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 연애사건>의 한 장면.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의 충동을 그린다.

<도쿄 연애사건>의 한 장면. 사랑에 빠진 그 순간의 충동을 그린다. ⓒ 브리즈픽처스


"사랑은 하는 게 아니라 빠지는 것이다."

영화 <도쿄타워>(2004)에서 40대 유부녀 시후미와 밀회를 이어가는 20대 청춘 토오루가 한 말이다. 그의 사랑은 영원을 담보로 한 신뢰의 문제도, 옳고 그름의 문제도 아니다. 자신을 위한 일이기는 커녕 오히려 스스로를 구렁텅이로 빠뜨리는 일이다. 자석처럼 속절없이 상대에게 이끌리는 와중에 주위를 둘러싼 복잡한 현실은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떤 사람들은 종종 그런 사랑을 한다. 이들에게 타인의 시선이나 관계의 '지속가능성' 따위는 차라리 부차적이다. 중요한 건 사랑에 '빠져있는' 순간순간 터져 오르는 광기어린 충동 그 자체다.

영화 <도쿄 연애사건>은 바로 이런 순간 앞에 놓인 인물들의 이야기다. 그 중심에는 막 대학 새내기가 된 두 여자, 타에코(키이시 유키노 분)와 친구 마야(안도 와코 분)가 있다. 타에코의 아빠 쿄스케(후키코시 미츠루 분)와 엄마 미도리(이시바이 케이 분)가 이혼을 결정하면서 벌어지는 사건이 큰 줄기다. 내연 관계로 지내온 하즈키(히라이와 카미 분)와의 새출발을 꿈꾸는 쿄스케, 친구 아빠인 쿄스케를 사랑하게 된 마야, 이런 마야를 잊지 못하는 그의 옛 연인 무츠오. 여기에 남자친구와 데이트를 이어가는 타에코와 직장 동료의 구애를 받는 미도리까지. 영화는 얽히고설킨 인물 간의 관계도를 통해 어디에도 없던 서사를 완성한다. 진지하지만 어이없고, 비극적이면서도 우스운 사랑 이야기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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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임 선생님에 이어 절친의 아빠를 사랑하게 되는 마야는 영화에서 단연 돋보이는 캐릭터다. 그는 타에코에게 "쿄스케씨가 네 아빠란 사실은 내가 그를 좋아하는 것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당당하게 자신의 마음을 털어놓는다. 이에 타에코는 너무나도 쉽게, 심지어 공교롭게도 '아저씨에게만' 빠지는 마야를 '변태'로 치부한다. 하지만 이러한 마야의 열정은 극중 다른 인물들의 미적지근한 태도와 비교되며 빛을 발한다. 담담하게 이혼을 받아들이는 미도리와 쿄스케, 딱히 친밀하다고 할 수 없는 타에코와 무라이 사이에는 각별한 원망도 애정도 드러나지 않기 때문이다. "마야는 누군가를 좋아하는 힘이 대단하다"는 타에코의 대사는 사랑에 방어적인 현대인들의 동경이자 판타지를 대변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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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기 다른 결로 드러나는 인물들의 감정이 오롯히 스크린 밖으로 전해지는 건 영화 특유의 관조적 시선 덕분이다. 타에코 가족이 집에서 함께 식사하는 장면이나 타에코와 마야가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특히 그렇다. 고정된 롱 숏과 원 테이크로 연출돼 마치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 사실적이다. 영화 중반 쿄스케와 마야의 거리 애정 신 또한 인상적이다. 차도 건너편에서 이들을 바라보는 카메라는 쉭쉭 지나가는 자동차 틈새에서 다분히 관음증적으로까지 비친다. 그렇게 영화는 긴 호흡 속에서 거리를 둔 채 내내 인물과 사건을 객체로만 대한다. <도쿄 연애사건>이란 제목대로, 그저 '사건으로서의 연애'를 응시하는 것이다.

청춘과 중년을 아우르는 배우들의 인상적인 연기는 영화의 화룡정점이다. 특히 마야 역의 안도 와코와 타에코 역의 키이시 유키노는 순수하면서도 마냥 아름답지만은 않은 청춘의 민낯을 퍽 자연스럽게 보여준다. 일본 베테랑 배우 후키코시 미츠루가 분한 쿄스케에게서는 일견 <아메리칸 뷰티>(2000)에서 딸 친구에게 욕정을 품은 중년 가장 레스터 번햄의 모습까지 엿보인다. 여기에 이혼을 대하는 미도리의 복합적 감정을 세심하게 표현한 이시바시 케이를 비롯해 조연 배우들의 연기는 누구하나 빠질 것 없이 뇌리에 깊숙이 각인된다. 오는 18일 개봉.

도쿄연애사건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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