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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한 혐의로 조윤선 전 문체부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한 혐의로 조윤선 전 문체부장관이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피의자 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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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특검 조사에서 밝혀지기를 기대합니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17일 특검 조사를 위해 출석하기 직전 언론을 향해 남긴 말이다. 그가 가리키는 '진실'이 자신의 죄를 인정하지 않기 위한 것인지, 그게 아니라면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인지 참으로 애매하고 부적절한 '워딩'이 아닐 수 없다.

한편으로 이해는 간다. 국회 '최순실 국정농단' 청문회에 어쩔 수 없이 끌려(?)나왔던 조 장관은 법조인인 남편에게 휴대폰 문자 메시지로 지령(?)을 전달 받으며 모호한 답으로 일관해 공분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나. 그건 이날 함께 특검에 출석한 김기춘 전 비서실장도 마찬가지였다. 청문회장에서 그는 블랙리스트의 존재 자체에 대해 "저는 모릅니다"로 일관한 바 있다.

그리고 17일 박영수 특검팀에 조사 차 출석한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장관은 각각 18일 오전 1시와 오전 6시에 귀가했다고 한다. 특검팀이 긴급체포보다 구속영장 청구 쪽으로 가닥을 잡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파다하다. 블랙리스트의 '몸통'에 해당하는 두 사람에 대한 수사가 종국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그 와중에, 김기춘 전 실장이 직접 문체부에 '세월호 참사' 관련 영화인 <다이빙벨>을 상영한 부산국제영화제의 예산을 삭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는 보도가 나왔다. 17일 SBS <8시 뉴스>를 통해서다.

파다했던 '청와대 입김설' 실제로 드러난 블랙리스트 파문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피의자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작성 주도한 혐의로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17일 오전 서울 강남구 대치동 특검사무실에 피의자신분으로 출석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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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이빙벨'이 상영됩니다. 세월호 참사 당시 정부의 대응을 비판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영화 상영 이후 당시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의 지시가 문체부에 하달됐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 예산을 전액 삭감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문체부는 영화제 예산을 담당하던 영화진흥위원회에 김 실장의 지시를 전달했고, 영진위는 격론 끝에 부분 삭감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김 실장은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김 실장은 재차 예산 전액 삭감을 지시했습니다. 당시 부산국제영화제를 제외한 5개 영화제에 대한 지원금은 증가했지만, 부산국제영화제 예산은 2014년 14억6천만 원에서 이듬해 8억 원으로 삭감됐습니다.

김 전 실장이 다이빙벨을 예로 들며 '문화예술계의 좌파적 책동에 전투적으로 대응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수첩에서 발견되기도 했습니다. 특검은 예산심의 규정이 있는데도 다이빙벨을 상영했다는 이유로 예산 삭감을 지시한 것이 김 전 실장의 직권남용을 입증할 가장 확실한 혐의로 보고 있습니다."

이미 이른바 '김영한 비망록'은 다수 법조인들로부터 청와대와 김기춘 전 실장의 혐의를 입증하는 '범죄 리스트'라고 인정(?)을 받고 있는 중이다. 청문회에 출석한 김 전 실장은 이 비망록에 대해 '김영한 전 수석의 의견도 반영돼 있고, 회의 석상에서 오간 이야기를 정리한 수준'이라 부정했지만, 그 비망록 속 어마어마한 지시 사항들을 고 김영한 수석이 홀로 작성하고 실행했으리라 믿는 이는 없지 않을까.

사실 예견된 참극이기도 했다. 이미 <다이빙벨>의 부산국제영화제 상영 논란이 최초로 일었던 2014년 9월부터 정치권의 개입설은 영화계 안에서도 파다했다. 당시에도 영화계 내부에서는 "요즘 청와대에서 직통으로 요구가 하명된다고 하더라"는 관측이 제기됐었다(관련 기사 : "서병수, 갑질 정도껏 해라"... 화난 영화인들, 일어났다).

그렇지 않고서야 서병수 부산시장과 새누리당 의원들이 일개 다큐멘터리 영화의 부산국제영화제의 상영 건에 대해 '좌파'운운하며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실행력'을 보일 이유가 없다.

그런 블랙코미디와 같은 일이 실제로 벌어졌고, 작금의 블랙리스트 사태로 비화된 것이다. 여야 정치권은 물론 법조인들까지 이 블랙리스트 작성과 실행이 얼마나 큰 국기문란 사태인지 입모아 지적하고 있다.

'적폐 5봉'에 블랙리스트 몸통들이 꼽힌 이유

 영화인들이 2014년 10월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앞에서 열린 <철저한 진상규명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영화인 1123인 선언>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영화인들, '세월호 가족들과 끝까지' 영화인들이 2014년 10월 3일 오후 부산 해운대구 우동 영화의전당 앞에서 열린 <철저한 진상규명이 보장된 세월호 특별법 제정 촉구 영화인 1123인 선언>에서 특별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 이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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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들은 자부심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자기가 최선을 다해 몇 년간 쓴 작품이, 작품집이 인정받을 줄 알았는데, 실제로 인정받았는데 아무 이유 없이 배제당한 뒤 이들이 가졌을 좌절감, 절망 이런 걸 생각해 보세요.

국가가 이게 할 일입니까? 국가가 작가들에게 이런 식으로 이유 없이 (지원) 배제하고 불이익을 주는 일을 지속적으로 했다는 것은 정말 무릎 끓고 사죄해도 용서받을 수 없는 나쁜 짓을 한 거예요." (도종환 더불어민주당 의원)

"그렇게 정권을 비판하는 문화예술을 옥죄기 시작한다면 헌법을 어기는 거죠. 그리고 정부가 보조금을 주는 것은 자기 정권을 비호한 사람들에게 보조금을 주는 게 아니라 국가를 위해서 세금을 낸 국민들의 세금을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정권을 지지, 옹호하는 사람들에게만 쓰라고 국민들이 세금 내는 거 아닙니다." (이혜훈 바른정당 의원)

"사실은 굉장히 중대한 헌법 위반입니다. 실제로 국가 인권위원회법에 차별을 정의하면서 그 중에 언급하고 있는 사유가 정치적 견해거든요. 정치적 견해에 따른 차별은 금지된다고 하고 있는데 이건 명백하게 정치적 의견에 따른 차별이니까 헌법 11조에서 말하는 평등권 침해도 되는 거죠. 이건 구석구석 안 위반된 게 없어서 사실 이 사안은 굉장히 중대한 사안이라고 봐야 합니다." (이준일 고려대 법학과 교수)

김기춘 전 실장과 조윤선 장관이 특검 조사를 받고 있던 17일 밤 방송된 MBC <PD수첩>과 인터뷰를 한 도종환, 이혜훈 의원과 이준일 교수는 예술인들의 자기 검열과 세금, 헌법적 위배 등 다방면에 걸쳐 블랙리스트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었다. 지난 16일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적폐 5봉'을 꼽으며 김 전 실장과 조 장관을 포함시킨 것도 이 블랙리스트의 폐악을 공감한데서 비롯됐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우병우 전 민정수석,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적폐 청산의 다섯 봉우리다. 이 5봉(峰)을 제대로 넘어서서 제대로 된 적폐청산을 할 수 있는 길을 마련해야 한다. 그동안 특검이 적폐의 둘레길을 걸어왔다면 이젠 적폐의 봉우리를 넘어야 할 때다."

'밥줄 끊긴' 문화예술인들, '블랙리스트' 손해배상청구 한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박근혜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 위원회 등으로 구성된 '박근혜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법률대응 모임' 관계자들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블랙리스트 소송 원고 모집'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과 박근혜퇴진과 시민정부 구성을 위한 예술행동 위원회 등으로 구성된 '박근혜정부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사태 법률대응 모임' 관계자들이 16일 오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블랙리스트 소송 원고 모집'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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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블랙리스트로 인해 '밥줄 끊길' 위기에 처한 문화예술인들이 한둘이 아니다. 사상과 헌법상의 문제이기에 앞서 청와대와 문체부가 벌인 이 참극은 문화예술인들의 생존을 위협하는 '먹고사니즘'의 문제라 할 수 있다.

<다이빙벨>을 포함해 세 편의 세월호 다큐멘터리를 배급하면서 청와대 내사설까지 돈 다큐 전문 배급사 시네마달은 현재까지도 심각한 경영의 위기를 호소하고 있다. <다이빙벨> 논란 이후 영화진흥위원회의 배급 지원 사원에서 줄줄이 탈락한 것도 경영 위기의 큰 몫을 차지한다. 김기춘 전 실장이 '밥줄을 끊은' 문화예술계의 단면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라 할 만하다. 그렇게 블랙리스트로 인해 피해를 입은 문화예술인들의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특검 수사와 언론 보도를 통하여 청와대, 국정원 등이 주도적으로 문화예술계 인사 1만여 명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한 사실이 드러나고 그로 인한 작품 활동 방해나 차별적 배제 등 구체적 피해 사례도 속속 밝혀지고 있습니다. 이는 국가기관이 권한을 남용함으로써 표현의 자유, 학문·예술의 자유와 인격권, 차별받지 않을 권리 등을 침해한 불법행위입니다.

국가와 책임자에게 법적 책임을 묻기 위하여 손해배상청구를 진행합니다. 본인이 블랙리스트에 올랐거나 올랐다고 추정되는 분, 그로 인하여 피해를 입은 분 중에서 민사소송 등 참여를 원하는 분은 아래와 같이 원고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특검팀에 김기춘 전 실장을 비롯해 블랙리스트 관련자들을 고발한 것도 문화예술인 단체들이었다. '블랙리스트 버스'를 조직해 세종시 문화체육부 앞에서 1박 2일간의 투쟁을 벌인 것도 문화예술인들이었다. 블랙리스트에 대한 그들의 분노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문화예술인들은 직접 국가와 관련 책임자들에게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오는 31일까지 원고 참가 동의서를 모집하고, 이후 집단 소송을 벌일 계획이다. 그러면서 조윤선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중이다.

특검 조사를 통해 "진실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는 조윤선 장관. 아무래도 조 장관이 말하는 진실과 문화예술인들과 국민들이 가리키는 진실은 같은 뜻이 아닌 듯하다. 그러나 분명히 진실은 밝혀지게 마련이다. 블랙리스트의 위중함을 인식하고 있는 특검팀과 문화예술인들의 결연한 의지로 이제는 밝혀질 것이고, 밝혀져야 한다. '유신 시대'와 다를 바 없이 '검열'과 '사찰'로 시계를 되돌린 박근혜 정부의 이 '문화융성' 정책에 철퇴를 내리고, 대한민국의 시계를 옳은 방향으로 돌려놓는 일의 시작이 여기에 달려 있다.


태그:#김기춘, #조윤선, #블랙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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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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