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의 한 장면. 오랫동안 이어진 시리즈가 드디어 그 대망의 막을 내린다.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의 한 장면. 오랫동안 이어진 시리즈가 드디어 그 대망의 막을 내린다. ⓒ UPI 코리아


엄브렐라 사가 개발한 좀비 바이러스 'T-바이러스'가 전 세계에 퍼진 지 10여 년. 이제 남은 인간은 수천 명에 불과하다. 폐허가 된 워싱턴DC에서 살아남은 앨리스(밀라 요보비치 분)는 엄브렐라의 AI(인공지능) 레드퀸에게 "48시간 후면 모든 인류가 멸망할 것"이란 경고를 듣는다. 앨리스는 "인류를 구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레드퀸의 말에 반신반의 하면서도 T-바이러스의 백신이 있다는 라쿤 시티로 향한다. 하지만 이를 저지하려는 닥터 아이삭스(이아인 글렌 분)가 좀비들을 이끌어 앨리스를 방해하고, 앨리스는 새로운 동료들과 함께 사투를 벌이며 엄브렐라의 중추 하이브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다.

지난 2002년 시작된 영화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가 15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자그마치 여섯 번째 작품인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을 통해서다. 오롯이 여전사 앨리스의 서사였던 시리즈의 마지막에서도 앨리스는 건재하다. 아니, 더욱 강해졌다. 어떤 싸움에서도 살아남아온 그는 멋지면서도 아름답고 인간적이기까지 한 영웅으로 성장했다. "달리고 죽이는 게 내 삶의 전부인 것 같다"는 극중 앨리스의 대사는 그의 정체성을 한 마디로 대변하는 말이다. 그는 '여성'의 굴레를 벗어 던진 영웅이 됐다. 그리고 이는 스물다섯 나이에 앨리스가 된 뒤 이제 막 불혹을 지나온 배우 밀라 요보비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은 시리즈 특유의 쾌감을 이번에도 보여준다.

<레지던트 이블: 파멸의 날>은 시리즈 특유의 쾌감을 이번에도 보여준다. ⓒ UPI 코리아


전작에 비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영화 속 좀비들의 모습은 이 영화에 대한 기대를 충족시키기에 충분하다. 특히 앨리스가 익룡을 연상시키는 거대 비행(飛行) 좀비와 일대일 대결을 펼치는 영화 초반 시퀸스는 압도적이다. 여기에 전작에서도 선보인 바 있는 개 형태의 좀비나 인간을 개조해 만든 살상 좀비 등 차례로 등장해 앨리스를 위협하는 존재들은 강한 몰입도와 높은 밀도로 영화를 채운다.

영화 중반 앨리스 일행이 고층 빌딩을 보루로 수천, 수만에 이르는 좀비들과 맞서는 장면은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를 규정하는 '시그니처 시퀀스'라 할 만하다. 극적이고도 스펙타클하게 그려진 이 장면은 여느 사극 블록버스터에 등장하는 대규모 공성전(攻城戰)이 연상될 정도다. 끝도 없이 밀려오는 좀비들에 쫓기던 앨리스가 이들을 일거에 쓸어버리는 지점에서는 시리즈 특유의 반가운 쾌감이 느껴진다.

빠른 템포로 이어지는 서사는 오락성을 중심에 둔 액션물로서 이 영화의 주된 동력이다. 워싱턴DC를 시작으로 허허벌판을 가르는 수백 킬로미터의 도로를 거쳐 라쿤 시티에 이르기까지 앨리스의 여정을 그린 편집은 특히 인상적이다. 좀비와 엄브렐라 사에 동시에 쫓기는 그가 처절한 전투를 벌이는 와중에 정신을 잃고, 몇 시간 뒤 새로운 공간에서 깨어나는 장면들은 군더더기 없이 효율적으로 서사를 압축한다. 여기에 하이브 내부 곳곳에서 앨리스를 위협하는 함정들 또한 다분히 극적 효과를 위한 장치로 기능하며 시리즈 특유의 연출 스타일을 능숙하게 답습한다.

 남성에게 의존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들의 분투도 의미심장하다.

남성에게 의존적이지 않은 여성 캐릭터들의 분투도 의미심장하다. ⓒ UPI 코리아


내내 여성 캐릭터들을 주도적으로 그리면서도 그들이 지닌 여성성을 거의 완전히 배제한 영화의 태도는 의미가 크다. 적과 동료를 막론하고 (주인공 앨리스는 차치하더라도) 극 중 여성 캐릭터 누구도 남성에게 귀속되거나 의존하지 않는다. 특히 난민 캠프의 클레어(알리 라터 분)와 애비게일(루비 로즈 분)이 남성 캐릭들을 제치고 일선에서 앨리스를 돕는 에피소드는 남성 중심적인 할리우드 영화계 속 혁명으로까지 비친다. 시리즈 2편에 등장했던 질(시에나 길로리 분)이나 5편의 에이다 웡(리빙빙 분)이 다분히 섹스어필한 의상으로 스스로를 대상화한 점을 떠올리면, 이들에서는 페미니즘 전사의 모습마저 엿보인다.

오는 25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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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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