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배우 김하늘 영화 <여교사> 인터뷰 제공 사진.

배우 김하늘을 <여교사> 개봉일인 지난 4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올댓시네마


데뷔 21년. 올해 나이 마흔. 어쩐지 김하늘과는 어울리지 않는 숫자들이다. '멜로퀸'이라 불리던 그녀는 결혼과 40대 진입이라는, 배우 김하늘과 개인 김하늘 모두에게 중요한 변화를 앞두고 영화 <여교사>를 택했다.

영화 <여교사>는 개봉 이후 평단과 대중의 평가가 엇갈리고 있다. 소재가 주는 1차 장벽과 파격적인 결말이 주는 당혹스러움에 혹평을 쏟아내고 있는 많은 대중과 그 안에 담긴 촘촘한 감정묘사와 대립구도에 찬사를 보내고 있는 평론가들. 하지만 영화에 대한 호불호는 있을지언정, 엇갈리지 않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김하늘의 연기다. 영화 <여교사>에서 일생일대의 변신을 감행한 배우 김하늘을, <여교사> 개봉일인 지난 4일 만났다.

너무 낯선 스크린 속 김하늘

 2017년 1월 배우 김하늘 영화 <여교사> 인터뷰 제공 사진.

<여교사> 속 효주는 우울하고 음침하다. 인간 김하늘은 그런 효주를 외면하고 싶었지만, 배우 김하늘에게 효주는 표현해보고 싶은 "탐나는 캐릭터"였다. ⓒ 올댓시네마


<여교사> 속 효주는 배우 김하늘이 21년 만에 처음 맡는 우울하고, 어둡고, 예쁘지 않은 역할이다. 처음 대본을 읽으며 효주가 당하는 모멸감과 열등감이 잔상처럼 오래도록 남아 "못할 것 같다"고 난색을 보였을 정도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대본을 닫고 나서도 오래도록 효주의 잔상이 남아있었단다.

"캐릭터 자체는 외면하고 싶은 캐릭터였죠. 효주가 처한 모든 상황 자체가, 만약 내 주변에 있는 사람이라면 외면하고 싶은 느낌?. 감정적으로 너무 불편했어요."

그럼에도 김하늘이 효주를 택한 이유는, 효주를 연기하며 효주를 잡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인간 김하늘은 효주를 외면하고 싶었지만, 배우 김하늘에게 효주는 "탐나는 캐릭터"였다. 그렇게 <여교사>에 도전했다.

영화 속 효주는 지금까지 배우 김하늘이 갖고 있던 이미지와는 180도 다른 캐릭터다. 분명 너무나도 익숙한 김하늘이지만, 효주를 연기하는 김하늘은 낯설었다. 김하늘 스스로도 "내게 이런 얼굴이 있었나, 내게 이런 톤이 있었나?" 싶었을 정도로.

"가장 사랑 받던 시기라 견딜 수 있었다"

 2017년 1월 배우 김하늘 영화 <여교사> 인터뷰 제공 사진.

집중해서 효주를 연기하면 할수록, 효주의 비참함이 고스란히 김하늘에게 전달됐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당시 김하늘은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던 시기였다. ⓒ 올댓시네마


늘 극 속에서 "사랑해" 고백만 받던 '멜로퀸' 김하늘은, <여교사>에서 "악마 같다", "설마 정말 사랑한 건 아니지?"라는 말을 들어야 했다.

"20년 가까이 사랑받은 역할들을 했더라고요. 사랑을 주고받는 역할만 하다가, 자존감이 짓밟히고 모멸감이 드는 대사를 들으니 연기인 걸 알면서도 느낌이 안 좋았죠."

집중해서 효주를 연기하면 할수록, 효주의 비참함이 고스란히 김하늘에게 전달됐다. 힘든 캐릭터를 만났을 때, 많은 배우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지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여교사>를 연기하던 당시 김하늘은 지금은 남편이 된 남자친구에게 가장 사랑받고 있던 시기였다. 김하늘은 "덕분에 견딜 수 있었다"며 남편에 대한 고마움을 드러냈다.

"연기할 때 컨디션의 영향을 많이 받는 편이에요. 그래서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죠. 만약 당시 컨디션이 나빴다거나 감정적으로 힘든 시기였다면, <여교사>를 선택하기도 힘들었을 거고, 연기하면서도 힘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촬영이 끝나면 저는 사랑받고, 너무 행복한 사람이잖아요. 전 효주가 아니니까. 그래서 더 감정적으로 효주에게 몰입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쉽지 않은 캐릭터 "나는 이해해"

 2017년 1월 배우 김하늘 영화 <여교사> 인터뷰 제공 사진.

최근 김하늘이 연기한 <공항 가는 길>의 수아나, <여교사>의 효주는, 모두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받기 어려운 사랑을 하는 인물들이었다. 김하늘 본인도 "남이었다면 외면했을 감정들"이라고 느꼈지만, 그 인물이 되어 연기하다보니 그들 모두를 이해하게 됐단다. ⓒ 올댓시네마


<여교사>는 어려운 영화다. 배우와 감독이 의도한 바를 관객에게 설득시키기 어려운 소재, 이야기, 결말. 그런 점에서 최근 김하늘이 출연했던 KBS 2TV <공항 가는 길> 속 수아도 비슷한 면이 있다. 세상의 기준으로는 이해받기 어려운 사랑이지만, 김하늘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하며 연기했다고. 남이었다면 외면했을 인물들의 감정이지만, 그 안에 들어가 "내가 되어" 연기하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저는 제가 연기하는 역할을 이해하고 공감하고, 감히 사랑해요. 제가 그렇게 연기하면, 보시는 분들도 제 감정과 비슷하게 따라와 주시더라고요. 물론 제가 느끼는 공감이 다는 아니죠. 하지만 겁내기보다, 제 선택에 대한 확신, 그에 따른 관객들의 반응을 믿는 것 같아요."

김하늘이 곧 효주가 되다 보니, 감독이 설정한 효주와 김하늘의 효주가 달라지기도 했다. 김하늘은 "남자가 쓴 효주와 내가 본 효주의 결이 달랐다"고 표현했다. 김하늘의 효주는, 김태용 감독의 효주보다 더 안타까운, 짠하고 안쓰러운 느낌이었다. 김하늘이 시나리오를 읽으며 "효주의 손을 잡아주고 싶었다"던 마음의 연장선이었다.

데뷔 21년 차... 경력만큼이나 느는 건

 2017년 1월 배우 김하늘 영화 <여교사> 인터뷰 제공 사진.

어느덧 김하늘은 현장 최고참 연기자가 됐다. 데뷔 21년 차를 맞이한 김하늘에게, 처음 영화 현장을 경험하는 후배들의 모습은 어떻게 보였을까? ⓒ 올댓시네마


어느덧 김하늘은 현장 최고참 연기자가 됐다. 함께 연기한 이원근, 유인영은 물론, 김태용 감독도 모두 김하늘보다 어렸다. 김하늘은 "내 연기하느라 바빠 선배로서 챙겨주지 못했다"고 미안해했지만, 앞선 인터뷰에서 이원근은 "첫 영화라 얼어있을 때 먼저 다가와 주셔서 감사했다"고 말한 바 있다. "너무 아름다우셔서 모든 동작이 슬로우모션으로 보였다더라"는 이원근의 말을 전하자, 김하늘은 "그런 이야기는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며 빙긋 웃었다.

데뷔 21년 차를 맞이한 김하늘에게, 처음 영화 현장을 경험하는 후배는 어떻게 보였을까? "평가라기보다, 내가 많이 선배니까 조금은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신인일 때, 감독님들이 '다 잘하려고 하지 마라. 커갈 때는 몇 개만 잘해도 잘하는 거다'라고 하셨어요. 뒤돌아서서 못한 것만 생각하지 말고, 잘하는 거만 생각하라고요. 그럼 점점 잘하는 게 많아지고, 만족스러운 감정도 많아질 거라고. 저도 지금 데뷔작 <바이준> 보면 다 싫어요. (웃음) 근데 한 작품, 한 작품 지나다 보니 스스로 '괜찮은데?' 싶은 장면이 점점 드러나더라고요. 그런 것처럼, 원근이도 부족하다고 느껴지고 마음에 안 드는 신이 있을 거예요. 하지만 분명 잘한 것도 있거든요. 그것만으로도 그 친구는 박수받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유인영은 효주와 혜영의 미묘한 갈등 감정을 위해, 부러 김하늘과 어색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선배로서, 그런 후배의 행동이 서운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지 않으냐고 묻자 "신인 시절, 선배들에게 잘 하려 해도 원치 않게 오해를 살 수도 있다는 걸 경험했다. 그래서 선배가 되면 (후배들의 행동을) 오해하지 않으려고 늘 생각했다"는 답이 돌아왔다.

"제일 중요한 건, 개인적인 관계가 아니라 이 캐릭터를 잘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나머지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물론 후배로서 그러지 말아야 할 행동을 할 때는 이야기하겠죠. 그게 아닌 이상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에요. 인영씨도 선배 챙기려고 노력했던 부분이 있어요.

<블라인드> <공항 가는 길> 모두 제가 제일 선배급이었어요. 사실 후배일 땐 편했어요. 어려우면 물어보고, 기대기도 하고…. 저는 두가지를 잘 못 하는 데다, 특히 이번 캐릭터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후배들에게 신경 쓰지 못했어요. 후배들이 나를 어렵지 않게 대했으면 좋겠는데, 최소한의 노력만 한 것 같아요. 그 이상 도움을 줄 수 있는 부분도 분명 있었을 텐데 미안하죠."

결혼, 마흔, 데뷔 20년

결혼 후 김하늘의 작품을 설명할 땐 '결혼 후 첫 복귀작', '결혼 후 파격 변신' 등의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하지만 김하늘은 "변한 건 없지만, 마음이 편해졌다"고 말했다. 결혼으로 변한 것인지, 나이가 들며 변한 것인지 모르지만, 2016년을 기점으로 배우 김하늘의 필모는 달라지고 있다.

여전히 로코를 좋아하지만, "경력이 쌓이면서 연기적 욕심이 많아졌다"는 그녀. 언제부터인가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장르와 이미지에 도전하고 싶어졌다고 했다. 경력과 연륜이 쌓여 도전할 수 있었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나이가 들수록 더 어려운 것이 또 도전이다.

"어릴 땐 실수해도 '어리니까'라는 핑계가 있잖아요. 어쩌면 더 소극적일 수도 있는 나이와 경력이죠. 하지만 (지금까지) 사랑을 많이 받았잖아요. 흥행도 물론 중요하지만, 연기적으로 저를 사랑해주시는 분들에게 다른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공항 가는 길>도, <여교사>도, 용기가 필요했던 작품이지만, 제 용기에 박수 쳐주시는 분들이 계셔서 내 선택이 나쁘지 않았구나, 더 용기 낼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배우로서 더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무기력하고 초라한 효주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영화에서 늘 화장기 없는 얼굴에 무채색 의상을 입고 등장한다. 이러나저러나 여전히 아름다운 김하늘이지만, 더는 예뻐 보이는 데 연연하지 않는다. "어떤 장면은 너무 못생기게 나와 멜로였다면 감독님한테 항의했을 것"이라면서도, 이내 "근데 그 모습이 또 너무 효주 같아서 마음에 들었다"며 웃었다.

데뷔 21년 차 배우 김하늘에게는 아직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 더 많다. 도전을 즐기기 시작한 김하늘이니만큼, <여교사> 속 효주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누군가는 흐르는 시간을 마냥 야속해 하겠지만, 쉬지 않고 흐르는 시간은 김하늘 본인도 아직 다 모를, 새로운 김하늘을 자연스럽게 보여줄 것이다. 앞으로 김하늘이 보여줄 낯선 얼굴, 낯선 표정, 낯선 연기는 또 어떤 모습일까?

 2017년 1월 배우 김하늘 영화 <여교사> 인터뷰 제공 사진.

데뷔 21년 차 배우 김하늘에게는 아직도 보여주지 않은 모습이 더 많다. 앞으로 김하늘이 보여줄 낯선 얼굴, 낯선 표정, 낯선 연기는 또 어떤 모습일까? ⓒ 올댓시네마



김하늘 여교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