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부터 방송 중인 'KBS 특별기획' <대선 유력 주자에게 듣는다>.

지난 18일부터 방송 중인 'KBS 특별기획' <대선 유력 주자에게 듣는다>. ⓒ KBS


KBS1은 지난 18일부터 'KBS 특별기획' <대선 유력 주자에게 듣는다> 시리즈를 방영 중이다. 오후 10시부터 1시간 동안 진행되는 생방송 대담 프로그램이다. KBS 보도본부 박영환 취재주간이 진행하고, 패널로 KBS 기자 한 명이 배석한다. 여전한 KBS1의 기본 시청률과 고정 시청층을 감안하면 '대선주자'로 분류된 정치인들에게 꽤나 유용한 홍보 방송이 아닐 수 없다.

손학규 전 민주당 대표를 시작으로 20일까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과 이재명 성남시장 편이 방송됐다. 일요일인 22일부터 박원순 서울시장,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 문재인 전 민주당 대표, 안희정 충남지사 순으로 방송 일정이 잡혀 있다.

20일 방송의 경우, 이재명 시장이 다소 차분하게 자신의 공약과 평소 이미지, 향후 과제를 설명했다. "사이다"와 "싸움꾼"이란 별명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앞으로 실천가로 불러줬으면 좋겠다"라는 훈훈한 답변이 대표적이었다.

식상하거나 관례적이거나. 모범적인 질문에 파격적인 답이 나올 리 만무하다. 이재명 시장의 대담이 그랬다는 얘기가 아니다. 이 대담의 형식이나 톤이 그 자체로 '보수적'이란 얘기다. 공격적인 질문보다는 각 대선주자의 품위를 지켜주는 선에서 오고가는 문답으로 해당 정치인의 진면목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욱이 KBS1은 지난 19일 대선 출마선언을 한 정의당 심상정 대표는 출연 명단에 포함시키지도 않았다. 8명 중 아직 출마선언을 하지 않은 정치인들이 즐비하다. 이들 중 정당 경선을 완주하리라 예상되지 않는 인물들도 다수다. 심지어, 최근 더불어포럼 공동대표를 맡은 황교익씨의 <아침마당> 출연 금지 통보를 두고, 문재인 전 대표 측은 출연을 고사할 수 있다는 경고 메시지를 보낸 상태다. 

출발부터 소소한 잡음이 들려온 <대선 유력 주자에게 듣는다>는 이렇게 공영방송의 이점을 살려 지상파를 비롯한 여타 방송보다 좀 더 긴 방송 시간을 대선주자들에게 할애한다. 반면 SBS는 집중도를 높이는 효과를 줄 수 있는 <8시 뉴스> 내 앵커와의 인터뷰를 활용한다. 특히나 메인뉴스 언급 빈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대선주자의 경우 기회로 여길 수밖에 없는 것이 이러한 뉴스와 대담 프로그램 출연일 것이다.

헌데, 꼭 메인뉴스나 대담 형식을 고집해야만 할까. 이른바 '올드보이'들에게 더 친숙할 전통적인 매체와 장르만을 선호할 필요가 있을까. 그렇지 않다. 최근 SBS 모비딕 <양세형의 숏터뷰>에 출연한 안희정 충남도지사 편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지 모른다. 전통적인 정강정책과 비전을 발표하고, 상대 정치인과 상호 토론할 수 있는 프로그램은 차고 넘친다. 대신 좀 더 유연하게 자신의 이미지를 노출시키는 동시에 일상적인 면모를 보여주는 프로그램도 병행돼야 한다. 아니, 더 필요하다.

안희정의 '이상형 월드컵'

 최근 SBS모비딕 <양세형의 숏터뷰>에 출연한 안희정 지사.

최근 SBS모비딕 <양세형의 숏터뷰>에 출연한 안희정 지사. ⓒ SBS


"여기서... 뭘 하라는 거죠?"

박근혜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의 얼굴 사진 사이에서, 안희정 지사가 고민에 빠진다. '이상형 월드컵'을 하겠다는 진행자 양세형의 주문에 이성을 생각했다면 큰 코 다친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을 선택한 안 지사의 표정이 당황스럽기 이를 데 없다.

"참 선택하기 어렵네요. 두 분 우열을 가리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국민여러분들께서 탄핵을 한 박근혜 대통령을 선택할 순 없으니..."

이어, "안희정, 둘 중 이명박 전 대통령 더 좋아"와 "MB랑 얘기한 적도 있어"와 같은 속보 화면과 자막이 흐른다. 이러한 <양세형의 숏터뷰>의 짓궂은 편집과 진행은 이어지는 '이상형 월드컵'에 반기문, 손학규, 유승민 등 정치인을 등장시키고는 뒤이어 AOA 설현, 가수 장윤정을 선택하게 만든다. 급기야 이재명 성남시장과 문재인 전 대표에 이어 안 지사의 아내인 민주원씨까지 등장시켜야 끝이 난다.

전통적이고 올드한 시청자의 눈에는 장난스러울 수 있다. 하지만 <양세형의 숏터뷰>와 같은 형식은 급작스럽고 황당한 질문과 상황에 개별 정치인이 어떻게 대처하느냐와 같은 순발력과 성정들을 확인할 수 있다는 데 장점이 있을 것이다. 안 지사가 그랬다. 급작스러운 청문회식 진행에 곧바로 "안 그래도 문화예술선언하려고 했다"며 "블랙리스트" 관련 선언을 순발력있게 완성해 내는 장면이 딱 그러했다. 준비된 정책이나 장밋빛 발언, 점잖은 언사들로  정치인을 '검증'하는 시대는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문 빨간펜'과 같은 비선실세의 등장으로 이미 '굿바이'를 외치지 않았나.

<양세형의 숏터뷰>는 SBS가 만든 모바일 기반의 '모비딕'이란 플랫폼을 기본으로, 페이스북과 포털, 유튜브 등에서 소비된다. 지상파는 토요일 밤 자정 이후 전체 편집본이 전파를 탄다. "정치인도 환영한다"는 이 프로야말로 다채로운 플랫폼으로 새로운 시청층에 어필하는 프로그램이라 할 만하다.

그런 점에서 작년 12월 심상정 대표에 이어 지난 4일 이재명 성남시장이 출연한 JTBC <말하는 대로> 역시 정치인들이 도전할 만한 새로운 포맷의 방송 프로그램이다. JTBC <썰전>이 이슈별로 게스트로 출연시킨다면, <말하는 대로>는 '토크 버스킹'이란 형식으로 자신이 하고픈 이야기를 자유롭게 펼쳐낼 수 있기 때문이다. 심 대표와 이 시장의 출연분이 딱 그런 형식이었다.

심상정과 이재명의 <말하는대로>

 JTBC <말하는 대로>에 출연한 정의당 심상정 대표.

JTBC <말하는 대로>에 출연한 정의당 심상정 대표. ⓒ JTBC


"국회의원을 변화시킬 수 잇는 힘은 유권자들밖에 없어요. 선거 때 지키지 못할 공약을 남발하고, 그러면 또 내가 국회의원이 된다, 그러면 그 사람은 안 바뀔 거예요. 그래서 힘들고 고단하지만, 여러분이 계속 요구하고 압박하고 감시하고, 최종적으로 안 되면 갈아치우고 이렇게 하면 우리 정치가 많이 바뀔 거라고 생각합니다. (중략)

끓는 냄비 발로 차지 마라. 언제 한번 그렇게 뜨거워 본적 있느냐. 냄비 우습게보면 다 덴다. 이렇게 이야기 하고 싶어요. 이번 촛불을 보면서도 30만 모였다가, 100만 모였다가 그래도 정치권이 왔다 갔다 하니까 230만 모이고. 우리 국민들이, 내가 이 대한민국의 주인이다, 이 대한민국의 주권자다, 주권자로서 책임을 다 하니까 꿈쩍 않던 권력이 팍팍 움직이는 겁니다. 끓는 냄비 엄청나게 힘이 큰 거예요."

"실행을 하시라고요, 광화문에 왜 정치인들이 나오시나요?"라는 한 여성 청중의 꾸짖음과 같은 질문에도 심상정 대표는 주저하지 않았다. 평소의 소신대로 발언을 이어나갔고, 미소도 잃지 않았다. 정중한 대담이나 준비된 형식의 인터뷰라면 좀 달랐을까.

안희정 지사에 앞서 <양세형의 숏터뷰>에 정치인 최초로 출연하기도 했던 이재명 시장 역시 <말하는 대로>에 출연한 바 있다. 각종 팟캐스트나 시사 라디오에선 쉬이 들을 수 있는 발언이었지만,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선 쉬이 들을 수 없는 수위의 주장도 가감 없이 전파를 탔다.

"한국 사회는 공정한 경쟁이 전혀 보장돼 있지 않습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 100대 부자 중 8할 이상이 다 부모한테 물려받았어요. 근데 미국은 80% 이상이 자수성가한 사람들입니다. 가진 재산은 어떠하냐. 상위 10%가 66%를 가지고 있습니다. 2/3를 상위 10%가 가지고, 나머지 1/3을 90%가 나눠 쓰고 있죠. 불평등, 불공정 이런 것들이 우리 사회가 가진 자원과 기회 역량을 비효율적으로 쓰이게 만들어요."

<말하는 대로> 역시 SNS와 포털을 기반으로 본방 못지않은 화제성과 파급력을 확인해 나가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연예인의 출연 횟수가 제일 많지만, 역사나 시사, 문학 등 전방위의 카테고리에 속할 수 있는 출연자들이 갖가지 주장을 펼치는 형식이다. 젊은 층을 겨냥한 이러한 프로그램야말로 정치인이 자신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2012년 박근혜의 <힐링캠프>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박근혜 대통령.

SBS <힐링캠프>에 출연했던 박근혜 대통령. ⓒ SBS


앞서 언급한대로, 대선 토론 프로그램에서까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는 정치인이 용인되는 시대는 끝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국민들의, 시청자들의 수준을 확실히 올려 줬다. 그거 하나만은 분명 감사한 일이다. '1일 1논란'으로 화제가 되고 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의 행보도 상식과 일상적인 눈높이에 부합하지 않기에 벌어지는 논란이 대부분이다.

그런 점에서, 기존 정치인들을 포함해 이번 대선주자들은 좀 더 대중들과 일상적인 스킨십을 넓혀 갈 필요가 있다. 아니, 더 그래야만 한다. 평소 어떤 소신과 철학, 취미와 눈높이를 지녔는지가 정치인에게 요구되는 시대다. 또 그러한 일상의 언행이 결국 정책 수립과 정책 수행 과정에도 반영되는 법이다. 퇴임 이후에도 일상이 두고두고 회자되는 미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을 반면교사 삼아야 할 때다.

예컨대 지난 2012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박근혜 편'이 당시는 물론 지금까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는 것도 같은 이유다. 당시까지 '자연인 박근혜'의 자연스러운 면모가 국민들에게는 가려졌었다. 탄핵이 되고 임기가 4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힐링캠프> 출연 당시의 언행들을 귀납적으로 퍼즐 맞추듯 확인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검찰과 특검 조사, 언론 보도를 통해 낱낱이 드러나고 재조명되는 박 대통령의 과거사와 청와대에서의 일상, 그리고 국정 철학들이 과거 예능프로그램 출연 당시의 언행과 일치된다는 것이다.

더 이상 그래서는 안 된다. 2017년 들어, 훨씬 더 다채로운 플랫폼과 미디어로 대선주자들을 검증할 수 있는 시대다. 그렇게 정치와 일상의 결합이 요구되는 시대다. 또 그러한 형식과 시선에 적응해야만 젊은 층의 표심까지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심상정 대표의 말마따나, 변하는 주권자들의 요구가, 눈높이가 바뀌고 있다.

안희정 이재명 심상정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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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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