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안에서 젊은 기자들이 맞설 수 있도록 한 번만 힘을 보태달라"는 'MBC 막내기자들의 반성문'에 사측이 경위서를 요구한 가운데, 선배 기자 96명이 후배들을 대신해 경위서를 작성했다. 이 내용은 9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됐다.

[관련기사] "'짖어봐' 조롱 듣는 MBC 막내기자들... 당신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이들은 "지난달 12일, 87년 6월 항쟁 이후 처음으로 1백만 명이 모인 2차 촛불 집회 날, MBC 뉴스는 집회 소식을 여덟 꼭지 보도했다. 같은 날 SBS와 KBS는 특집 편성까지 해가며 각각 서른네 꼭지, 열아홉 꼭지를 내보냈다"며 시청자들이 MBC 뉴스를 외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전했다.

집회 현장에서 시민들의 호통에 마이크 태그조차 달지 못하고, 실내에 숨어서 중계하기도 하는 등 했다는 막내 기자들의 이야기를 전하며 "부끄러웠다. 시청자는 MBC 뉴스를 버렸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고 자책했다.

 9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MBC 기자협회의 경위서 영상 캡처.

9일 유튜브를 통해 공개된 MBC 기자협회의 경위서 영상 캡처. ⓒ MBC 기자협회


이들은 최순실 태블릿 PC의 출처에 관해 집요하게 보도하고 있는 현 MBC 뉴스의 실태를 지적하며, "스스로 최순실 것이 맞다는 보도를 냈다가 다시 의심된다고 수차례 번복하는 모양새도 우습지만, 사실관계조차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추측의 추측으로 기사화하는 현실에 더욱 절망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앞서 사측에 격렬하게 맞서다 해직당한 선후배 기자, PD들을 언급하며 "특권층의 반칙과 편법을 가장 먼저 포착하고, 정부 정책을 앞서 비판하던, 당시 MBC를 이끌던 이들이 아직 제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고 호소했다. MBC 파업 이후 해직당한 기자가 3명, 비제작부서로 발령난 기자는 50명 이상이다. PD, 아나운서 등까지 포함하면 200여 명이 쫓겨났고, 109명이 아직 제 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MBC 기자들은 "욕하고 혼내셔도 좋다"면서 "다만 MBC가 정상화 될 수 있도록 욕하고 비난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달라. MBC를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달라. 이 안에서 기자들이 더 절실하고 단호하게 맞설 수 있도록 한 번만 힘을 보태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보도 정상화를 위해 김장겸 보도본부장과 최기화 보도국장의 사퇴, 해직·징계 기자들의 복귀를 요구한 막내 기자들의 성명 문구에 'MBC 기자들', 'MBC 기자협회'를 더해 힘을 보탰다.

이에 대해 MBC 해직 기자인 박성제 기자는 <오마이뉴스>와의 전화통화에서 "막내기자들의 동영상에 눈물이 났다"면서 "보통 막내 기자들은 선배 없이 아무것도 못 한다. 그런데 막내 기자들이 이렇게 먼저 나서 선배들을 일깨워주고, 자기들도 잘 모르는 해직기자들에게 돌아와 달라 하는 걸 보니 울컥하더라. 저도 마찬가지고 선배 기자들도 많이 자극받았다"고 전했다.

그는 96명 기자들의 경위서에 대해서는 "회사 측이 막내 기자들에게 경위서를 요청한 상황에서, 막내들을 지키기 위해 나선 것 같다"면서 "96명의 기자가 참여했는데, 모두 얼굴과 이름을 내놓고 한 거지 않나. 파업보다 효과가 크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자들뿐 아니라 함께 싸우고 있는 PD 등도 공감하고 힘을 얻었으리라 본다"고 말했다.

이어 "이들 대부분이 마이크를 빼앗긴 상황이라 뉴스가 금방 달라지진 않겠지만, 힘을 모아 계속 싸울 거다. 해직 기자들도 건물 밖 1인 시위를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아래는 MBC 96명 기자들의 '경위서' 전문이다.

막내 기자들을 대신해 선배들이 회사 측에 보내는 경위서
지난달 12일 87년 6월 항쟁 이후 처음으로 1백만 명이 모인 2차 촛불 집회 기억하시죠?

당시 MBC 뉴스는 집회 소식을 여덟 꼭지 보도했습니다. 같은 날 SBS와 KBS는 특집 편성까지 해가며 각각 서른네 꼭지, 열아홉 꼭지를 내보냈습니다. 이날 사회부 아침 편집회의에 발제된 촛불집회 관련 꼭지는 단 하나였습니다.

현장에 나간 기자는 마이크 태그조차 달지 못했고, 실내에 숨어서 중계하기도 했습니다.
취재 나간 현장에서 저희 막내 기자를 보고 '짖어봐'라고 하시는 분도, '부끄럽지 않냐' 호통 치시는 분들도 너무 많아 그 후배는 고개를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시청자는 MBC 뉴스를 버렸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이미 마이크를 뺏기고 보도국에서 쫓겨난 기자가 50여 명.
현실 앞에 무력했고 비참했습니다.

촛불집회뿐만이 아닙니다. 최근 MBC는 JTBC가 입수해 보도한 태블릿의 출처에 대해 끈질기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최순실 것이 맞다는 보도를 냈다가 다시 의심된다고 수차례 번복하는 모양새도 우습지만, 사실관계조차 확인되지 않은 내용을 추측의 추측으로 기사화하는 현실에 저희 기자들은 더욱 절망하고 있습니다.

뒤늦게 최순실 특별취재팀이 꾸려졌지만 한 달도 안 돼 해체했고, 보도본부장은 메인뉴스 시청률이 애국가 시청률이라는 2%대에 접어든 지금도, 오히려 우리가 중심을 잘 잡고 있는 것이라며 간부들을 격려했다고 합니다.

MBC가 왜 이렇게 됐을까요?

황우석 논문 조작의 비밀을 파헤친 MBC, 대법관의 재판개입을 고발하고 감시했던 MBC, 특권층의 반칙과 편법을 가장 먼저 포착했던 MBC, 정부 정책을 앞서 비판하는 뉴스를 냈던 MBC. 바로 시민 여러분들이 사랑했던 MBC의 모습입니다. 저희 기자들이 자부심을 가졌던 MBC의 모습입니다.

당시 취재하고 MBC 뉴스를 이끌던 기자들. 저희도 정말 못 본 지 오래됐습니다.
세 명의 기자가 해고됐습니다. 회사 전체로 따지면 유능한 피디와 아나운서 등 200여 명이 쫓겨나 아직 109명이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항의하면 일단 쫓아내고 보는 이 상황에서, 저를 비롯해 보도국에 남아있는 기자 30여 명은 실명으로 글을 쓰며 저항하고 있고, 매일 피케팅을 하고 집회도 열어봤지만, 회사는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왜 더 진작 나서서 이 사태를 막지 못 했냐고, 그 안에서 누릴 것은 다 누리고 이제 와서 이러냐고 혼내고 욕하셔도 좋습니다. 다만 MBC 뉴스가 다시 정상화될 수 있도록 욕하고, 비난하는 것을 멈추지 말아주십시오. MBC를 아직 포기하지 않으셨다는 것을 보여주십시오.

이 안에서 저희 기자들이, 기자 모두가 더 절실하게, 단호하게 맞설 수 있도록 단 한 번만 힘을 보태주십시오. 저희가 앞장서겠습니다.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 하자고 할 때, 이건 말이 아니고 사슴이지 않냐고 저항하지 않았습니다. 폐허가 된 MBC 뉴스에 대한 저희 기자들의 경위서 사유입니다. 진짜 경위서는 MBC 뉴스를 짓밟은 보도책임자들이 써야 합니다. 그러나 이제 이들에게 경위서를 요구하지는 않겠습니다.

보도 정상화를 위해 기자들이 요구합니다.
- 김장겸 보도 본부장, 최기화 보도국장 사퇴
- 해직 기자, 정계 기자 복귀

MBC 기자협회

강나림, 강연섭, 고은상, 고현승, 공윤선, 곽승규, 권희진, 김경호, 김미희, 김민욱, 김병헌, 김수진, 김재경, 김재용, 김정원, 김정인, 김정호, 김주만, 김준석, 김지경, 김혜성, 김효엽, 김희웅, 나세웅, 남상호, 남재현, 남형석, 노경진, 노재필, 민병호, 박민주, 박범수, 박소희, 박영회, 박장호, 박재훈, 박종욱, 박주린, 박진준, 배주환, 백승은, 서유정, 서혜연, 손령, 손병산, 송양환, 신정연, 신지영, 양윤경, 양효걸, 양효경, 엄지인, 염규현, 오현석, 왕종명, 유충환, 윤효정, 이기주, 이남호, 이동경, 이성주, 이세옥, 이재훈, 이정신, 이준범, 이지선, 이태원, 이필희, 이학수, 이호찬, 임경아, 임명헌, 장인수, 장준성, 전동혁, 전봉기, 전영우, 전종환, 전훈칠, 정규묵, 정시내, 정진욱, 조국현, 조승원, 조윤정, 조의명, 조재영, 조현용, 조효정, 최형문, 최훈, 한동수, 허유신, 허지은, 현영준, 홍신영 (가나다순)



MBC 해직 기자 해직 언론인 반성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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