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쌔신 크리드> 영화 포스터

▲ <어쌔신 크리드> 영화 포스터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게임을 원작으로 삼았던 영화는 대부분 좋은 평가를 얻지 못했다. 게임으로 얻은 인지도는 장점이지만, 세계관의 해석과 게임과 영화의 문법 차이는 걸림돌로 작용했다. <레지던트 이블>과 <사일런트 힐> 정도가 호평을 받은 사례다.

영화 <어쌔신 크리드>도 동명의 게임을 원작으로 한다. 2007년 유비소프트가 제작한 게임 <어쌔신 크리드>는 <어쌔신 크리드 2>(2009)<어쌔신 크리드 3>(2012)<어쌔신 크리드 4 블랙 플래그>(2013)<어쌔신 크리드 유니티>(2014)<어쌔신 크리드 신디케이트>(2015)<어쌔신 크리드 크로니클스>(2016) 등으로 이어지며 여전히 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영화 <어쌔신 크리드>은 저스틴 커젤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단편 영화 <블루 텅>(2005)이 칸 영화제 국제 비평가 주간을 비롯한 13개의 국제 영화제에 상영되며 유명세를 치른 커스틴 커젤은 장편 영화 <스노우 타운>(2011)으로 토론토 국제 영화제 등에서 주목을 받았고, <맥베스>(2015)는 칸 영화제의 경쟁 부문에 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어쌔신 크리드>는 작은 제작비로 예술의 색채를 낸 전작과 달리, 할리우드 스튜디오 '20세기 폭스'가 1억 2500만 달러의 예산을 투입한 블록버스터다. 다소 당혹스러운 변화다. 저스틴 커젤은 분명히 밝힌다. "이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 나에게는 게임 원작 영화가 아니라 그냥 영화였다."

<어쌔신 크리드> 영화의 한 장면

▲ <어쌔신 크리드> 영화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전작부터 지속되는 유사성은 있다. 바로 원전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스노우 타운>은 호주에서 실제로 일어난 연쇄 살인사건을 소재로 삼았고 <맥베스>는 셰익스피어가 쓴 희곡을 영화로 옮겼다. <어쌔신 크리드>는 게임에서 가져왔다. 그는 <어쌔신 크리드>의 어떤 점에 매혹을 느낀 걸까? <스노우 타운><맥베스><어쌔신 크리드>를 관통하는 주제인 '선택'에 주목할 필요성이 있다.

어린 시절에 받은 마음의 상처로 어두운 삶을 살던 사형수 칼럼(마이클 패스벤더 분)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조직 '앱스테르고 인더스트리'의 과학자 소피아(마리옹 꼬띠아르 분)에게 기계 '애니머스'를 통해 자신의 유전자에 담긴 500년 전 조상인 아귈라의 기억을 조사하자는 제안을 받는다. 15세기에 살았던 아귈라(마이클 패스벤더 분)의 삶을 체험한 칼럼은 그가 템플 기사단에 맞서는 암살단에 속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앱스테르고 인더스트리의 CEO 앨런(제레미 아이언스 분) 일당이 아귈라의 기억에서 행방을 찾는 '에덴의 선악과'가 무슨 의미이고 그들이 어떤 음모를 꾀하는지 알게 된다.

영화는 '애니머스'란 최첨단 기계로 유전자 메모리를 통해 선조의 경험과 연결하고, '에덴의 조각'이라 불리는 고대 유물을 찾는다는 게임의 흥미로운 설정을 고스란히 살렸다. 게임엔 많은 고대 유물이 나오지만, 영화가 선택한 것은 '에덴의 선악과'다. 주인공이 경험하는 선조의 시간 배경은 12세기 예루살렘(1편 게임 기준)에서 15세기 스페인으로 바뀌었다.

마이클 패스벤더가 1인 2역으로 분했지만, 칼럼과 아귈라는 정반대의 인물이다. 영화에서 템플 기사단은 인간의 자유 의지를 없애고 통제와 질서를 통해 평화로운 세상을 구축하길 기도한다. 암살단은 저항하고 반대하고 생각할 권리인 인간의 자유 의지를 지키기 위해 템플 기사단에 맞선다. 어릴 적에 겪은 충격으로 마음을 닫고 방황을 거듭하는 칼럼에겐 믿음이나 신념도 없다. 그는 아귈라가 품은 "어둠 속에서 빛을 섬긴다"는 '암살단의 신조'를 본다. 단순히 아귈라를 '관찰'하는 선에 그치지 않고 '체험'을 하며 그의 내면엔 소용돌이가 일어난다.

<어쌔신 크리드> 영화의 한 장면

▲ <어쌔신 크리드> 영화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이기적인 칼럼이 이타적인 아귈라를 만나며 겪는 혼란의 맞은편엔 소피아와 앨런이 자리한다. 소피아는 '에덴의 선악과'로 인간의 유전자에서 폭력을 제거하길 꿈꾼다. 앨런은 '에덴의 선악과'의 강력한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길 원한다. 칼럼과 아귈라, 소피아와 앨런 같은 대비의 효과는 앱스테르고 인더스트리와 암살단의 후손들, 15세기 스페인과 21세기 앱스테르고 인더스트리의 연구소에도 해당한다. 이들은 암살단과 템플 기사단의 구도로 압축된다.

대비적인 요소에 대해 주연을 맡은 마이클 패스벤더는 "암살단과 템플 기사단은 빛과 어둠처럼 명백하게 구분되지 않는다. 도덕성의 경계가 흐려져서 양쪽 모두 위선적인 측면이 있다"라고 설명한다. 템플 기사단은 폭력을 없애기 위해 완벽한 통제를 해법으로 제시한다. 자유를 지키려는 암살단은 목적을 성취하기 위해 수단의 위험성을 외면한다.

영화가 1492년 스페인을 배경으로 선택한 것도 흥미롭다. 그 당시는 종교재판을 자행하고 자유를 억압하는 공포 정치의 기운으로 만연했다.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하며 근대의 문을 열었던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시대상에 대해 조승연 작가는 '이중적인 시대'라고 지칭하며 "중세의 잔혹함과 야망성이 사회에 그대로 만연하고, 한편으로는 신대륙을 향해서, 새로운 것을 향해서 손을 뻗치고 있는 시대"라고 부연한다.

선악 구도가 모호한 상황에서 칼럼은 <스노우 타운>에서 목적을 얻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공동체를 목격하는 소년 제이미,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르는 욕망에 사로잡힌 <맥베스>의 맥베스가 겪었던 방황을 경험한다. 그리고 '신뢰의 도약'을 선택한다.

<어쌔신 크리드> 영화의 한 장면

▲ <어쌔신 크리드> 영화의 한 장면 ⓒ 이십세기폭스코리아(주)


<어쌔신 크리드>는 스페인의 좁은 골목과 4층 높이의 건물들 사이를 자유로이 오가며 '파쿠르' 액션을 보여준다. 평원을 가로지르며 템플 기사단과 암살단이 펼치는 마차 액션도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암살단이 화형에 처하기 직전에 가까스로 탈출하는 장면도 흥미진진하다.

액션 시퀀스에선 하강과 상승을 거듭하는 아귈라(와 칼럼)의 모습이 유독 강조된다. 분명히 게임에서 가져온 요소이나 마이클 패스벤더는 익스트림무비와 가진 인터뷰에서 칼럼의 '낙하'를 "칼럼이 자신의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는 의미다"라고 이야기했다. 자기 자신을 다른 무엇에게 내놓은 행위는 희생정신과 신뢰가 갖추어졌을 때에 가능하다.

저스틴 커젤 감독은 "암살자들이 싸우는 이유가 바로 선택 때문이다. 개인의 자유 의지를 지키려고 한다. 사람들이 자신이 원하는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영화의 이런 점에 끌렸다"라고 말한다. '신뢰의 도약'이라 불리는 칼럼의 선택은 추상적 개념인 '신념'과 '자유 의지'를 실체화한 근사한 장면이다. 이 장면으로 저스틴 커젤은 자신이 <어쌔신 크리드>를 선택한 이유를 증명한다. 더불어 <어쌔신 크리드>가 '영화의 도약'을 얻는 멋진 순간이다.

어쌔신 크리드 저스틴 커젤 마이클 패스벤더 마리옹 꼬띠아르 제레미 아이언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초당 24프레임의 마음으로 영화를 사랑하는 남자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