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국생명이 여자부에서 가장 먼저 승점 40점 고지를 밟으며 독주체제를 갖췄다.

박미희 감독이 이끄는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17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NH농협 2016-2017 V리그 여자부 4라운드 IBK기업은행 알토스와의 경기에서 세트스코어3-1(25-23,18-25,25-22,25-23)으로 승리했다. 1,2위 간의 중요한 경기에서 귀중한 승점 3점을 추가한 흥국생명은 기업은행과의 승점 차이를 5점으로 벌렸다(41-36).

사실 흥국생명은 이날 승리를 낙관하지 못했다. 상대가 최근 4경기에서 3승1패의 상승세를 타고 있는 기업은행이었고 주전 세터 조송화가 훈련 도중 왼 무릎 부상을 당하며 경기에 출전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흥국생명은 주전 세터가 빠진 경기에서 짜릿한 승리를 거뒀고 김재영이라는 든든한 백업세터를 발굴하는 겹경사를 누렸다.

 5년 만에 현역으로 돌아온 김재영의 복귀전 활약은 만점을 줘도 될 만큼 뛰어났다.

5년 만에 현역으로 돌아온 김재영의 복귀전 활약은 만점을 줘도 될 만큼 뛰어났다. ⓒ 한국배구연맹


2011년 은퇴 선언 후 호주유학, 5년 만의 현역 복귀

한유미(현대건설)와 한송이(GS칼텍스), 한은지(은퇴)와 한수지(KGC인삼공사), 이재영과 이다영(현대건설)처럼 김재영 역시 V리그의 자매 선수로 먼저 알려졌다. 김재영의 언니는 흥국생명의 맏언니이자 국가대표 센터 김수지. 김수지가 2005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 3순위 지명을 받고 현대건설에 입단했고 1년 후 김재영이 똑 같은 지명순위를 받고 현대건설에 입단하며 프로에서도 한솥밥을 먹게 됐다.

하지만 자매가 함께 코트를 누비는 장면은 그리 오래 보여주지 못했다. 김수지가 186cm의 큰 신장을 이용해 입단 2년 차부터 현대건설의 주전센터로 도약한 반면에 세터였던 김재영은 이숙자(KBSn스포츠 해설위원)라는 쟁쟁한 세터에 가려 벤치 신세를 면하지 못했다. 이숙자가 GS칼텍스로 이적한 2007-2008 시즌 15경기에 출전해 34세트를 소화한 것이 김재영의 가장 긴 출전시간이었다.

이후에도 김재영은 2010-2011 시즌까지 현대건설 소속으로 운동을 했지만 2008년에 입단한 염혜선에 가려 경기 출전 기회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2011년 김재영은 프로 입단 5년 만에 은퇴를 결심했다. 은퇴 후 호주로 유학을 떠난 김재영은 시드니에서 유아교육을 전공하며 평범한 학생으로서의 삶을 즐겼다. 클럽팀에서 배구를 하기도 했지만 친목이 목적이었을 뿐 전문 선수로 활동하진 않았다.

그렇게 선수로서의 삶을 접은 지 5년이 흐른 작년 4월, 김재영은 언니 김수지로부터 흥국생명의 테스트를 받아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흥국생명은 박미희 감독 부임 이후 조송화의 백업 세터가 마땅치 않아 고전한 바 있다. 지난 시즌에는 이수정 세터코치가 플레잉코치로 등록해 코트에 나서기도 했다. 김재영은 고민 끝에 받은 테스트를 통과하면서 흥국생명과 정식계약을 맺었다.

사실 김재영의 컴백 소식은 배구팬들 사이에서도 큰 화제가 되지 못했다. 은퇴한 지 5년이나 지났고 김수지의 친동생이라는 사실을 제외하면 김재영은 은퇴 전에도 무명에 가까운 선수였기 때문이다. 흥국생명에서도 주전세터 조송화와 수련 선수 출신의 세터 김도희에 이은 제3의 세터로 일종의 '보험용'으로 영입했을 뿐 김재영에게 그렇게 큰 기대를 걸진 않았다.

시즌 첫 주전 출전 경기에서 5득점 포함 맹활약

김재영은 이번 시즌 조송화에 밀려 단 3경기에 출전했다. 득점은 하나도 없었고 세트 시도도 단 17번에 불과했다. 아무리 백업세터라고 해도 이다영(현대건설)이나 이고은(기업은행)에 비하면 경기 출전 기회가 거의 없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이는 또 다른 백업 세터 김도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만큼 흥국생명은 조송화의 비중이 절대적인 팀이다.

그러던 지난 15일 조송화가 무릎 부상을 당했고 당장 17일 기업은행전 출전이 어렵다는 진단을 받았다. 박미희 감독은 고민 끝에 프로경험이 조금이라도 더 많은 김재영을 먼저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김재영으로서는 실질적인 국내 무대 복귀전이었던 셈이다. 자칫 부담을 느낄 수 있는 경기였지만 김재영은 안정된 경기운영과 기습적인 득점으로 흥국생명의 3-1 승리를 이끌었다.

사실 김재영의 토스는 낮고 빠른 토스를 선호하는 이재영과는 호흡이 잘 맞지 않았다. 이날 이재영은 26.9%의 공격 성공률로 14득점을 올리는데 그쳤다. 하지만 196cm의 장신 공격수 타비 러브와는 좋은 호흡을 과시했고 러브는 이날 34득점(3블로킹)을 올리는 맹활약을 펼쳤다. 김재영은 상대 블로킹을 속이기 위해 기교를 부리기 보다는 공을 최대한 손에 붙여 정확하고 높은 토스를 구사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날 김재영은 세터임에도 서브득점 2점과 블로킹 1점을 포함해 총 5득점을 올렸다. 이는 공격수인 김나희(4점)와 신연경(2점)보다도 높은 득점이었다. 특히 4세트 중반 승부처에서 박정아의 퀵오픈을 막아내는 블로킹은 단연 압권이었다. 김재영은 이날 팀에서 가장 많은 8개의 유효 블로킹(자기 팀의 수비로 연결된 블로킹)을 기록하기도 했다.

무릎 부상으로 17일 기업은행전에서 결장한 조송화에 대해 박미희 감독은 서두르지 않고 경기에 뛸 수 있는 몸상태가 될 수 있도록 치료에 힘을 쏟겠다고 밝혔다. 바꿔 말하면 앞으로 김재영이 경기에 나설 기회가 더 많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선두 다툼을 벌이고 있는 라이벌과의 경기를 승리로 이끈 김재영이 앞으로도 안정된 토스워크로 주전 세터가 없는 흥국생명을 무난하게 이끌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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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리그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김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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