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아시아챔피언스리그(ACL) 우승팀 전북 현대가 '심판 매수 사건'으로 결국 2017시즌 ACL 출전권을 박탈당했다. AFC 독립기구인 출전관리기구(Entry Control Body)는 18일 전북의 ACL 출전 자격 여부를 심의한 끝에 최종적으로 출전권을 박탈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발표했다.

전북은 지난 2013년 구단 스카우트가 심판에게 뒷돈을 준 사실이 작년에 적발되어 K리그 승점 9점 삭감 및 제재금 1억 원의 징계를 받았다. 당시에도 사안의 중대성에 비하여 징계 수위가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승점 감점이 빌미가 되어 전북은 지난해 서울에 역전을 허용하며 다잡은 K리그 우승을 놓친 바 있다.

당시 전북에 AFC 차원의 징계는 없었다. 전북은 챔피언스리그에서는 무려 10년 만에 정상에 오르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호주 등 해외 구단과 언론에서는 이미 계속해서 전북의 ACL 출전 자격에 의문을 제기하며 AFC의 징계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AFC 규정에 따르면 승부 조작이나 그에 준하는 부정행위에 연루된 구단은 자동으로 1년간 ACL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은 K리그에 배정된 ACL 출전권 자체가 줄어든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AFC는 전북을 대신해 제주 유나이티드를 3번 시드에 배정했다. 리그 4위 울산 현대는 플레이오프를 통해 본선 진출 기회를 잡게 됐다.

스포츠중재재판소에 항소? 긁어 부스럼 만들지 말라

 전북현대 이철근 단장과 최강희 감독(왼쪽부터)이 24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구단 관계자의 심판 매수과 관련한 사과 회견을 하고 있다.

전북현대 이철근 단장과 최강희 감독(왼쪽부터)이 지난해 5월 24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구단 관계자의 심판 매수과 관련한 사과 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전북은 스포츠중재재판소(CAS)를 통하여 항소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여론의 반응은 대체로 부정적이다. 전북은 K리그 징계 당시에도 심판 매수는 마지못해 인정했지만 스카우트의 개인적인 일탈 행위로 떠넘기고 구단과는 무관하다고 강조한 바 있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꼬리자르기식 변명이 국내에서는 통했지만 객관적인 입장인 CAS에서도 먹힐지는 미지수다.

설사 CAS가 전북의 손을 들어주더라도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2017 ACL 대회 엔트리 제출 전에 참가팀들과 일정을 다시 재조정하려면 늦어도 이달 내에 항소가 받아들여져야 한다. 한번 승계한 ACL 출전권을 또다시 회수하려면 제주-울산의 입장도 난감해진다. AFC가 전북의 심판매수 사건을 심의하겠다고 나설 때만 해도 '시간도 한참 걸릴텐데 설마 출전권 박탈까지 가겠어'라며 느긋하게 여유를 부리던 것이 이제는 역으로 자승자박이 되어 전북의 목을 조르고 있는 셈이다.

ACL 출전권 박탈은 전북은 물론이고 K리그에도 씻을 수 없는 오점으로 남게 됐다. K리그 구단이 부정행위로 AFC 주관 대회 출전권이 박탈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아시아 축구계의 텃세를 탓하기 전에, 애초에 안이한 일처리로 사건을 적당히 덮는 데만 급급했던 전북 구단과 프로연맹의 도덕 불감증이 사태를 이 지경까지 악화시킨 근본 원인이다.

국내 축구팬들에게는 씁쓸한 일이지만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자면 결국 '뿌린대로 거뒀다'는 평가를 내릴 수밖에 없는 사건이다. ECB의 징계 수준은 사실 연맹에서 먼저 내렸어야 할 결정이었다. 많은 팬들은 이 사건이 처음 드러났을 때부터 엄정한 조사와 단호한 처벌을 축구계에 촉구해왔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2부리그 강등 정도의 중징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전북의 리그 우승과 내년 ACL 출전자격을 박탈할 정도의 확실한 승점 감점은 이뤄졌어야 했다. 그랬다면 애초에 남의 손을 빌려 K리그의 권리가 박탈당하는 망신도 당하지 않았을 것이고, K리그가 어떤 형태의 승부조작이나 부정행위에 대해서도 단호하고 깨끗한 리그라는 인식을 국제 축구계에 심어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연맹은 형평성이라는 핑계에 갇혀 대기업 구단의 눈치만 보다가 일벌백계를 내리지 못하고 시늉뿐인 징계에 그쳤다. 전북은 결과적으로 리그 우승을 놓치기는 했지만 마지막까지 서울과 치열한 우승경쟁을 펼쳤다. 사실상 면죄부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결정이었다. 축구해설위원인 이영표는 이를 두고 '외부에서 보기에 K리그가 승부조작하기에 좋은 리그처럼 느끼게 됐다'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피해자 코스프레는 그만, 구체적 혁신책 내놓아야

 전북현대 응원단이 24일 오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멜버른과 가진 아시아챔피언스 리그 16강전의 2-1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전북 현대 응원단. ⓒ 연합뉴스


심지어 전북 구단의 무책임하고 이기적인 행보는 연맹의 징계가 내려진 이후에 더욱 노골적으로 변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해당 스카우트의 개인적 일탈이고 애초에 구단이 잘못한 일이 없다고 주장하니, 문제점 개선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혁신책은 지금까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또한 문제가 처음 공론화되었을 때만 해도 '책임을 지겠다'고 공언했하던 전북 수뇌부는 지금까지 모르쇠로만 일관하고 있을 뿐 아무도 책임진 이가 없다. 심지어 최강희 감독은 ACL 우승 뒤에는 '난 중국에 갈 수도 있었는데 안갔다', '선수들도 피해자'라는 등의 무책임한 발언을 내놨다.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하며 사건의 본질을 호도하려는 본색을 드러낸 것이다. 미디어들도 K리그의 리딩클럽 이미지가 강하던 전북을 적극적으로 비판하기보다는 외적인 성공만을 미화하는 데 급급했다.

K리그와 전북 구단이 지금이라도 해야 할 일은 CAS 항소 등으로 또다시 어설픈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는 게 아니라 이번 사태를 쓰디쓴 교훈으로 삼아 강도 높은 혁신에 돌입하는 것이다. 전북이 진정으로 K리그를 선도하는 구단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부터가 더 중요하다. 전북이 저지른 잘못의 무게에 비하면 ACL 출전권 박탈 정도는 오히려 가벼운 징계에 불과하다.

전북 수뇌부는 더 이상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무엇을 어떻게  책임질지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북이 앞으로 몇 개의 우승컵을 더 들어올리든 이 사건은 영원히 K리그의 수치이자 오점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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