넥센 히어로즈는 매년 주력 선수들이 이탈하는 악재 속에도 이를 슬기롭게 대처하는 팀으로 유명하다.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가 미국으로 진출했을 때는 약관의 유격수 김하성을 발굴했고 유한준(kt 위즈)이 FA자격을 얻어 팀을 떠난 후에는 임병욱, 박정음 같은 젊은 외야수들이 등장했다. 물론 '파괴의 신' 박병호(미네소타 트윈스)의 공백은 여전히 아쉽지만 4년 연속 홈런 및 타점왕의 공백은 하루 아침에 메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히어로즈의 위기 대처는 투수 쪽에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넥센은 작년 시즌이 끝나고 마무리 손승락이 롯데 자이언츠로, 에이스 앤디 밴 헤켄이 일본 세이부 라이온즈로 이적했고 한현희와 조상우는 나란히 팔꿈치 인대접합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무명의 사이드암 신재영이 등장해 깜짝 15승을 따냈고 이보근과 김세현이 각각 홀드왕과 세이브왕에 오르며 주력 선수들의 이탈에 따른 공백을 최소화했다.

이렇게 선수 육성과 발굴에 있어서 10개 구단 최고를 자랑하는 히어로즈도 유난히 약한 부분이 있다. 바로 좌완 투수의 발굴이다. 넥센은 강윤구를 시작으로 금민철, 박종윤 등을 주축 선수로 키우려 했지만 모두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시속 150km를 넘나드는 빠른 공을 던지는 김택형도 팔꿈치 통증으로 2017년 활약이 불투명하다. 결국 2017년에도 넥센 마운드의 왼쪽은 불펜투수로 성공적인 변신을 한 오주원(개명 전 오재영)에게 의존해야 한다.

짧았던 봄날, 2004년 신인왕에게 '꽃길'은 열리지 않았다

 약관의 10승 투수 오주원은 이후 11년 동안 단 16승을 보태는데 그쳤다.

약관의 10승 투수 오주원은 이후 11년 동안 단 16승을 보태는데 그쳤다. ⓒ 넥센 히어로즈


청원고(구 동대문상고)의 에이스로 활약하며 서울권의 1차 지명 후보로까지 꼽히던 오주원은 두산 베어스가 중앙고 유격수 김재호, LG트윈스가 배명고 투수 장진용을 선택하면서 2차 1라운드(전체 5순위)로 현대 유니콘스에 지명됐다. 당시 현대에서는 1차 지명에서 연고구단의 지명을 받지 못한 오주원의 자존심을 세워주기 위해 장진용(계약금 1억5000만원)보다 100만원이 더 많은 1억5100만원의 계약금을 오주원에게 안기기도 했다.

당돌한 루키의 자존심을 세워준 현대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오주원은 루키 시즌부터 풀타임 선발투수로 활약하며 10승 9패 평균자책점 3.99의 호성적으로 삼성 라이온즈의 중고신인 권오준(11승5패2세이브7홀드 3.23)을 제치고 신인왕에 올랐다. 루키 시즌부터 1군 풀타임 선발 투수와 두 자리 승수, 한국시리즈 우승에 신인왕까지. 그야말로 오주원의 앞날엔 꽃길이 펼쳐지는 듯 했다.

하지만 오주원의 봄날은 하룻밤의 꿈처럼 짧았다. 2005년 허리 통증을 참아가며 마운드에 오른 오주원은 1승11패 6.01로 극심한 2년 차 징크스를 겪었고 2006년엔 장원삼(삼성), 이현승(두산 베어스) 같은 좌완 투수들이 입단하면서 입지가 더욱 좁아졌다. 결국 오주원은 2006 시즌이 끝나고 상무에 입대하며 병역 의무를 해결했다.

전역 후 히어로즈로 복귀한 오주원은 불펜투수로 변신해 어려운 팀 사정에도 꾸준히 마운드에 올랐고 2010년 9홀드, 2011년 20홀드를 기록하며 히어로즈의 불펜을 이끌었다. 2012년에는 8월 팔꿈치 인대접합수술을 받으며 2013년 전반기까지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지만 2013년 후반기 선발로 변신해 4승 1홀드 2.40을 기록하며 오랜만에 선발투수로서 부활에 성공했다.

하지만 오주원은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2014년 5승 6패 6.45로 다시 부진에 빠졌고 2015년에는 고관절 부상으로 팀 합류가 늦어지면서 2패 9.33으로 최악의 시즌을 보냈다. 프로 입단 후 12년 동안 거둔 승수가 고작 26승. 입단 첫 해에 올린 10승을 빼면 11년 동안 16승을 올린 셈이다. 한 때 KBO리그를 이끌어갈 좌완 유망주였던 오주원은 좌완 투수가 부족한 넥센 마운드에서도 존재감이 없는 투수로 전락하고 말았다.

강직성 척추염 이겨내고 마운드 복귀해 55경기 등판

 오주원은 여전히 많은 야구팬들에게 오재영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오주원은 여전히 많은 야구팬들에게 오재영이라는 이름으로 더 익숙하다. ⓒ 넥센 히어로즈


2016 시즌을 앞두고 오주원의 고관절 통증 원인은 강직성 척추염이였음이 밝혀졌다(2005년의 부진 이유였던 허리통증도 사실 강직성 척추염이 원인이었다). 오랜 투병과 재활, 치료 끝에 다시 마운드로 돌아온 오주원은 2016년 다시 넥센 불펜의 중심으로 우뚝 섰다. 마무리는 김세현, 셋업맨 자리는 이보근과 김상수에게 양보했지만 오주원은 때론 원포인트 릴리프도 마다하지 않으며 열심히 마운드에 올랐다.

8월14일 두산전에서는 신재영에 이어 두 번째 투수로 등판하며 야구팬들에게 자신의 새 이름 오주원을 공식적으로 공개했다. 당시 오주원의 개명 사실을 미처 알지 못하던 일부 야구팬들은 오재영이 유니폼을 미처 챙기지 못해 다른 선수의 유니폼을 급하게 입고 등판한 것이라고 착각하기도 했다(물론 넥센 구단뿐 아니라 KBO리그 전체에서도 오주원이란 이름을 가진 다른 선수는 없다).

오주원은 2016년 55경기에 등판해 51이닝을 던지며 3승 3패 2세이브 7홀드 4.41을 기록했다. 크게 내세울 것 없는 불펜투수의 평범한 성적이지만 넥센에 워낙 믿음직한 좌완 불펜 투수가 없었고 힘든 투명을 마치고 복귀한 시즌이라는 점에서 오주원의 투구는 야구팬들로부터 많은 박수를 받았다. 특히 걷지도 못할 만큼 힘든 투병 생활을 이겨내고 다시 마운드에 오른 오주원의 투혼은 몇 개의 숫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줬다.

루키 시즌에는 시속 145km를 넘나드는 강속구를 던지던 오주원이지만 작년 시즌 오주원의 빠른 공 평균 구속은 시속 137.4km에 불과했다. 어느덧 30세를 훌쩍 넘긴 오주원에게는 더 이상 타자를 압도할 만한 위력적인 구위가 없다. 그럼에도 오주원은 뛰어난 제구력과 완급조절을 앞세워 0.259의 준수한 피안타율과 1.31의 이닝당 출루 허용수(WHIP)를 기록했다. 그리고 55경기에 등판하며 피홈런은 단 3개에 불과했다.

작년 시즌 넥센의 왼손 투수가 기록한 홀드는 총 14개였다. 그 중 7개는 오주원이 기록한 것이고 나머지 7개를 기록한 김택형은 팔꿈치 통증으로 스프링 캠프 참가 여부도 알 수 없다. 결국 올 시즌에도 넥센 마운드의 최대 약점은 왼손 불펜이 될 전망이다. 하지만 오주원의 개명을 권유한 부모님의 바람처럼 오주원이 2017년에도 건강하게 마운드에 오른다면 장정석 신임 감독의 고민은 훨씬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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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리그 넥센 히어로즈 오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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