며 위기를 모면한다. 모차르트의 미뉴에트(Menuetto) 바이올린 연주가 흐르는 가운데 도시에서 온 두 지식 청년과 순박한 산골 사람들의 첫 만남이 이뤄진다.

마오쩌둥이 "바짓가랑이에 진흙과 소똥이 가득 묻어야 그것을 깨끗함이라 부를 수 있다"고 노동을 신성시하던 문혁의 절정에서 두 청년은 매일 똥지게를 지고, 광산 갱도를 기어 다니며 광석을 캐는, 힘든 노동 개조에 참가한다. 그 고된 날들에 한 줄기 빛처럼 소녀 재봉사가 등장한다. 목욕하는 모습을 훔쳐보는 첫 만남부터 아름다운 그녀의 미모에 현혹되지만, 그녀는 글자도 모르고, 자명종 시계 안에 닭 그림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시계를 다 해체할 정도로 순박하고 촌스럽다. 그녀가 본 외부 세계는 장작을 패다가 가끔 보는 비행기가 유일하다. 그녀는 마을에서 유일하게 외부 세계를 경험한 할아버지와 함께 사는데, 할아버지는 1970년대 중국 가정에서 갖추고 싶은 선망의 물건(三大件)인 손목시계, 자전거, 재봉틀 중 하나인 재봉틀을 가지고 있다.

노동 개조 두 청년은 매일 똥지게를 지고, 광산 갱도를 기어다니며 광석을 캐는, 힘든 노동개조에 참가한다.

▲ 노동 개조 두 청년은 매일 똥지게를 지고, 광산 갱도를 기어다니며 광석을 캐는, 힘든 노동개조에 참가한다. ⓒ TF1 Films


광산 일이 좀 익숙해갈 무렵, 생산대장은 두 청년에게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준다. 읍내에 가서 북한 영화 <꽃 파는 처녀>를 보고 와 마을 사람들에게 영화 얘기를 해 달라는 것이었다. 영화를 보고 와 인공 눈까지 동원해 실감 나고 재치있게 이야기를 전하고, 마을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그러던 중 마을 안경잡이에게 금서가 있다는 정보를 듣고 그 책가방을 훔치는 데 성공한다. 발자크, 도스토옙스키, 스탕달, 고골리, 키플링, 홍루몽, 루쉰 소설 등의 책이 들어 있다. 뤄밍과 마젠링은 책을 동굴에 숨기고 한 권씩 꺼내와 돌려가며 읽으며 소녀 재봉사에게 글을 가르치기 시작한다. 문혁은 지식인의 아들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들을 혹독한 노동 현장에 보냈건만, 그들은 그곳에서도 지식의 보고인 책을 다시 찾아, 그 책을 통해 노동 현장을 바꾸려는 새로운 혁명을 기획한다는 설정이 흥미롭다.

갱도에서 일하던 중 뤄밍이 쓰러지면서 영화는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뤄밍이 학질에 걸린 것인데, 때리는 것이 민간 치료법이라며 소녀 재봉사는 떨고 있는 뤄밍의 등을 쑥가지로 마구 때린다. 때리다가, 맞다가 두 사람은 서로 껴안고 입맞춤하며 사랑을 나눈다. 문혁이 수많은 지식분자들에게 고통을 가하며 사디즘적 쾌락을 누렸다면, 지식분자들은 극심한 물리적, 정신적 고통을 조금씩 자기만족으로 승화시키며 마조히즘적 쾌락을 누리기 시작한 것이다.

바뀐 건 청년이 아니라 농촌

문혁의 사디즘과 마조히즘 문혁이 지식분자에게 고통을 가하며 사디즘적 쾌락을 누렸다면, 지식분자들은 고통을 자기 만족으로 승화시키며 마조히즘적 쾌락을 누린다.

▲ 문혁의 사디즘과 마조히즘 문혁이 지식분자에게 고통을 가하며 사디즘적 쾌락을 누렸다면, 지식분자들은 고통을 자기 만족으로 승화시키며 마조히즘적 쾌락을 누린다. ⓒ TF1 Films


책을 읽으며 글을 배우는 소녀 재봉사 책을 접한 소녀 재봉사는 감정만 있는 야만민에서 감정과 자기만의 생각을 가진 문명인으로 거듭났다.

▲ 책을 읽으며 글을 배우는 소녀 재봉사 책을 접한 소녀 재봉사는 감정만 있는 야만민에서 감정과 자기만의 생각을 가진 문명인으로 거듭났다. ⓒ TF1 Films


이제 개조의 대상은 두 지식인 청년이 아니라 산골 사람들로 바뀐다. 소녀 재봉사의 할아버지는 "책이 사람의 인생을 바꿔 놓을 수 있다"며 손녀의 변화를 두려워하지만, 자신도 마젠링의 책 이야기에 흥미를 느껴 마을 사람들에게 책에 적힌 유럽풍의 옷을 만들고 준다.

생산대장도 자신의 썩은 이를 치료하기 위해 뤄밍을 찾아온다. 게다가 작업 중 사고로 생산대장이 한 달간 입원하며, 산골 마을은 무정부 상태의 자유를 누린다. 이때 마젠링은 산골 마을의 민가(民歌)를 채집하고, 뤄밍은 소녀 재봉사와 사랑을 나눈다. 그리고 뤄밍의 아버지가 입원해 두 달간 뤄밍이 도시로 떠난다고 하자 소녀 재봉사는 거북이를 잡아 준다. '거북이(龜)'의 중국어 발음이 '돌아오다(歸)'는 말과 같은데, 영화가 던지는 "그녀는 돌아올 것인가? 돌아온다면 어디로 돌아오란 말이냐?"는 질문과도 맞닿아 있다.

뤄밍이 떠난 사이 소녀 재봉사는 자신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마젠링에게 알린다. 마젠링은 서양 작가들의 좋은 글귀를 적어 둔 양털 모피를 벗어주며 의사를 불러 소녀 재봉사의 낙태수술을 돕고, 바이올린을 판 돈을 소녀 재봉사에게 건넨다. 뤄밍이 적극적으로 사랑을 향해 돌진한다면, 마젠링은 묵묵히 그 사랑을 지켜준다. 뤄양과 마젠링을 통해 책을 접한 소녀 재봉사는 감정만 있는 야만민에서 감정과 자기만의 생각을 가진 문명인으로 거듭났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자기만의 세계를 찾아 떠난다. 떠나는 그녀에게 뤄밍이 누가 널 변하게 만들었냐고 묻자, 소녀 재봉사는 발자크라고 대답하고, 등 뒤에 모든 것을 남기고 자기만의 길을 간다.

소녀는 잘 살고 있을까?

새로운 세계에 눈 뜬 소녀 재봉사 소녀 재봉사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자기만의 세계를 찾아 떠난다.

▲ 새로운 세계에 눈 뜬 소녀 재봉사 소녀 재봉사는 머리를 짧게 자르고 자기만의 세계를 찾아 떠난다. ⓒ TF1 Films


시간이 흘러 프랑스에서 바이올리니스트로 활동하던 마젠링은 자신이 하방 되었던 봉황산 산골 마을이 싼샤(三峽)댐 건설로 물에 잠긴다는 뉴스를 보고, 소녀 재봉사에게 줄 향수를 사 들고 자신의 추억이 깃든 마을을 찾는다. 하지만 소녀 재봉사의 행방은 찾을 수가 없다. 마을이 곧 물에 잠기듯 문혁의 아픔도, 그 아픔을 온몸으로 겪어낸 지식 청년의 추억도, 소녀 재봉사가 돌아올 고향도 모두 깊은 물 속에 수몰되고 마는 것이다. 모든 것이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질 것을 영화는 수중 장면으로 마무리한다. 실제 싼샤댐 완공은 영화 제작 후인 2006년의 일이다.

루쉰(魯迅)은 1923년 강연에서 입센의 <인형의 집> 주인공 노라를 인용하여 "노라는 집을 나간 뒤 어떻게 되었는가"라는 제목의 연설을 한 적이 있다. 영화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의 결말은 소녀 재봉사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져보게 한다. 소녀 재봉사는 "여자의 아름다움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라는 발자크의 말과 마젠링이 바이올린을 팔아 준 몇 푼의 돈을 가지고 집을 나가 문혁의 끝자락, 개혁개방이 막을 올리는 그 혼란의 도시에서 어떻게 되었을까? 잘살고 있을까? 그녀가 혹시 이 물음에 대답한다면 마젠링의 양털 모피에 적혔던 이 글귀를 인용하지 않을까.

"자유는 위험하고 아픈 것이며 생명과 맞바꿔야 하지만, 자유는 자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영혼을 자유롭다고 느끼게 합니다. 자유를 만끽한 영혼은 다른 곳에서 살 수 없습니다."

발자크와 바느질하는 중국 소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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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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