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시대>의 한 장면. 답을 내려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다.

<사랑의 시대>의 한 장면. 답을 내려주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영화이다. ⓒ 찬란


대학 교수 에릭(율리히 톰센 분)과 뉴스 앵커 안나(트린 디어홈 분) 부부, 딸 프레아(마샤 소피 발스트룀 한센 분)는 남부럽지 않은 화목한 가족이다. 어느 날 선친으로부터 대저택을 상속받은 에릭 부부는 집을 공동 주택으로 활용하기로 결정하고 친구 올레, 디테와 스테펜 가족 등 총 열 명의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를 꾸린다. 하지만 공동체 내에 체계가 잡혀갈 즈음 에릭이 자신의 학생 엠마(헬렌 레인가르드 뉴먼 분)와 외도를 저지르면서 부부 사이에 균열이 발생하고, 안나는 엠마를 공동체에 받아들여 함께 생활하자는 파격 제안을 한다.

영화 <사랑의 시대>는 확장된 가족 공동체, 다시 말해 '가족 연합' 개념의 셰어하우스를 다루는 작품이다. 단순히 주거 공간을 공유하는 관계라고 하기에는 친밀하게 연대해 있고, 가족이라고 부르기엔 서로에 대한 권리나 의무, 책임이 제한적인 작은 사회. 영화가 그리는 건 바로 이 공동체 안에서 불거지는 에릭과 안나의 갈등, 그리고 이를 해결하는 과정이다. 영화는 구성원들의 공익과 개인의 감정이 맞물리며 벌어지는 서사를 통해 가족의 존재 의미와 그 역할에 대해 적지 않은 시사점을 남긴다.

 이 영화는 새드 엔딩도 해피 엔딩도 아닌 채 끝이 난다.

이 영화는 새드 엔딩도 해피 엔딩도 아닌 채 끝이 난다. ⓒ 찬란


애초에 공동체 구성을 주도한 안나가 되레 공동체 시스템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되는 전개는 영화에서 특히 인상적인 지점이다. 남편 에릭의 외도를 "당신에게는 자기 감정을 따를 권리가 있다"며 받아들이고 "누구와도 함께 살 수 있다"며 엠마를 집에 들인 안나의 에피소드들은 특히 그렇다. 그가 남편을 곁에 두고서도 엠마의 존재로 인해 자존감을 잃고, 왁자지껄한 공동체 안에서 홀로 벽을 쌓으며 타인에게 날을 세우는 장면들은 이상과 현실 사이의 괴리를 뼈아프게 조명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애정어린 시선으로 공동체를 바라보는 영화의 태도는 신기할 정도다. 아내를 잃은 올레와 비정규직을 전전하는 알론에게 있어 공동체는 안정과 유대감을 얻을 수 있는 안식처고, 디테와 스테펜 부부는 공동체가 처한 문제들을 이성적인 태도로 대하며 나름 합리적인 방안들을 이끌어낸다. 정기적인 회의를 통해 구성원들이 안건을 제시하고, 토론과 다수결 투표를 거치는 과정에서는 일견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추구하는 공리주의 원칙마저 느껴진다. 특히 부모의 결별 위기에 공동체를 통해 위안받는 프레아, 심장병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온 가족의 사랑을 받는 여섯 살배기 빌라스의 에피소드는 가슴을 크게 울린다. 그렇게 <사랑의 시대>는 결코 혼자이고 싶지 않은 인간 고유의 '무리짓기' 습성이 지닌 가치에 대해 역설한다.

 사랑이 언젠가 끝나더라도 공동체는 언제까지고 지속되지 않을까.

사랑이 언젠가 끝나더라도 공동체는 언제까지고 지속되지 않을까. ⓒ 찬란


극 중 안나를 연기한 트린 디어홈의 심도 깊은 내면 연기는 영화의 정점이다. 이 작품을 통해 덴마크 배우 최초로 베를린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그의 무게는 다른 모든 요소를 압도할 정도다. 이번 영화에서 프레아 역으로 스크린 데뷔를 치른 마샤 소피 발스트룀 한센 또한 많지 않은 대사와 출연 비중에도 강한 존재감을 남긴다. 첫 연기 도전이란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선 굵은 연기에서는 사춘기 소녀의 복합적 감정이 그대로 느껴진다.

첫 장편 <셀레브레이션>(1998)으로 칸영화제 심사위원상을 수상하며 명성을 얻은 토마스 빈터베르그 감독이 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았다. "실제 일곱 살 때부터 열아홉살 때까지 공동체 생활을 경험했다"는 그는 당시 자신의 경험과 감정을 모티브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 "부모님이 이혼하면서 '공동체에서 나가자'고 했지만 나는 머물기로 결정했다"는 그의 과거는 영화 속 프레아가 처한 상황과도 꼭 닮았다. 오는 2월 2일 개봉.

사랑의시대 공동체 셰어하우스 토마스빈터베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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