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받는 금액이 50만원밖에 되지 않는 연극 단원들이 있다. 또한, 크게 돈이 되지 않는 독립영화를 틀어주는 극장들도 있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의 부흥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지원금은 사막의 오아시스와도 같다. 큰 돈은 아니라고 해도 지원금을 통해 문화예술에 집중할 수 있는 것이다.

어느 날, 이들에 대한 지원금이 끊기기 시작했다. 사업이 갑자기 사라지기도 하고, 포기를 종용 받기도 했다. 이유를 찾아 되돌아보니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야당의 인사를 지지하는 발언을 했거나 세월호 참사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일들이 떠올랐다.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행동을 했다는 이유. 그것이 문화예술 활동이 어려워진 이유였다.

제 5공화국 시대의 과거 이야기가 아니다. 2017년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최근 뜨거운 감자인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많은 사람들을 경악시켰다,

문화융성 하겠다더니 블랙리스트 만든 정부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융성을 통해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말로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그녀의 말과 다르게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검열과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융성을 통해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어가겠다는 말로 포부를 밝혔다. 그러나 그녀의 말과 다르게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검열과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 MBC


박근혜 대통령은 문화융성을 통해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그의 말과 다르게 많은 문화예술인들은 검열과 탄압을 받기 시작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 말은 '부림사건'을 토대로 제작된 영화 <변호인>에도 나온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이기도 한 박정희 대통령 시절, 정치적인 고문, 조작 사건을 다룬 이 영화는 제작할 때 큰 부담이 있었다고 한다. 위더스 필름의 대표 최재원씨는 영화 원본이 사라질 것을 걱정해 복사본들을 만들어 숨겨두었다고 한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가 제작한 <밀정>은 송강호, 이병헌 등 이름 있는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으나 <변호인>의 제작자가 만든 영화라는 이유로 지원금을 받을 수 없었다. 국가가 조성한 '모태펀드'의 지원금이 영화 총 제작비의 40% 정도의 규모라는 것을 감안할 때, 상당한 부담이 됐을 것이다.

정부의 '블랙리스트'로 인한 탄압은 영화계뿐만 아니라 장애인들을 위한 활동을 하는 단체에도 있었다. 제주장애인인권포럼 대표인 고현수씨는 "이 사업이 왜 정치적인 탄압을 받아야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나로 인해 생긴 문제였기 때문에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여러 가지 감정이 복합되었다"라고 말했다. 거동이 불편한 중증 장애인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 풍물, 음악, 영상 등의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해왔다는 그는 4년 전 문재인 후보를 지지했다는 이유로 지원이 끊기는 경험을 해야만 했다.

좌파 문예지로 낙인찍힌 곳도 있다. 바로 창비와 문학동네다. 세월호 참사 이후 소설가, 시인, 사회과학자들에게 청탁해서 관련 글을 실었던 것이 문제였다. 2014년 정부 지원 우수 도서로 25권이 선정되었던 것과 다르게 2015년에는 단 5권만이 선정되었다. 정부 지원 우수 도서 중에 세월호 관련 서적은 전무하다. 정부의 안전 시스템 부재를 적나라하게 느낄 수 있었던 세월호 사건. 이는 마치 금기어처럼 관련된 이들을 검열에 이르게 만들었다.

문화를 도구로 사용하려는 정부, 민주주의는 어디로?

 다양한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부산영화제’ 이 곳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다이빙벨 투입 여부를 두고 있었던 논란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이 상영됐다. 이후, 영화진흥위원회는 부산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을 40% 삭감했다. 이를 두고 정치적인 보복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다양한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부산영화제’ 이 곳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다이빙벨 투입 여부를 두고 있었던 논란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이 상영됐다. 이후, 영화진흥위원회는 부산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을 40% 삭감했다. 이를 두고 정치적인 보복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 MBC


입맛에 맞는 것들만 허용하겠다는 정부의 오만한 태도는 계속 되었다. 다양한 영화들을 접할 수 있는 '부산영화제' 이 곳에서 세월호 참사 당시 다이빙벨 투입 여부를 두고 있었던 논란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이 상영됐다. 이후, 영화진흥위원회는 부산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을 40% 삭감했다. 이를 두고 정치적인 보복이 아니냐는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다.

동의대 영화학과 김이석 교수는 "이 모든 것들이 반정부적인 혹은 마음에 들지 않는 영화들이 관객을 만날 기회 자체를 원천봉쇄 해버려야겠다는"는 생각이라고 말하며 "굉장히 위험한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에 그럴 수도 있겠다고 넘어가서는 안 되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자신들의 편만 남기려는 것일까. 정부는 조금이라도 자신들이 원하는 방향과 다른 문화예술인에 대해 '블랙리스트'라는 것을 작성하고 지원금을 없애면서 말살하려고 하고 있었다. 경제부흥과 국민 행복 그리고 문화 융성을 통해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겠다는 포부와는 전혀 반대되는 행동이다.

심지어는 독립, 예술 영화 전용관에 대해 지원해주던 것을 폐지하고 영진위에서 선정한 작품만에 대해서만 상영 횟수에 따라 지원해주는 정책을 시행하기 시작했다. 한마디로 정부가 정해주는 영화만 상영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여러 가지 독립영화 등을 상용하면서 다양한 가치를 느낄 수 있었던 독립, 예술 영화 전용관이 생존을 위협 받게 된 것이다.

이는 다양성이 존중되어야할 오늘 날의 사회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오로지 정부에게 호의적인 작품들만 국민들을 만날 수 있겠다는 의지. 문화예술을 정부의 이미지를 긍정적으로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는 태도는 역사적인 오점을 숨기며 거짓 애국만을 강요하던 박근혜 정부의 모습과도 일맥상통한다. 결국은 국민들을 대변하고 국민들을 위해 국정을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정부를 순순히 섬기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는 단지, 특정 문화예술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대학 사회 안에서도 정부의 정치적인 탄압은 있었다. 학내 구성원들의 결정을 통해 추천된 총장에 대해 아무런 이유 없이 임용이 되지 않는 경우들이 여러 대학에서 있었다. 여기서도 이유는 하나였다. 야당과 관련 되어 있거나 정치적으로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았던 것. 대학뿐일까. 문화예술, 대학사회, 기업 등 수많은 곳에서 정부의 '블랙리스트'는 밝혀지지 않았을 뿐 존재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자신들에게 충성하는 사람들만 살아남게 하겠다는 정부의 태도는 여러 곳에서 확인되고 있기 때문이다. 국민들을 마음대로 하겠다는 오만한 태도. 그것이 반영된 것이 바로 '블랙리스트'이다.

<PD수첩>과의 인터뷰에서 진중권 교수는 말한다.

"의견이 통일되어 있는 나라보다 다양한 의견들이 충돌하는 나라가 혼란스러워 보일지라도 훨씬 더 유연하고 강력한 체제라는 믿음. 그것이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이다."

그렇다. 다양성이 존중되고 어울릴 수 있는 나라. 그것이 민주주의의 나라다. 국민을 통제하겠다는 '블랙리스트'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 적어도 정부가 민주주의를 기억한다면.

블랙리스트 문화 예술 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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