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해피투게더3>의 한 장면

KBS <해피투게더3>의 한 장면. 기안84의 '작업 방식'이 논란이 되고 있다. ⓒ KBS


기안84: "남자친구 있어요?"
엄현경: "아뇨 없어요."
기안84: "물어본 거예요, 그냥. 어차피 사귀지도 못할 건데."

지난 2016년 10월 20일 <해피투게더3>에서 만난 기안84(본명 김희민)와 엄현경의 첫 대화는 이랬다. 초면부터 "남자친구 있느냐"고 묻고 엄현경이 이에 대답을 해주니 자기 할 말을 한다. 발전시키고 싶은 관계에서조차도 상대방의 의중을 조심스럽게 헤아리기는커녕 "'어차피' 사귀지 못할 거니"라는 태도. 일터에서 만난 여성을 자신이 '사귈 수 있는 상대'와 '사귀지 못하는 상대'로 나누는 태도는 '여성 대상화'라는 점에서 특히 문제가 있다.

만에 하나 이 대화가 '웃음'이라는 토크쇼의 목적에 따라 편집이 가미된 결과물일까. 그 후 이어지는 기안84의 대화를 보면 꼭 그렇지는 않아 보인다.

기안84: "(엄현경이랑) 밥 먹으러 한 번 같이 갔었는데 별로 저한테 관심이 없으시더라고요."
전현무: "아니 한마디도 안 해놓고."
기안84: "아니 그리고 약간 카메라 꺼졌을 때랑 다르신 것 같더라고요. 차갑더라고요. 아니 뭐 인기도 많으시고 하니까. 친한 오빠 동생으로 지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죄송해요!"
- 2016년 11월 24일 <해피투게더3> 방송 중에서

기안84: "(상추를 집어 들고 엄현경을 향해) 어쨌든 나 진짜 네가 너무 예뻐."
- <해피투게더3> 연말 회식 자리 중에서

처음부터 말을 호기롭게 내지른 기안84는 좀처럼 관계를 발전시키지 못했고 지난 10월 첫 만남 후 그의 고백 상대가 된 엄현경은 3개월 내내 당황해하기만 한다. 기안84는 대체로 자기 할 말만 하고 일방적으로 대화를 끝내거나 아예 자리를 피한다. 이런 관계가 지속하니 궁금해진다. 이것이 <해피투게더3>의 재미를 위해 의도된 설정이든 아니든, 기안84는 엄현경이랑 진심으로 잘 되고 싶은 마음이 있는 걸까? 만일 그런 마음이 있다면 왜 그의 의사는 묻지 않는 걸까?

한국 예능의 패턴, 유재석의 패턴

 KBS <해피투게더3>의 한 장면

기안84가 엄현경에 대해 말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건 늘 유재석이었다. ⓒ KBS


그렇다면 '방송용 편집'이 불가능한 연말 시상식의 장면은 어떨까. 기안84는 KBS 연말 시상식장에 올라서는 "현경이 잘 좀 해주세요"라고 외친다. 그가 이 자리에 패딩을 입고 올라왔다는 사실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그는 상을 받은 엄현경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는 대신 시상식에 참석한 다른 이들을 향해 "(엄현경을) 잘 좀 해달라"고 주문한다. 엄현경에게 직접 말을 걸거나 그의 의사를 묻는 대신 공개적인 장소에서 '다른 사람을 향해' 끊임없이 상대방을 향한 자신의 '절절한' 마음을 터놓는 일. 이건 구애가 아닌 압력이다. 시청자는 이런 변함없는 상황을 3개월째 지켜봐야만 했다.

하지만 <해피투게더3>의 상황 속에서 이는 비단 기안84만의 잘못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엄현경씨 한 번 만나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하셨다고 했는데?" (2016년 10월 20일)
"아니 근데 엄현경씨한테 또 지난주에 녹화 끝나고 밥 한 번 먹자고 그랬다고." (2016년 11월 17일)
"아니 근데 엄현경씨 말고 새 여친을 만났다는 게...?" (2016년 11월 24일)
"아니 근데 얼마 전에 꿈에 엄현경씨가 나타났다고. 엄현경씨가 꿈에 왜 나타났어요?" (2016년 12월 15일)
"만약 엄현경씨가 기안84의 여동생이면 어떨 것 같아요?" (5일)

<해피투게더3>의 진행자 유재석은 지난 10월 20일부터 기안84가 나올 때 엄현경에 관해 물었다. 3개월 내내 유재석은 기안84와 엄현경을 이어주려고 노력하는 듯보이지만 한 번도 이들의 관계를 말하면서 엄현경에게 먼저 물어본 바 없다. 반면 기안84는 늘 유재석에 의해 말을 할 수 있게 된다. 왜 유재석은 기안84보다 먼저 <해피투게더3>에 성공적으로 입성한 고정 출연자인 엄현경에게 묻지 않을까. 손사래 치는 엄현경을 바로 앞에 두고 다른 남성 출연자끼리 입을 모아 기안84의 생각을 묻는 일도 벌써 3개월째다.

돌이켜보면 유재석의 예능에는 대체로 이런 '커플링'이 존재했다. 최근 SBS <런닝맨>의 유일한 여성 멤버 송지효는 개리와 묘한 기류를 형성해 '월요커플'이라는 칭호를 받은 바 있다. 설정상 '한 가족'으로 묶인 <런닝맨> 전작 <패밀리가 떴다>에서도 김종국의 위치는 늘 박예진과 이효리 중간 어디쯤이었다. <X맨>의 유명한 '한 쌍'이었던 윤은혜와 김종국은 말할 것도 없다.

고정 여성 출연자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커플링은 이어진다. 고정 여성 출연자가 없는 MBC <무한도전>은 아예 멤버별로 돌아가면서 '장가보내기 특집'을 해 여성 출연자를 이들의 상대역으로 등장시켰다. 유재석은 이들의 중간에서 관계를 진전시켰다.

쇼는 변한다

 KBS <해피투게더3>의 한 장면

방송에서 긍정적으로 혹은 재미있게 비추는 관계가 현실에서 어떻게 작용할지 한 번 더 생각해본다면 어떨까. 우리는 3개월째 누군가의 일방적인 구애 장면을 TV로 보고 있고 때로는 이것이 폭력이 될 수 있다. ⓒ KBS


사실 이런 흐름이 지금까지 예능에서 꽤 재미를 보았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다. 드라마 같은 연속성이 없는 예능의 경우 이들의 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해하거나 관계를 응원하며 채널을 돌리지 않는 시청자도 있다. 실제 꽤 잘 어울리는 것처럼 보이는 커플도 있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이제 예능도 점차 현실 윤리의 영역을 고려하는 방향으로 바라본다. 쇼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은 변하는데 쇼는 변하지 않는다.

특히 상대방을 향한 공개적인 구애가 실제 직장 내 성희롱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에서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승한 TV 평론가는 이를 "직장 동료를 단순히 동료로 여기지 않고 여성으로 여겨 그에게 다른 마음을 품는 일이 긍정적으로 묘사돼 반복적으로 방송에 나간다는 건 대단히 문제적"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직장 내 성희롱에 시달리는 여성, 혹은 누군가의 끈질긴 구애를 거절하는 여성이 마주치는 현실이 현재 엄현경이 <해피투게더3>에서 마주치는 상황이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잡지 <계간홀로>의 편집장 이진송씨도 이것이 현실에서 드러나고 있는 문제임에도 문제라고 생각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는 "'열 번 찍으면 넘어가지 않는 나무가 없다'는 말은 인간을 나무로 보는 태도"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최근 문제시되고 있는 '여성 대상화'의 일부라는 것이다. 그는 또 "주변 상황을 통해 여성은 점점 거절하기 곤란해지고 결국 받아줄 수밖에 없는 분위기가 조성된다"고 꼬집었다. TV 예능이 남녀 간의 관계를 그리는 방식은 10년 넘게 그대로다. 과연 이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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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부터 오마이뉴스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팟캐스트 '말하는 몸'을 만들고, 동명의 책을 함께 썼어요. 제보는 이메일 (alreadyblues@gmail.com)로 주시면 끝까지 읽어보겠습니다.

2014년 5월 공채 7기로 입사하여 편집부(2014.8), 오마이스타(2015.10), 기동팀(2018.1)을 거쳐 정치부 국회팀(2018.7)에 왔습니다. 정치적으로 공연을 읽고, 문화적으로 사회를 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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