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진은 귀여운 반려 동물 사진입니다. 그 중에서도 인간과 좀 더 가깝게 교감을 나눌 수 있는 개나 고양이의 사진은 언제나 환영 받습니다. 몇 주 전 트위터에 모 대선주자가 관사에서 키우는 고양이 사진을 올렸는데, 그의 어떤 트윗보다 리트윗이 더 많이 되어서 화제가 되기도 했지요.

이렇게 반려 동물이 인간에 대한 호감도를 높이는 현상은 인터넷 공간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일어납니다. 이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의 바탕이 된 실화가 딱 그런 경우입니다. 영국 런던의 한 노숙인이 길고양이와 함께 생활하게 되면서 경험한 기적 같은 실화를 영화화한 것이니까요.

열한 살 때 집을 나와 거리에서 생활해 온 제임스 보웬(루크 트레더웨이)은 런던의 명소 코벤트 가든에서 버스킹을 하며 겨우 연명하는 중입니다. 마약의 용량을 차츰 줄여 나가는 치료를 받으면서도 또 다시 마약을 사용하여 죽기 일보 직전까지 간 그는, 담당 의사의 도움으로 임대 주택을 얻습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그의 운명을 뒤바꿔 줄 길고양이 '밥'을 만나게 됩니다.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의 스틸. 노숙인 제임스(루크 트레더웨이)는 길고양이 밥과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 다시 한 번 인간다운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의 스틸. 노숙인 제임스(루크 트레더웨이)는 길고양이 밥과 같이 살게 되면서부터 다시 한 번 인간다운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잡게 된다. ⓒ (주)누리픽쳐스


자기가 가진 돈을 모두 털어 밥의 상처를 치료해 준 제임스. 자신이 애완동물을 키울 형편이 전혀 못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밥이 자기를 너무 따르고 늘 곁에 있으려고 하기 때문에, 어디든 데리고 다닙니다. 영민한 밥은 어딜 가나 사람들로부터 귀여움을 독차지하고, 세상과 늘 불화만 일으키던 제임스의 삶은 엄청난 변화를 맞이합니다.

이 영화는 금세 몰입해서 빠져드는, 빈틈없이 잘 짜인 이야기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마음 편히 느긋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의 느낌에 가까운 편입니다. 원작이 된 동명의 에세이는 2012년 영국에서 출간되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내 어깨 위 고양이, Bob>(2013)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출간된 바 있지요. 물론 그 이전부터 제임스와 밥은 유튜브와 SNS 상에서 많은 화제를 모았다고 합니다.

실존 인물의 이야기를 극영화나 다큐멘터리로 만들 때, 인물의 단점과 터무니 없는 실수 같은 것들을 잘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영화를 기획한 제작자나 감독이 그 인물을 너무 좋아하다 보면 그러기가 쉬운데, 인물의 좋은 면만 나열해서는 전체적으로 밋밋하고 심심한 영화가 될 뿐이라는 걸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 영화는 주인공의 부족한 점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적극적으로 활용합니다. 초반에 등장하는 대책 없는 노숙 생활, 어려움에 부딪칠 때마다 밑천을 드러내는 나약한 정신력과 심한 감정 기복, 호감을 갖게 된 이웃집 여성 베티(루타 제드민타스)가 자신을 싫어하게 될까 봐 마약 중독자였다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숨기는 행동 등등 여러가지 실망스러운 모습들을 다 보여 줍니다. 하지만, 이런 약점들은 주인공 스스로가 극복해야 할 장애물로서, 일종의 성장 플롯을 구성하는 요소로 잘 활용됩니다. 제임스가 넘어야 할 마지막 장애물로 마약 중독 완치를 설정한 것 역시 좋은 선택이었습니다.

고양이 밥의 존재감을 충분히 살려 준 것도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입니다. 등장할 때마다 아름다운 수염과 털을 잘 포착해 낸 촬영-조명이나, 사람 말을 진짜로 알아 듣는 것처럼 행동하는 영리한 모습을 잘 담아낸 연출이 돋보입니다. 종종 삽입되곤 하는 밥의 시점 샷은 그를 어엿한 중심 캐릭터로 대우하려는 감독의 의도가 잘 반영된 것입니다.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의 스틸. 영국 런던의 명소 코벤트 가든에서 밥과 함께 버스킹을 하는 제임스의 모습. 혼자일 때와는 달리, 수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 대성공을 거둔다.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의 스틸. 영국 런던의 명소 코벤트 가든에서 밥과 함께 버스킹을 하는 제임스의 모습. 혼자일 때와는 달리, 수많은 사람들의 호응을 얻어 대성공을 거둔다. ⓒ (주)누리픽쳐스


반려 동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은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쉽지 않은 과제입니다. 자신의 이익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동물적 본능을 거슬러, 유전적으로 전혀 관계 없는 다른 생명에게 자기의 시간과 자원을 내주어야 하니까요. 이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서로에게 지속적인 관심과 애정도 보여 주어야만 합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생각보다 꽤 많은 사람들이 반려 동물을 키우면서 공감 능력과 배려심, 책임감이 향상되는 경험을 합니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도 비슷한 성장의 기회를 마련해 주지만, 자신의 유전적 계승자인 자식에 대한 사랑은 일종의 확장된 자기애라고 할 수 있기 때문에 성격이 좀 다릅니다. 물론 반려 동물을 키우면서도 자신의 소유물 취급을 하거나, 다 커버린 자식의 대용물로 여긴다면 별로 다르지 않겠지만요.

뭔가 일이 잘 안 풀리고 안 좋은 일만 생길 때, 자기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 검토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기 앞가림 하는 것만 해도 벅차서, 혹은 자존심 때문에 혼자서 어떻게든 해 보려다 점점 수렁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인간은 다른 이와 힘을 합치고 연대하며 살아남는 쪽으로 진화한 종입니다. 누군가에게 자기 곁을 내 주고, 그와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만으로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느낌은 자존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됩니다. 상대방과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쏟는 노력들은 그 자체로 삶의 질을 높여 주며, 스스로의 내적 성장을 도모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하지요. 이 영화 <내 어깨 위 고양이, 밥>의 주인공 제임스가 겪은 일들이 바로 그 좋은 예입니다. 함께 할 '누군가'가 꼭 인간일 필요는 없습니다.

 영화 <내 어께 위 고양이, 밥>의 포스터. 동명의 에세이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강렬한 재미를 선사하지는 않지만, 인간과 동물 사이에 주고 받은 우정과 그를 통해 얻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그려냄으로써 훈훈함을 전한다.

영화 <내 어께 위 고양이, 밥>의 포스터. 동명의 에세이를 영화화한 이 작품은 강렬한 재미를 선사하지는 않지만, 인간과 동물 사이에 주고 받은 우정과 그를 통해 얻은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그려냄으로써 훈훈함을 전한다. ⓒ 권오윤



덧붙이는 글 권오윤 시민기자의 블로그 http://cinekwon.wordpress.com/에도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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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책에 관심 많은 영화인. 두 아이의 아빠. 주말 핫케익 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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