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명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어쌔신 크리드>의 포스터 및 스틸 이미지

비디오게임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어쌔신 크리드>가 영화로 재탄생했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개별 작품에서 호불호가 갈릴 수는 있어도,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가 지난 10여 년 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비디오 게임 시리즈라는 사실은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더불어 UBISOFT라는 대형 퍼블리셔의 자본력으로만 우악스럽게 일구어낸 게 아니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십자군 전쟁 시기의 예루살렘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런던에 이르기까지, 현대적인 시각으로 옛 도심을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시리즈 특유의 문법은 분명 비디오 게임만이 해낼 수 있는 블록버스터의 방향일 것이다.

물론 이 프랜차이즈가 다루는 역사 해석이 완전하다고 보긴 힘들다. 가령 역사 속 모든 사건이 초고대 문명의 산물을 두고 일어난 암살단과 템플기사단의 싸움이었다거나, 루스벨트와 처칠, 히틀러가 모두 한패였다는 게임 속의 주장은 신선하기보단 철 지난 음모론자들의 망상에 가까울 뿐이다. 그렇지만 게임 그 자체의 작품성을 부정할 수 있는 요소는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설정일 뿐, 게임의 매력은 역사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캐릭터들의 현란한 파쿠르 액션과 신념에 대한 이야기였으니까.

<어쌔신 크리드>, 비디오 게임 기반 영화화에 도전하다

 동명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어쌔신 크리드>의 포스터 및 스틸 이미지

액션만큼은 신선하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비디오 게임에서 얻은 감동을 스크린으로 끌어내는 건 도전적인 일이었다. 전례로 봤을 때 대부분의 게임 원작 기반 영화들은 영화로서 실패했으니까. 하지만 영화화 주체에 <맥베스>로 검증된 저스틴 커젤 감독과, 그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마이클 패스밴더와 마리옹 코티아르가 있었고, 제작 과정을 UBISOFT가 직접 감수하여 작품이 게임 세계관의 일부가 된다고 공언했다. 때문에 <어쌔신 크리드>는 더할 나위 없는 팬서비스이자, 게임 원작 기반 영화들이 흔히 겪는 흥행과 비평의 실패라는 징크스를 이겨낼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으로 보였다.

<어쌔신 크리드>는 두 가지의 삶, 그러니까 칼럼 린치라는 인물과 그의 조상인 아귈라 데 네라의 행적을 교차해서 보여준다. 정확히 말하면 칼럼 린치가 애니머스라는 기계를 통해 조상의 삶을 들여다보고, 그들이 600년이 넘는 간극에서 템플기사단이라는 집단과 어떻게 맞서는지 평행적으로 비교한다. 푸른색과 주황색으로 대비되는 21세기 현대와 15세기 말 스페인의 풍경은 저스틴 커젤의 연출력에 의해 압도될 정도며, 게임 속에서만 벌어지던 액션이 스크린으로 완벽하게 재구현 된 모습은, 팬이라면 신선하게 다가올 것이다.

원작과 각색 사이에서 갈피를 잃다

 동명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어쌔신 크리드>의 포스터 및 스틸 이미지

수많은 게임 원작 영화들의 흑역사를, 이 작품도 이어간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문제는 독립된 영화로서 <어쌔신 크리드>가 성립 가능하냐는 것이다. 우웨 볼의 졸작을 제외하더라도, 수많은 게임 원작 기반 영화들은 이 부분에서 많은 실패를 경험했다. 이유는 크게 두 가지였다. 원작의 카타르시스를 이해하지 못했거나, 혹은 그것만 이해했거나. <어쌔신 크리드>의 문제는 둘 다였다. 영화는 원작의 인상에 집착한 나머지 이 시리즈가 10여 년 동안 본편과 미디어믹스 상품으로 쌓아 올린 방대한 세계관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했고, 캐릭터 구축마저 실패한다.

영화는 '에덴의 선악과'를 비롯한 암살단과 템플기사단의 유구한 투쟁을 세세하게 설명하는 대신, 칼럼 린치와 아귈라 데 네라의 이야기에 집중한다. 칼럼의 이야기는 비교적 자세하다. 그는 어릴 적 어머니의 죽음을 목격한 뒤 세상 속에서 숨어 살았고, 공식적으로 사형집행을 당한 뒤 템플기사단의 연구시설에 수용되었다. 칼럼이 작중 내내 염세적인 모습을 보이는 건 이해가 가능하다. 문제는 15세기의 암살자 아귈라다. 우리는 그가 약지를 절단하는 의식을 거치고 암살단에 가입했다는 것만 알 수 있을 뿐, 그가 어떤 마음으로 스스로를 조직의 대의에 바치게 되었는지 알지 못한다.

애니머스를 작동시키기 전에 소피아는 말한다. '과거를 엿보는 것 뿐이지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에요.' 애니머스는 템플기사단이 그토록 원하던 '에덴의 선악과'가 어디 있는지 밝혀내기 위한 도구였다. 칼럼에게는 암살자로서 각성시키는 과정의 일부였다. 그렇기에 애니머스 속 아귈라의 묘사는 영화의 가장 큰 약점이 된다. 칼럼은 현실 속에서 그의 환영을 보며 전투기술을 전수 받는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교차 편집으로 인해 일관성이 깨진 액션 시퀀스 속에서, 칼럼이 아귈라의 삶에 이입 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다. 애니머스를 통해 지켜본 아귈라는 내면도, 자기 갈등도 보이지 않는 전투기계 그 자체일 뿐이다. 그렇게 아귈라와 칼럼의 유대 관계는 지워진다. 다만 마이클 패스밴더와 마리옹 코티아르의 연기력이 빈약한 각본 속에서도 빛을 발한다는 사실만 확인된다.

팬의 입장에서도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는 모습

 동명 게임을 원작으로 삼은 영화 <어쌔신 크리드>의 포스터 및 스틸 이미지

원작 팬으로서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 (주)이십세기폭스코리아


원작 팬의 시선에서 <어쌔신 크리드>는 더욱 실망스럽게 다가온다. 칼럼 린치의 이야기는 원작의 주인공이었던 '데스몬드 마일즈'의 연대기와 흡사하다. 데스몬드 역시 칼럼처럼 암살단의 혈통을 이어받은 냉담자였고 앱스테르고에 의해 연구시설에 갇힌다. 그리고 '선악과'에 대한 비밀을 알게 되며 동지들과 함께 탈출한다. <어쌔신 크리드>가 세계관의 일부로서 기능하려고 했다면, 칼럼 린치는 그 연대기를 이어받거나, 혹은 그 연대기가 성립되는 세계관 내에서 다른 서사를 보여주어야 했다. 하지만 그렇지 않았다. 

원작의 연대기가 감히 완전무결하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애니머스를 매개로한 데스몬드의 조상들은 십자군 전쟁과 르네상스 시기의 지중해, 미국 독립전쟁이라는 역사적 현장 속에서 정체성에 따른 비극과 시대를 초월한 신념을 이야기해왔다. 그 이야기는 순전히 게임의 허구적 상상일 뿐이고, 그 이야기가 시대를 초월하는 심오한 고찰이라고 감히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당대를 살아간 인물들의 행적과 개연성이 성립되기에는 충분한 이야기였고, 역사적 격변기를 바라보는 개인으로서 시대를 고찰할 대리자가 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어쌔신 크리드>에서 그리는 15세기 스페인에는 시대상도 개인도 없었다. 단지 비디오 게임에서 투영 되었던 독수리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크게 멀지 않은 옛날, 전설적인 게임 개발자였던 존 카멕은 비디오 게임의 스토리를 포르노 필름에 비유했었다. 그렇지만 20년의 세월 속에서 발전한 기술력과 연출이론을 통해, 비디오 게임 그 자체가 예술로서 성립할 수 있냐는 논의를 나누는 시대에 오게 되었다. 그 물음은 아직까지 분명하게 결론나지 않았다. 다만 <어쌔신 크리드>를 통해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비디오 게임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과정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옮겨오는 것 보다 더욱 어려운 일이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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