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쪼개듣기'는 한국 대중음악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는 코너입니다. 화제작 리뷰, 업계 동향 등 다채로운 내용을 전하겠습니다. [편집자말]

 f(x)의 루나, EXID의 하니, 마마무의 솔라는 최근 컬래버레이션 싱글 'Honey Bee'를 발표했다.

f(x)의 루나, EXID의 하니, 마마무의 솔라는 최근 컬래버레이션 싱글 'Honey Bee'를 발표했다.ⓒ 미스틱 엔터테인먼트


"'HONEY BEE'는 묵직한 808 베이스와 현란한 색소폰의 조합이 돋보이는 팝 소울의 장르로, 달콤한 '꿀'을 무기로 상대방(벌)을 유혹하는 도발적이면서도 귀여운 가사가 인상적이다." - 루나+하니+솔라 컬래버레이션 싱글 'Honey Bee' 보도자료 중에서

최근 발표되는 신보 홍보자료를 유심히 살펴보면 808이라는 말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여기서 언급하는 808이 유명 숙취 음료 이름은 당연히 아니다.

편의상 808로 불리는 이것은 1980년에 제작된 롤랜드 사의 'TR-808'이란 드럼머신(드럼 파트를 자동으로 연주하기 위해 개발된 전자 악기의 일종)이다. 미리 저장된 다양한 '리듬+드럼 패턴+사운드'를 자동 반복적으로 재생하면서 실제 녹음에서 기존의 드럼 및 베이스 소리를 대신하기에 이른다.

힙합, 댄스, 일렉트로닉 등 다양한 장르에서 애용

 롤랜드 TR-808 드럼머신.  현재 이베이에선 A급 제품 기준으로 3000~4000달러 선에서 중고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롤랜드 TR-808 드럼머신. 현재 이베이에선 A급 제품 기준으로 3000~4000달러 선에서 중고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위키피디아


1980년대 당시는 기술적 문제로 인해 요즘처럼 다양한 가상 악기들의 복잡한 리듬 연주를 쉽게 표현할 수 없었다. 이런 한계도 분명 존재했지만, 오히려 초창기 힙합, R&B 등 단순한 리듬 반복이 필요로 하는 장르에선 TR-808이 크게 환영을 받게 되었다.

미국 R&B의 전설, 마빈 게이의 생전 마지막 히트곡 'Sexual Healing'은 바로 808 사운드의 묘미를 잘 살린 대표곡 중 하나로 평가된다. 마빈 본인이 직접 808기기를 다뤘는데, 인위적인 박수 같은 소리로 틀을 잡고 물 흐르는 듯한 드럼+베이스 전개로 귀를 즐겁게 만들었다. 이후 808은 미국 흑인 음악에서 중요한 도구로 자리 잡게 된다.

 초기 808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Sexual Healing'이 수록된 마빈 게이의 대표 음반 < Midnight Love >의 표지 이미지.

초기 808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Sexual Healing'이 수록된 마빈 게이의 대표 음반 < Midnight Love >의 표지 이미지.ⓒ 소니뮤직코리아


휘트니 휴스턴의 히트곡 'I Wanna Dance With Somebody' 역시 808을 잘 활용한 명곡 중 하나로 평가된다. 이 곡에선 1980년대 인기를 얻고 있던 전자 드럼과 808을 적절히 섞어 풍성한 소리를 만들어 활용했다. (프로듀서 & 드럼 연주: 나라다 마이클 월든)

한국에선 1990년대 들어 미국 힙합(뉴잭스윙)에 영향받은 댄스곡들을 808을 도입했던 초창기 사례로 언급할 수 있다. 특히 현진영, 듀스를 이끌었던 이현도의 곡들은 기본적으로 이들 기기가 만들어내는 리듬을 중심으로 다채로운 재미를 선사한 바 있다.

21세기, 808 사운드의 부활

힙합 및 일렉트로닉 사운드(EDM 트랩)의 인기에 힘입어 808은 최근 들어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소위 '레트로'라는 이름으로 과거의 감성을 담으면서도, 미래 지향적 사운드를 아우른다는 독특함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힙합 스타 카니예 웨스트는 지난 2008년 자신의 정규 4집 <808s & Heartbreak>에서 아예 제목에서부터 808을 전면에 내세웠다. 최근 국내에서 발표되는 어지간한 아이돌-댄스곡 역시 808 기반의 베이스 및 드럼 사운드를 활용하지 않는 경우가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른바 빅3 기획사(SM-YG-JYP) 역시 808 기반의 곡들을 대거 만들어내고 있다. 상대적으로 힙합의 영향을 덜 받는 SM에서도 해외 작곡팀인 런던노이즈(LDN Noize)의 곡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작품에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레드벨벳의 'Dumb Dumb'을 들 수 있다.


YG의 경우, 발표하는 곡의 기본으로 808 사운드가 일찌감치 자리 잡은 지 오래다. 실제 TR-808 기기를 그대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진 대표 프로듀서 테디 덕분에 지난해 데뷔한 블랙핑크의 곡들 역시 이러한 영향권에 놓여 있다.


 갓세븐의 최신 음반 < FLIGHT LOG: TURBULENCE >. 808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 중 하나다.

갓세븐의 최신 음반 < FLIGHT LOG: TURBULENCE >. 808 사운드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작품 중 하나다.ⓒ JYP엔터테인먼트


JYP의 차세대 그룹 갓세븐은 최근 히트곡 '하드캐리'에서 EDM 트랩의 요소를 대거 채용하는 일환으로 808을 밑바탕에 둔 신나는 사운드를 만들어냈다.

TR-808은 발매 3년만인 1983년에 단종되고 후속 기종 TR-909가 판매되었다. 하지만 30여 년이 지난 현재까지, 808은 일선 음악인들에겐 널리 애용되는 악기로 사랑받고 있다. 실제 예전 기기 그대로 사용하는 음악인은 여건상 많지 않고, 대개 각종 신시사이저, 소프트웨어 가상 악기가 만들어내는 808 사운드로 이를 대신하고 있다. (현재 이베이 등에선 3000~4000달러 선에서 거래가 이뤄지고 있다)

1980년에 등장했던 전자 기기의 사운드가 지금의 음악에서도 널리 사용되리라고 예상했던 사람들은 아마 거의 없었을 것이다. 여전히 2017년에도 필수 악기+사운드로 자리 잡으면서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808의 인기가 언제까지 지속할지는 알 수 없지만 당분간 이를 바탕에 둔 곡들이 대중들을 겨냥해 꾸준히 제작될 전망이다.

덧붙이는 글 김상화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blog.naver.com/jazzkid)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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