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기사에는 영화의 결말 등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베니스국제영화제 폐막작이기도 했던 관후(管虎) 감독의 영화 <노포아(老炮兒)>는 베이징의 전통 뒷골목 후퉁(胡同)을 배경으로 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수도 베이징의 시간이 빗겨 흐른 것 같은 비좁은 후퉁에는 아직 자전거를 타고, 조롱에 작은 새를 키우며 전통적인 가치를 소중하게 간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영화의 제목 '노포아'는 바로 그 후퉁에서 오래된 새 기르기 취미를 즐기며 한량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뜻하는 베이징 사투리다. 사람들이 육형(Mr. Six)이라 부르는 주인공 장쉐쥔(張學軍)이 바로 그 '노포아'다.

젊은 시절 강호(江湖)를 주름잡던 육형은 감옥을 다녀온 후에도 후퉁에서 예의와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며 살아간다. 예의 없음에는 반드시 일침을 놓는 그야말로 꼰대의 모습이다. 폭력으로 점철된 삶을 살았지만, 단호하고 몰인정하게 법을 집행하는 경찰에게 법치(法治)만이 능사가 아님을, 따뜻한 인치(人治)의 효용을 은근히 제시하기도 한다.

노포아(老?兒) 후퉁에서 오래된 새 기르기 취미를 즐기며 한량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뜻하는 베이징 사투리다.

▲ 노포아(老?兒) 후퉁에서 오래된 새 기르기 취미를 즐기며 한량처럼 살아가는 사람을 뜻하는 베이징 사투리다. ⓒ 화이(華誼)형제


나름의 신념을 실천하고 사는 노포아 경찰에게 법치(法治)만이 능사가 아님을, 따뜻한 법 집행을 당당히 요구한다.

▲ 나름의 신념을 실천하고 사는 노포아 경찰에게 법치(法治)만이 능사가 아님을, 따뜻한 법 집행을 당당히 요구한다. ⓒ 화이(華誼)형제


영화는 육형이 실종된 자신의 아들 샤오보(晓波)를 찾아 나서며 본격 시작된다. 아들이 지방의 부호 아들 샤오페이(小飞)의 페라리 차를 긁고, 게다가 그 여자 친구를 건드렸다는 이유로 납치된다. 경찰에 신고하면 될 일을 육형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해결하려고 나선다. 관계가 멀어진 아들과의 화해를 염두에 둔 포석이다. 힘들게 아들의 행방을 찾아 자신이 가진 돈 2천 위안을 건네며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만, 샤오페이 일당은 배상액으로 10만 위안을 요구한다. 육형은 돈을 빌리기 위해 옛 조직원들을 찾아다니지만 쉽지가 않다. 설상가상 동맥경화로 쓰러지고 만다.

문화대혁명(1966-1976) 기간 혁명사상으로 무장한 젊은 학생 위주의 홍위병에게 기성세대는 철저히 비판과 지탄의 대상으로 내몰렸다. 조금이라도 자본주의적 색채를 지녔거나, 낡고 전통적인 것들은 홍위병에게 철저히 타도되었다. 이제 그 젊은 홍위병들이 엄청난 자본으로 전통의 가치를 지켜가려는 기성세대를 옭아매고 위협하고 있는 설정이 흥미롭다. 물론 문화대혁명 당시의 권력이 마오쩌둥의 그릇된 판단에서 비롯되었다면, 지금의 자본권력은 부정부패의 그릇된 경로를 통해 흘러든 것이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영화을 일이관지하는 주제는 신구세대간의 갈등이다. 여기에 자본과 인정의 가치가 교차된다.

▲ 구세대와 신세대의 갈등 영화을 일이관지하는 주제는 신구세대간의 갈등이다. 여기에 자본과 인정의 가치가 교차된다. ⓒ 화이(華誼)형제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수다쟁이 아줌마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추종하는 수다쟁이 아줌마와 갈등을 빚다가 서서히 아버지를 이해하는 아들의 모습이다.

▲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수다쟁이 아줌마 아버지의 삶을 이해하고 추종하는 수다쟁이 아줌마와 갈등을 빚다가 서서히 아버지를 이해하는 아들의 모습이다. ⓒ 화이(華誼)형제


육형은 입원을 거부하고, 수다쟁이 아줌마의 도움으로 10만 위안을 빌려 자전거를 타고 폭력배 시절의 동료 싹쓸이(悶三儿)와 함께 아들을 구하러 간다. 초고속 질주용 페라리와 대비되는, 유유히 자전거를 타고 가는 늙수그레한 두 아저씨의 모습이 세대 간의 각기 다른 삶의 양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런데 자동차 수리 일을 했던 옛 동료 전등갓(燈罩儿)이 긁힌 페라리를 값싼 페인트로 도색해 더 많은 배상금을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되고 만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육형과 샤오페이는 일주일 후 이화원(頤和園) 뒤 인적 드문 호수에서 '베이징식 패싸움'을 하기로 약속한다.

구세대와 신세대간의 선명한 이분법적 갈등은 샤오페이의 여자친구가 아들 샤오보를 탈출시키고, 돈 10만 위안도 돌려주면서 다른 양상으로 전개된다. 돈을 돌려준 봉투에 샤오페이의 해외 은행 거래내역서가 함께 들어 있었는데, 그것은 지방 고위공무원인 샤오페이의 아버지가 해외로 자금을 빼돌리는데 사용할 계좌였던 것이다. 이런 사실이 공개될 것을 걱정한 샤오페이 측 패거리들이 은행 거래내역서를 찾기 위해 육형의 집을 뒤지고, 육형이 기르던 새도 죽여 버린다.

육형은 모처럼 아들과 함께 술을 마시며 서로의 과거를 이해하고 화해하지만, 동맥경화로 다시 쓰러졌다가 수술을 거부하고 퇴원한다. 자신의 삶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는 육형은 샤오페이 일당에 맞아 뇌진탕으로 입원한 아들과 그간의 모든 일을 해결하기 위한 마지막 일전에 나선다.

바리캉으로 머리를 짧게 밀고, 국방색 롱코트에 일본도를 등에 메고, 자전거를 타고 결전의 장소로 향하는 거리에서 어느 부패한 고위공직자가 몰래 키우던 타조가 차도로 도망가는 장면이 오버랩 된다. 퇴화한 날개로 날지 못하는 타조는 자본주의화하며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 중국에서 설 자리를 잃은 기성세대의 상징이다. 차도와 인도의 중간에 있는 자전거도로를 달리는 주인공 육형의 모습 또한 그 한 마리의 타조에 다름 아니다.

도로를 질주하는 타조 퇴화한 날개로 날지 못하는 타조는 자본주의화하며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 중국에서 설 자리를 잃은 기성세대의 상징이다.

▲ 도로를 질주하는 타조 퇴화한 날개로 날지 못하는 타조는 자본주의화하며 빠르게 발전하는 현대 중국에서 설 자리를 잃은 기성세대의 상징이다. ⓒ 화이(華誼)형제


강호를 상징하는 어름 위에 쓰러진 노포아 죽는 순간까지 당당하게 자신의 가치를 실천해내는 육형의 모습은 감동과 새로운 전승의 가치를 대변한다.

▲ 강호를 상징하는 어름 위에 쓰러진 노포아 죽는 순간까지 당당하게 자신의 가치를 실천해내는 육형의 모습은 감동과 새로운 전승의 가치를 대변한다. ⓒ 화이(華誼)형제


강호를 상징하는 듯한 얼어붙은 아침 호수의 양쪽에 육형과 샤오페이 일당이 대치해 있다. 육형은 서부영화의 카우보이처럼 홀로 적진을 향해 얼음 위를 달려간다. 그러나 죽음이 임박한 육형의 육신은 적진에 다 다다르기도 전에 쓰러지고 만다. '쨍그랑' 하고 얼음에 떨어진 칼소리와 그 소리에 눈물을 흘리는 샤오페이, 그리고 비록 낡은 방식이지만, 따뜻한 정이 있고, 남자답고 정의로운 멋을 일생 동안 온 몸으로 견지해온 육형을 추종하는 자들의 그림자가 몰려오며 영화는 막을 내린다.

샤오페이의 눈물은 죽는 순간까지 당당하게 자신의 가치를 실천해내는, 책에서나 존재하는 인물일 것이라 믿었던 의리 있는 꼰대에 대한 감동 때문일 것이다. 이는 기성세대의 가치에도 여전히 전승할 만한 가치가 있다는 감독의 메시지기도 하다. 자기만의 방식으로 "하나에 하나씩(一碼歸一碼)" 일을 해결해 가는 육형은 젊은 세대에게 몇 가지 가르침도 남겨 놓는다.  

우선 길거리에 앉아 자신의 힘든 처지를 호소하며 도움을 청하는 가난한 소녀 쩡홍에게 2백 위안을 건네주며 이웃에 대한 관심과 사랑을, 그리고 집배원이자 작은 심부름을 하는 구슬에게는 평범한 사람이지만 해야 할 의무가 있는 법이라며 감시자로서의 역할을, 그리고 아들에게 좋은 아내를 만나 자식을 많이 낳으라며 자신이 이룬 가치가 대를 이어 전승되길 바란다. 여기에는 어른과 술을 마시며 건배할 때는 잔을 어른보다 아래로 내려 부딪혀야 한다는 우리에게 익숙한 음주 예절도 포함되어 있다. 

마치 사탕을 입에 물고 말하는 것 같은 걸쭉한 얼화(兒化)음으로 뒤범벅된 영화 <노포아>는 공자와 유교 전통이 중시되는 현재 중국의 정책기조에 힘입은 바 크다. "세대교체는 기성세대의 죽음으로만 완성된다"는 말이 있는데, 중국에서 당분간은 이 말은 약발이 잘 먹히지 않을 것 같다. 육형의 아들 샤오보가 뇌진탕에 깨어나면 얼화음 강한 베이징 사투리를 구사하며, 다시 전통의 가치를 지키자며 후퉁을 누비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노포아 세대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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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베이징에서 3년, 산둥성 린이(臨沂)에서 1년 살면서 보고 들은 것들을 학생들에게 들려줍니다. 거대한 중국바닷가를 향해 끊임없이 낚시대를 드리우며 심연의 중국어와 중국문화를 건져올리려 노력합니다. 저서로 <중국에는 왜 갔어>, <무늬가 있는 중국어>가 있고, 최근에는 책을 읽고 밑줄 긋는 일에 빠져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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