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하고 독하게 영화 속의 메시지를 읽고 독자들에게 전달하려고 합니다. 청년의 통통 튀는 감성을 담아 표현하고 소통하겠습니다. [편집자말]
고구마를 100개쯤은 먹은 느낌이었다. 계속 터지는 부당한 일들. 곤란한 처지에도 제대로 말 한마디 못하는 남자. 설상가상 계속 터지는 일들은 보는 관객들을 마치 빛 없는 터널로 끌고 들어가는 듯했다.

영화 <소시민>에 대한 이야기다.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소시민'이자 당당히 말 한마디 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소심인'인 재필(한성천 분)은 우연히 터무니없는 일들에 휘말린다. 극히 평범한 그가 겪는 많은 사건들 속에서 말 한 마디도 제대로 못하는 그의 모습은 '먹고사니즘'에 빠져 많은 것을 놓치고 못 본 척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거울처럼 비친다.

'먹고사니즘'에 빠져 사는 소시민(소심인)들

 화가 난 상사는 재필에게 잘리고 싶지 않으면 서류 조작을 하라고 시킨다. 게다가 여동생 재숙(황보라 분)은 3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한다. 설상가상 집에 갔더니 아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상사의 부당한 명령, 여동생의 무리한 부탁, 아내를 죽인 혐의까지. 순식간에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쏟아진다.

화가 난 상사는 재필에게 잘리고 싶지 않으면 서류 조작을 하라고 시킨다. 게다가 여동생 재숙(황보라 분)은 3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한다. 설상가상 집에 갔더니 아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상사의 부당한 명령, 여동생의 무리한 부탁, 아내를 죽인 혐의까지. 순식간에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쏟아진다. ⓒ 홀리가든


영화의 시작. 모텔에서 연탄불로 자살을 시도하는 부부의 모습이 나온다. 삭막한 현실 속에서 삶을 포기하고 세상을 등지려는 중에 여자는 온갖 현실적인 고민들을 쏟아낸다.

"우리 때문에 이 모텔이 망하면 어쩌지? 해운대에 사람이 많을 텐데 우리 뼛가루를 해운대에 뿌려달라는 건 무리한 부탁일까?"

자살하기 직전의 상황. 곧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먹고도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있는 그녀는 자신이 A형이기 때문에 소심해서 그렇다고 한다. 황당한 이 상황은, 우리 소시민들의 모습을 은유적으로 나타낸다. 끝없이 타인의 눈치를 보고, 수많은 걱정 속에 안겨 사는 것은 단지 소심한 그녀만이 아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세상에 우리는 살고 있다. 우린 소시민이니까.

재필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일요일에도 쉴 틈 없이 뛰어다닌다. 분명 상사가 지시한대로 일을 했건만 구둣발에 차이고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는다. 일요일이라고 항의해보지만 당장 서류를 고쳐오라고 한다. 설상가상 뜬금없이 경찰들이 다가와 살인사건의 용의자라고 조사를 받으라고 한다. 한 일이라고는 모텔에서 잠 잔 것밖에 없는 그는 억울한 누명을 쓰기 싫어 상사가 시킨 일을 하지 못하고 조사를 받는다.

화가 난 상사는 재필에게 잘리고 싶지 않으면 서류 조작을 하라고 시킨다. 게다가 여동생 재숙(황보라 분)은 3000만원을 빌려달라고 한다. 집에 갔더니 아내가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다. 상사의 부당한 명령, 여동생의 무리한 부탁, 아내를 죽인 혐의까지. 순식간에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쏟아진다.

터무니없는 일들을 겪으며 영화 내내 뛰어다니는 그는 한 가지에 몰두한다. 바로 '출근'이다. 딸을 위한 적금을 꾸준히 넣을 수 있었던 이유, 대출금을 받아 집을 전세로 전환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기계처럼 꾸준히 출근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에게 '출근'이란 사라져서는 안 되는 생존이 걸린 문제다. 그는 평범한 '먹고사니즘'에 빠진 소시민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생존이란

 끝이 안 보이는 달리기를 멈추게 한 것은 어머니의 편지 한 장이었다. 가족이 다시 하나로 뭉치기를 바랐던 어머니. 그는 그때서야 진짜 생존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단지 먹고 사는 것만이 생존이 아니었다. 험난한 이 세상을 버티는 방법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끝이 안 보이는 달리기를 멈추게 한 것은 어머니의 편지 한 장이었다. 가족이 다시 하나로 뭉치기를 바랐던 어머니. 그는 그때서야 진짜 생존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단지 먹고 사는 것만이 생존이 아니었다. 험난한 이 세상을 버티는 방법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 홀리가든


출근, 1시간 5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동안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아닐까. 재필은 살인의 누명을 쓰고 도망치면서도 '출근'을 놓지 못한다. '먹고사니즘'에 사로잡혀 판단력이 흐려진 것처럼 보이는 그는 절박해보이지만 한 편으론 멍청하게 보인다. 당장 내일 출근을 하는 것보다 살인의 누명을 벗는 것이 우선순위인 것은 초등학생이라도 알 법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는 수많은 소시민들이 '먹고사니즘'에 빠져 많은 것을 놓치고 포기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과장의 기법이다. 돈을 벌어오고 집안에 물질을 풍족하게 늘리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하는 아버지. 그런 아버지를 가족의 구성원으로 생각하지 않게 되는 자식들의 모습은 낯익은 우리 가정의 풍경들이다. 당장은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지 않더라도 언제 바닥으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은 끝없는 물질에 대한 집착으로 돌아온다. 결국, 먹고 살기 위해 시작한 달리기는 우정, 사랑, 가족과의 시간 등 수많은 것을 뒤로 한 채 끝없이 계속 될 수밖에 없다.

매해마다 비정상적으로 높아져가는 공무원 시험 경쟁률은 우리 사회가 불안에서 벗어날 '안전'을 과하게 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다. 모든 것을 버린 채 끝없는 경주마가 되지 않으려면 적어도 잘릴 걱정 없는 공무원이라도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진정한 생존일까? 이게 사람에게 어울리는 사는 것일까? 어느새 재필에게는 사는 것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물어볼 시간도 없었다. 살아가는 방법은 가장 중요한 것이지만 뒷전으로 밀려났다. 어느새 그는 싫어하던 아버지처럼 일만 했다. 마치 기계 같이.
끝이 안 보이는 달리기를 멈추게 한 것은 어머니의 편지 한 장이었다. 가족이 다시 하나로 뭉치기를 바랐던 어머니. 그는 그때서야 진짜 생존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단지 먹고 사는 것만이 생존이 아니었다. 험난한 이 세상을 버티는 방법만이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

때로는 버티지 않고 놓아버리기도 하고. 때로는 가족과 하는 것 없이 시간을 보내보기도 하고. 때로는 소박한 국수 한 접시 나눠먹기도 하고. 소시민으로서 자리를 지켜내는 것만이 생존은 아니었다. 소중한 것들을 위해 잠시 시간을 낼 수 있는 것. 소시민도, 소심인도 아닌 나로서 존재하는 것도 생존이었다.

소시민 먹고사니즘 소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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