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썰매는 동계스포츠에서 그야말로 불모지 중 불모지였다. 그러나 최근의 한국 썰매는 그야말로 격세지감을 실감케 하고 있다. 봅슬레이와 스켈레톤에서 입문한지 5년도 안돼 메달을 놓고 다투는 국가로 우뚝섰다.  그 중심엔 윤성빈(한국체대)이 있다.

윤성빈은 신목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하던 시절 스켈레톤을 접했다. 그는 스켈레톤 입문 초기 하루에 밥을 8공기나 먹으며 몸무게를 12kg 가량이나 늘렸다. 스켈레톤은 스타트와 코스의 내리막에서 가속을 붙이는 것이 중요한데, 바로 가속을 최대화하기 위해 몸무게 관리에 돌입했던 것이다. 그리고 지난 2014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올림픽에 첫 도전장을 냈던 그는 당시 16위에 오르며 가능성을 확인했다. 이후 2015년엔 세계선수권에서 8위를 기록했다.

불모지의 새내기에서 최강자로 거듭난 윤성빈
 
 윤성빈의 레이스 모습

윤성빈의 레이스 모습 ⓒ 대한봅슬레익스켈레톤연맹


윤성빈이 본격적으로 주목받는 신예가 된 것은 지난 시즌 후반부에 접어들면서였다. 시즌초반 독일 알텐베르크에서 열렸던 1차 월드컵에선 코스 적응에 애를 먹으며 12위로 출발했다. 그러나 3차 월드컵에서 놀라운 선전으로 6차 대회까지 네 개 대회에서 모두 메달을 획득했다. 당시 그가 획득했던 메달은 은메달 2개, 동메달 2개.

그리고 운명의 7차 대회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세계랭킹 1위인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를 꺾고, 신인 윤성빈이 금메달을 차지했다. 한국 스켈레톤 역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목에 걸던 순간이었다. 윤성빈은 시즌 마지막 대회였던 2016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은메달을 획득하며 값진 마무리를 했고 세계랭킹 2위로 뛰어올랐다. 지난 시즌은 그야말로 윤성빈에게 선수 인생 최고의 순간이었다.
 
윤성빈은 이번 시즌을 앞두고 평창에서 한 달가량 실전 훈련에 매진했다. 월드컵 개막 전 최대한 실전 감각을 끌어올려 시즌 초반부터 꾸준한 성적을 내기 위해서였다. 그의 노력은 곧바로 월드컵 1차 대회부터 빛을 냈다. 첫 대회에서 그는 금메달을 차지했다. 이후 그는 2차 대회에서도 동메달을 따내며 두 대회 연속으로 시상대에 섰다. 이후 유럽으로 장소를 옮긴 뒤 3, 4차 대회에선 모두 5위를 기록하며, 이젠 엄연한 톱5 선수로 자리매김 했다.
 
여전한 치열한 경쟁, 평창 트랙 적응이 최대 변수

스켈레톤은 기록 싸움이다. 레이스 도중 작은 부딪힘이나 실수도 용납하지 않을만큼 정확하면서도 기계 같은 몸놀림이 필수다. 또한 스켈레톤은 타 종목에 보다 홈 이점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코스에 대해 기본적인 정보를 알고 있어야 되는 것은 물론이고 최대한 여러 번 타보면서 몸에 익숙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다가오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은 윤성빈이 최정상에 설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윤성빈 역시 이 점에 대해 잘 알고 있다. 그는 3월 평창 테스트이벤트로 열리는 월드컵 8차 대회를 마친 후엔, 세계선수권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평창에서 트랙 훈련에 매진할 예정이다. 평창 올림픽에서 성공 열쇠도 바로 여기에 있다.
 
현재 남자 스켈레톤계는 '백전노장'이자 스켈레톤의 전설로 불리는 두쿠르스 형제, 소치 동계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땄던 알렉산더 트렉티야코프 등이 윤성빈과 치열한 경합을 벌이고 있다. 이 가운데 주목해야 할 선수는 단연 두쿠르스 형제 중 동생인 마르틴스 두쿠르스다. 그는 6년 연속 월드컵 랭킹 1위, 세계선수권 4회 우승 등 스켈레톤 국제대회를 모두 휩쓸었다. 그런데 단 한 가지 올림픽 금메달은 이루지 못했다. 두쿠르스는 2010년 벤쿠버 대회와 2014년 소치 대회에서 모두 은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그렇기에 이번 평창은 두쿠르스에게 있어 꿈을 이룰 수 있는 거의 마지막 기회다.

윤성빈 보다 열 살이나 많은 그는 누구보다 스켈레톤에 대해 잘 아는 베테랑이다. 올 시즌 행보만 보더라도 그러하다. 북미 지역에서 열렸던 1, 2차 월드컵 대회에서 그는 레이스 도중 썰매가 전복되는 등 예기치 못한 사고로 불운을 겪었다. 일각에선 그의 시대가 끝나는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 나왔다. 하지만 유럽으로 옮겨간 3차 월드컵부터 그는 다시 날아올랐다. 특히 4차 월드컵에선 형제가 나란히 금·은메달을 독식하며 대반전을 이뤄냈다.
 
러시아의 알렉산더 트레티아코프는 소치에서 금메달을 따며 스켈레톤계의 화제의 인물이 됐다. 소치 이후에도 꾸준히 월드컵과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그런데 올 시즌 그에게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세계 도핑계를 충격에 빠뜨린 멕라렌 보고서가 발표된 이후 러시아 선수들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다시 시작됐다. 러시아 선수 가운데 지난 소치에서 메달을 땄던 선수 중 28명의 도핑 샘플이 훼손된 흔적이 있거나 바꿔치기한 시도가 있었던 정황이 포착됐다.

그의 이름도 거론됐다. 결국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IBSF)은 그에게 국제대회 출전 금지라는 임시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이를 다시 해제했고 트레티아코프는 지난주 4차 월드컵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각 스포츠 연맹에 28명의 선수에 대한 도핑 의심 통보가 이뤄진 것으로 확인되면서, 트레티아코프에게 다시 그림자가 드리워지게 됐다.
 
윤성빈은 스켈레톤에 입문한지 불과 5년 차 밖에 되지 않은 그야말로 새내기 중의 새내기이다. 두쿠르스 형제는 2001년부터 시작해 올해로 무려 17년 경력을 자랑한다. 윤성빈은 스켈레톤에 입문 전엔 그저 평범한 고등학생일 뿐이지만 이젠 어엿한 스켈레톤계의 간판이 됐다. 한국 썰매는 평창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가 생기기 전까진 그저 맨바닥에서 훈련을 하거나 북미 지역 등으로 전지훈련을 떠나야만 했던 찬밥신세였다. 그런데  불과 몇 년 사이 윤성빈의 활약으로 스켈레톤 세계 최강국 가운데 하나가 됐다.
 
한국 스포츠는 아무 것도 없는 황무지에서 세계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타들이 유독 많다. 동계스포츠에선 피겨스케이팅의 김연아가 그랬고, 하계종목에는 배구의 김연경, 수영의 박태환 등이 그러하다. 윤성빈은 평창 올림픽에서 이들의 기적을 이어나갈 또 하나의 원석이다.


☞ 관점이 있는 스포츠 뉴스, '오마이스포츠' 페이스북 바로가기

윤성빈 스켈레톤 평창동계올림픽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동계스포츠와 스포츠외교 분야를 취재하는 박영진입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