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kt 위즈가 그런 것처럼 2000년 초반의 SK와이번스도 팀을 이끌고 팬들을 모을 프랜차이즈 스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에 SK에서는 2001년과 2002년 신인 드래프트를 통해 선발한 4명의 신인 투수를 '신4룡(新四龍)'이라 부르며 전략적으로 키우려 했다. 2001년에 입단한 채병용과 오승준, 2002년에 입단한 윤길현(롯데 자이언츠)과 제춘모가 그 주인공이었다.

SK의 신4룡은 2002년 20승, 2003년 19승을 합작하며 무럭무럭 성장하는 듯 했지만 2004년 오승준이 이상훈 트레이드 때 LG 트윈스로 이적하면서 2년 만에 해체됐다. 이어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내던 제춘모가 어께 부상 이후 일찌감치 전성기를 접고 정우람, 송은범(이상 한화 이글스) 같은 투수들이 차례로 입단하면서 SK의 '신4룡'을 언급하는 사람은 완전히 사라졌다.

오승준과 제춘모의 이른 은퇴 속에서도 비룡 군단의 불펜을 지키던 윤길현은 작년 시즌을 앞두고 4년 38억 원에 롯데로 이적했다. 하지만 아직 SK 마운드에는 입단 후 17년 동안 한결 같이 와이번스 유니폼을 입고 헌신하는 '신4룡'의 마지막 생존자(?)가 있다. KBO 리그에서 가장 과소평가 받고 있는 우완 투수 중 한 명인 '마당쇠' 채병용이 그 주인공이다.

비룡군단의 희로애락을 함께 나눈 산 증인

 SK 채병용

SK 와이번스 투수 채병용.ⓒ SK 와이번스


신일고 시절부터 묵직한 구위와 안정된 제구력을 인정 받던 채병용은 2001년 신인 드래프트 2차 6라운드(전체34순위)로 SK에 지명됐다. 고교 시절부터 '실전용'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채병용은 입단 2년 차였던 2002년 51경기에 등판해 7승9패11세이브2홀드 평균자책점3.19라는 매우 우수한 성적을 올렸다(물론 2002년엔 조용준, 김진우 같은 역대급 신인들이 대거 등장해 신인왕 자리는 넘보진 못했다).

채병용은 2003년 9승5패4세이브2홀드4.82로 SK의 첫 한국시리즈 진출에 큰 기여를 했고 현대 유니콘스와의 한국시리즈에서도 선발 투수로 활약했다. 특히 2승3패로 몰려 있던 6차전에서는 7.1이닝 6탈삼진 무실점이라는 완벽한 투구로 시리즈를 최종전까지 끌고 가기도 했다. 2003년 모든 것을 불태운 채병용은 2004년 팔꿈치 수술로 한 해를 통째로 걸렀지만 2005년 8승, 2006년 7승을 기록하며 건재를 과시했다.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2007년과 2008년은 채병용과 SK의 전성기였다. 2년 연속 두 자리 승수와 2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채병용은 SK의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끌었다. 바꿔 말하면 채병용이 10승 투수로 성장하면서 SK도 창단 후 첫 우승을 차지할 수 있었던 셈이다. 2009년에는 한국시리즈에서 신일고 후배 나지완에게 7차전 끝내기 홈런을 허용한 비운의 투수가 되기도 했다.

채병용은 SK의 에이스 계보를 이어온 이승호(은퇴)나 김광현처럼 화려한 스타일과는 거리가 멀지만 언제나 묵묵하게 자신의 몫을 다 하는 투수다. 채병용의 전성기를 가장 가까이서 목격한 김성근 감독(한화) 역시 SK에서 심장이 가장 강한 투수라고 극찬한 바 있다. 2009 시즌이 끝나고 두 번째 팔꿈치 수술을 받은 채병용은 2010년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 의무를 마치고 2012 시즌 중반에 복귀했다.

2012년 3승, 2013년 3패1세이브로 부진한 채병용은 2014년8승을 올렸지만 27개의 홈런을 허용하고 6.37의 높은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특히 10월 17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서건창에게 200번째 안타를 맞고 강정호(피츠버그 파이어리츠)에게는 유격수 최초 40홈런을 허용하며 하루에 대기록 2개를 내주는 신세가 됐다. 채병용은 FA를 앞둔 2015 시즌에도 단 4승에 그치며 FA대박이 물 건너 가고 말았다.

FA계약 후에도 변함없는 활약 펼친 채병용

구단 입장에서 FA금액은 과거 활약에 대한 보상이 아닌 미래 활약에 대한 기대로 측정된다. 과거 SK의 우완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군 전역 후 큰 활약이 없었던 채병용은 3년(2+1년) 10억 5000만 원에 FA계약을 체결했다. 구단에 헌신한 부분을 생각하면 아쉬울 법도 했지만 채병용은 FA계약 후 "앞으로도 SK의 유니폼을 입고 마운드에 설 수 있어 기분이 좋다"며 팀에 대한 변치 않는 애정을 나타냈다.

채병용은 2016시즌 이렇다 할 보직을 받지 못했다. 메릴 켈리, 크리스 세든, 김광현, 윤희상, 박종훈으로 구성된 선발진에도 합류하지 못했고 빅정배와 박희수로 구성된 필승조가 되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채병용은 작년 시즌 팀에서 가장 많은 68경기에 등판해 83.2이닝을 던지며 6승3패2세이브9홀드4.30이라는 준수한 성적을 올렸다. 그야말로 비룡 마운드의 마당쇠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고 할 수 있다.

뛰어난 제구력을 자랑하는 투수답게 볼넷은 단 29개에 불과했고, 9이닝 당 탈삼진은 7.2개에 달했다. 반면에 이닝당 출루 허용수(WHIP)는 1.27에 불과해 팀 내에서 마무리 박희수(1.26) 다음으로 뛰어났다. 실제로 작년 SK마운드에서 김광현과 켈리, 박희수 정도를 제외하면 채병용보다 나은 활약을 펼친 투수를 찾기 힘들다. 아마 확실한 보직이 있었다면 채병용의 성적은 더욱 좋았을 것이다.

작년 시즌엔 68경기 모두 불펜으로만 등판했지만 채병용을 정우람이나 정대현(롯데) 같은 전문 불펜투수로 분류하기는 힘들다. 채병용은 통산 375경기 중 46.9%에 해당하는 176경기에서 선발로 등판했을 정도로 선발과 불펜을 가리지 않고 전천후로 활약할 수 있는 투수다. 팔꿈치 수술을 받은 김광현의 복귀가 현실적으로 힘든 2017년 SK 마운드에서 경험이 풍부한 채병용의 역할은 더욱 커질 것이다.

마운드에서 표정 변화가 거의 없는 채병용은 차갑고 무뚝뚝해 보이는 인상이지만 작년 10월4일 전병두의 은퇴식에서 송사를 읽다가 눈물을 보일 정도로 정이 많은 투수다. 때론 연봉 협상 과정에서 얼굴을 붉히기도 했지만 팀에 대한 애정은 어느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그리고 와이번스가 배출한 역대 최고의 우완 투수 채병용은 비룡군단이 2007~10년처럼 KBO리그를 호령하던 시절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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