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현지시간) 미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부근 트럼프 인터내셔널호텔&타워 앞에서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반대시위에 참석한 마크 러팔로.

19일(현지시간) 미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부근 트럼프 인터내셔널호텔&타워 앞에서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반대시위에 참석한 마크 러팔로. ⓒ 마크러팔로 트위터


"우리는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를 강화해야 합니다. 오늘은 앞으로 이어질 수많은 저항의 날들 중 첫 번째 날입니다."

<어벤져스> 시리즈의 '헐크' 마크 러팔로는 저항의 몸짓으로 오른 팔을 들어 올렸다. 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식(20일 현지시간) 직전인 19일 저녁, 뉴욕 맨해튼 센트럴파크 부근 트럼프 인터내셔널호텔&타워 앞에서 진행된 트럼프 대통령 취임 반대시위에 할리우드 유명 배우들이 다수 참석, 대중연설로 시위를 이끌었다.

마크 러팔로도 그 중 한 명이었다. 그를 포함, 로버트 드니로, 셰어, 알렉 볼드윈 등이 연단에 섰고,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 역시 시위에 참가했다. 복수의 외신이 이를 보도했고, 특히나 미 엔터테인먼트 매체들은 이를 실시간으로 보도했다. 과거 '부자' 부시 대통령 및 공화당과 철저한 대립각을 세웠던 마이클 무어 감독은 "매일 매일이 투쟁"이라고 호소했다.

"우리가 다수입니다. 포기하지 맙시다. 저 또한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침묵하는 다수가 되지 맙시다. 우리는 우리 목소리를 내는 다수가 될 것이고, 그가 권력에서 물러날 때까지 매일 싸워 나갈 것입니다. (그 싸움이) 4년이 걸리진 않을 거라고 예상합니다."

'트럼프 반대'에 적극 동참한 미 배우들

 트럼프 반대 시위 연단에 선 배우 알렉 볼드윈.

트럼프 반대 시위 연단에 선 배우 알렉 볼드윈. ⓒ CNN


"그들(트럼프와 트럼프 행정부의 수석 전략가 스티브 배넌, 부통령 마이크 펜스)이 깨닫지 못하는 것은, 뉴욕시민들은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도시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건 무엇이든 말할 수 있습니다. 뉴욕시민들은 지지 않을 것입니다. 싸우시겠습니까?"

미 NBC 'SNL'에서 트럼프를 '연기'해 온 알렉 볼드윈은 이날 예의 그 말끔한 수트 차림으로 연단에 올라 "싸우겠느냐?"고 목청을 높였다. 일찌감치 트럼프 당선 후 "이민을 고려하겠다"던 로버트 드니로 역시 "(트럼프 당선이) 이 나라의 나쁜 예"라며 "대통령 당선인은 이 나라가 세계의 쓰레기 하치장이라고 말했습니다. 정말일까요?"라며 분노를 표출했다.

로버트 드 니로는 대표적인 이탈리아계 출신 배우다. 다인종 국가인 미국에서 철저하게 백인우월주의와 자국중심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에 대해 반감과 저항을 표출하는 일은 비단 출신 국가와 인종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최근 미 골든 글러브 시상식에서 메릴 스트립의 수상 소감도 그런 차원이었다. 이날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출신인 배우 줄리안 무어가 한 발언도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원주민이 아니라면, 여러분의 가족 또한 미국 아닌 다른 어딘가에서 왔습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민자들의 편에 서 있습니다."

또 이날 시위에는 드라마 <섹스 앤드 더 시티>로 유명한 신시아 닉슨, 새 <스파이더맨> 시리즈에 합류한 마리사 토메이, 영화 <포레스트 검프> 속 어머니로 친숙한 샐리 필드 등이 동참했고, 민주당 소속의 현 뉴욕 시장 빌 더블라지오도 "우리의 미래는 밝다"면서 시위를 독려했다. 

이들과 함께, 갤럽 여론조사 결과 미 대통령 취임 전 역대 최저 지지율(44%)을 기록한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을 기리는 찬반 인파가 워싱턴에만 90만여 명이 몰렸다고 한다. 지지자와 시위대 간의 충돌을 막기 위해 주 방위군 2만 8천여 명이 소집됐다. 또 뉴욕을 비롯해 미 전역에서 동시다발적 반대 시위가 열렸다는 소식이다. 이른바 '트럼프 시대'가 미국에서 화려하게(?) 개막한 것이다.

'트럼프 시대'에도 불가능할 블랙리스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취임식 CNN 생중계 갈무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공식 취임식 CNN 생중계 갈무리. ⓒ CNN


트럼프의 취임식은 A급 스타들의 불참으로 이미 미 언론의 도마 위에 오른 바 있다. 시계를 2013년 2월로 돌려 보자. 우리는 어땠을까. 당시 '강남스타일'로 '월드스타' 취급을 받던 싸이를 비롯해 많은 가수들이 박근혜 대통령 취임식 식전 행사와 본행사 무대에 올랐다.

헌법재판소에서 박 대통령의 탄핵안을 심판 중인 지금, 대통령 취임식 무대에 선 연예인들에게 비판의 화살을 쏘아대는 대중들은, 없다. 반면, 미국은 현재 공개적으로 '트럼프 지지'를 선언하는 것이 용기 있는(?) 행위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그렇다면, 트럼프는 자신의 취임식 날 공개적으로 '반대 시위'에 동참하고 대중을 선동(?)한 배우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을까.

그럴 리가. 할리우드와 미 방송사를 중심으로 한 미 엔터테인먼트 업계가 그리 호락호락 하지도 않고, 그러한 전례도 없다. 미 대중문화의 전 세계적인 영향력에 비춰 보건대, '반 트럼프'를 선언한 문화예술인들에게 정권 차원의 불이익을 줬다는 것이 알려진다면 그 후폭풍을 감당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부시 부자가 못한 일일지라도 '트럼프라면?'이란 반문은 가능할지 모르지만 그걸 실행할 만큼 트럼프와 트럼프의 사람들이 미 헌법에 무지하지도 않을 뿐더러, 그것이 자신들의 '정권 장사'에 도움이 안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반(反)트럼프' 서한에 서명한 100여 명의 친(親)공화당계 안보 전문가가 '트럼프 블랙리스트'에 올랐을 수 있다는 외신 보도도 있었지만, 아직 확인된 바 없다. 더욱이 배우나 가수 같은 문화예술계 인사들은 더더욱 아니다.

이 천하의 '트럼프 대통령'도 실행하기 힘들지 모를 엄청난 일을, 박근혜 정권이 해냈다. 그 결과,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다음날인 21일 새벽,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체부 장관이 전격 구속됐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관련 직권 남용 혐의 등이 적용됐다. 특검팀의 칼날은 이제 이를 지시한 정황이 드러나고 있는 박 대통령을 향하고 있다.

'김기춘·조윤선 구속', 그리고 KBS의 '출연 금지' 

'블랙리스트' 조윤선 장관 수갑 차고 특검 소환 '문화·예술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1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 '블랙리스트' 조윤선 장관 수갑 차고 특검 소환 '문화·예술 블랙리스트'에 관여한 혐의로 구속된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1일 오후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런 와중에, KBS는 특정 정치인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에게 출연 금지 처분을 내렸다. 그가 대선주자 중 한 명인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를 지지하는 '더불어포럼' 공동대표를 맡았다는 이유다. KBS는 최근 황씨의 <아침마당> 출연 금지 이유로 'KBS 제작 가이드라인'에 따른 것 이라는 해명을 내놨다.

우리가 이렇게 후진적이다. 만약, 박 대통령을 공개 지지했던 이들에게 전방위적인 방송사 출연금지령이 내린다면 일반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을까. 취임식 무대에 섰던 연예인들에게 대대적인 비난이 가해지다면 말이다. 헌데 KBS는 "조기대선과 가깝다"는 기이한 이유로 무리수에 가까운 '출연 금지'라는 제재를 강행하는 중이다.

이와 관련, 지난 18일 처음으로 문제를 제기했던 황교익씨는 2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선 전 KBS <전국노래자랑>에 출연한 방송인 송해와 박근혜 캠프 합류 이후에도 KBS <한국인의 밥상>에 출연했던 배우 최불암씨의 예를 들어 형평성 문제를 제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정당성과 공정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다수다. 심지어, KBS 고대영 사장 역시 '특정 정치인'으로 분류될 수 있는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지지하는 '충청포럼' 운영위원으로 활동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실 블랙리스트가 별다른 게 아니다. 권력을 쥔 자들이 자신들의 이익에 따라 '네편, 내편'을 가르고 불이익을 주는 일에 불과하다. 특히나 박근혜 정권이 정권 차원에서 작성하고 실행한 블랙리스트는 더더욱 치졸하다.

'야당 후보를 지지했다'나 '세월호 참사를 언급했다', '원래 좌파적 성향'이라는 이유가 전부였다. 대단한 이념적, 이데올로기적인 신념과 원칙에서 비롯된 '블랙리스트'가 아니었다. 원래 그런 법이다. 미 매카시즘 시대의 블랙리스트 역시 정권 유지 차원에서 '마녀사냥'을 벌였다는 사실이 훗날 만천하에 드러나지 않았나. 

특검팀은 블랙리스트가 헌법 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중대한 범죄임을 천명했고, 법원 역시 '김기춘, 조윤선 구속'으로 이를 받아들였다고 할 수 있다. 블랙리스트 파문이 일파만파 커진 와중에 불거진 KBS의 '출연 금지' 제재는 시대착오적이고 역주행에 가까운 패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특검팀의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향후 법원의 공정한 판결과 더불어 공영방송 KBS의 '제작 가이드 라인'에 대한 재고를 촉구한다. 대한민국이 2017년에까지 블랙리스트라는 시대에 역행하는 망령에 시달려서야 되겠는가.  

트럼프 블랙리스트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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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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